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영역(領域)
“연회는 이제 시작이다!”
“모두, 축제를 즐기도록 하라/”
대공자 연소현이 그리 말했으니.
말한 대로 되었다.
“원각정 앞에서 술과 음식을 나 눠주고 있다더군…!”
“어서, 우리도 가세!”
하녀단의 하녀들과 사공자의 하
녀들은 조금의 아낌도 없이, 술과 음식을 베풀었고.
때마침, 저녁이라.
“캬아, 술맛 좋구나…!”
일을 마친 낙양검가의 인원들이 그 소문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들었 다.
“이것이 약 선녀님께서 이름을 붙이셨다는 바로 그 술인가?”
“말 그대로 이것이 약주(藥酒)로 다!”
그뿐만 아니라.
“이 거리에 모여드는 모두가 오
늘 원각정의 손님이다!”
평소에는 온화하기만 하던, 사공 자 연비의 시녀장이 카랑카랑한 목 소리로 하녀들에게 외쳤다.
“대공자님께서, 축제를 즐기라 하셨으니. 그 무엇도 모자람이 없 어야 할 것이야!”
그녀의 기백(氣陳)은, 감히 무사 들의 전의에 비할 정도였다.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야! 알겠느냐?!”
“예! 시녀장님!”
하녀들은 원각정 내에서 음식을 해서 내어오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
지 않는다는 둣이.
“고기가 부족해요! 어째서 아직 도 추가로 주문한 식재료들이 도착 을 하지 않는 것인가요?!”
“지금 근처까지 왔다고 합니다! 뒷길까지 인파로 꽉 들어차서, 하 인들이 직접 식재료를 들고 나르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녀들은 거리까지 직접 나와 그 자리에서 고기들을 구웠고, 볶았으 며, 튀겼으니.
“대공자께서 우리의 검가에 계시 니, 그야말로 가문의 홍복(洪福)이 로세!”
흥에 겨워 소란을 떠는 이들의 잡담 소리와 여기저기서 축하하듯 터트리는 폭죽 소리.
거리에 마련된 작은 약 선녀의 신사에서는.
향을 피우는 방문객들이 기원 (M 願)을 올리는 소리가 밤이 드리운 하늘까지 울려 퍼졌고.
“부디 만수무강(萬壽無彊)하소
서….”
“약 선녀님. 부디 대공자님의 앞 길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악사들은 거리에 가득 걸린 꽃 모양 등 아래 자리를 펴고,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니.
“그래! 오늘은 반드시 결판을 내 자…!”
“네놈의 비문(碑文)은 내 직접 손수 새겨주마!”
곳곳에서 흥분한 무사들이 검을 꺼내 들고 벌이는 살벌한 검격(劍 擊) 또한 모두의 홍을 돋우는 칼춤 이라.
“좋구나…!”
이(三) 충이고 지붕이고 할 것 없이 난간 따위에 걸터앉은 이들이 홍에 못 이겨.
아무런 가락에 맞춰 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황하의 누런 물이 깊이 흐르 는~!”
“웅혼한 검가의 혼은'이”
박자도 제대로 맞지 않고, 가사 도 제멋대로에.
심지어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 를 지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자! 다들 건배합세!”
“대공자님을 위하여!”
“위하여!”
그것이 즐거움이고.
그것이 행복이라.
그 모든 모자람과 길고 혹독한 인상과.
애달프고 고되었던 일들을, 달래 고 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으니.
그것이 축제(祝祭)라.
“길을 비켜라!”
심후한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우 렁차게 울려 퍼지고.
“본가의 전쟁부의 행차이시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검을 한 자루 이상 찬 무사들의 행렬이 모 습을 드러냈다.
“전쟁부의 무사들이 왔다고?!”
“저들이 그 용맹한 본가의 전쟁 부인가?”
에이듯이 살벌한 안광(眼光)에.
그 기세는 갓 벼려낸 예리한 검 날처럼 섬뜩했고.
그들 하나하나가 실전(實戰)에서 단련된 역전(歷戰)의 용사들이라.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 한 몸 처럼 움직이는 집단의 모습이 자아 내는 위압감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 지만.
“오오! 훌륭하구나!”
“저들마저도 대공자님을 축하하 러 온 것인가…!”
흥이 오를 만큼 오른 군중들은.
대공자의 원각정이라는 장소가 가져다주는 묘한 안정감 속에 있었 기에.
평소라면, 눈조차 마주치길 꺼렸 을 흉흉한 무사들의 행렬마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훌륭한 볼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행렬의 가장 앞에 선 이들은, 본가 전쟁부의 장군들-!”
“검가무장(劍家武將)들이 아닌
가‘?!’’
소문을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 들이, 그 유명한 전쟁부의 무장들 을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북부 전쟁 당시에 북방 오랑캐 들을 벌벌 떨게 했던, 본가의 자랑 들이로군!”
길거리로, 그리고 난간으로 몰려 든 구경꾼들의 말처럼.
바람에 허연 수염을 휘날리는 검 가무장들의 모습에는.
“오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여 경탄하 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역시! 한 명, 한 명. 관록이 느 껴지는구나!”
그런 축제 분위기에.
오히려 역으로 당황한 것은 전쟁 부의 무사들이었다.
“길을 비키라지 않느냐?!”
평소라면, 그저 깃발을 높이 세 우는 것만으로.
뻥 뚫린 대로를 독점할 수 있었 던 그들이었는데.
“본가의 검가무장들께서 행차하 신다!”
오히려 몰려드는 구경꾼들로 인 해,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
대공자가 장로원에서 펼쳤던 태 상가주의 일검(一劍)에 이어서.
팽 장로와의 비무가 낳은 열기 (熱氣)는 이젠 비정상적일 정도였
다.
그렇게 행렬이 계속 정체되는 가 운데.
나이 많은 검가무장이 투구 아래 로 혀를 찼다.
[•••이러다가 행사 다 끝나겠군.]
그러자,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검가무장들의 전음들 이 터져 나왔다.
[대공자 얼굴도 못 보는 거 아니 요?]
[그러길래, X발. 내가 애초에 병 력은 두고 오자고 했잖소?!]
[제기랄. 있지도 않은 체면은 뭣 하러 챙긴다고….]
[뭣이?! 이 불알도 하나밖에 없 는 짝불알 놈이…!]
[내가 이 불알 한 짝으로 자식을 일곱이나 봤다! 그런 내가 짝불알 이면. 자식을 둘밖에 못 본 네놈은 고자냐?!]
[아니, 욕들은 하지 맙시다! 욕 은!]
검가무장이라는 위엄 찬란한 이 름과.
그 근엄한 표정들과는 달리.
뿌리부터가 싸움터의 진창에서 구르던 이들인지라.
입담부터가 걸쭉하기가 짝이 없 었다.
[어디 대공자의 검을 보기 전에, 내 검부터 맛볼 터인가?!]
[좋다, 이놈아! 오늘 그 한 짝 남 은 불알을 내가 마저 떼주마!]
만일 그들의 전음이 새어나가기 라도 하면.
전쟁부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리 라.
[•••망할!]
기어코.
참다못한 전쟁부주(戰爭部主)가 벌컥 화를 내고 나서야.
[둘 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망 신들을 당해 볼 것이야?!]
두 노장(老將)은 만지작거리던 검에서 손을 놓았다.
[•••나중에 돌아가서 보자.]
[내 평생 살면서, 두고 보자던 놈 중에 진짜 무서운 놈은 없었다.]
[그만하라지 않는가?!]
혈기(血氣) 넘치는 늙은이들이 란.
본질적으로, 물불 못 가리는 애 들과 차이가 없는 법.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욕 설을 억지로 삼키면서.
전쟁부주는 젊은 무장에게 고개 를 끄덕여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만 가지.”
그러자.
“충(忠)!”
상대적으로 젊은 검가무장이 즉 시 뒤를 돌아보고 주먹을 들어 보 였다.
“정지 (靜止)!”
수신호를 파악한 부장무사 하나 가 즉시 명령을 복창했고.
“정지 (靜止)!”
무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복명 복창하며 한 몸처럼 일제히 발을 맞춰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부장•무사(副長武士)들은, 무사들 을 통제하여 전쟁부 막사로 돌아가 도록!”
아니.
천지에 진동하는 맛있는 고기 냄 새와 흥겨운 노랫소리, 향기로운
술 내음을 두고.
여기까지 와서, 그대로 돌아가란 말인가?!
부장무사들의 표정에서 감정이 뚝뚝 흘러넘쳤지만.
어쩌겠는가.
“전 병력, 뒤로 돌아!”
호령하는 부장무사의 목소리에서 한(恨)이 느껴졌다.
“우리는 지금부터, 본대 막사로 귀환한다!”
돌아서는 전쟁부 무사들의 눈에
서 피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얘들아. 억울하지?]
그런 그들의 뒤통수에.
불알을 언급하며 싸우던 두 검가 무장의 이죽거리는 전음이 들려왔 다.
[그래서 군(軍)에는 이런 말이 있 지!]
[억울하면, 너희도 출세(出世)해 라!]
케케케, 하며.
두 늙은 무장은 굳이 비웃음 소 리까지 전음에 실어 전쟁부 무사들
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가.
전쟁부주의 주름진 이마에 혈관 이 불끈 곤두서고.
그의 발등이 그림자도 남기지 않 고 번개처럼 번뜩였다.
빠악, 빠악!
“어억…!”
“끅…?!”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정강이를 부여잡고 주저앉는 두 검가무장을 보며 고개를 내저은 참 모장(參謀長)。] 한숨과 함께 전음
을 시전했다.
[•••그나저나, 부주님.]
[뭔가‘?]
참모장이 충분히 전쟁부주에게 근접하여, 전음이 새어나가지 않도 록 한충 더 주의하며 물었다.
[우리 전쟁부가 본가 내에서의 정치적 위상을 되찾을 방책이 있다 는 것이 확실합니까?]
대공자의 아버지인 태상가주가 쓰러진 이후.
낙양검가의 대규모 군사행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같은 맥락에서, 전쟁부의 활약 또한 북부전쟁을 마지막으로 줄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 다.
[아이고, 아파라.]
[•••정강이 쪼개지는 줄 알았네.]
경박해 보이기만 하는 두 노장 또한, 과거에는 장로원의 일원이었 으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대부분의 검가무장들
이 검가의 장로였지만.
후계자 정쟁(政爭)이 가열되고, 검가가 부패해감에 따라.
순수 무장들은 장로원에서 설 자 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에 이르렀다.
‘•••상무(常武) 정신의 검가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되었지.’
순수하게 무(武)를 숭상(崇尙)하 는 이들은 권력의 핵심부에서 쫓겨 났다.
[부주님…?]
대답이 없는 전쟁부주에게 참모 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걸자.
[•••당연히 지금 시점에는 확신할 수는 없네. 하지만.]
전쟁부주가 시선을 돌렸다.
그 방향은 자신들이 향하고 있던 원각정이 있는 방향이었다.
[지금은 염 장로의 말을 믿어볼 수밖에.]
염 장로는 그들과 같은 전쟁부 소속이며, 동시에 현재 유일하게 장로원에 남아 있는 인물이기도 했 으니.
[과연, 염 장로의 말처럼.]
참모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로 대공자에게 우리 전쟁부 의 상황을 뒤집을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요?]
[•••대공자님이다.]
[예?]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 한 참모장에게.
전쟁부주가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또박또박하게 전음을 전달했다.
[대공자‘님’이라고.]
[시, 시정(是正)하겠습니다…!]
돌아선 전쟁부주가 구경꾼들의
시선을 뚫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 다.
[우, 우리를 두고 가지 마시 오…!]
[아이고, 내 다리…!]
절름거리며 황급히 따라붙는 두 노장의 모양새가 우스웠기에.
다른 무장들은 전음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낄낄.]
[대공자와 한판 붙어보기 전에, 둘 다 다리부터 고치고 와야겠구 려!]
예전이었다면 함께 웃었을 전쟁 부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 다.
‘•••낙양 시내에 해적 따위가 포 격을 가하고. 흑도의 무뢰배 따위 들이 난리를 치는 동안.’
그가 이를 악다물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 다.’
결국엔.
염 장로가 이끈 전쟁부의 무사 들이 마지막에 활약을 하긴 했지
만.
출정이 위에서 결정되기 전까지.
전쟁부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그저 상황을 관망하길 강요당했 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는 것은 어떻게든 끊어야 한다.’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던 노장의 직감(直感) 일까.
어째서인지 자신에게는.
묘한 예감이 있었다.
‘…지금이, 낙양검가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 전의. 유일한 기회
인 것처럼 느껴진다.’
염 장로가 비밀리에 했던 말이 사실인지는.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대공자께서는. 전쟁부를 살릴 비 책(秘策)을가지고계십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판단할 정도로 영리했다면.
애초에 그가 장로원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으리라.
‘•••이제부터 직접.’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본인에게 확인하는 수밖에.’
원각정의 정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