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수사 권력(授査權方)
“•••중앙감찰각이 어째서 여기 에?”
그렇게 묻던 검가전장의 전장장 의 눈이 일순 날카로워졌다.
“그러고 보니.”
노인은, 마치 나이가 들어도 쇠 하지 않은 기억력을 과시하듯이.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에게는 우수한 심복(心腹)이 있다고 들었 는데.”
스쳐 지나가며 듣거나 보았던 정 보를 떠올려 냈다.
“그 이름이 분명, 화복이라고 했 던 것 같군.”
“이야〜. 그런 소문이 있습니까?”
자신을 화복이라고 소개한 사내 는 친근감이 가득한 미소와 함께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화복。], 그렇게 대단한 자는 아닙니다.”
그는 호의적으로 눈가를 휘어 부 드러운 눈웃음올 만들었지만, 전장 장은 그 눈웃음을 꿰뚫어 보았다.
화복의 눈가는 휘었어도.
그 눈은 절대 웃고 있지도, 부드 럽지도 않았다.
‘심문관(審問官)의 눈.’
마치, 눈앞의 상대를 해부하여 그 속까지 들여다보려는 듯한 시선.
오랜 경험 속에서.
전장장은 그런 눈을 한 자의 속 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대와 같은 눈을 한 자들은, 자신을 능숙하게 낮추면서 상대의 바닥까지도 긁어내는 데 숙련된 부 류이지.”
비록, 현재 처지가 처지인지라 대공자에게 업혀 다니고 있었지만.
“그런, 잔기술은 이 자리에서 잠 시 접어 두는 것이 어떤가?”
노인은 틀림없이 단일 가문의 전 장으로는 중원 최대 규모를 자랑하 는 검가전장의 수장이었다.
‘역시나. 듣던 대로의 인물이군.’
판단을 마친 화복은 전장장을 떠 보길 그만두었다.
“죄송합니다, 전장장님.”
그는 가면을 벗듯 가식 어린 표
정을 일순간에 지워 버리고.
“저희는 대공자님의 명에 충실하 게 따라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정중하게 고개 숙여 사과하며 말 을 이었다.
“저희가 어떤 인물을 구제(救濟) 하려는 것인지 정도는, 직접 판단 할 필요가 있었기에 무례를 범했습 니다.”
협조하기 전에.
전장장의 가치를 알고 싶었다는 의도였다.
“자네, 방금….”
하지만.
전장장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런 중앙감찰각의 의도는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가 주목한 점은….
“대공자님의 명에 충실히 따른다 고 했나? 그 이야기는….”
전장장이 정리해, 다시 물었다.
“낙양검가의 중앙감찰각이. ‘그’ 독고야연이, 대공자님께 검을 바쳤 다고?”
머릿속에서 따로 놀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졌다.
호법원주가 감찰부주를 비밀리에 만난다고 했을 때, 그저 웃어넘기 던 대공자의 태도.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둣이, 육부장이 안내한 응접실에서 대기 하고 있던 중앙감찰각의 인원.
“이미, 중앙감찰각은. 감찰부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것인 가?”
화복이 이번엔 진짜 미소를 지었 다.
“정확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호법원주의 행 동은…?”
상석에 앉아, 육부장이 건넨 수 사 자료를 검토하던 연소현이 입을 열어 못을 박았다.
“헛걸음이지.”
낙양검가 내(內).
어느 정원(庭園).
전문가의 손길로 가꾸어지고, 다 듬어진 수목림(樹木林).
아름다운 수목림은 부쩍 뜨거워 진 태양 빛을 막아 주며, 그 사이 로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을 통과시 켜 주었지만.
“그게 무슨 말이오…?”
그 정원 안에서 비밀리에 회동 (會同)올 가지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수목림은.
주변의 시야를 차단하기 위한,
한낱 수단에 불과했다.
“중앙감찰각이 통제를 벗어났다 고…?”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들었던 말을 되뇌는 이는 호법원주.
“그렇소.”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검은 천으로 둘둘 말아 얼굴을 감 준.
감찰부주(監察部主) 였다.
“중앙감찰각은…, 정확히는 독고 야연은 완전히 내 손을 떠났소.”
담담한 말투였지만.
“더 이상, 본인은. 중앙감찰각의 검가전장 수사에 대해 통제할 수 없소.”
그 안에서 용암처럼 들끓는 감찰 부주의 분노를, 호법원주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 중요한 정보를 지금에 서야 공유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호법원주의 분기탱천(憤氣據天) 한 기분만큼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 졌다.
“만일, 그 정보를 미리 알려 주 었다면. 헛걸음을 하기 이전에, 뭔 가 대책을 강구(講究)해 냈을 것 아니오?!”
우르릉.
그들이 앉은 수목림 속 정자(호 子)의 기와가 진동하며, 흙먼지가 떨어졌다.
“대체 무슨 저의(底意)가 있기에, 정보를 숨긴 것이오?!”
“저의라고…?”
얼굴을 감싼 검은 천 사이에서, 감찰부주의 눈이 기광(奇光)을 흘 렸다.
“너무, 흥분했군.”
그 유형화된 살벌한 눈빛에, 호 법원주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관계.
즉, 호법원주와 감찰부주의 관계 는 수직적이지 않았다.
호법원주의 기파(氣波)에 의해 떨어져 내리는 흙먼지가, 감찰부주 의 기막(氣膜)에 의해 흘어져 버리 는 것처럼.
그들은 각자가, 낙양검가의 가장 강력한 수사조직의 장이었다.
“나 또한, 그대처럼.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오.”
“그대 또한 오늘 알게 되었다 고...?”
감찰부주가 자신과 호각(互角)을 이루는 무공 능력을 보여 준 것보 다도.
그 말 한마디가, 호법원주에게 효과적이었으니.
“그 말은-?!”
호법원주가 얼마나 천성적으로 ‘정치적’인 인물인지 보여 주는 대 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소.”
감찰부주는 처음부터 기막을 일 으킨 적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본인은. 호법원에서 대공자가 벌인 일을 듣자마자,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을 호출했소.”
호법원주는 입을 다물고, 감찰부 주의 말이 이어지는 것올 들었다.
“그녀는, 특별히 반감을 드러내 지도 않고. 그저, ‘중앙감찰각은 수 사에서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 할 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대의 모든 명령 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그렇소.”
무서울 정도로.
육부장과 동일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중앙감찰각주도?”
머리, 꼬리가 잘린 짧은 말이었 지만.
“그렇소.”
감찰부주는 정확히, 그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대공자의 편에 선 것이겠 지.”
호법원주는, 문제의 돌파구를 찾 기 위해서.
이 밀담(密談)을 시작했지만.
돌파구는커녕, 자신은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는 기분 이었다.
‘아니.’
그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빠져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즉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 같 군.’
가슴이 조여 오는 것처럼 답답해 져 오는 기분에, 호법원주가 이마 를 짚고 입을 열었다.
“•••뭔가, 전조(前光)는 없었소?”
“ 전조?”
“중앙감찰각 정도 되는 위치라 면, 숨기려 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아니.”
감찰부주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중앙감찰각이었기에. 독 고야연이었기에, 알 수가 없었지.”
처음부터.
자신만의 신념으로 이름이 높은 독고야연이었다.
“원래부터 본인과 부딪치는 일은 많았고, 올해 들어 부쩍 더 부딪친 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호법원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 지만.
천으로 싸인 감찰부주의 표정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알 수 있 었다.
“그 독고야연이, 자신의 신념을 접고 누군가 개인에게 충성을 바친 다니.”
자신의 얼굴도 그와 동일하게 일
그러져 있을 터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
감찰부주의 눈이 호법원주를 향 했다.
“호법원주, 그대는?”
그의 눈이, 호법원주의 속을 살 피듯 예리하게 홅고 지나갔다.
“그대는 육부장에게서 낌새를 눈 치채지 못했던 것이오?”
역으로 돌아온 질문에.
호법원주는 길게 침음했다.
“•••으음.”
평소였다면.
그들 사이에, 서로 심중(心中)에 든 것을 ‘솔직흐]’ 터놓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에게는.
대공자라는 ‘공동의 문제’가 존재 했다.
“…그러고 보니.”
호법원주가 인상을 쓰며,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이전에. 삼공자 측의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 문제가 불거졌
을 때가 떠오르는군.”
최대 규모의 수사조직 수장.
그것도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의 정점(頂點)에 위치한 인물 중 하나인 만큼.
“그때 분명, 육부장의 행동은 어 딘가 조금 이상했소.”
자료나 기록 따위가 없이도.
그는 특정 시점에 있었던 사건 을,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나는 분명, 그때. 육부장에게 밀 명을 내려, 대공자 측의 협조를 요 청했었소.”
감찰부주가 마찬가지로 기억을 되살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봉기 세력에 가담했던 무 림인 조직. ‘낙양의 봄’이라 불리는 집단의 체포 협조였던가…?”
그 혼잣말에 가까운 말에.
‘그 밀명을, 감찰부가 알고 있다 고...?’
호법원주는 감찰부의 정보력에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당장 엔 무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소.”
그는 당시 결과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 에, 그들에 대한 체포 협조도 있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감찰부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육부장이 발표한 초동 수사(初動m査)의 결과였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소. 육부장이 정면으로, 그렇게 내 의 사에 반대되는 수사 결과를 내어 놓은 것은.”
호법원주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대공자가 육부장에게 접촉한 것 이.”
그가 탄식하듯 말했다.
“틀림없이 그때였겠어.”
감찰부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 었다.
“•••그때 당시엔, 이상하다고 느 끼지 못했소?”
“느끼지 못했소.”
호법원주는 즉시 고개를 저어 부 정했다.
“증거가 아예 없었고. 실제로 누 구도 잡히지 않았지. 없는 중거를
‘만들어’ 낼 수야 있지만, 없는 인 물들을 만들어 내기엔 규모가 너무 큰 사건이었어.”
한두 명, 정도.
죄를 대신 털어놓을 ‘배역’을 담 당할 이를 찾는 것은 가능했지만.
반사회적 무림인 집단을 통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 운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감찰부주가 그 말을 받았다.
“그들을 때돌린다 하여, 대공자 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이득이 없었 지.”
그랬다.
반사회적인 무림인 집단 따위를 빼돌린다 하여.
그런 행위가 도대체 대공자에게 무슨 ‘이익’이 된단 말인가.
심지어, 당시 대공자는.
그 소요 사태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상태.
그들의 사고 구조로서는.
애초에 연결이 되지 않는, 조각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엔 그저 나름 납득 을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전혀 다 른 그•림이 나오는군.”
과거, 대공자의 친모(親母)인 약 선녀와.
그가 칩거 도중에도 운영을 멈추 지 않았던 자애원에서 시작되어.
해적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오흉(五凶)이라 불리던, 죄악계곡 을 완벽히 재탄생시킨 업적에 이르 기까지.
“•••모든 것이, 일관되게 이어지 는군.”
지금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연소현의 큰 기반 중 하나가 압 도적인 백성들의 지지에 있다는 것 을 고려한다면.
“•••필시.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 소요 사태의 원인을, 반사회 적 무림인 집단의 선동에 의한 것 이 아니라-.”
“삼공자 측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맺음 짓는 것이, 대공자에게 중요 했겠지.”
“그래야, 대공자 자신이. 잡음(雜 音) 없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터이니.”
그들은.
조각들이 끼워 맞아 들어가며, 시원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데, 그것이 말이 되려면….”
시원하다 못해, 간담이 서늘해지 는 것을 느꼈다.
“대체, 대공자는 언제부터-.”
“어디까지를 내다보고 있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