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00화 (300/350)

제25편 개선(M旋)

대공자가 본가로 돌아온다는 이 야기는, 그가 자신의 우마차에 탑 승했던 그 순간부터 본가에 퍼지기 시작했었다.

그 정도로.

새벽의 승전 이후.

낙양검가 본가의 모든 이들이 연 소현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 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낙양검가, 정문 근처.

“•••그래서 대공자께서….”

“•••대공자님이….”

정문 근처엔, 대공자를 보기 위 해 모여든 무수한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로부터 들려오는 것은 전부 대공자에 대한 대화였다.

“•••지난밤 대공자께서 직접 기관 의 본영에 들어가셨다고 들었네만.”

평소, 대공자에겐 관심이 없던 무사들이 쉴 새 없이 그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소문이긴 하지만. 검존님과 함 께 단 두 분이 기관의 본영을 정리 하셨다고….”

“•••설마, 과장이겠지.”

다른 용무로 낙양검가를 방문했 다가 발이 묶였거나, 이번 혼란 때 문에 새벽부터 방문한 손님들.

“•••이번 일로 낙양검가의 질서가 뒤바뀔지도 모르겠군.”

“충격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긴 했나만, 그 정도란 말인가?”

그들은 쉴 새 없이, 급변이 예고 된 낙양검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 고 있었다.

“물론이지. 이건 겨우 대공자가 지난밤의 혼란을 수습했다는 정도 가 아닐세.”

“•••그건 그렇군.”

“대공자가 지난밤 간접적으로 상 대해야 했던 것은, 어쩌면 대공자 에게 반대하던 모두였단 말일세.”

그리고.

심지어 구석에는 관복을 입은 무 리도 보였다.

바로, 낙양의 부지사를 비롯한 최고위급 관료들이었다.

낙양검가의 다른 인물들과 어울 리지 못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고립되어 있는 그들.

그 난리 통에 모습도 보이지 않 다가.

중앙관청 대신, 낙양검가에 와서,

이곳에서 대공자를 기다리는 이유 가 무엇인지.

그 속이 너무 뻔히 들여다보여, 주변의 실소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가장 앞 열에서 대공자를 기다리는 이들에 비하면, 시선을 덜 받는 편이었다.

낙양검가의 장로들.

“•••지난밤엔 무탈하셨소?”

“덕분에, 별일 없었소이다.”

그 콧대 높고, 엉덩이가 무겁기 로 소문이 난 이들이.

하나같이 전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정문으로 모여든 것이다.

[실로, 상전벽해(秦田M海)로다.]

대공자의 달라진 위상을 표현하 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나저나, 보이지 않는 이들이 많소.]

외근이나 출장 중인 이들을 말하 는 것이 아니었다.

밤사이, 최고운영회의를 방해하 던 검가의 최고위층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이렇게 귀신처럼 도망쳤을 리 는 없고.]

[아마도...]

[•••대부분 잡혀 들어간 것이겠 지.]

중립파 장로 하나가 식은땀을 닦 았다.

[소문에서처럼. 과거에 있었던 혈 사(血史)는 대공자의 작품이었던 것인 모양이오.]

전음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기 급급할 뿐.

황도의 정계와 버금간다고 하는 낙양검가의 정치판에서 뼈대가 굵 은 그들이었지만.

이번 일로, 대체.

앞으로 낙양검가가 어떻게 돌아 가게 될지, 전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는.

장로원주도 있었다.

“역시. 장로원주께서도 오셨소이 까?”

일명, 작은 거인.

단단한 체구의 노인이 속으로 인 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밤새 고생을 하신 대공자께서 돌아오신다는데, 얼굴을 한번 뵈어 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렇소?”

장로원주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 을 짓는 것은, 현 검가의 장로이자, 점창의 전 장문인이었다.

“대공자께서 밤새 고생을 하셨다

는 것을, 본가의 장로원주쯤 되시 는 분이 지금에 와서야 아셨을 리 는 없고….”

뒤로 연소현과 손을 잡고, 삼공 자 측의 정보를 넘겨주던 점창의 전 장문인.

그가 노골적으로 비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낙양에서 그 난리가 났던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아셨을 리도 없으신 데, 이렇게 일이 끝나고 나서야 얼 굴을 비치시다니요.”

지난밤.

낙양검가의 장로원은, 그 명성과

권력에 어울리지 않게.

어디서도 존재감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낙양 한가운데서 그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장로들은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서, 사분오열 (四分五製) 했고.

몇몇은 부패한 연씨 혈족들을 도 와, 최고운영회의의 눈과 귀를 가 리고 결정을 방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그나마.

전쟁부 소속의 장로들만이, 최고

운영회의에서 명이 내려오자 병력 투입을 의결한 것이 전부였다.

“…삼공자 측에 속한 장문인이 하실 소리는 아닌 것 같소만?”

장로원주의 말처럼.

이공자와 삼공자의 계파에 속한 장로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었다.

이공자 측 장로들은 그 난리 통 의 주범 격이라, 절반에 이르는 수 가 이미 구금(拘禁)되어 있었고.

삼공자 측 장로들은,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날뛰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은 줄줄이 중앙 감찰각의 조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허허. 동료 장로들이 사고를 쳤 던 모양이구려.”

“무슨. 모르는 척을-.”

점창 전 장문인은 태연하게 장로 원주의 말을 끊었다.

“본인은 현재, 경고를 받고 자숙 중이라, 잘 모르는 일이오. 어젯밤 에도 자택에만 있었거든.”

순간, 장로원주의 말문이 막혔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점창 전 장문인은,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에서 마 음대로 후퇴했던 일 때문에.

삼공자 측의 군사부로부터 자숙 을 명받았던 것이다.

“뭐, 장로원주께서도. 당연히 고 민이 많으실 수밖에 없었겠지.”

장로원주의 심기를 박박 긁어 놓 은 점창 전 장문인은.

“그저 이 늙은이가, 장로원의 미 래가 걱정되어 노파심에 한마디 한 것뿐이니. 한 번쯤은 염두에 두고 생각을 해 보시오.”

그렇게 은근슬쩍 발을 떼고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어어? 황 장로께서도 나오셨 소?”

“아아, 장문인이시군. 반갑소.”

태연하게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 누는, 그 밉살맞은 뒷모습을 보며.

장로원주는 주변에 보이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장로원주는 지난밤, 움직이고자 하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최고운영회의의 결정을 기다리다 가, 명령이 나오자 뒤에서 그 집행 을 도왔을 뿐이었다.

“끼어들지 마라. ”

“관여하지 마라. ”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게.”

그것이 가문의 원로들에게서 그 가 들었던, 조언이었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어째서, 아랫것들의 교육에서나 할 말을 장로원주인 자신에게 해 주는 것인지 당혹스럽기만 했다.

심지어, 반발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원로들의 말이 점차 이해가 되고 있었다.

“본가의 대공자님, 납시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장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 다.

다들 몸가짐을 바로 하고, 시선 을 정문으로 집중했다.

그 시선 중에는 장로원주의 것도 있었다.

저벅, 저벅.

그 고요함 속에서, 유일하게.

발걸음 소리만이 선명했다.

망설임도 없고.

자신감만이 가득한 발걸음.

대로의 한가운데로 낙양검가의 대공자, 연소현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 다.

“어째서 본가같이 거대한 가문에 후계자 선정에 대한 명확한 규칙이 없는지 알고 있는가?”

검은 외투를 바람에 휘날리며.

수행원 하나 없이도.

단지 발걸음만으로, 홀로 모두를 위압하는 연소현의 모습을 보며.

장로원주의 머릿속에 원로원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본가는 연씨의 것이고, 항상 직 계 연씨 중에는 매 세대, 규격이 다른 진짜가 있었네. 그렇기에 지 금까지 이 연씨 가문에 후계자 선 정에 대한 규칙이 없는 것이지. ”

어째서, 그 전엔 알지 못했는가.

미처 깨닫지 못했는가.

답은 단순했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보고, 겪 고, 느끼긴 전에는 알지 못하지.’

피할 수 없는 호기심에 모였던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 는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본가의 상황에.

일단, 연소현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서 모여들었던 이들이.

감히,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 지도 못하는 사이에서.

수많은 이들이, 숨조차 마음껏 쉬지 못하는 사이에서.

장로원주는 불현듯 깨달았다.

“현재, 본가에는 후계 문제가 없 다.”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었는 지, 생생하게 느꼈다.

그 충격은 그가 벽을 넘을 때 느 꼈던 돈오(頓倍)와도 같으니, 감히 각성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본가의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앞을 지나던 대공자에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장 먼저 예를 표할 수 있었다.

“•••장로원주로군.”

그를 알아본 연소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지난밤엔 최고운영회의를 돕느 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소.”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치하 라도 하는 듯한 말투.

“별말씀을.”

원래라면, 당연히 반감을 느꼈을 장로원주였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 따윈 들지 않 았다.

“마땅히 해야 할 책무였습니다.”

그는 십칠 세 소년에게 한층 겸 손올 표했다.

“오히려, 대공자께서 손수 낙양 의 혼란을 수습하시느라 고생이 많 으셨습니다.”

장로원주는 가장 정중한 태도로 두 손을 모아 연소현에게 예를 표 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대공자 님.”

모두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이 낙양검가의 한가운데에서.

장로원의 최고 책임자인, 장로원 주가 대공자를 향해, ‘승전’을 축하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리에 밝고, 정계에 깊이 발을 담근 이들은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 해했고.

...

문(文)보다 무(武)를 중요시하는

이들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받아들 였다.

“고맙소.”

연소현이 장로원주와 나눈 대화 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 작한 그의 뒷모습을 향해, 장로원 주는 길게 읍하여 인사를 올렸다.

“대, 대공자님!”

그때.

누군가가 인파를 뚫고 앞 열로 나오며, 대공자를 향해 외쳤다.

“본가의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의예원의 의예원주(醫藝院主)로 군.”

연소현이 그를 알은체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그는 인파 사이를 뚫느라 흐트러 진 의복을 허겁지겁 바로 하며 급 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긴 그렇 지만. 언제라도 한 번쯤, 의예원에 들르셔서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혹시라도, 연소현이 그대로 발걸 음을 옮길까 두려운 듯이, 호홉조 차 고르지 않고 단숨에 내뱉은 말

이었다.

과연, 연소현의 답변은 무엇인가.

의예원주의 얼굴에 한 줄기 식은 땀이 흐를 때, 연소현의 입이 열렸 다.

“의예원의 의원들이, 용봉지회 경기장의 소요 사태 때,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이야기는 들었 소.”

그것은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연소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내, 곧. 의예원을 공식적으로 방

문하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반색한 의예원주가 급히 말을 덧 붙였다.

“혹시, 대공자께서 필요하신 것 이라도…‘?”

“아, 그렇군.”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자애원의 지원을 부탁해도 되겠 소?”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대공자님…!”

“대공자님, 부디…!”

혼란스러운 상황에 눈치만 보던 이들이 누구랄 것 없이, 연소현을 향해 뛰쳐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허! 밀지 마시오!”

“아니, 그쪽이야말로…!”

일단 어떻게든 얼굴도장을 찍거 나, 안면을 트려는 이들이 파도처 럼 밀려들었다.

굳이, 노골적으로 연소현의 줄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연소현을 약소 후계자라고 받아들일 사람도 없었 다.

이제, 연소현은.

명실상부한 검가의 대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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