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86화 (286/350)

제11편 대흔란(大混亂)

낙양검가.

기관 본영, 기관장실.

낙양에서도.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이변을 느 낀 것은.

대공자 연소현이었다.

“ 역시….”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달리고,

상한 음식을 삼키는 듯한 거부감에 구역질이 치솟았다.

그러면서도, 어째서인지 친숙하 기까지 한 그 기운은.

우주(字와 현실을 침식하고, 부 식시키고, 왜곡하는 힘.

마기 (魔氣)였다.

“•••이렇게, 마교의 첫 번째 발호 가 시작되는 것인가.”

원래, 역사에서라면.

한참 뒤에나 있었을 사건.

연소현이 데릴사위가 되어, 낙양 검가를 떠나고.

검가가 혼란기에 빠져들고 나서 야, 낙양에 본격적으로 발호(滅扈) 했던, 마교.

그 마교의 첫 번째 발호가 벌써 시작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것이 나의 숙명(宿命)인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오고.

어머니의 대주술이 깨지고.

천살성이 떠오르고.

자신에 의해, 검가의 혼란기에나 흘러야 했던 무수한 피가 벌써 흐 르니.

결국, 마교가 발호했다.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거기엔, 분명.

상관관계가 존재했다.

“•••결국, 숙명은 피할 수 없는 가.”

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지 만, 연소현의 눈에는 너무도 선명 하게.

붉은빛으로 선연하게 빛나는 별 이 보였다.

천살성 (天殺星)이었다.

“O O

낙양 중앙 관청 치안별관 소속의 관병, 장삼은 끔찍한 악몽 속에 갇 혀 있는 것만 같았다.

온몸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오한이 치달아 전신이 덜덜 떨렸다.

“•••정신 차려!”

뭔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장삼은 쉽게 정신을 차 리지 못했다.

‘부, 분명,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포함한 죄악계곡에 주둔 하던 관병들은 포격을 피해, 상류 로 모여 재집결했다.

‘중류에, 독이 뿌려지고, 그래서. 우리는 대기하던 와중이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그건 뭐였지?’

지진이라도 난 듯이 덮쳐 온 격

렬한 진동과 함께, 알 수 없는 소 리가 계곡 전체에 울려 퍼졌던 기 억이 났다.

‘신음이었나?’

그것은 자신의 동기가 암혹가 순 찰 중 급습당해 칼에 찔려 죽어 가 며 냈던 소리와도 같았으며.

‘우는 소리였나?’

그것은 어느 부인이 강도를 당해 남편과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고 울 부짖던 소리와 같았으며.

‘웃는 소리였나?’

실성한 무당이 퍼드득거리는 닭 의 목을 잘라, 그 피를 뒤집어쓰고,

작두 위에서 펄쩍거리며 뛰는, 그 일그러진 얼굴은, 아이들의 찢어지 는 비명과, 내장을 쏟아 냄비를 채 우며 웃는-.

“정신 차리래도, 이 새끼야!”

철썩.

눈앞이 번쩍이고, 화끈한 통증이 얼굴에서부터 치달았다.

장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억?!”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시 뺄건 하늘이었다.

‘하늘이 시뻴겋다고?’

분명, 조금 전까지는 시커먼 밤 이었는데.

피처럼 붉은 구름이.

뱀 굴의 뱀들이 서로 엉겨 붙듯, 뒤엉키며 시야의 모든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그 끔찍할 정도의 위화감에 그는 온몸이 굳었다.

“뒈지기 싫으면, 창 잡아!”

그 목소리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는 관병이었다.

장삼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단창을 붙잡았다.

그 순간.

“주거어어어라!”

무언가가 달려들었고, 장삼은 반 사적으로 손에 쥔 단창을 내질렀다.

창대를 통해, 창날이 상대의 살 을 찢고, 내장을 헤집는 느낌이 선 명하게 느껴졌다.

“쿠에엑-!”

평소에 선임 관병들의 갈굼을 먹 으며, 열심히 관리한 창날 덕분일 까.

아니면, 상대의 돌격이 너무나 저돌적이었던 것일까.

창대를 쥔 손에 깊숙이 꿰뚫린 상대와 장삼의 눈이 마주쳤다.

실핏줄이 줄기줄기 터진 채로, 부릅뜬 상대의 눈알이 부들부들 떨 리는 와중에.

상대의 얼굴에 가득한 문신은, 분명 장삼의 기억 속에 있었다.

‘낙양 산해방?!’

낙양 산해방은 낙양의 대표적인 암흑가 조직 중의 하나였다.

그 조직원이 어째서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인가.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도, 충실하 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온 장삼 의 몸은 자연스럽게 창을 비틀었다.

“끄르륵-.”

주르륵.

상대의 입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핏줄기가 장삼의 얼굴에 떨어졌지 만.

장삼은 마지막까지 상대의 눈이 뒤집히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상대가 추욱 늘어지고.

양손으로 붙들고 있던 창대에도 아무런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 죽였다.’

그 순간, 장삼을 깨웠던 목소리 가 다시 한번 그의 귓가를 때렸다.

“아직이다!”

장삼이 창에 꿰여 죽었던 시체의 이빨을 반사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목소리 덕분이었 다.

“머리를 터트려!”

“머리를 터트리라고!”

장삼은 창대를 쥔 양손에 힘을

넣으며, 누운 채로 힘껏 자신의 온 몸을 비틀었다.

“으아。}아-!”

“그워어어어어-!”

창대에 매달린 시체가 뼈대를 삐 거덕거리면서도, 손발을 격렬하게 휘저으며 저항했다.

시체 주제에 힘이 얼마나 강한 지.

사람 크기의 물고기가 매달려 퍼 덕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상대와 장삼의 위치는 바뀐

뒤였다.

발버둥 치는 시체의 배 위에 올 라탄 장삼이 단창을 뽑아 들어, 단 숨에 머리통을 꿰뚫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급격하게 움 직인 탓에 호흡이 거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직 안 끝났다!”

장삼은 시체의 머리에 박힌 창의 창대를 짚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 났다.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은, 반쯤 무 너져 내려 천장이 뻥 뚫린 어느 집

안이었다.

그리고 사방에는 밀어닥치는 수 십, 수백 구의 시체를 막아서고 있 는 이들의 뒷모습이 있었다.

검가의 대공자가 거느린 하녀도 하나 있었고, 황호사협인가 하는 협객도 하나 있었으며, 자신과 같 은 관군들도 있었다.

“뭘 보고만 있어?!”

“당장 우리를 돕게!”

관병 장삼은 두 번 생각할 필요 도 없었다.

“으아。}아-!”

관병 장삼은 기합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그들이 만든 벽 너머에서 적들을 향해 창 을 찔러 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얼마나 창을 내질렀을까.

사방에 잘린 시체들의 머리통이 나뒹굴었고.

죽었다가 다시 일어난 시체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몰려온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계곡 곳곳에서 수세에 몰린 아군 들이 전투를 진행 중이었다.

하류에 있던 적들은 어째서인지 아군과 한데 뒤섞였고.

죽여도, 다시 일어났으며.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몰려 왔다.

“으아아아아!”

장삼은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 면서도, 자신의 창을 내질렀다.

“죽어! 죽어!”

얼마나 죽인 걸까.

얼마나 싸운 걸까.

적들의 시체가 무수히 쌓이고.

또다시 일어나서 덤벼들던 시체 들이 머리를 잃고 다시 나자빠졌다.

“허억-. 허억-.”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자신의 팔 한쪽은 너덜너덜했고.

더 이상 창을 들어 올릴 힘도 없 었다.

“허억-. 허억-.”

장삼의 시선이 힘을 잃고 사방을

살폈다.

엄청나게 날랜 몸놀림을 보여 주 며 춤을 추듯 적들을 죽이던 대공 자의 하녀도 죽었고.

황호사협 중 하나라던 이도 죽었 고.

관군들도 죽었다.

전부 죽었다.

“허억-. 허억-.”

하지만.

적들은 아직도 끊임없이 밀물처 럼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바다의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사람의 손만으로 막을 수 없는 것 처럼.

적들은 끊임없이 밀어닥쳤다.

자신의 몸을 물어뜯고, 내장을 뽑아내는 것을 보며, 장삼이 단말 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

“으으으".”

낙양 중앙관청 치안별관 소속의 관병, 장삼은 끔찍한 악몽 속에 갇 혀 있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 고, 오한이 치달아 전신이 덜덜 떨 렸다.

“•••정신 차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장 삼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 분명,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포함한 죄악계곡에 주둔

하던 관병들은 포격을 피해, 상류 로 모여 재집결했다.

‘중류에, 독이 뿌려지고, 그래서. 우리는 대기하던 와중이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아니, 아니야.’

문득, 강렬한 기시감이 들었다.

‘ 아닌가?’

계곡 전체에서 아군과 적군이 뒤 섞여 싸웠고.

자신은 분명, 마지막까지 싸우다 가….

“싸우던 와중에 넋 놓고 뭐 하는

짓이야?!”

철썩.

그 순간 느껴지는 얼굴의 화끈거 림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으아。}아-!”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창을 잡고 달려드는 적의 머리통을 찔렀다.

찌르고 또 찔렀다.

“으아아악-!”

하루를 꼬박 싸운 것 같았다.

아니면, 이틀인가.

사홀일지도 몰랐다.

“ 끄아아악-r

산 채로 온몸이 물어뜯기고, 내 장이 뽑히면서 보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붉었다.

자신은 몇 번을 죽은 것일까.

몇 번을 더 죽어야 하는 것일까. “정신 차리고 일어나!” 장삼은 고개를 흔들었다.

더 이상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습관처럼 창을 찾아

쥐었고, 그의 몸은 훈련받았던 대 로 움직였다.

“으아아악-!”

이제 자신이 지르는 것이 기합인 지, 비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는 그저.

‘어머니….’

집에서 그를 애타게 기다릴 어머 니가 다시 보고 싶었다.

그는 온몸이 찢어지면서 울부짖 었다.

“ 일어나라.”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제 장삼은 지쳤다.

더 이상 일어나서 싸울 수 없었 다.

“깨어나라.”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 그를 깨웠던 목소리와 는 달랐다.

“모든 것은 미혹(逃惑)과 환몽

(幻夢)에 불과하리니.”

주변에서 들려오던, 어떤 기합 소리보다도.

적들의 괴성보다도.

비명보다도.

울부짖음보다도, 뚜렷하고 선명 했다.

“아....”

그리고 빌어먹을 정도로 붉디붉

던 하늘에 금이 가고 있었다.

죽었다가 깨어나고, 또 죽었다가 깨어나도 지겹도록 거기에 있던 붉 은 하늘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 금의 사이로, 시커먼 기운들 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며, 붉은 하 늘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불길했던 붉은 하늘이 무너지고.

검게 물들고 있었다.

장삼은 자신도 모르게 그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암천(暗天)

거짓된 하늘이 무너지고.

암천이 도래했다.

장삼은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서 있었고, 그의 손은 자신의 단창을 잡고 있었으며.

팔이 날아가지도 않았으며, 내장

이 뜯기지도 않았고, 몸에 있는 상 처는 포격을 피하던 도중에 생긴 생채기뿐이었다.

“어…‘?”

“이게 무슨…?”

주변에는 그와 함께 대기 중이던 관병 동료들이, 이제야 정신을 차 린 듯이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

“자네, 괜찮나?”

“그러는 자네는?!”

또 동료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있 었다.

“이, 인원 확인하라!”

“인원 확인!”

밤하늘은 검었고.

계곡에 부는 바람이 옷자락을 펄 럭 였다.

자신은.

자신들은, 계곡의 상류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면, 애초부터 어디에 갔던 적도 없었거나.

마지막에 들려왔던 목소리가 해 준 말처럼.

그것들은 그저 전부.

단지, 한낱 미혹과 환몽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만약, 그대로 계속 그 악몽 속에 있었다면 모두는”.

장삼은 불현듯이, 고개를 들었다.

“..r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밤하늘에는 구름만이 가득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장삼은 느꼈다.

분명, 그곳에는 누군가가 있었었 다.

칠혹같이 어두운 밤하늘에서도 너무나 선연하게 보이는 하얀 가면 을 쓴 누군가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악몽 속에서 들려왔던 목소리 가 그의 귓가에, 모두의 귓가에 울 려 퍼졌다.

“다들 고생 많았다.”

목소리가 짧게 덧붙였다.

“이제, 뒤는 내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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