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균열(푸製)
“대공자님.”
먼저, 앞서서 걸으며.
“이쪽에 응접실을 준비해 두었습 니다.”
마치 아랫것처럼 안내를 자청하 는 호법원의 육부장을 보며, 검가 전장의 전장장은 내심 혀를 내둘렀 다.
‘그 대공자께서 아무런 대비 없 이 큰소리를 치실 것이라고는 생각
지 않았지만….’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걷는 연소 현의 모습을 보던 전장장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그렇지. 호법육부장이라 니?’
아무리, 부장 중 막내라 한들.
낙양검가의 가장 큰 수사기관인 호법원의 부장이다.
‘ 게다가….’
전장장의 주름 가득한 시선이 육 부장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그 막내 부장이 직속상관이자
최고 상관인 호법원주의 등에 검을 박도록 하다니…!’
전장장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진 육부장 의 행동은.
하극상(下刺上).
결코, 호법원주가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넘어가서도 안 될 행위였다.
‘그런데….’
전장장이 주시하고 있는 것은, 육부장의 단순한 뒷모습이 아니라
그의 태도였다.
약간 뻣뻣하긴 하지만, 안정된 발걸음.
목을 꼿꼿하게 펴고 앞서 안내를 하는 그 모습은, 마치….
‘전혀,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무리의 막내가 우두머리에게 반 역을 저지르고도 저리 당당하게 굴 수 있게끔 하는 방법이라니.
구체적인 방법은, 지저분하기 짝 이 없는 금전(金錢)의 전쟁터에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전장장으 로서도….
‘•••상상도 되질 않는군.’
노인은 고개를 내젓고는, 연소현 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의문이 있다.’
그때.
그가 그 의문을 떠올리기 무섭 게, 연소현이 뒤를 흘긋 돌아보았 다.
“어째서 굳이, 지금. 호법원주와 척을 질 필요가 있었냐는 의문이 드는 중이겠지?”
전장장이 굳어 있던 얼굴에 쓴웃 음을 지었다.
“제 표정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가 났습니까?”
“아니.”
“그렇다면…?”
쓴웃음을 짓기 전까지, 전장장의 표정은 누구라도 읽기 어려웠다.
기분을 짐작하기도 힘든데, 하물 며 생각이라니.
“그대가 상황을 전부 해석하고 나면, 당연히 그 부분이 의문으로 남을 테니까.”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연소 현의 모습에, 전장장이 고개를 절
레절레 저었다.
“•••역시, 대공자님이시군요.”
그때.
딱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육부장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기입니다.”
육부장의 측근들이 웅접실의 문 을 열자, 연소현이 응접실에서 새 어 나오는 햇빛을 둥지고 미소 지 었다.
“내가 먼저 호법원주와 척을 진 것이 아니라오.”
“.••그렇다면?”
연소현의 뒤틀린 미소를 보며, 전장장이 답을 찾았다.
“그가 내밀었던 손은. 화친의 뚯 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그렇소. 그것은 오히려….”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방심시키고, 뒤를 노리 기 위한 연막(煙幕)에 불과한 짓거 리였지.”
“..r
햇볕을 둥진 연소현의 눈알은 그 역광(逆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자가 내민 손을 잡았
다면, 그자는 그대의 처우가 결정 되는 그때까지 시간을 끌었을 것이 오.”
전장장은 권력자가 뒤로 흉계를 꾸몄다는 것 따위에 놀란 것이 아 니었다.
“호법원주는. 내가 내원과 마찰 이 있었을 때부터, 내 편이 아니었 고. 내가 칩거를 끝내는 것을 막으 려 했던 숨겨진 핵심 인사 중 하나 였지.”
대체, 대공자는 그 사실들을 어 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영향력과 위신이 지금에 이르기 전의 일을.
최고위층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직접 본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알고 있다는 말인가?
“호법원주, 그자는….”
역광에 번들거리는 연소현의 눈 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호법원 내부 사정을 쥐구
멍 안까지도, 전부 알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일을 벌인 것이지.”
“•••그렇군요.”
노인은 어느샌가 자신의 이마에 흐르기 시작한 식은땀을 닦았다.
새삼스럽게.
주변의 광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 다.
손님을 맞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 비를 마친 육부장 측이었지만.
연소현이 복도에서 말을 하기 시 작하자, 마치 이 복도가 그들이 준 비한 응접실인 것인 양.
그저, 자연스럽게 복도를 통제하 고,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육부장마저도 조용히 한 걸음 뒤 에서, 대공자 연소현의 말을 경청 할뿐.
연소현의 모든 행동에는 조금의 의문도 없는 것처럼.
그들 개개인의 면면(面®)에는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만약, 연소현이 이 복도 바닥에 서 차를 마시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태도였
다.
‘•••대공자님의 지배력이, 그 영향 력이.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호법 원 깊숙하게 미치기 시작했다는 말 인가?’
이곳이 호법원이 아니라, 원각정 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 니.
자연스럽게 전장장의 머릿속에, 연소현이 했던 말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이 연소현의 위신이 본가에서 얼마나 바뀌었는지. 이제부터 직접
보게나.
“하지만, 그렇다면….”
전장장은 고개를 흔들어, 애써 다시 주제에 집중했다.
“…더더욱 육부장이라는 패를 지 금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었겠습니 까?”
이로써 호법원주는 육부장 파벌 을 철저하게 배척할 것이고.
불이익과 더불어, 흘러 들어오던 정보마저 끊길 것이다.
“그렇소?”
“그렇지 않습니까?”
전장장의 되물음에 연소현의 얼 굴에 걸렸던 미소가 더더욱 진해졌 다.
그 모습에 전장장의 머릿속에 순 간 벼락이 치는 듯했다.
“설마...‘?!”
“그렇소. 그대의 예상대로라오.”
연소현이 짧게 웃으며 말을 이었 다.
“이 호법원에 나의 수족(手足)이, 육부장뿐일 것 같소?”
전장장의 전신에 소름이 치달았
다.
그 시각.
호법 원.
호법원주의 집무실 밖에서는 소 리 없는 전쟁터가 펼쳐지고 있었다.
“부장님들이 전부 어딜 갔단 말
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춘 호법원주의 최측근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수 하들을 다그쳤다.
“어째서 부장들이 원주님의 긴급 회의 소집에 웅하질 않는 것이야?”
호법원주의 최측근.
그리그, 그 측근의 수하들.
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이 호법원 전체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 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대공자가 방문하기 전까지는….
“모, 모르겠습니다. 삼(三)부장님 은, 집안에 갑자기 우환(憂患)이 생 겨 본가를 나섰다고 하시고….”
“…사(四)부장님은 급무(急務) 증 이라는 이유로 저희의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오〈五)부장님은 아예 이유도 알 려 주지 않은 채, 부재중입니다.”
누구랄 것 없이.
여름 소나기라도 홈빽 맞은 듯, 전신에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들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
수하들의 보고에 호법원주의 최 측근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도대체, 이 호법원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야…?!”
호법원주 집무실.
허공에는 연기만이 자욱하고, 탁 자 위에 놓인 잔은 이미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호법원주 였다.
“여섯 명의 부장 중, 네 명이 호 출에 응하지 않았군.”
자신이 호법원주가 된 이후.
초유(初有)의 사태였다.
“•••그들 모두가 배신자는 아닐 겁니다.”
초로(初老)의 여인, 호법이부장 (護法三部長).
그녀가 곰방대에서 입을 떼고, 정리된 생각을 연기와 함께 입 밖 으로 꺼냈다.
“그들 중 다수는, 급변한 상황에. 일단 눈치를 살피는 중이겠지요.”
일(一)부장이 거기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들 전체가 배반을 한 상황이라면. 이토록 원내가 조용하 지는 않았을 겁니다.”
호법원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 여 수긍했다.
“…그렇겠지.”
충분한 머릿수가 확보되었다면, 그들은 호출을 피해 숨는 대신.
이미, 호법원주를 탄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들이닥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눈치를 살핀다는 것은-.”
“그만큼. 대공자가 보여 준 모습 이.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다는 것입 니다.”
일부장이 이부장의 담뱃대를 보 며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항상 연초를 빌려 피우던
육부장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는 공개된 장소에서 호법원주 의 등에 검을 박아 넣었지만.
단지, 그뿐이 아니었다.
“•••호법원에 균열이 시작된 겁니 다.”
“이제는….”
이부장이 일부장 보라는 듯이, 길게 연기를 뿜으며 말을 받았다.
“…이 균열이 단순히 땜질로 메 워지느냐, 아니면-.”
쯧, 하고.
호법원주가 혀를 차며 그녀의 말
을 끊었다.
“아니면, 붕괴로 이어지겠지.”
호법원주의 눈은 시퍼렇게 빛나 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텅 빈 자리 들이 허하게 느껴지는 것을 막진 못했다.
다시 찾아온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원주님.”
기척을 내고 조심스럽게 들어온 호법원주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땀이 젖지도 않은 얼굴로 호법원주에게 고했다.
“삼공자 측과 연씨 혈족 측에서 사람이 찾아와, 계속 원주님을 뵙 길 청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이부장이 나직하게 혀를 찼다.
“•••놈들이 소식을 뺄리도 들었군 요.”
“•••어쩌면, 그것도 대공자가 손 을 쓴 것일지도 모르지. 제길.”
일부장은 작게 욕지거리를 뱉으 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공자가 일으켰던 본가 내의 대규모 지각변동은, 우리 호법원에 게 큰 이득이 되었건만.”
그의 말은 가감(加減) 없이 사실 이었다.
대공자 연소현의 용틀임으로, 수 많은 본가 내의 권력자들이 실각 (失脚) 했거나.
혹은,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삼공자 측은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에서 있었던 소요 사태 건으로 인해서.
연씨 혈족은 검가전장을 둘러싼
대규모의 비리 건으로 인해서.
그 모든 수사의 중심인 호법원의 영향력이 커지고,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일단 어떻게든 돌려보내는 것 이?”
“•••그것이.”
일부장의 말에 호법원주의 최측 근이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 다.
“그들은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 습니다. 자신들과의 ‘거래’에 대해 서 노골적으로 언급하며, 반협박 중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라던가.’
일부장이 다시금 한숨을 삼키고 있을 때, 호법원주의 입이 열렸다.
“•••이부장.”
이부장의 시선이 호법원주를 향 했다.
“그자들을 맡아 주게.”
“•••그건.”
이부장은 그 말에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 반웅에 호법원주가 이를 악물 었다.
긴급 소집에는 웅한 이부장이지
만, 그 태도는.
명백히 평소와 달랐다.
적어도.
호법원주에게는 다르게 느껴졌 다.
“•••이부장. 자네는 장로 위(位)를 노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말에, 이부장은 노려보듯 일 부장을 흘긋 쳐다보았다.
어깨를 으쓱이는 일부장.
호법원주와 일부장은 낙양검가의 장로.
현재.
이 자리에서 장로원에 속하지 않 은 것은, 이부장 자신뿐이었다.
“…이 건은 비싸게 계산하셔야 할 겁니다.”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호법원주가 일부장에게 말했다.
“잠시. 뒤를 부탁하지.”
“물론입니다만.”
일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호 법원주를 따라, 의자에서 몸을 일 으켰다.
“어디를 가시려고…?”
호법원, 귀빈 응접실.
“대공자님. 급보(急報)입니다.”
실내로 들어가던 연소현에게 누 군가 다가와 쪽지를 내밀었다.
“고맙군.”
연소현이 그 쪽지를 받아 들자,
전장장이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는 방을 나서 버렸다.
“ 역시.”
쪽지를 읽는 연소현의 입에서 킬 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법원주가 비밀리에 극소수의 인원만을 데리고 자리를 비웠다는 군.”
호법원주 정도 되는 인물의 비밀 행차를 바로 전해 듣다니.
그것도.
지금은 호법원주가 극도로 긴장
을 높인 시기가 아니던가?
‘대공자님은 대체 눈과 귀를 얼 마나 심어 두었기에…?!’
잠시 육부장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을 전장장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놓치지 않았다.
‘호법원 소속의 육부장조차도, 대 공자님의 수족을 전부 모르고 있 어.’
마치, 연소현의 그림자가 호법원 전체를 잠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법원주가 이 상황에 자리를 비우다니. 이유가 무엇일까요?”
잠자코 있던 강호의 물음에 답한
것은 전장장이었다.
“육부장이 이쪽 편에 섰으니. 검 가전장 사건과 관련된 수사기관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나?”
“ 아.”
그 말에 강호가 손바닥을 쳤다.
“ 감찰부(監察部) 로군요.”
전장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강호의 추리를 수긍했다.
“그렇겠지. 그가 이 사건에 영향 력을 행사하려면, 이제 남은 것은 처음에 검가전장을 덮쳤던 중앙감 찰각뿐이니.”
그리고 중앙감찰각은 감찰부 소 속이었다.
전장장이 흐음, 하는 소리와 함 께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감찰부주(監察部主)를 만날 모양이야.”
호법원주 다음은 감찰부주인가.
아무리 철저한 중립적 인사로 유 명한 중앙감찰각주, 독고야연이 신 념을 지키려 해도.
감찰부주로부터의 압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첩첩산중(류#山中)이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전장 장이 침음을 홀렸다.
“•••쉽지 않군.”
“그런가요?”
하지만, 강호가 빙긋 웃는 것이 아닌가.
그때, 미리 도착해 응접실 안쪽 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가 앞으로 나섰다.
“반갑습니다, 전장장님.”
그는 일견, 친근해 보이는 웃음
을 지으며 전장장에게 자신을 소개 했다.
“저는 중앙감찰각 소속의 화복이 라 합니다.”
“•••중앙감찰각이 어째서 여기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