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31화 (331/350)

제6편 전철(前輸)

낙양검가(浴陽劍家).

삼공자 측 진영(陣營).

뚜벅뚜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

려 퍼지고.

....

발걸음 소리의 주인을 알아본 이 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좌우로

비켜섰다.

평소라면.

그런 모습 하나하나에서 작은 만 족감을 느꼈을 발걸음 소리의 주인 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복도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자신 의 발걸음 소리가 초조하게만 들려 왔고.

심지어는 어딘가 쫓기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정지하시오! 이곳은 대군사부

(大軍師部)의 중심 구역…!”

평소처럼 출입인을 통제하려던, 무사들의 눈이 커졌다.

“나, 남궁 장로님…?!”

발걸음 소리의 주인.

삼공자 계파의 수장인 남궁혁천 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열어라.”

잠시.

문을 지키던 구(舊) 무림맹 출신 의 두 무사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 아 보았지만.

상대는 애초에 그들이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나, 남궁혁천 장로께서 대군사 부를 방문하셨습니다!”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남궁혁천은 안 쪽으로 발걸음을 디뎠다.

“이거, 이거.”

먹 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가운 데, 어딘가 슬쩍 아니꼬운 듯한 말 투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선풍도 골(仙風道骨)의 노인.

사마(司馬) 대군사가 그를 맞이 했다.

“남궁 장로님께서.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직접 방문하셨습니 까?”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착 각이 아니다.

구(舊) 무림맹의 시절부터.

남궁세가(南宮世家)로 대표되는 세가(世家)들.

군사부(軍師部).

그리고 구파(九派)는 끊임없이 무림맹 내부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어왔으니.

그 오랜 권력 다툼의 세월 속에 서 빚어진 원한투성이의 넝마 같은 관계는.

지금, 이 낙양검가에서까지도 이 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 한 잔 내어오지 않고.

자신들 삼공자 계파의 수장인, 남궁혁천을 그 자리에 세워둔 채로 용건부터 물었던 것이다.

“…대공자의 소식은 들으셨소?”

거북한 공기 속에서, 굳은 표정 으로 남궁혁천이 물었다.

“저희도 귀가 있으니, 들었지요.”

특히나, 가문 간에 직접적인 원 한 관계가 있었던 사마 대군사는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남궁혁천 장로께서 이끄시는 장 로들이. 장로원에서 일방적으로 대 공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패배한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저 런....”

노인이 혀를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분명히 저희 군사부는 대공자

측에서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서, 남궁 장로께 직접 경고를 보냈었습 니다만….”

노인은 적대감이 물씬 풍기는 태 도로 일관했다.

“그게 아니면, 대공-.”

사마 대군사의 입가가 비틀리며, 이가 드러났지만.

“ 대공자가.”

남궁혁천이 먼저 그가 할 말을 가로챘다.

“하북 파벌의 팽 장로를 고수로 만들었다는 소식이라면, 나 또한 방금 들었소.”

그러자, 사마 대군사가 입가를 더욱 비틀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측의 장로들이 원각정으로 몰려간 것도 아시겠군 요.”

사마 대군사가 그를 조롱하듯 말 했다.

“그렇다면, 남궁 장로께서는 지 금. 그들을 통제하고 계셨어야 하 는 것이 아닐지…?”

평소라면.

누가 되었든, 누군가 하나가 먼 저 성질을 내고.

자리가 파장(罷場)되었어야 할 시점이었다.

“•••지금 그들의 무(武)에 대한 호기심을 억눌러봐야, 더욱 큰 갈 망(渴望)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오. 그렇게 되면 대공자에게 더욱 휘둘 리게 될 것이고.”

하지만 오늘의 남궁혁천은 분노 에 의해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도.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럴 바에는 지금 잠시 풀어놓 는 편이 낫소.”

뭔가 평소와는 다른, 남궁혁천의 분위기에 사마 대군사는 더 이상 비꼬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그런 사마 대군사 대신.

상황을 지켜보던 젊은 제갈(諸 葛) 대군사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남궁 장로께서 이곳에 오신 것 은-.”

“-이공자 측은.”

남궁혁천이 갑자기 이공자의 이 야기를 꺼냈다.

“내부에서 낙양 파벌과 강남 파

벌로 나뉘어 공을 다투다가, 대공 자에게 각개격파(各個擊破)를 당했 지. 그리고….”

제갈(諸葛) 대군사가 고개를 끄 덕이면서 입을 열어 그 말을 받았 다.

“그리고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모든 전력을 꺼내보지 도 못하고, 대공자에게 패배했습니 다.”

지금, 어째서 굳이 이공자의 이 야기를 꺼내는가.

사마 대군사는 눈을 가늘게 뜨 고, 두 사람의 대화를 살폈다.

“이공자 측의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로 허무한 패배였 습니다.”

남궁혁천이 제갈 대군사의 말을 받았다.

“대공자가 펼친 올가미는 너무 거대하고, 또 신속 정확했소. 그들 이 할 수 있는 모든 전법과 전력을 동원하기 전에. 이미 승패가 갈려 버렸으니...”

이공자 측은.

사패천의 힘을 본격적으로 꺼내 보지도 못했고.

검가 내부의 전력을 전부 동원하

지도.

동맹들의 힘을 전부 드러내지도 못하고 패배했다.

“대공자는 단 한 번의 승리로. 이공자 측을 사실상 몰락(沒落)으 로까지 몰아넣어 버린 것이오.”

제갈 군사가 말라오는 입술을 한 차례 핥은 후에 물었다.

“그 말씀을 지금 꺼내신 이유 는….”

남궁혁천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대들에게 최악(最惡)의 적은, 사패천도 아니고, 사천당가도 아니 며. 지금 누워 계신 가주님도 아 닌.”

내원총관은 손을 들어 밖, 장로 원 방향을 가리켰었다.

“저기 있는 대공자라오. ”

“•••대군사들의 명석한 두뇌라면 느끼고 있겠지.”

다시 한번 마음을 확실히 정한 남궁혁천이 눈을 뜨고는 입을 열었 다.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 은. 이공자 측이 걸었던 길과 다르 지 않소.”

그 말에 좌우 대군사가 동시에 침음을 홀렸다.

“아니.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 지.”

남궁혁천이 단언했다.

“우리는 똑같이 그 전철(前輸)을 밟고 있는 중이오.”

좌우 대군사 중 누구도, 그 말에 감히 부정을 하지 못했다.

그들도 지금 현재, 그 점을 여실 히 느끼는 중이었으니.

“고수의 반열에 오른 삼공자를 용봉지회에서 공개하여 단숨에 주 목을 끌어모으려 했던 우리의 계획 은—.”

사마 대군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 덕이며 남궁혁천의 말을 받았다.

“-이미 실패한 것과 다름없지 요.”

제갈 대군사는 낮게 혀를 찼다.

“그 뒤로 연쇄적으로 준비해 두 었던 많은 계획이 있었지만….”

누가 권력의 중추가 되는가에 대 해서는 그들은 경쟁자였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삼공자가, 그리고 자신들이 숭리 할 때의 이야기였다.

“대공자가 저렇게 무력을 선제적 으로, 그리고 파격적으로 과시해버 린 시점에서는….”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졌 습니다.”

“ 대공자는….”

남궁혁천이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피해 오던 사실을 입에 담았다.

“어떤 방면에서도. 그 누구보다 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소.”

제갈 대군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공자를 향한 그의 경쟁의식은. 어느새 열등감이 되어 있었고. 대공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공개되면 공개되어 갈수록.

그 격차는 더욱더 절망적으로 느

껴져만 가고 있었으니.

“이제는 우리 진영이 이렇게 분 열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남궁혁천이 진중하게 말했다.

“구파 출신의 장로들은 몰라도. 일단 우리 세가(世家)들과 군사부 라도 먼저 힘을 합해야 하오.”

그는 내원총관에게 들었던 그 말 을 입에 담았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저 대공자라오.”

사마 대군사가 한숨을 길게 쉬더

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노회한 대군사는 무엇이 중한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저희의 감정은 지금부터, 접어 두도록 하지요.”

“좋소.”

남궁혁천이 바닥에 그대로 가부 좌를 틀고 앉으며, 소매를 걷어붙 였다.

“나는 지금부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겠소. 그러니 좌우 대군사들께서도-.”

“물론입니다.”

두 대군사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가장 먼저 군사부에서 공유해드 릴 정보는….”

제갈 대군사의 말을 사마 대군사 가 이었다.

“북방(北方)에 대한 소식입니다.”

“북방…?”

구파도 세가들도 중원국을 중심 으로 활동하는 만큼.

세외(世外)에 대한 정보만큼은, 중원국 전역에 정보망을 형성한 구

무림맹의 군사부를 따를 수 없었다.

“북방의 오랑캐 부족들 사이에서 현재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 고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라면, 어 느 정도 규모의…?”

남궁혁천의 물음에 사마 대군사 가 갓 들어온 새로운 정보를 공개 했다.

“황실에서 움직이고 있을 정도입 니다.”

“•••황실에서?!”

황실이라는 이름은 과연, 그 무 게감부터가 달랐다.

아무리 현(現) 황제가 힘이 없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황도 정 치 내부의 이야기.

황실에서 직접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라면, 북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규모가 절대 범상할 리 가 없는 것이다.

‘황실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다니. 과연, 군사부인가….’

남궁혁천은 속으로 침음했다.

“용봉지회를 이용해 삼공자님을 공개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실패했 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뿌리부터 계획

의 방향을 바꿔야겠지요.”

남궁혁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남궁혁천이 즉시, 자신들이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자.

“그렇습니다.”

제갈 대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삼공자님의 위치는 북방 에서 가깝습니다.”

사마 대군사가 선풍도골에 어울 리지 않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용봉지회

보다도 더 큰 기회를 잡게 된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을 몰랐다.

이미, 황제의 사자(使者)가 원각 정을 방문 중이라는 사실을.

원각정(原各庭), 귀빈실(貴W室).

감개가 무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부마도위에게 .

세쌍둥이 시녀 일령이 조심스럽 게 물었다.

“부마도위께서는 황실에 계셨던 만큼. 이 정도 호화로움에는 익숙 하실 것 같사옵니다만….”

“아, 사실.”

그 말에, 부마도위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 원각정에 들

어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 져서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짧은 턱수염올 만지 며 말을 이었다.

“연씨 가문의 방계에 불과하던 내가, 이렇게 원각정의 귀빈실에 들어오게 되다니….”

그 말에 일령이 깜짝 놀란 표정 을 지었다.

“황실에 연씨 사람이 있다는 말 은 들어 보았지만, 그것이 부마도 위셨습니까?!”

“그래. 하지만….”

부마도위가 미소 지었다.

“지금이야, 황실의 인간이니. 이 제 출신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 지만 말이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게다가 나뿐만이 아니라, 내 호 위를 담당하고 있는 금문휘(金雲 鍾) 장군(將軍)도 원래는….”

그런데, 정작.

부마도위가 가리킨 곳에 있는 금 문휘 장군은.

유난히 긴장한 표정으로 창밖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군.”

그가 부르자, 장군은 답지 않게.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 다.

“아, 예. 하명(下命)하시지요.”

왠지 그 꼴이, 전장에 첫 출전을 하는 장수(將飾)의 모습이라.

부마도위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북방에서도 용맹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철사자(鐵W子) 금 문휘 장군께서. 왜 그리 긴장을 하 고 계시오?”

평소의 금문휘 장군이었다면.

헛기침이라도 하며 얼굴을 붉혔 으련만.

“부마도위께서는, 아직 기감(氣 感)이 부족하여 못 느끼시겠지 만….”

그는 허리춤의 검집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그 커다란 손이 하얗게 변한 채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원각정에서 당장 느껴 지는 고수(高手)들의 수만 해도 열 은 넘습니다. 게다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들은 호전적인 기세를 감출 생 각도 없이 그대로 과시하듯 드러내 고 있었다.

“지금, 원각정으로 모여들고 있 는 고수들의 수는 그 배를 넘습니 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