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39화 (339/350)

제14편 나려타곤(뽀w打浪)

낙양검가(浴陽劍家).

원각정(原各庭) 정문 앞 거리.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는 동안.

노점 한구석에 모여 앉아, 심각 한 얼굴을 한 이들도 있었다.

“•••뭐라고?”

다들 심각한 얼굴에, 술과 음식

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는 그들에 게.

타박하는 이가 있을 법도 하련 만.

“사질(師燈). 다시 한번 말해보 게.”

낙양검가 내에서, 누구랄 것 없 이.

검을 차고 있는 무리의 무사들에 게는 신경을 끄는 것이 상책(上策) 이었다.

하물며.

그들이 입은 무복(武服)이, 대 (大) 공동파01空뗘派)의 것이라면야.

“•••그것이, 그러니까. 대사부(大 師父)께서 말입니다.”

사질이라고 불린 까까머리의 무 사가 달려오느라 홀린 땀을 닦지도 못하고서.

다시 한번 안쪽 상황을 설명했 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다시 한번 모두 전해 들은 여인, 공동의 대제자(大弟子) 가 조곤조곤 확인하듯 하나씩 물었 다.

“점창파의 그 능구렁이 같은 장 문인은 이미 대공자님 쪽으로 돌아

섰고.”

“ 예.”

“종남은 늦게라도 그 대세에 올 라타서 대공자님께 막대한 보상을 약속받았다고…?”

“ 예.”

“그런데. 우리 대사부께선 그동 안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셨다 고…?”

한층 낮아진 사고(師姑)의 목소 리에.

안쪽에서 소식을 가져온 이대(三 代) 제자가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것이. 그 시점에 갑자기 화산파(華山派)와 무당파(武當派)의 소식이 전해져 들려오는 바람에-.”

“그렇다면 더더욱, 대공자님의 끈을 잡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일대(一代) 제자 하나가 벌컥 화 를 냈다.

“지금도 우리 공동파가 신 무림 맹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분이 적은 데. 거기다가 화산과 무당까지 밀 고 들어온다고!”

평소에도 셈에 밝은 일대 제자의 목소리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대공자님께선 점창과

종남에는 낙양에서의 새 대형 사업 권까지 참여할 권한을 열어주셨다 면서!”

“예, 예.”

이대 제자가 마치, 자신이 혼나 는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리자.

일대 제자가 더욱 분통을 터트렸 다.

“지금 우리 공동에게 가장 필요 한 것이 무엇이더냐?! 감숙성(甘肅 省)의 공동산을 버리고 떠나온 우 리에게는 새 근거지가 필요하단 말 이다!”

낙양검가는 비바람을 피하기 위

한 목적에서는 비할 나위 없는 홀 륭한 지붕이긴 했지만.

그 지붕 아래에는 이미 수세대에 걸쳐 뿌리를 굳게 내린 세력들이 굳건히 존재했다.

“우리 공동에게 있어서 엄청난 기회란 말이다!”

일대 제자가 답답해 죽겠다는 둣 이 제 가슴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런데, 그 기회를 눈앞에서 놓 쳤다고?!”

그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대사부는 평소엔 그렇게 자신이 똑똑한 척을 해대더니, 막상 이 중

요한-!”

“말을 가리거라.”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공동의 대사부이시 다.”

대제자, 그녀의 묵직한 목소리에 일대 제자가 입을 닫았다.

이곳에는 그들, 공동의 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주변의 인물들이 취중에도 무슨 일인지 뒤를 기웃거리는 모습에.

그가 인상을 구겼다.

“•••제기랄.”

욕지거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앞 에 놓여있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 다.

[나는 대사부께서 그 정도의 계 산조차 못 하셨으리라고는 생각지 도 않는다.]

주변의 이목이 끌리자.

대제자가 전음으로 전환하여 대 화를 이어나갔다.

[대사부께서는 이 수라장 같은 검가의 장로원에서도 그 오랜 시간 을 버텨 오신 분이야.]

그녀가 이대 제자에게 물었다.

[대체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그것이….]

이대 제자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 되었다.

‘망할..I’

공동파의 대사부는 슬쩍 입을 열 어 보려 했지만.

“흘흘. 오흉(五凶)은 지금에 와서 는 누구도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낙후 지역이지만.’’

대공자를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 고 있는 이들은.

도저히 그럴 틈을 주질 않았다.

“본디, 위치상 낙양의 가장 금싸 라기 땅들이라오.”

감히, 본래의 명성에 더해.

낙양지사의 자리까지 차지한 공 량의 말을 끊고 대화에 끼어들 정 도로, 공동파의 대사부는 미치지 않았다.

“그런 자리에 새 둥지를 건설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이 어찌, 종남 파(線南派)의 홍복(洪福)이라 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지사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종남의 문주는 입에서 웃음이 끊 이질 않고 있었다.

“바른 일을 하려고, 바른 선택을 하려 하니. 하늘이 저희 종남을 축 복하려나 봅니다.”

“물론이지. 물론이야.”

“어홈, 홈. 저기-.”

이때다 싶어, 괜히 헛기침까지 하며 대화에 슬쩍 끼어들어 보려 했더니.

“화산과 무당이오, 대사부.”

“이제 삼공자님의 앞길에는, 틀 림없이 영광만이 있을 것이라오 …!”

자신, 공동의 대사부를 둘러싸다 시피 한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 몸 으로 막아서다시피 했다.

“아니, 본인은-.”

“어허!”

“그러지 마시고, 슬슬 자리를 뜨 는 것이 좋겠소이다.”

“잠시, 이 손 좀 놓고…!”

그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아니, 이 점창을 두고. 어찌 그 리도 즐겁게들 대화를 나누고 계십 니까?”

점창의 전 장문인이 얼른 그 자 리에 잽싸게 끼어들어 버렸다.

“물론, 점창도 환영하오.”

대공자가 짐짓 인자하게 웃어 보 이자, 점창 전 장문인이 두 손을

비벼 보였다.

“아이고, 환영이라니. 대공자님께 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대의 공이 적지 않소.”

“이 늙은이는 마땅히 해야 할 일 을 했을 뿐이지요!”

점창 전 장문인의 입술이 팔락거 리며, 점차 발동을 걸기 시작했으 니.

“대공자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저 희 점창이 종남보다 확실하고, 명 확하게 대공자님께 검을 먼저 바쳤 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암요! 그러믄요!”

어쩌면.

화산과 무당의 합류 소식이 들려 왔을 때.

자신이 흘렸던 식은땀과 검은 속 내를 대공자가 눈치챘을지도 모른 다는 위기감에.

“저희 점창은 바라는 것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요! 그저, 사업에 참 여시켜 주시는 것만으로도, 이 늙 은이는 감복(感服)하여 당장 여기 서 큰절을 올려도 모자랄 것입니 다! 하지만….”

점창의 전 장문인은 그렇게 말하 면서, 은근히 종남의 문주를 옆으

로 밀며 외쳤다.

“하지만! 조금만! 저희 점창은 그저 대공자님의 대자대비(大慈大 悲)함에 기대어! 전원이 일치단결 하여 점창의 비원(悲願)을, 부디 원 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성취해내고 자 하는 열망 속에서-!”

그의 혀와 입술이 점창의 환검 (幻劍)보다 현란하게 휘날렸다.

“부디, 개발 계획 구역의 일부라 도 저희 점창에게 내어주신다면 …!”

그가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만만세를 외칠 기세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저희 점창은 앞으로도 무한한 충성과 충정으로 가득한-!”

“장문인.”

그 열정적인 호소를 끊은 것은.

은근히 밀려나던 종남의 문주였 다.

“그런데, 장문인께서 하신 말씀 에 오류가 있는 것이….”

“뭐요?”

종남의 문주가 점창 전 장문인의 손에 들린 그의 검을 가리켰다.

“그대는 말만 해놓고, 아직 대공

자께 검을 제대로 바치지는 않았소 이다.”

“•••••.?!”

이 검이 왜 아직 내 손에 있는 것이지? 라는 표정.

“아, 아니. 이것은-!”

점창 전 장문인이 종남의 검을 들고 있는 대공자와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기색올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대공자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검을 바치겠다고 크게 떠들어놓

고서는.”

공량도 그런 대공자를 거들듯, 흘홀하고 이 빠진 웃음을 흘렸다.

“정작, 의식을 먼저 치른 것은 종남 쪽이지 않았는가?”

“그러니. 장문인의 말을 정정하 자면….”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종남 문 주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검을 바친 것은 우리 종남의 검 이 먼저이니. 점창이 우리의 뒤가 되는 것입니다.”

“아, 아니 그건?!”

점창 전 장문인이 세상만사가 전 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공자에 게 무릎을 꿇었다.

“대공자님!”

그가 자신의 검을 두 손으로 들 어 바치며 외쳤다.

“대공자님은 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항상 대공자님만을 따르고 생각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물론이오, 장문인.”

연소현이 그 검을 받으며 호탕하 게 웃어 보였다.

“그대의 검은 이미 예전부터 마 음속에서 받아두었소.”

“대공자님--!”

그 광경을 보며 귀빈들이 박수를 치기도 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리기 도 했다.

“껄껄, 오늘 장문인께서 큰 웃음 을 주시는군!”

“여기 술을 더 가져오게나!”

그들 모두가.

한껏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는 점창 전 장문인과 대공자의 장 단에 흥을 더해갔다.

“이거 좀 놓아 보라 하지 않았 소?!”

물론, 그러는 와중.

“어허, 대사부! 어서 돌아가자 하 지 않았소이까…?!”

“애초에 이곳에 온 것부터가 실 수였소이다…!”

공동파의 대사부와 삼공자 측의 실랑이는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거, 놓으래두!’’

공동파의 대사부 입에서 노호성 이 터져 나오며.

내공까지 동원해 소매를 거칠게

뿌리치자, 붙들렸던 소매가 찢어져 넝마처럼 되어버렸다.

“어이쿠!”

삼공자 측 충성파들이 우르르 넘 어지는 틈을 타서.

그는 얼른 대공자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대공자님!”

다시.

원각정 정문 앞 거리.

[잠깐!]

가만히 듣고 있던 일대 제자가 전음으로 외쳤다.

[여기까지 듣자 하니, 충분히 대 공자께 검을 바칠 시간이 있었지 않느냐?!]

그가 술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탕탕하고 노상의 탁자를 두드렸다.

[어찌 된 일인 것이야?!]

대제자 또한 이번만큼은 그를 막 지 않았다.

그녀도 그와 마찬가지의 마음이 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쉰 이대 제자가 뒤 를 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대공자님-!”

공동의 대사부가 허연 수염을 나 부끼며, 좌중을 벗어나려던 그때.

“대공자님.”

그의 시녀장 정아가 먼저, 대공 자를 부르자.

“아아, 그렇군.”

그녀의 목소리에, 기억이 났다는 듯이.

대공자 연소현이 좌중을 보며 좌 우로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귀빈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분들 이 있소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녀들이 대연회장의 후문(後門) 을 열었고, 좌중의 시선이 그쪽으 로 집중되었고.

검을 찬 한 무리의 범상찮은 무 사들이 조용히 입장했다.

한마디의 말도 없이.

화려한 주변의 연회장을 둘러보 는 기색도 없이.

그저 묵묵히 일렬로 걸어 들어오 는 무사들은, 누구랄 것 없이.

어딘가 숙연(肅然)하고.

심지어 그 발걸음이 결연(決然) 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저들은?”

가만히 그 면면(面面)을 살피던 이들 중.

평소 무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몇몇 이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기함 하여 외쳤다.

“•••형산파(衡山派)!”

“형산북류(衡山北流)의 생존자들 이라고?!”

그 말에 깜짝 놀란 좌중이 크게 웅성이기 시작했다.

“형산북류라면…?!”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 소 요 사태 때, 괴멸하다시피 한 이들 이 아니오?!”

“그 생존자들은 정신적 문제와 함께 책임론에 휩싸여 격리되어 있 었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그들에게 충격이 전파될 시간을

기다린 연소현이 손떅을 쳐 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들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난무했고. 심지어는 억측 또한 많 은 것으로 알고 있소.”

대공자는 그들의 곁으로 가서 자 신에게 집중된 이목을 그들에게로 자연스럽게 넘기며 말을 이었다.

“오늘 여기서 본인이 몇 가지 사 실을 확실하게 알려드리고자 하오.”

연소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형산북류의 무사들이 묵묵히 그 에게 고개를 숙여 존경과 존중의 뜻을 내비쳤다.

“그들이 과거 불미스러운 일에 말려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여기 있는 모두는 그 과거의 죄와 잘못 을 깊이 뉘우치고 있소이다.”

“과거 저희는 죄 없는 백성들을 해치고, 그들을 억압하는 데 앞장 섰었습니다.”

형산북류의 무사들 중에서 가장 내공이 심후한 이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속죄자(煩罪者)들입니

다.”

무거운 참회('It海)의 고백에, 묵 직한 침묵이 좌중을 감돌았다.

형산의 무사가 대공자를 공손히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 대공자께서는. 저 희가 어떻게 해야, 앞으로 백성들 을 위한 속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지 알려주신, 저희의 인도자(引W 者) 이십니다.”

들어 올린 그의 팔목에는 선녀교 단의 염주가 칭칭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형산북류 무사들 또 한, 약 선녀 신앙을 뜻하는 상징물 들을 소중하게 소지하고 있었다.

“저희 형산북류 속죄자들의 검 은, 대공자께 바쳤습니다.”

대공자가 좌중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백의종군(白衣從軍)한 형산의 검들은 앞으로, 본인과 함께할 것 이오.”

그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구파(九派) 중 형산의 한 갈래가 또다시 대공자에게 합류하는 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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