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편 수라장(修羅場)
낙양검가 장로원.
맞은편의 다루(茶樓).
연씨 혈족으로 득실거리던 다루 는 지금.
포격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누 구 하나 침착하게 앉아 있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 투표가 이리도 길어지 고 있단 말인가?”
어째서인지.
길어지기만 하는 시간.
초조함을 견디다 못해, 늙은 연 씨 혈족이 몸을 부들거리자.
“다, 당숙 어르신. 진정하시지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지 않겠습 니까?”
젊은 연씨 혈족들이 그런 노인이 쓰러질까, 떠오르는 대로 일단 주 워섬겼다.
“현 전장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 를 통과시키고, 이어서 새 전장장 후보 임명에 대한 투표까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거기다가, 대공자까지 왔으니. 환영 연설이다, 답사다, 해서. 더 많이 시간이 걸리는 걸지도.’’
“예. 그러니, 틀림없이. 그런 이 유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길어지는 것일 터입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젊은 혈족 하나가, 어깨를 으쓱 이며 말을 받았다.
“그 대공자 놈이 장로원 전체를 도발했을 때, 이미 끝난 싸움이 아 니었습니까?”
연씨 혈족답게 귀티가 줄줄 흐르 는 남자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버지. 그렇게 너무 흥 분하지 마시-.”
철석.
대번에 아들의 뺨을 후려갈겨 버 린 늙은 연씨 혈족의 입에서.
커다란 일갈이 터져 나왔다.
“이런 망할 자식들!”
늙은 연씨 혈족이 분노를 쏟아 냈다.
“그 모든 절차를 정식으로 거쳐 봐야, 원래라면 이미 끝나고도 남
았을 시간이란 말이다!”
늙은 연씨 혈족의 얼굴이 끓어오 르는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거기다가, 하필 그 대공자 놈이 장로원에 들어가고 나서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이다!”
노인이 창밖의 장로원을 가리키 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 대공자 놈이 저기 들어 있다 고! 그런데 이 멍청한 놈들이 고작 한다는 소리가-!”
또 손을 들어 올리는 늙은 연씨 혈족을 다른 늙은이들이 몰려와서 붙들었다.
“그쯤 해 두시오…!”
“이제 이 아이들도 충분히 알아 들었을 것이오…!”
그들이 말리는 사이, 중년 연씨 혈족들이 젊은이들에게 외쳤다.
“너희도 헛소리나 하며, 이곳에 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가서 상 황이나 파악하거라!”
젊은 연씨 혈족들이 불에 덴 것 처럼 다루에서 튀어 나간다.
“이 아둔한 놈! 저런 놈을 내가 아들이라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의 뒤통수에
분이 풀리지 않은 고함이 사정없이 뒤따랐다.
“쯧쯧.”
그 광경을 팔짱 끼고 보고 있던 다른 연씨 혈족의 늙은이가 혀를 찼다.
“저런, 녀석들에게. 앞으로 우리 연씨 혈족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니.”
“이게 다, 우리 탓이오. 너무 오 냐오냐 키운 것이지.”
“연씨 혈족이기에, 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특권을 누려 만 왔어.”
다른 늙은이도 고개를 저었다.
“우리와 적대하는 대공자가 이렇 게 앞으로도 득세를 해 나가면. 지 금의 기득권을 전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위기의식들이 없는 것이지.”
다루 밖.
“망할 놈의 늙은이…!”
아버지에게 호되게 얻어맞아, 벌 써 시뗄겋게 부어오른 뺨을 붙잡고 젊은 연씨 혈족이 식식거렸다.
“그러게 말일세.”
“아니, 언제는. 자기들이 이미 끝 났다는 둥. 대공자 놈이 자충수를 두었다는 둥, 그딴 식으로 떠들 때 는 언제고…!”
“갑자기 상황이 바뀌니까, 우리 한테 성질이나 내고 말이야.”
새삼스럽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 둣.
젊은이들이 그를 따라 불만을 토 로했다.
“아니, 그 대공자 놈이 날고뛰어 봐야. 뭘 더 어쩐단 말인가?!”
“그러게. 그래 봐야 무검자이지 않나. 가문을 내팽개치고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하지만.
대공자 연소현을 욕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커지지 못했다.
무수한 시선들이 그들에게 쏟아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 뭐야?!”
“당장, 길을 비키지 못할까?!”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당황한 이들의 호통 소리에, 군 중들은 조금씩 움직여 길을 터 주 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시선은 젊은 연씨 혈족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눈길.
아무리 위세 등등한 젊은 연씨 혈족들이라 해도, 이런 분위기에서.
그것도 불특정의 수많은 군중을 상대로 트집을 잡을 정도까지 바보 들은 아니었다.
“비켜서라!”
“물러나란 말이다!”
호통과 함께.
무언(無言) 속에 노려보는 눈빛 들을 뚫으며.
한참을 걸려서야, 군중의 밖으로 빠져나온 젊은 연씨 혈족들이 식은 땀을 닦았다.
“•••뭐야, 대체. 제길.”
방금의 기분 나땄던 시선을 떠올 리며 툴툴거렸다.
“겨우 대공자 놈을 욕했다고, 아 랫것들이 그따위 눈빛으로 우릴 쳐 다본단 말인가…?”
“말세(末世)군, 말세야….”
“이게, 전부 그 대공자 놈 때문 인 것이야. 그 대공자 놈이 가문을 아주 못쓰게 만들고 있어.”
그러면서도, 감히 목소리를 높이 진 못하고 소곤거리듯이 툴툴거리 는 꼴이.
그들의 그릇이 작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말일세….”
여전히, 뒤를 힐끗힐끗 보던 이 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 했다.
“언제, 군중들이 이렇게까지 모 였단 말인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려 군중들을 바라 보았다.
오전만 하더라도, 큰길에 가득 모인 인파를 보며 너무 많다고 생
각했건만.
장맛비에 황하가 범람하듯.
큰길을 모두 채운 인파가 뒷길까 지도 범람하듯 들끓는 형국(形局) 이었다.
“•••그러게 말일세.”
그 모습에는.
철없는 연씨 혈족의 젊은이들마 저도, 위기의식을 들게 하는 무엇 인가가 있었다.
“에잇…! 다들 뭘 그리 쪼그라들 어 있나‘?!”
그래 봐야 순간적인 것에 불과했
지만.
“내 오늘. 새로 찾은 기루(포樓) 에서 거하게 한판 벌일 것이니, 다 들 따라오게!”
부은 뺨을 붙잡은 젊은이가 그렇 게 외치자, 그렇게 다들 우르르.
“•••오오!”
“좋군! 아주 좋아!”
평소처럼 낙양의 유흥가로 몰려 가고 마는 것이었다.
“마차는 내게 맡기게! 이번에 새 로 들어온 귀빈 접대용 마차를 가 져오라고 하겠네…!”
“그럼, 나는 미리 내려가서 준비 를…!”
장로원 근처 건물의 옥상.
저 아래.
우르르, 몰려가는 젊은이들의 모 즙을 발견한 중년 남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은.”
눈에 띄지 않게, 중년 남성을 대 신해서 대로를 주시하고 있던 그의 측근이 그들을 알아보았다.
[현재, 혐의를 받는 연씨 혈족 집 안들의 자제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기루라니.
“쯧.”
중년 남성이 나직하게 혀를 차고 시선을 옮겼다.
지금은, 상황 파악도 못 하는 애 송이들에게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 다.
“인파가 점점 늘고 있군.”
그의 말에 측근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원래는 대공자를 지 지하는 이들 중에, 비번이거나 업 무 중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모여 든 것 정도였지만-.]
“지금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 지.”
인파로 혼잡한 큰길 곳곳에는, 언뜻 보기에도 그의 시선을 잡아끄 는 화려한 마차들이 십수 대나 있 었다.
“가문 내에 다른 이유로 방문했 던 이들. 그리고 연락책으로 근무 하던 이들.”
그의 측근이 말을 받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오로지 이번 일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서 찾아 온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대공자와 장로원의 대립.
처음에는 가문 내에서 갑자기 일 어난 대공자의 기행(奇行) 정도로 여겨졌던 일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켜져만 가며, 무수한 주목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간 단히 장로원의 승리로 결말이 나지 않으니. 호기심을 끌어모을 수밖
에.”
그렇기에.
중년인 자신 또한, 직접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던가.
[•••결론이 어떻게 나든. 엄청난 충격이 뒤따르겠군요.]
“그렇지….”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대공자가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주군. 누군가 접근하고 있습니 다.]
측근의 경고와 함께.
옥상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대공자님께서 승리라도 한다면.”
그는 방금까지 중년인이 하던 말 을 이어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소문에 불과하 던 대공자님의 위세가 만방에 널리 알려지겠지요.”
중년인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지, 따위의 초보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더 이상 ‘대공 자께서 권력을 가지셨다’는 추정이 아니라-.”
“실제 권력이 되는 것이지.”
불청객의 말을 끊어 버리고, 중 년인이 말을 이었다.
“권력은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다수가 그 사람에게 있다 고 생각할 때, 존재하니까.”
대공자는 이공자를 힘과 지혜로 꺾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강력한 낙양 검가의 장로원마저 한바탕 뒤집어 엎는 데 성공하게 되면.
그것은, 대공자가 가진 권력의 실존을 중명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습니다.”
하던 말을 떼앗겼지만.
불청객은 불쾌하지도 않은 표정 으로 연초를 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법사부장(護法 四部長)께서도 이렇게 시선을 피해 가며,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고 계 신 것이 아닙니까?”
치익-.
삼매진화(三味眞火)로 연초에 불 을 붙인 불청객이 호법원의 사부장 을 향해 빙긋 미소 지어 보였다.
“급무(急務)로, 호법원주님의 회 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분이 이런 곳에 계시다니요?”
불청객이 연기를 흩날리며, 가볍 게 능청을 부렸다.
“사부장께선, 호법원주님만을 바 라보던 충성파가 아니셨습니까?”
노골적으로 비꼬는 불청객의 말 에, 호법사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 다.
“자네-.”
“하긴.”
불청객은 그런 호법사부장을 무 시하고, 옥상 난간을 잡고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자신의 운명이 걸린 순간이니. 본 인 눈으로 직접 지켜보셔야만 하겠 지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둣 이 여유로운 불청객의 태도가 거슬 렸다.
“•••일단, 전부 맞는 말이네만.”
호법사부장이 불청객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신의 친형과도 같았던 일(一) 부장님을 버리고, 이미 줄을 갈아 타 버린 자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군.”
그가 불청객을 불렀다.
‘‘육(7느)부장.”
호법원 부장 중 막내.
오늘 오전, 호법원에 큰 충격을 가져다준 장본인인 육부장이 쓴웃 음을 지었다.
“…여름의 뙤약볕은 뜨겁습니다.”
육부장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고, 연초를 쥔 손을 들어 오후의 쨍쨍한 햇볕을 가리며 말했다.
“앞으로 이 더위는 더 가혹해질 겁니다.”
육부장은 뜬금없이 날씨 이야기 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단순한 날씨 이야기가 아 니라는 것올, 사부장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뙤약볕 아래, 맨 몸으로 서게 될 겁니다. 견딜 수조 차 없는 열기가 몸에서 수분이란 수분은 전부 빼앗아 가겠지요.”
그 육부장의 말은.
언젠가 대공자가, 육부장 자신에 게 했던 말이기도 했다.
“강물과 그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이젠 사부장께서도 잘 알 고 계실 겁니다.”
육부장의 손에서 천천히 타는 연 기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 여름의 바람은, 더 이상 시원 하지 않고.
심지어 뜨겁기까지 했다.
“••자네.”
생각에 잠겨 있던 사부장이 육부 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원래, 그렇게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당 히 변했군.”
수사기관의 부장에겐.
어쩌면 모욕적일지도 모를 평가.
“•••그렇습니까?”
하지만.
깊게 연초 연기를 내뿜은 육부장 은 멀리 시선을 던지며 담담하게 답했다.
“저는 이제야, 제가. 호법원에 ‘제대로’ 섞여 들고 있다고 느낍니 다만.”
그 말에.
사부장은 속으로 인정했다.
육부장은 더 이상 그들의 막내도 아니었으며.
자신 또한 그에게 선배라는 입장 에서 떠들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어느 강을 찾고, 어떤 그늘을 찾을지는. 저곳에서 결정되 겠지.”
그는 육부장의 옆으로 다가가 뜨 겁게 달아오른 난간에 손을 올리고, 장로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십니까?”
육부장이 사부장에게 연초를 꺼 내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알고 계시겠지요? 늦으 면 늦을수록. 물과 그늘은 적어질 겁니다.”
“•••알고 있네.”
사부장이 육부장의 연초를 물자, 육부장이 불을 붙여 주었다.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씁쓸한 연초 향기를 느끼며, 사 부장이 육부장에게 물었다.
“지금, 장로원에서 대체 무슨 일 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육부장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지금, 이곳과 같은 일이 벌어지 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