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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진천경-288화 (288/350)

제13편 멸망(滅亡)의 짐승

지하대수로, 최심부.

호리병과 같은 형태의 거대한 지 하 공간은 마교의 마기(魔氣)로 가 득했다.

평범한 사람이든, 내공을 익힌 사람이든, 접촉하고 관측하면.

육신이 침식되고, 정신이 부식되 어, 광인(狂人)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마교의 마기.

오랜 기간 마교를 추적해 왔던.

제마멸사대의 대원들이 반미치광 이가 된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 였다.

그리고.

낙양에 숨어 있던 마교가 마기의 근원(根源)이자 근간(根幹)으로 삼 은 것이, 이곳.

지하대수로의 최심부였다.

하지만.

“무, 무슨”?!”

이형의 존재는 전율했다.

고오오오오오-.

암천존자의 몸에서 치솟는 마기 가, 질식할 정도로 가득한 마교의 마기를 역으로 침식하고 있었다.

“ 이놈——

이형의 존재는 무수한 시체들의 융합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그 존재에 엉겨 붙어 있던 시체 들의 입이 열리더니, 주변의 마기 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딸아들인 마기는 이형의 존재가 가진 입이라고 부를 만한 기관에 집중되어.

암천존자를 향해 쏘아졌다.

그 여파에 호리병 모양의 최심층 공간이 걷잡을 수 없을 듯이 뒤흔 들리고.

심지어, 낙양의 거의 전체에 깔 린 그 거대한 규모의 지하대수로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진동했다.

쏘아 내는 마기가 얼마가 강했던 지.

그그그극, 그그그그극.

이형의 존재가 제 기세에 뒤로 밀리면서, 수백 개의 발이 바닥에 긁히며 불똥을 튀길 정도였다.

하지만.

양의심공이라는 고삐가 완전히 풀려 버린 제암진천경의 마기는 상 상을 초월했다.

“고작, 이 정도가 전부더냐?”

사방에 자욱한 흙먼지와 마기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암천존자의 시퍼런 귀화가 번뜩이고.

불쑥.

새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이형의 존재가 쩌억

하고 벌리고 있던 그 거대한 아가 리의 아래턱을 주우욱 하고 뜯어 버렸다.

그것은 이미 악력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암천존자는 통로를 이루던 시체 들 전부를 뜯어내며 걸었던 것처럼.

한데 뒤엉켜 아가리를 구성하고 있던 시체들을 뽑아내듯이, 그 거 체(巨體)에서 뜯어내 버린 것이다.

푸화확-!

뜯긴 면에서, 생기를 잃은 지 오 래된 검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우어어어어-!”

시체 뭉치의 이미 말라붙고 오래 된 썩은 신경들이, 무슨 통증을 느 끼겠는가.

하지만 이형의 존재는 끔찍한 격 통(激痛)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제암진천경의 마기에 역으로 침 식당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쿵, 쿠쿵.

거체가 그 격통에 뒷걸음질을 치 자, 그것만으로 지하 공간이 진동 했다.

“그 무지몽매(無知蒙味)한 이들 올 부추기고 혹세무민(惑世誠民)하 여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고통 속

에 가두어 놓고서는.”

타탁!

암천존자가 네발로 그 거체를 타 고 올라 그 머리통 위에서 냉소했 다.

“정작, 본인은. 고작 이 정도의 고통에 울부짖는가?”

이번에는 위턱이었다.

제암진천경의 마기로 형성된 손 톱이 위턱에 깊숙하게 박혀 들었다.

“끄아아아악-!”

“크아아아-!”

이형의 존재를 구성하던 시체들

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보통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 비명만으로 고막이 터지고, 뇌 가 진탕되었겠지만.

암천존자에게는 그저.

노랫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콰직.

머리통에 단단히 발을 디딘 암천 존자가 위턱을 붙들고 잡아 뜯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거체를 디딘 암천존자의 발에 더 욱 큰 힘이 들어가자, 시체들이 그

발에 으스러지면서 비명을 질러 대 고.

“그아아아악-!”

위턱을 형성하며 엉겨 붙어 있던 시체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필사적 으로 서로에게 매달렸지만.

콰드드득-!

암천존자가 위턱을 뒤로 젖혀 뽑 아들수록.

오히려 단단히 엉겨 있던 시체들 의 팔다리가 떨어져 날아가고.

심지어 허리가 뽑히고, 가슴팍이 찢어져 나가, 영원히 썩어 가던 내 장들이 줄줄 쏟아졌다.

“으오오오오오-!”

그때서야.

격통 속에서 정신을 차린, 이형 의 존재가 자신의 머리통 위의 암 천존자를 향해 거대한 양손을 박수 라도 치듯이 거세게 마주쳤다.

콰앙-.

그 엄청난 위력에 공기가 비명을 내지르고 지하 공간이 혼들렸다.

거대한 양손을 이루고 있던 시체 들이 일시에 뭉개질 정도로 강력한 충격.

양손을 이루고 있던 시체들이 형

편없이 박살 나서 바닥에 주르륵 떨어졌다.

하지만.

“중원국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더니. ”

암천존자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 고.

목소리는 아래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고작 그 원한과 각오가, 이 정 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체를 이루고 있던 시체들이 손 을 뻗어 암천존자의 옷자락이라도 쥐려고 했지만.

“끄아악!”

오히려 그 옷자락을 붙잡았던, 손들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본인들이 받았던 고통이 억울하 여, 죄 없는 이들까지 울부짖게 하 려 하고.”

암천존자가 거체와 지면 사이를 낮게 달리며 갈고리 같은 손을 내 뻗을 때마다.

“갈 길 잃은 분노를 퍼부어, 지 금 이 순간에도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원망하고.”

손에 걸린 것들이 마구잡이로 뜯 겨 나가고.

이형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던 다 리들이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으으아아아-!”

결국, 그 많던 다리를 절반 이상 잃어버리자.

이형의 존재는 자기 자신의 막대 한 무게를 버티지 못했다.

쿠우웅-.

거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 며, 남아 있던 다리들은 그 무게에 짓눌려 으깨어져 버렸다.

“저 자신의 무게조차 스스로 지 탱하지 못하는 자들이. 잘도 그 입

으로 세상의 무게를 논하는구나.”

“암천존자--!”

암천존자의 노골적일 정도의 조 소에, 격분한 이형의 존재가 뜯겨 나간 아가리로 외쳤다.

“아직이다! 나는…!”

몸통에 매달린 얼굴들도 함께 비 명을 내질렀다.

“우리는 아직이란 말이다!”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 목소리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그우어어어!”

최심층에 연결된 통로들에서 괴 성들이 들려오더니.

“우어어어!”

천장에서 새로운 시체들이 떨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형의 존재가 목구멍만 남은 입으로 비처럼 떨어지는 시체 들을 받아 삼켰다.

식도로 보이는 것이 꿀렁이며 시 체들을 속으로 넘기자.

“원통하도다!”

“ 원망하도다!”

잃어버렸던 다리가 다시 자라고,

시체들이 돋아나 엉겼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거체가 더욱 더 커지고.

새로이 짐승의 그것과 같은 주둥 아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보고도.

암천존자는 코웃음을 쳤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형의 존재는 거대한 주먹들을 만들어내 연신 바닥을 내리쳤다.

바닥이 부서지고, 벽면이 무너져 내리고, 피와 살점이 튀었다.

하지만 그중에 암천존자의 피와 살점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하얀 가면에서 시작된 귀화가 마 치 짐승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졌고, 이형의 존재는 그저 바닥과 벽면만 을 부술 뿐이었다.

“암천존자!”

수백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외쳤 다.

“그 마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보겠다!”

시퍼런 이빨을 번뜩이며, 암천존 자가 받아쳤다.

“그 몸뚱이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보겠다.”

검은 피가 쏟아지고, 살점과 내 장이 튀었다.

마기에 의해 뒤틀린 현실은.

이상할 정도로 통로를 통해 꾸역 꾸역 시체들을 흘렸고.

이형의 존재는 그 시체들로 계속 해서 크기를 유지하며 수복을 해 나갔지만.

어째서인지, 암천존자의 마기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으우어어어어-!”

이형의 존재가 괴성과 함께.

콰앙-!

다시 한번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 쳤지만.

“흡!”

나직한 기합과 함께.

이번엔 오히려 암천존자가 그 거 대한 주먹을 받아쳤다.

진천뢰라도 터트린 것 같은 굉음 이 천지를 뒤흔들고, 거대한 팔이 그대로 폭발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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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개의 입으로, 알아들을 수

도 없는 비명을 지르며, 이형의 존 재는 깨달았다.

암천존자의 마기는 줄어들기는커 녕,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묻던 입이 달린 기둥 같 은 다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갔다.

“도대체 네놈은…?!”

그렇게 묻는 입이 달린 어깨가 발기발기 찢겨 나갔다.

사지(四技)로, 온몸으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이형의 존재는 깨달았다.

상대는, 암천존자라 불리는 존재 의 마기는.

단순히 자신의 마기를 침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마기를 전부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강해지고 있었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자신은 지금.

산 채로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끄아아아아—!”

이형의 존재는 남은 마기를 쥐어 짜, 단숨에 네 개의 팔을 뽑아 들 고 바닥과 벽면을 동시에 내리쳤다.

콰콰콰쾅!

이미, 반쯤 허물어졌던 최심충의 벽면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의 막대한 압력을 지탱하던 벽면이 깨어지고 무너지기 시작하 자.

그 너머로 지하의 토사들이 해일 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한다!’

이형의 존재는 붕괴하는 벽면을

타고 기어올랐다.

너덜거리는 전신으로.

시체들을 공중에 흩뿌리면서.

‘놈에게서 도망쳐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도주를 시작했다.

거체를 꾸물거리며, 천장이 무너 지며 쏟아지는 벽과 토사를 거슬러 오른 이형의 존재가 통로로 머리를 처박았다.

연소현이 들어왔던 그 통로였다.

“그아아악!”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몸체를 좁 은 통로에 구겨 넣자, 외곽을 이루

던 시체들이, 몸체가.

“아아악!”

비명들을 지르며 껍질이 벗겨지 듯 뜯겨 나갔지만.

콰직, 콰지직.

이형의 존재는 어떻게든 그 좁은 통로 안으로 기어드는 것에 성공하 자마자, 정신없이 기었다.

사방의 좁은 벽면에 끼인 시체들 이 갈려 나가고, 그만큼 자신의 몸 체가 줄어들었지만.

이형의 존재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어째서 착각했던 것이지…?!’

암천존자 또한 마기를 흘리고 다 니는 존재이기에,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했 던 것이다.

“끄아아악!”

격통이 치달았다.

놈이 아직 통로에 들어오지 못한 몸통을 붙잡고 뜯어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결사적으로 움켜쥔 통로의 벽면 들이 주르륵 잡아 뜯겨 나왔다.

분명, 자신의 쪽이 압도적인 거 체였지만.

마치 거인이 뒤에서 자신을 잡아 당기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한 보람 이 있었다.

우지직-!

결국,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해 지는 힘을 이기지 못한 몸통이 끊 어지며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으적, 으적.

무언가를 씹어 먹는 것 같은 소 리를 뒤에서 들으며.

이젠 크기가 반의반밖에 남지 않 은 이형의 존재는 필사적으로 기었 다.

‘놈은 동류(同類) 따위가 아니었 다…!’

놈은 마(魔)였지만.

마를 먹는 마였다.

놈의 식욕(食慾)은 끝이 없었다.

뱀처럼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구 불거리며 필사적으로 통로를 기어 가는 자신의 뒤에서.

암천존자가 남은 몸통을 뜯어 발 기며 따라오고 있었다.

놈은 광소를 터트리며.

자신의 몸을 역류하듯 찢어 내며 머리가 있는 방향으로 점차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몸체가 뒤에서 부터 잘려 나가고 있었다.

먹히고 있었다.

몸체를 잃어 가고, 마기를 잃어 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놈은 더욱더 강해지고만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핫!”

저것은.

암천존자는.

그들의 동류가 아니라.

천적 (天敵)이었다.

‘놈은 우리와 상극이다…!’

그것은.

공포였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은 거기서 끊어졌다.

푸화학-!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머리통이 찢겨 갈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몸통을 찢어발기고, 목구멍을 따 라 올라온 암천존자가, 드디어 머

리통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끄어어어억….”

검은 피와 썩은 내장 조각을 전 신에 흠뻑 뒤집어쓴 암천존자의 손 에는 버둥거리는 마지막 시체가 잡 혀 있었다.

암천존자의 입이 길게 찢어지며, 미소를 만들어 냈다.

“드디어 잡았구나.”

사람을 몇이나 합쳐 놓은 것 같 은 비대한 몸집에, 두꺼비 같은 인 상의 얼굴.

비록 지금도 실시간으로 썩어 들 어가고 있는 시체였지만.

암천존자는 정확하게 그것의 정 체를 알고 있었다.

“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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