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18화 (318/350)

제18편 정당화(正當化)

최고운영회의.

현재 낙양검가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의 구금 명령서가 공개되자.

“•••홈홈.”

“ 어홈.”

장로원의 권위를 지키고자, 중앙 감찰각을 막아섰던 장로들이 미적 미적 뒷걸음질 쳤다.

비켜 주긴 해야겠지만.

차마, 그들도 체면이 있는지라.

기세 좋게 나섰다가, 깔끔하게 길을 비켜 주는 것이 못내 수치스 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중 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이 아니었다.

“그럼.”

그녀는 백발을 홑날리며, 미적거 리는 장로들 사이로 뚜벅뚜벅 밀고 들어갔다.

“어어?”

몸으로 밀려 버린 장로들이 황당

하고 당혹하여 뭐라 항의라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전원. 집행을 시작하라.”

그녀의 서릿발 같은 명이 떨어졌 고.

“존명!”

대기하고 있던 붉은 옷의 중앙감 찰각 인원들이 파도처럼 장로원의 입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수색을 시작한다!”

혹여나.

장로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살 수 있기에, 중앙감찰각의 인원들은

붉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 다.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 는가?r

문이 벌컥벌컥 열리고.

여기저기서 장로들의 고함이 들 려왔지만.

누구도 감히, 최고운영회의의 명 을 집행 중인 중앙감찰각을 막아서 진 못했다.

“외부 대기조는 장로원을 철통같 이 봉쇄하여, 감히 죄인이 도망가 지 못하게 하여야 할 것이야.”

“존명!”

하지만, 장로도 아닌 이들이, 장 로원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짓밟고 다니는 그 모습은.

어떤 장로도 마음 편히 볼 수 없 는 광경이었다.

“중앙감찰각주.”

“말씀하시지요.”

맨 처음,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 을 막아섰던 삼공자 측 장로가 그 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가 얻었다는 그 증거. 누 가 제공했는지는 몰라도.”

분노와 수치심.

오늘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패 배에 삼공자 측 장로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려 왔다.

“틀림없이. 조금의. 아주 약간의 문제도 없어야 할 걸세.”

그 눈빛은 그녀를 산 채로 꿰뚫 어 버릴 듯했다.

“장로원은 오늘 중앙감찰각으로 부터 받은, 이 수치와 모멸을 잊지

않을 테니 말일세.”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은.

슬금슬금 구석으로 물러났던 장 로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모두 자 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지켜보는 것밖에 하고 있 지 못했지만.

그들이 이 낙양검가에서, 낙양에

서.

그리고 중원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 이들이고, 어떤 권력을 가진 이들인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공포를 느껴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을 산 것인가.’

직접적인 충돌.

낙양검가 장로원과의 원한 관계.

이전이었다면, 그녀가 피하고 싶 었올 상황.

“어허.”

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두렵지 않 았다.

“누가 감히, 겁도 없이 본가의 감찰 기관을 겁박하고 있다는 말인 가?”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가, 좌중 의 팽팽하던 긴장감을 부수었다.

“아니, 이거. 본가의 장로들이 아 닌가?”

장로원에 모여 있는 것이 장로들 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태연한 것을 넘어, 능청스러우며, 장로들을 놀리듯, 어딘가 오만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말투였다.

“저런…! 그렇다면. 본가의 장로 들이. 본가의 감찰 기관의 수장에 게 협박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 자리의 누가 그 목소리의 주 인을 모르겠는가.

“… 대공자!”

최고운영회의의 체포 명령서에도 미적거리던 장로들이.

불에라도 덴 것처럼.

단박에 썰물처럼 갈라섰다.

“본가의 장로라는 자들이. 그것 이 아주 큰 범죄행위인 줄 모르는 것이야?”

그렇게 말하며, 대공자 연소현이 주변을 과장된 동작으로 주욱 한 번 둘러보자.

“…어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 나서.”

“…나도 같이 가세나.”

대공자의 앞을 피해 갈라졌던 장 로들이 대공자의 시선에서 도망치 듯.

그대로 모습들을 감추어 버렸다.

그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이 혀를

내둘렀다.

‘•••과연, 대공자님이라 해야 할 지.’

그녀 자신은 장로원에서 외부 인 물에 불과했기에, 오늘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일이 되어 가는지.

결코,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저 모습을 보니.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겠구나.’

겨우, 대공자가 이 장로원에 발 을 디딘 지 몇 시진째에 불과했다.

그런데 대공자는, 이미 장로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허. 참.”

텅 비어 버린 장로원의 입구에 서.

황당하다는 둣이 연소현이 어깨 를 으쓱였다.

“사람 무안하게, 다들 그렇게 말 도 없이 가 버린단 말인가?”

그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히죽거리는 미소가 걸려 있는 것이, 내심 통쾌했다.

“•••중앙감찰각주.”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삼공자 측

장로가 독고야연에게 나직한 목소 리로 말했다.

“언제까지고, 대공자의 그늘 속 에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 시오.”

“대공자님의 그늘?”

그 살기로 그득한 목소리에도.

그녀는 유리알처럼 아무런 흔들 림 없는 눈을 들어, 삼공자 측 장 로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 니다만….”

그녀는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중앙감찰각은 항상 정치적인 중

립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당당함에.

그녀의 하얀 눈을 마주한 삼공자 측 장로 쪽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방금 말씀하셨던 중거 라면.”

장로의 말문이 막힌 틈을 타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본가의 장로들께서는 언제든지. 최고운영회의의 행정각에 방문하시 어, 그 중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인사했다.

“부디, 문의는 그쪽에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 로.

터억 하고, 삼공자 측 장로의 어 깨를 밀치며 그대로 대공자와 함께 장로원 안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삼공자 측 장로는.

주먹을 쥐고 그런 뒷모습을 마지

막까지 노려보았지만.

그가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로원의 복도.

그 휘황찬란한 복도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대책을 세우니, 회의를 하니, 하

면서 장로들이 전부 휴게실 같은 장소에 틀어박혔기 때문인데.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은 그것이 핑계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장로들은 괜히 불편하게 중앙감 찰각의 인원들과 맞닥뜨리지 않기 를 원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곳에는 지금.

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인물.

대공자 연소현이 있었으니.

“천하의 장로원을 이렇게 거닐고 있으니.”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속이 다 시원하지 않나?”

« »

••••••

마치 자신의 속을 읽기라도 한 듯, 날아든 질문에.

그녀는 하얀 동공이 인상적인 눈 을 들어,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던 대공자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대답을 하든 말든.

둥을 보이고 걸어가던 채로 말을 이었다.

“이때까지, 장로원은 한 번도. 중 앙감찰각의 감찰에 협조적이었던

적이 없었겠지. 안 그런가?”

잠시.

대공자 연소현의 말에 고민하던 그녀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짧게 덧붙였다.

“오히려, 언제나 그들. 장로들이 가장 큰 방해였지요.”

중앙감찰각은, 그 이름, 그 명성 그대로.

굵직한 사건에만 얼굴을 들이밀 었고, 그런 굵직한 사건에는.

당연한 듯이 굵직한 권력자, 즉.

장로가 얽혀 있을 수밖에 없었 다.

“과연, 그랬겠지.”

그녀의 한숨 섞인 대답에, 연소 현이 작게 웃고는 말했다.

“하지만, 우습지 않나?”

그녀는 대공자가 무엇을 우습다 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그것을 말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되물 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연소현이 슬쩍 그녀를 돌아보더 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전 음으로 답했다.

[권력들 사이에서. 고독하게 정치 적 중립을 지키며. 고고하게 감찰 기관의 수장으로서의 이상을 지킬 때는, 오히려 제대로 된 수사가 불 가능에 가까웠지.]

독고야연은 묵묵히, 자신의 심정 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연소현의 전음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공자라는 권력과 가까워지고 나니. 오히려-.]

그가 손을 들어, 텅 빈 장로원의 복도를 가리켰다.

[이 핵심 권력의 중추에 직접 들 어와 거리낌 없이,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 않은가.]

그녀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 다.

자신이 원래대로.

지금까지 원리와 원칙을 준수하 고 있었다면.

검가전장의 사건을 해결하기는커

녕, 아직 제대로 손을 대지도 못했 을 것이고.

만약, 어떻게든 감찰을 시작했다 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노력해 온 애꿎은 전장장만이 잘려 나가고, 사건은 그걸로 끝났겠지.’

그것은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거 대한 모순이었다.

“계속, 그렇게 고민하게.”

처음엔, 조롱인가 했지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대공

자 연소현의 얼굴은 지극히 진중했 기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대공자께서 답을 제시해 주시진 않으실 겁니까?”

연소현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 로 그것이 아니던가.

“아니.”

하지만.

의외로 연소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순적 상황에 대한 답은, 한두 줄의 문장 따위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따가울 정도로 올곧은 시선

이 독고야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계속되는 고민. 매번 새로운 상황에서, 매번 다시금 할 수밖에 없는 그 고뇌.”

연소현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답은 판단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하는 과정 자체라 네.”

독고야연은 그 말에 이해했다.

대공자는 어떻게, 전장장을 구해 내기 위해서 그 공작들을 지시하고 도.

자신과는 다르게, 저렇게 올곧은

시선을 할 수 있는지.

‘…대공자님은, 절대 자신의 행동 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는 다.’

대공자는, 연소현은.

단 한 번도.

이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 택이었다든가, 피할 수 없기에 그 럴 수밖에 없었다든가, 그런 핑계 를 댄 적이 없었다.

그가 저토록 올곧고 당당한 눈을 할수있는 이유는.

자신의 모든 판단과 행위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공자님.”

“ 음‘?”

대공자를 부른 중앙감찰각주 독 고야연은 전음으로 그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제가, 주군을 잘 고른 것 같습 니다.]

평소.

한없이 무뚝뚝하기만 하던 그녀 의 기습적인 말에, 연소현은 고개 를 슥 하고 돌렸다.

“•••잘됐군.”

그러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

는 모습에, 독고야연은 속으로 미 소를 지으며 물었다.

“대공자님.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신 겁니까?”

“자넨, 부전장장을 잡으러 온 것 이 아니던가?”

독고야연의 눈이 조금 커졌다.

“•••대공자께선 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시는 것입니까?”

“아니. 하지만….”

연소현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코를 가 리켰다.

“냄새가 나거든.”

그가 작게 옷었다.

“놈에게서는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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