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편 검악(劍房), 파산(破山)
검가의 전쟁부.
천하제일가라고 불리는 낙양검가 의 가장 거대한 두 기둥 중 하나.
무력 (武方).
태초로부터 존재했기에, 가장 원 초적이고, 원시적이기까지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 여, 가장 원초적이며 절대적인 힘.
낙양검가 무력의 총아(韻兒)이자 정수(精髓)인 전쟁부가 움직이고
있었다.
진군(進軍)하고 있었다.
‘어째서, 검가의 전쟁부가 나섰다 는 것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은 것 이지…?’
화려한 전각의 창가에 선 채.
대로를 진군하는 낙양검가의 무 사들을 보면서, 구양 태상부인은 넋이 나갈 것 같았다.
‘저건, 누군가 놓칠 수가 없는 모 습이야! 군대라고! 군대가 본가를 출진하는데, 아무도 알려 주지 않 았다고...?’
자신이 반쯤 강제로 끌어들였던,
권력자들도.
자발적으로 나섰던 권력자들도.
오랜 시간 우호 관계를 유지했던 권력자들도.
누구도 그녀에게 연락을 보내 주 지 않았다.
‘…설마?’
그녀의 생존 •본능은 그녀의 머리 회전을 가속시켰고, 이 상황에서도, 그 답을 추리해 냈다.
‘•••더 이상, 본가의 상황을 알려 줄 만한 자가 남지 않은 것인가?’
그녀의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졌
다.
최고운영회의가 개입 결정을 내 렸을 것이고.
전쟁부가 그 명을 받들었을 것이 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느 낀 이들은 서둘러 그녀와의 끈을 끊었을 것이며.
그럴 여지도 없이, 깊이 개입했 던 이들은 끌려갔거나 도주했으리 라.
현 상황에서.
더 이상 그녀 자신에게는 우군 (友軍)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짓눌린 잇몸이 찢어져, 입가에 피 가 가늘게 흘러내렸다.
‘아직이야, 아직이야…!’
그녀가 돌아서서 육인회의 우두 머리들에게 외쳤다.
“전부, 나가서 막아라! 무슨 짓을 하든, 시간을 끌….”
그녀의 말은 끝맺음을 짓지 못했 다.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원래 낙
양검가 소속이자 그녀의 충실한 수 하들뿐이었다.
육인회의 우두머리들은, 이미 그 자리를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정신이 밖에 쏠린 사이, 전부 빠져나가 버 렸습니다.”
수하들이 그녀를 향해 머리를 조 아렸다.
“…아니.”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던 구양 태상 부인은 표정을 수습하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시선을 대로로 향했다.
“항복을 하든 아니든. 놈들은 본 가의 전쟁부가 자신들을 살려 둘 리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대 로를 진군하는 무사들이지만.
검가의 전쟁부가 그리 허술하게 군사작전을 실행할 리가 없었다.
“놈들은 자신이 살아서 빠져나가 기 위해서, 아껴 놓았던 전력까지 전부 던질 것이야.”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생각하자, 생각…!’
그녀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 다.
‘최고운영회의가 나섰다고는 해 도, 연씨 혈족까지 한 번에 전부 처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야. 그 렇다면, 그들에게 접촉해서….’
집념(執念)과 아집(我執).
그것이 그녀를 이루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가장 구석에 몰린 채로
도, 머리를 굴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시야에.
전쟁부의 진군을 향해, 하나둘씩 돌진을 시작한 암혹가의 병력들이 보였다.
‘좋아. 이것으로 최소한의 시간은 벌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놈들도 살과 가죽으로 이루어진 한낱 인간이다!”
기형 무기를 든 암흑가 조직의 돌격대장이 가장 앞에서 달려 나가 며 외쳤다.
“살아서 빠져나가고 싶다면, 놈 들을 하나라도 더 죽여라!”
다른 조직의 간부들 또한 그 돌 진에 몸을 실었다.
지금은 이 조직, 저 조직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새끼들아! 쥐도 구석에 몰리
면 문다고 하지 않더냐?!”
그들이 아직도 머뭇거리는 흑도 무림인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가 쥐새끼만도 못한 것이 냐?! 그저 주저앉아서 오줌을 지리 고 부들거리다가 목을 내어 줄 것 이냐?!”
암흑가의 생리를 훤히 꿰고 있던 간부의 말은 정확하게 통했다.
악으로 깡으로, 그 험한 낙양의 뒷골목에서 살아남아 왔던 혹도 무 림인들에게 전의가 돌아왔다.
“X발!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같이 죽자, X발, 죽자고!”
“검가 무사의 배때기라도 따고 뒈지면, 지옥에서도 어깨에 힘은 줄 수 있겠지!”
상대가 검가의 무사라 한들, 전 쟁부라 한들.
자신들 또한 내공을 지닌 무림인 이다.
그렇게 일단 한번, 불이 붙자.
슬쩍 발을 뒤로 빼려던 이들까지 도 돌진에 빨려 들듯 가담해 들어 갔다.
“으아아。}아—!”
그들은 그렇게 밀어닥치는 파도
가 되어, 대로를 휩쓸었다.
“으아아아아!”
거리를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혹도 무림인들이 암흑가의 조직원 들과 한 덩이가 되어 몰려오고 있 었다.
하지만.
검가 전쟁부 무사들의 표정에는 한 점의 변화도 없었고.
열을 맞춰 걷던 그들의 걸음걸이 가 조금도 어긋나는 일도 없었다.
“어쩌시겠습니까?”
부관무사의 물음에 가장 선두에 나온 염 장로가 말도 없이 그저, 등 뒤의 거검 자루를 쥐었다.
그 명령을 이해한 부관무사가 주 먹을 쥐어 보이며 목청을 돋우어, 벼락같이 외쳤다.
“부대, 정지!”
정지 명령이 떨어지자, 무사들이 정확히 동시에 발맞춰 정지했다.
그 살벌할 정도의 군기에, 웬만 한 이들이라면 단숨에 주눅이 들 만도 하련만.
“죽여!”
“X발!”
대로를 가득 메운 암혹가의 인원 들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흐읍….”
염 장로가 등 뒤에서 자신의 거 검을 뽑아 들며, 가늘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너무나 평온한 기색.
밝아 오는 동녘 햇살을 받으며, 금빛으로 빛나는 자신의 거검을 눈 앞에 세워 든 그의 모습은, 정적(靜 寂) 그 자체라.
미친 듯이 돌격해 밀려 들어오는 암흑가의 인원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흐으읍-.”
나직하게 빨아들이는 호흡과.
적들이 한 발씩 내달려 다가을 때마다, 한 치씩 치켜 올라가는 거 검의 조화.
그것은.
염 장로의 등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무사들의 눈에, 마치 모 든 것이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으-아-아-아-! ”
가장 선두에 선 암흑가 돌격대장 이 거검을 위로 치켜든 염 장로의 밑을 파고들었고.
‘검악파산이 별거냐?!’
그의 기형 무기가 염 장로의 심 장을 향해, 길게 뻗었다.
또 길게 뻗었다.
길게, 길게.
그런데, 어째서인지.
모든 내력을 쥐어짜 실은 자신의 무기를 뻗고, 또 내뻗어도.
그 시퍼런 날은 염 장로에게 닿 지 않았다.
“……?!”
돌격대장의 눈에 당혹감이 서린 그 짧은 순간.
염장로의 완벽한 상단세가 완성 되고, 그의 치켜든 거검이 고점에 도달했다.
“흡!”
짧은 기합.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리 쳐진 거검이 돌격대장의 몸을 완벽 하게 세로로 갈랐다.
그리고.
잘린 돌격대장의 몸이 반으로 쩌 억 하고, 갈라지기도 전에.
태산(泰山)이 내려앉았다.
돌격대장의 뒤를 이어 달려들던 암흑가 간부의 무기가 바닥에 떨어
졌다.
“..?|”
무기만 바닥에 떨어진 줄 알았더 니.
우드득.
전신의 뼈가 전부 박살 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자신의 머리통 도 바닥에 짓눌려 있었다.
머리를 들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태산이 몸을 누르고 있는 것만 같 았다.
“……J"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압력
속에 쪼그라들어 버린 그의 폐에서 는 헛바람도 나오지 않았다.
바닥에 머리를 옆으로 처박은 그 의 눈에 주변의 광경이 보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파도처럼 함 께 달려들던 모두가, 그대로 바닥 에 눌리고 있었다.
비명도 없이.
소리도 없이.
처음부터 그들이 돌진했던, 목적 지가 바닥이었던 것 같은 광경이었 다.
으지직.
으직.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자신의 몸이 점차, 단단한 바닥 의 포석에 짓눌려 가고 있었다.
게다가 심지어 그 단단한 대로의 포석마저,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에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콰직.
그가 보고 생각한 것은 거기까지 였다.
두개골이 으깨어지고, 전신이 짓 눌려 박살 난 시체는 아무런 것도
볼 수 없고, 아무런 것도 생각할 수 없었으니.
“후우우...”
내리쳤던 거검을 들어 올린, 염 장로가 천천히 들이마셨던 공기를 나직하게 내뱉는 소리에.
‘‘..
느려진 시간 속에 있었던 것 같 은 전쟁부 무사들의 감각이 정상으 로 돌아왔다.
대로의 포석들은 갈라지고 박살 나서 내려앉아 버렸고.
그 위에서 파도처럼 달려들던 이 들은 전부 짓눌려 죽어 있었다.
단 일수에 압사(壓死)한 것이다.
“과연.”
염 장로의 뒤에서 그 모든 광경 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부관의 입 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 나왔다.
“이것이—.”
낙양검가를 대표하는 수위무사 증 하나인 염 장로의 절기(絶技)에 감탄하려던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 했다.
쿠르릉-!
굉음과 진동.
주변의 전각들이 하나둘씩 연속 적으로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미, 암천존자와 금질의 충돌로 인한 작은 지진을 겪었던 전각들이 었다.
이어서, 염 장로의 절기에 의한 막대한 압력을 받자, 버티지 못하 고 주저앉기 시작한 것이다.
콰르르릉-!
막대한 흙먼지가 무사들이 반사 적으로 눈을 감고 얼굴을 가릴 정 도로 휘날렸다.
이윽고, 바람이 불어 홁먼지를 걷어 내자.
대로변의 수 채의 전각들이 붕괴 하고, 수십 채의 전각들이 반파된 광경이 펼쳐졌다.
“후우우-.”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처음과 같이 검을 몸 앞에 세운 자세로 돌아온 염 장로의 모습이 있었다.
검악파산 독문무공.
초중검(超重劍), 파산경(破山쩌).
원래라면, 서로가 상극이었을 쾌 (快)와 중(重)의 검이, 극(極)에 달 하여 만류귀종(萬流歸宗)을 이루어 낸 경지.
그것은.
산을 무너뜨리는 경이라는 이름 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검악파산(劍 括破山)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홈.”
막대한 내력을 소모하고도, 조금
의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염 장로가 자신의 거검을 들어 정면을 가리켰다.
대로의 저편.
파산경의 범위 밖에는 아직도 암 흑가의 인원들이 무수히 남아 있었 다.
후퇴하여 죄악계곡을 빠져나가려 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 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조금 전과 같 은 함성도 없고, 기세도 없었다.
그들의 무기를 쥔 손에는 힘이 빠지고 있었다.
“적들의 예봉(銳鐘)이 꺾였다.”
그 나직한 목소리에 전쟁부 무사 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검 집을 잡았다.
“전부, 주살(誌殺)하라.”
“충(忠)!”
그 경이로운 검의 경지를 목도 (目暗)한 어떤 무인의 가슴이 끓어 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든 전쟁부의 무사들이 압도적인 기세로 대로를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파도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서 자신의 거검을 거둔 염 장로의 시선이, 저편을 향했다.
그의 눈이 저 멀리, 호화 전각의 창가에 서 있던 구양 태상부인의 눈과 마주쳤다.
파리한 안색, 부릅뜬 채 흔들리 는 동공.
그녀가 일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 서 끌고 싶었던 시간은, 검악파산 염곽추의 한 수에 의해.
단 한 호홉 만에 사라졌다.
망연자실한 그녀의 귓가에 염 장 로의 선명한 전음이 날아와 꽂혔다.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은 없소, 구 양 태상부인. 그대의 신병은 이제 전쟁부에 의해 구속되었소.]
그 전음에 실린 섬뜩한 살기에 구양 태상부인이 그 자리에 주저앉 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