제15편 정도(正道)
“속죄 (聽罪) 라….”
“•••저들은. 속죄를 위해서, 선녀 교단에 귀의(歸依)한 것인가.”
귀빈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대 연회장 곳곳에서 홀러나오고 있었 다.
“형산북류가 많은 인원을 잃긴 했지만. 그들의 남은 전력을 무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확실히, 그렇지.”
모두가 수군거리며 형산북류의 합류에 대해서 논하며.
“앞으로 잘 부탁하네.”
“•••저희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 다, 대공자님.”
형산북류의 무사들과 대공자 연 소현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던 그 때.
“새 소식이오!”
명백히.
삼공자 측에서 일부러 홀린 정보 가 또 한 번.
급히 들어왔지만.
“아미파 또한, 삼공자 님의 신 (新) 무림맹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하오!”
“아미파가?!”
몇몇은 그 새 소식에 반응을 보 이긴 했지만.
“그런데….”
“지금은 삼공자 쪽보다는.”
“대공자께서 세력을 급속히 확보 해나가는 기세가 더 놀랍구려.”
금방 시들해지고는.
다시 형산 쪽으로 이야기를 나누 기 시작했다.
“대공자께서 낙양에 형산북류의 근거지를 하사해 주실 터이니….”
“•••근거지만 확보되면, 안정적 으로 수입과 인재를 수급할 것이 고.”
“그렇다면, 수년 안에 형산북류 가 괴멸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 것 은-.”
“아니. 괴멸 이전보다, 형산은 더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이곳은 낙 양이니까요.”
중원국 최대 도시 증 하나인 낙 양.
연소현은 낙양검가의 대공자로서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냄과 동시 에.
“흘홀, 대공자. 이렇게 우군들이 많아지니, 이 늙은이 또한 든든하 구려.”
“그렇게 말씀하시는 공량 어르신 이야말로. 제게는 천군만마(千軍萬 馬)와 같습니다.”
막강한 지배력으로 두려움을 사 는 노마(老魔) 공량까지 낙양지사 로 앉혔으니.
신 무림맹을 구성하던 낙양검가 의 속파(屬派)들이 대공자에게 붙 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라 할
수 있었다.
“•••범이 날개를 단 격이 아닌 가‘?”
“대공자의 세력이 불어나는 속도 가, 마치 장마철에 황하(黃河)가 불 어나는 기세와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훌륭한 판단이었 군.”
“저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 니다.”
귀빈들이 재빨리 셈을 하며.
어떻게든 대공자와 더 가까워지 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이에.
전반적인 대화의 흐름과 전혀 관 계없이.
[지금이오…!]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공동을 여기서 빼 냅시다…!]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었다.
“군사부에서 호출이오!”
“자, 갑시다! 대사부!”
앞줄에서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 고 있던 공동파의 대사부가 어깨를 붙들렸다.
“자, 잠깐…!”
공동의 대사부가 내공을 끌어올 려 또다시 손을 뿌리치려 흐}자.
삼공자 충성파들이 이번에는 전 음부터 날렸다.
[방금, 남궁혁천 장로께서. 공동 파 전원이 즉시 돌아올 것을 명하 셨소이다.]
[게다가 군사부의 호출까지. 공동 은 이를 깡그리 무시하실 생각이시 오?]
대사부 개인을 겨냥한 말이 아니 라.
그들은 명백히 공동을 언급했으 니.
그것은 숫제, 협박이었다.
“당신들…!”
공동파의 대사부가 적의(敵意)와 함께 이를 드러내자.
[조금만 진정하고, 생각해보시오. 대사부!]
이번에는 얼른 태세(態勢)를 바 꾸어 그를 흔들었다.
[점창(點蒼)과 종남(終南)이 배반 하고, 형산 또한 완전히 우리와 척 을 져버린 상태란 말이오!]
[이런 상황에서, 공동파만이 우직 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어찌 그 누가 공동을 섭섭하게 대할 수 있 겠소이까?]
공동파 대사부의 눈이 흔들린 것 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은 그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충의(忠義)를 지켜 돌아온 공동을 섭섭하게 대우하면,
천하의 모두가 남궁과 군사부를 손 가락질할 것이오!]
[당연히 대공자에 못지않게 대가 또한 주어질 것이 틀림없소이다!]
쐐기를 박듯이 전음이 공동파 대 사부의 뇌리에 흘러들었다.
[게다가, 지금에 이르러. 뒤늦게 대공자 쪽에 합류해봐야. 뭐가 남 아 있을 것 같소이까?]
[화산(華山)과 무당(武當)의 합류 로, 중원국 전체에서 신 무림맹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고!]
[공동에게도 앞으로 적잖은 이익 이 돌아가게 될 것이오!]
공동파 대사부의 얼굴에 주름이 졌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점창에 종남 그리고 형산 까지도 합류해버렸고.
뒤늦게 엉기적거리며 합류해봐 야, 대공자 측에서 공동은 꿔다놓 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하리 라.
게다가.
다른 문파(門派)들과는 달리.
지금 공동이 합류를 택해봐야, 노골적인 이익 추구 이외에는 별달 리 명분도 없었다.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뜬 공동파 대사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또.
크게 혼들리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결정되었 다.
“•••우리 공동은.”
“공동파는…?”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 기대와 함
께 그의 입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 았고.
삼공자 측의 흘러가는 분위기와 상황을 호기심과 함께 지켜보던 주 변의 귀빈들 또한.
듣지 않는 척하면서도, 입을 다 물고.
공동파 대사부의 말에 귀를 기울 이고 있었다.
“우리 공동은, 그래도. 대공자님 께 검을 바칠 것이오.”
그 말에.
“대사부?!”
삼공자 측 충성파들의 입에서 비 명과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제정신이오?!”
“그렇소.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 르지. 하지만….”
공동파 대사부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뜻은 확고하오.”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대체 어째서?!”
“굳이 이 상황에서, 벌주(罰酒)를 택하는 것이오?!”
“대사부!”
아우성을 치다시피 하는 이들을 제치고 나와, 삼공자 측 충성파 하 나가 외쳤다.
“이유라도 좀 말해보시오!”
잠시, 침묵하며 마저 생각을 정 리한 공동파의 대사부가 입을 열어 단 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정도(正道).”
잠시 아연한 표정이던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정도라니.”
너 나 없이 실소(失笑)를 흘렸 다.
무슨. 시대착오적이고, 해괴
어차피 그들이 한마디로 알아듣 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공동파의 대사부가 쓴웃음을 지었 다.
“대공자님께선 지금까지, 그 신 산(神算)의 지략으로 많은 술수(術 數)와 계책(計策)을 보여주셨지만.
단 한 번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 셨소이다.”
“그래서 그게 무슨-?”
공동파의 대사부가 말을 끊었 다.
“그것이, 바로. 군주가 마땅히 가 져야 할 신응이고, 신뢰라. 그것이 바로 대공자님께서 가지고 계신 미 덕이고….”
군주(君主).
신용(信用), 신뢰(信賴).
미덕 (美德).
그 단어들을 입에 올리면서도.
“또한, 그것이. 본인이 대공자님 을 따르기로 마음먹게 된, 결정적 인 이유요.”
“•••허.”
어찌도 그리 그 말들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어째서.
대공자에게 무릎을 꿇어 사죄했 었던 종남의 문주가 그토록.
후련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었었 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지금, 대사부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협(依)이니 의(義)니 하는, 그 런 구(舊) 무림맹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정파(正派)스러운 말이라면 _ 99
“아니.”
공동의 대사부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고귀한 가치를 입에 올리 기에, 우리가 이미 너무나 타락했 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소.”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 다.
“하지만.”
그 미소는 다분히 자조적이었지 만.
동시에 종남의 문주가 띠었던 미 소처럼,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문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봐 도 마찬가지라오.”
“•••무슨 말이오?”
공동의 대사부가 답했다.
“삼공자 측에서 수만 가지의 이 익으로 가득한 미래를 우리 공동에 게 보장하겠다고 하는. 그런 달콤 한 말들보다.”
그가 딱 잘라 말했다.
“대공자님께서 약속해주시는 단 한마디 말씀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말이오.”
즉, 대공자와는 달리.
삼공자 측은 신용과 신뢰가 없다 는 말.
“헛소리!”
당연하게도 즉각 삼공자 측 충성 파들이 발끈했다.
“그 무슨 근본도 없는 논리란 말 이오?!”
“차라리 성인군자(聖人君子)인
척하는 것이 낫지, 뭔 말도 안 되
는 말을 하고 있소?!”
공동의 대사부가 잡혀있던 어깨 를 가뿐히 털어, 그들에게서 벗어 나며 물었다.
“그렇소이까?”
그가 물음을 이었다.
“대공자님께서는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단 한 번도 어기신 적이 없 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소만. 그것 은 어떻게 생각하오?”
놀랍게도.
그 순간.
그 물음에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 입을 다물었다.
대공자는 과연.
앞으로 행보에서, 자신이 약속했 던 말을 어길 것인가.
누구도, 선뜻.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게 만드 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칩거를 끝낸 대공자 연소현이 쌓아온 그의 가장
큰 자산(資産)이며 업적(業績)이었 다.
“그것이 앞서 본인이 언급했던, 대공자님의 미덕인 신뢰와 신용이 라오.”
으드득.
삼공자 측 충성파들의 입에서 이 빨을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국.
그들조차도 달리 할 말은 없었는 지라.
“…대사부. 당신은 이 결정을 후
회하게 될 것이야.”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대공자가 어찌하든, 반드시 우 리가, 공동파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꼴을 만들 것이니.”
“어디, 대공자에게 붙어서 제자 들의 원망을 받으며 찬밥 신세나 즐겨보시오.”
“죽어서 젯밥도 못 얻어먹게 될 것이니. 살아서 찬밥이라도 먹어둬 야겠지.”
전형적임에도, 그들의 말에 실려 있는 섬뜩한 살기(殺氣)만은 진짜
였으니.
등골이 서늘해진 공동의 대사부 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 었다.
하지만.
“ 호오?”
고개를 돌려보자, 어느새.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공량의 얼 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
기겁한 삼공자 측 충성파가 반사 적으로 뒷걸음을 치자.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은 공량은 그들이 물러난 만큼 그들에게 다가 오며 말했다.
“지금, 대공자의 그늘에 투신(投 身)하겠다는 이를 겁박하고 있는 것인가?”
공량이 비릿한 피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금, 대공자의 처소인 원각정 에서. 감히, 너희 따위가 살기를 드 러내고 있는 것인가?”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저 어 봐야, 주변의 싸늘한 반응이 더 해질 뿐이었다.
‘아뿔싸...!’
‘마음이 급해, 그만 장소를 잊고 있었구나…!’
하얗게 질린 삼공자 측 충성파들 이 입구 쪽으로 주춤거리며 물러났 다.
“저, 저희는 이제 물러나 보겠습 니다!”
굳이, 직접적으로 관여되고 싶지 않은 귀빈들은 그들의 길을 막지는 않았지만.
“너희의 얼굴은 모두 이 공량이 기억했으니.”
공량은 황급히 물러나는 이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 보였다.
“너희의 문파(門派)와 가문 그리 고 무관(武館) 따위는, 앞으로 이 낙양 땅 근처에도 발을 디디지 못 하게 될 것이야.”
공량의 이뻴은 나이 탓에 누렇
고.
그 치열(齒列)은 무너졌으며, 많 은 부분이 금니로 대체되거나 심지 어 빠져 있기까지 했지만.
“히익…!”
노마(老魔)의 이빨은 그들에게 있어서 산군(山君)의 이빨보다도 두려운 형상이었으니.
그들이 체면도 잊고, 당장에 도 주하다시피 원각정을 빠져 나가버 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낙양지사 어르 신.”
공동파의 대사부가 그렇게 감사 를 표하자.
“아니.”
공량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감사를 표해야 할 대상
이 틀렸소.”
“ 예?”
평소의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 온 공량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늙은이가 마음대로 이 원각 정의 주인 행세를 했겠소이까?”
객(客)을 내쫓는 것은 주인의 권 한
공량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공동파의 대사부가 반사적으로 돌 아선 그곳에.
대공자 연소현의 모습이 있었다.
“대, 대공자님…!”
연소현이 미소 지었다.
“공동파의 합류를 환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