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21화 (321/350)

제21편 최초의 삼(三) 할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 투표를 하지 않으신 장로께서는 자 리를 떠나지 마시고….”

진행을 담당하는 황목 장로의 목 소리가 대회당에 울려 퍼지고 있었 지만.

“…그러니까, 조금만 정숙해 주 시면….”

지금, 그쪽에 신경을 쓰는 장로 들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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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당 한쪽에 장로들이 모여 점 거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대체 저기 모여서들 뭘 하고 있 는 것이오?”

용무를 마치고 방금 돌아온 장로 하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모여 있 는 이들의 면면(面面)을 살폈다.

“…하나하나가 중진 장로이거나, 계파나 파벌의 수장들 같은데?”

그 질문에 같은 하북 파벌의 장

로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무슨, 배반자를 찾는다고 저러 고 있다더이다.”

“배반자…? 아.”

질문했었던 장로가 곧 알아들었 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합의를 어기고, 대공자 를 위해 무효표를 던진 삼(三) 할 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다오. 그런데….”

상황을 주욱 지켜봤던 장로 하나 가 끼어들었다.

“저들은 삼 할을 찾는 것이 아니

라. 재투표 때 마음을 바꿔 무효로 옮겨 탄, 일(一) 할의 인원들을 먼 저 찾는다고 하더이다.”

여기서 수군거리는 이들은.

비록 장로원에서 두각을 드러내 거나,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은 아 니었지만.

낙양검가의 장로답게, 그 취지를 금방 이해했다.

“아, 하긴.”

“총합이 사(四) 할이 되는 파벌 과 계파들의 조합을 찾는 것보다야, 일(一) 할을 찾는 쪽이 쉽고 빠르 겠지.”

“그 일 할을 통해서, 이번 일에 서 핵심이 된 삼(三) 할을 찾는다 는 것이로군.”

그때.

같은 하북 파벌의 장로가 투표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다들. 투표는 어느 쪽에 하셨소?”

원래라면, 그렇게 대놓고 묻지 않았을 테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는 상황이었다.

“부결 (否決) 이오.”

“본인도 부결에 투표했소.”

불신임(不信任)에 부결을 투표했 다는 것은.

현 전장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 을 선택했다는 뜻이었다.

“차기 전장장 후보였던 부전장장 은 중앙감찰각의 뇌옥에 잡혀 들어 갔고.”

“나올 때는 죽어서 나오겠지.”

“아니. 죽어서 나오기는커녕-.”

“-아마 죽어서도 못 나올 것이 오. 안에서 자체적으로 시신을 태 워 버린다더군.”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 봐 야 뭣 하겠소.”

“빨리 들어가서 발이나 닦고 쉬 고 싶군.”

“ 게다가….”

슬쩍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하북 파벌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황도(皇都) 파벌의 장로였다.

“저들도 저리 포기했는데, 더 이 상 무슨 의미가 있겠소?”

저들, 이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슬쩍 들어, 연씨 혈 족 장로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

다.

“…여전히 살벌하긴 하지만.”

“독기(毒氣)가 빠졌소이다.”

“초상집이 따로 없구먼.”

그 말에 대화에 끼어들었던 황도 파벌의 장로가 피식 웃었다.

“곧 줄초상을 치를 터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뭐, 들은 것이라도 있소?”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하 북 파벌의 신입 장로에게서 나왔 다.

“제가 듣기로는….”

그는 대공자가 어깨를 두드려 주 며 격려했던 그 신입 장로였다.

“수사기관 쪽에서 부전장장이 가 지고 있던 비밀 거래 장부를 확보 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황도 파벌의 장로가 고 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같은 소식을 들었소.”

그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은근 한 눈빛으로 하북 파벌의 신입 장 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자네. 꽤 실력이 있군. 혹시, 어디. 우리 황도 쪽 계 파에 관심이-.”

“어허!”

“이 사람이…!”

하북 파벌 장로들이 대번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지금, 우리 앞에서 신입을 빼 가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인가?!”

그런 노기 섞인 고함 속에서도.

“어디 관심 있으면, 나중에 내게 귀띔해 주게.”

황도 계파의 장로는 하북 파벌의 신입 장로에게서 은근한 시선을 거 두지 않았지만.

“하하, 아닙니다.”

하북 파벌의 신입 장로는 그 자 리에서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 길을 결정하여 뜻한 바가 있으니. 아쉽지만 그 제안은 거절 하겠습니다.”

“그래?”

황도 계파의 장로가 입맛을 다셨 다.

“거, 강단도 있고. 괜찮은 친구인 데—.”

그의 말은 끝이 나질 못했다.

“우린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커다란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중진과 우두머리들이 모여 있던 방향이었다.

“이건….”

“우리 하북 파벌의 수장인 팽 장 로님의 목소리가 아닌가?”

“아니면, 아닌 거지. 팽 장로. 뭘

그리 흥분하고 그러시오?”

삼공자 측 장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는 그저. 숫자를 말하고 있 는 것뿐.”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지. 그렇 지 않소?”

삼공자 측의 압박에, 팽 장로가 흥분해서 시뻘건 얼굴로 외쳤다.

“숫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면, 그대들이 계산을 잘못한 것이 겠지!”

팽 장로의 하북 파벌과 함께 지 목된 계파와 파벌의 수장들도 목소

리를 높였다.

“우리가 뒤에서 대공자와 이면 합의를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 소‘?!”

“이런 식으로 몰아간다면 우리도 다 생각이 있소!”

이야기가 점점 거칠어지자.

지켜보던 중진 장로들이 급히 나 섰다.

“자 자, 다들 너무 홍분하셨소 •••!”

“일단 진정들 하시오…!”

중진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장로

가 앞으로 나섰다.

“이러니저러니 당장엔 말이 많지 만. 우리는 결국 그자들을 찾아내 서 징치(懲治)할 것이오. 그렇지 않 소?”

그 말에는 삼공자 측도.

합계 숫자가 들어맞은 탓에, 의 심을 사던 이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렇소.”

“반드시 쓴맛을 보여 줘야 하 오.”

“그래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 을 것이오…!”

“같은 장로들의 등을 치고, 대공 자와 붙어먹다니…!”

다시 과열되기 시작하자, 늙은 장로가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 늙은이는 지 금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도 있 소.”

“…다행이라고 하셨소이까?”

투표 결과는 보나 마나 뗀하고.

그들, 장로원은 대공자에게 치욕 적인 패배를 당한 상황이다.

오전부터 외부에서 이상할 정도 로 집중되고 있는 시선까지 합치면.

그들의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 었다.

“그렇소. 다들 생각해 보시오.”

늙은 장로가 말을 이었다.

“만일, 그 삼 할에 해당하는 계 파나 파벌의 인물들이, 완전히 대 공자의 편에 섰다면. 이번 일이 어 떻게 되었을 것 같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일순 모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과연.”

“•••그렇군.”

중진과 우두머리 장로들이 침음

했다.

“그들이 그림자 속에서 동료 장 로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것은….”

팽 장로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 다.

“•••무려, 장로원의 삼 할이나 되 는 이들이 확고한 대공자의 세력이 라는 뜻이 되는군.”

그들이 이번 일에서 대공자와 은밀히 뒤로 손을 잡은 것이 아니 라.

이미 대공자의 세력이었기에 지 시에 따른 것이었다면-.

“그랬다면. 단지 이번 일의 패배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겠 지.”

자신들이 내어 놓고도, 소름이 돋는 말이었기에.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지금 우리는.”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는 말이 되는구려.”

“•••정말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소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감대가 성립되자, 이 이야기를 꺼냈던 늙 은 장로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배 반자 계파나 파벌을 찾는 것도 중 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따악.

늙은 장로가 한차례 지팡이를 바 닥에 찧고는 한결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싹이 돋았을 때, 늦지 않게 잘 라야 하는 법. 앞으로 그들이 대공 자를 중심으로 세력화하는 것을 막

아야만 하오.”

하북 파벌의 좌석.

“다시 조용해졌소이다.”

“이대로 파국으로 치닫나 싶더 니.”

“그래도 뭔가 이야기가 진행은

되고 있나 보군.”

하북 파벌의 장로들은 중진과 우 두머리들이 모인 방향을 보며 안도 의 한숨을 돌렸다.

“그나저나….”

긴장감이 풀리자, 장로 중 하나 가 신입 장로를 돌아봤다.

“아까, 자네가 이야기했던. ‘이미 길을 결정하여 뜻한 바가 있다’는 말은 무엇이었는가?”

“그건 나도 궁금하구먼.”

다른 장로 하나가 자리로 돌아간 황도 계파의 장로를 힐긋하고 쳐다 보며 신입에게 다가왔다.

“그것이….”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신입 장로가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더니.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선배 장로들께서는 지금 이 장 로원에 불만이 없으십니까?”

오히려 모두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불만…?”

“ •••불만이라.”

장로 하나가 피식 웃었다.

“불만은 많지.”

다른 장로가 어깨를 으쓱이며 시 선을 돌렸다.

그 방향에는 방금까지 그들이 지 켜보던 중진과 우두머리 장로들이 있었다.

“…이 바닥은 이미 너무 고여 있 어.”

큰 소리로 할 말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소곤거리며 말했다.

“해 먹는 이들만 계속, 해 먹는 판이지.”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장로 하나가 킬킬 웃으며 그 말

을 받았다.

“-희망이 있다면, 저들도 늙어 가고 있고. 우리 차례가 되면 우리 가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니겠 나.”

“그날만을 기다리면서, 참는 거 지, 뭐.”

쓴웃음을 지은 장로가 신입 장로 에게 말했다.

“•••다들,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 고는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닐세.”

“아뇨. 제 말은 그 뜻이 아닙니 다.”

신입 장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

고는 선배 장로들을 바라봤다.

“지금처럼 자신들의 이익과 정치 적 이득을 챙기는 것만이 장로원의 전부가 아니라…!”

지금까지 조용조용하던 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열변을 토했다.

“정말로. 낙양검가의 미래를 위 해서 고민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장 로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 쳤다.

“그런 참된 장로원과 장로들이 되고 싶지는 않으시냔 말씀입니

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속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마음을 꺼내 놓은 신입 장로에게 돌아오는 것은.

선배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이었 다.

“…푸흐핫!”

결국, 누군가 하나는 웃음을 터 트리기까지 했다.

“자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 나?”

“젊구먼, 젊어.”

“허허. 잘도 어떻게 장로 위(位) 까지 올라왔군.”

선배 장로 중 하나가 고개를 내 저었다.

“이게 다, 지난 대공자와의 격돌 에서 이공자 측 장로들이 대거 밀 려나서 그래.”

“것참.”

누군가가 웃다가 새어 나온 눈물 을 닦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살다 보니, 장로원쯤 되는 곳에 서 이런 치기(雅氣) 가득한 말도 들어 보는군.”

“자네….”

처음에 신입 장로에게 질문을 던 졌던, 선배 장로가 그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내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이곳에 서 살아남고 싶다면. 얼른 그런 유 치한 망상은 접어 두는 것이 좋을 게야.”

왁자지껄.

자신을 흘긋 보며 비웃는 선배들 앞에서, 신입 장로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저는.”

그때, 누군가가 귀빈석 방향을 보다가 나지막하게 외쳤다.

“본가의 대공자께서 납시오!”

대공자가 입장하니, 그리 외쳐 알리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하지만.

“•••어느 장로가 외치는 것인가?”

이곳은 장로원.

“이번에 대공자가 이겼다고, 그

쪽으로 붙은 어리석은 자가 있나 보군.”

“멍청한….”

애초에 장로들밖에 없는 곳에서, 대공자의 입장을 알리는 것은.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와 마찬 가지였다.

처음엔 그렇게, 신입을 비웃듯 그 장로를 비웃었던 이들이었지만.

“•••그런데 저 장로.”

“호법일부장이 아닌가…?”

연소현의 입장을 알린 장로의 정 체를 확인한 그들 속에서 급속도로

당혹감이 확산되었다.

“아니, 호법일부장이 어째서…?”

“호법원주는 어디 가고? 호법일 부장이 대공자의 아랫사람을 자처 하는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와증에 도, 호법일부장의 고개는 빳빳했 고.

그 표정과 몸가짐에는 한 점 흐 트러짐이 없었다.

“•••호법 일부장.”

다른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호법일부장의 모습을 큰 눈으로 바 라보던 신입 장로가, 곧 고개를 끄

덕였다.

“•••선배들께서는 저를 비웃었지 만.”

신입 장로를 돌아본 선배 장로들 이 인상을 쓰며 그에게 앉으라 손 짓했다.

“아니, 자네 이런 상황에서. 아 직도 그 말들을 신경 쓰고 있는 가?”

“우리도 잊었으니. 쓸데없는 말 은 그만-.”

하지만, 신입 장로는 그들의 말 을 무시하고 선 채로 당당히 제 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제 생각을 비웃지 않고. 오히려 경청하고, 심지어 앞 서 주기까지 하기로 하신 분이 계 셨습니다.”

그러면서 신입 장로는 대회당에 입장하여 오만한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보는 이.

대공자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자네…?”

“ 지금…?”

그때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선배 장로들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신 입 장로의 말이 이어지는 것이 더 먼저였다.

“그분께서는 불안해하는 제게, 본인의 영향력과 실력. 그리고 위 세를 보여 주겠다고 하셨지요.”

신입 장로가 말했다.

“그 대신 그분께서 제게 요구하 신 것은. 그저 비밀리에, 무효표를 행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하북 파벌의 모두가 얼어붙었 다.

“그리고, 그분. 대공자께서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히. 본인의 말씀 대로 증명을 해 보이셨습니다.”

그 시각.

“음? 자네 어디 가는 건가?”

“어어…?”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 들은, 하북 파벌의 신입 장로뿐만 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자, 거 기서 용기를 얻기라도 한 듯이, 연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들이 있

었다.

“다들 뭐 하는••?”

그리고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 렇게 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귀빈석 방향.

즉, 대공자 연소현의 곁으로 모 이니.

그 숫자가 전체의 삼(三) 할이라.

훗날, 기록에 따르면 그것을 ‘최 초의 삼 할’이라 불렀다.

그것은.

낙양검가 장로원에.

대공자의 계파가 공식적으로 모 즙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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