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격전(激戰)
계곡 중류.
“끄어어....”
“쿨럭, 쿨럭…!”
가늘게 아직도 명줄이 붙어 있는 이들의 신음이 들려오지만.
그런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암흑가 조직원들은 처참 한 모습으로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친 연노 같으니라고.”
수하들을 그 골목으로 밀어 넣었 던 암혹가의 간부가 엄폐한 채, 바 닥에 침을 뱉었다.
“부두령(副頭領)님. 이제 좀 적의 연노가 조용해진 것 같지 않습니 까‘?”
“그래?”
그 말에 부두령이라 불린 암혹가 간부가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하긴. 아무리 검가의 연노라도 영원히 발사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 지.”
연노처럼 위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무기는 각 부위에 가해지는 부하가 높고.
그만큼 연속적으로 오랫동안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럼 확인을 해 봐야-.”
“그래, 확인해야지.”
그 말과 동시에 부두령이라 불린 간부가 말을 꺼냈던 수하를 슬쩍 뒤에서 밀었다.
“어…?”
그것이 수하의 마지막 유언이었 다.
쐐액, 하면서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든 철시가 그 수하의 몸을 꿰 어 버렸던 것이다.
“아직이었구먼.”
철시에 꿰인 채 벽에 박힌 또 하 나의 시체가 된 수하에게서 눈을 돌린 간부의 담담한 목소리에 다른 수하들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부, 부두령님, 그러면 이제 우린 어쩝니까?”
“어쩌면 되냐고?”
수하들에게 씨익 하고 웃어 보인 부두령이 자신들의 뒤를 향해 외쳤 다.
“야! 여기 연노 공격이 옅어졌 다! 당장 돌격하자!”
그 외침은 자신의 수하들을 향한 외침이 아니었다.
“ 뭐?”
“저쪽 골목에서, 분명 연노 공격 이 옅어졌다고 했어!”
그것은 지금도 하류에서 끊임없 이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는 다른 조직의 일원들이었다.
“이공자 측에서 첫 번째로 적의 투석기를 파괴해 공을 세운 조직에 게 큰 보상을 약속하셨다!”
부두령은 수하들을 향해서는 손 을 들어,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며 더욱 기세 좋게 외쳤다.
“공은 이제 우리 혹점파(黑店派) 의 것이다!”
그러자, 뒤에서 헉헉거리며 중류 로 올라왔던 타 조직의 간부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 안 된다!”
“당장에 돌격해! 공은 우리가 차 지해야 한다!”
부두령의 얕은 속임수에 넘어간 이들이 우르르 골목으로 몰려 들어 갔다.
콰드드득!
“끄아악!”
“커헉!”
사정없이 쏟아지는 철시에 골목 으로 몰려 들어갔던 이들이 떼죽음 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수하가 기쁜 얼굴로 외쳤다.
“부두령님! 확실히 처음보다 철 시가 많이 줄었습니다!”
“좋아!”
부두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딴 조직 놈들을 조금만
더 유인하자!”
당장, 흑점파의 부두령과 그의 수하들이 한마음이 되어 후방을 향 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 이쪽이다!”
“이쪽의 연노 공격이 끝났어!”
“공은 우리 것이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저쪽이다! 저쪽 골목의 연노 공 격이 끊겼다고 한다!”
“돌진해! 당장 돌진하란 말이다!”
또다시 여러 무리의 타 조직원들 이 낚인 것을 보며, 흑점파의 부두
령과 수하들이 킬킬하고 서로 음흉 한 웃음을 공유했다.
“어이! 이쪽이야!”
심지어 그들은, 대신 화살받이가 될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위치를 알리기까지 했다.
“여기야! 이쪽 골목이라고!”
“저쪽이다!”
흑점파를 발견한 이들이 우르르 하고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그런 그들을 반기며, 흑점파 조 직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던 그 때.
“음‘?”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것은, 눈 치가 빠른 흑점파의 부두령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런 그를 향해, 화살받이들을 유인하던 그의 수하가 의아함을 표 했다.
“예? 뭐가 이상하다는-?”
콰앙-!
허공에서 거대한 바위가 날아들 어, 달려오던 타 조직원들에게 직 격했다.
“..?!”
혹점파의 눈앞에서.
단박에.
열이 넘는 인원들이 단숨에 짓이 겨졌다.
팔다리가 휘날리고, 자욱한 피바 람이 흙먼지와 함께 비산했다.
비명도, 울부짖음도 없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바위가 낸 충격과 굉음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 으리라.
콰아앙!
뒤이어 날아든 바위는 계곡 특유 의 석조 가옥을 통째로 박살 내고,
뒤에서 따라오던 이들까지도 덮쳤 다.
콰아아앙-!
은폐도 소용이 없고, 엄폐도 의 미가 없었다.
바위가 날아드는 곳은 죽음뿐이 었다.
압도적인 폭력.
말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보던 혹점파의 부두령이, 문득 뒷덜미가 서늘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야에 유난히 거대한 바위 가 자신들을 향해, 똑바로 날아드 는 모습이 보였다.
‘아, 그랬군.’
그는 그 순간에야, 자신이 느꼈 던 이상한 감각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군 측의 함포 사격이 멎었던 것이야…!’
그리고.
그가 무어라 마지막 말을 꺼내기 도 전에, 날아든 바위가 흑점파 전 원을 집어삼켰다.
제삼부두 (第三埋頭).
“이게 무슨 짓인가?!”
이공자 측 장로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당장! 배를 돌리란 말이야!”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
쓱이는 선혈선단의 장교 대신 입을 연 것은 창밖을 바라보던 하후 장 로였다.
“진정하시오.”
이공자 측 장로의 핏발 선 눈이 하후 장로의 뒤통수에 꽂혔다.
“진정?!”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창밖을 가리켰다.
“하후 장로는 지금 저 꼴을 보고 진정하란 소리가 나오시오?!”
선혈선단을 뒤로 후퇴시킨 연소 현 측의 투석기들이 무자비하게 바 위를 투사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이곳, 제삼부두까지 도 그 굉음과 진동이 들려올 정도 이니.
계곡 안의 암흑가 인원들의 꼴이 어떠할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눈에 훤 할 지경이었다.
“이미, 선혈선단은 타격을 많이 입었소.”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하후 장로의 말투는 무덤덤했다.
“하지만-!”
하후 장로가 동료 장로의 말을
끊었다.
“여기서 배를 더 잃으면, 이후에 죄악계곡 상류의 돌파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 그것은…!”
그 말에 동료 장로의 말문이 막 혔다.
지금 당장.
하류에서 중류로 접어드는 것만 해도, 이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중류에서 상류를 돌파 하는 것은?
함포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투석기들은 거의 전부가 중류에 배치되어 있으니, 우리가 중류를 접수하기만 하면 될 일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선혈선단의 장교가 육포를 질겅 질겅 씹으며, 하후 장로의 말에 고 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투석기만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배를 더 육지에 바짝 붙여 상류를 직접 타격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공자 측 장로들이 웅성거렸다.
“•••그건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포격 지원도 없이, 그것이 가능 하겠소?”
하후 장로가 방금 전령에게서 받 아 든 쪽지를 펼쳐 보고는 쓴웃음 을 지었다.
“구양 태상부인께서 보내신 쪽지 요.”
그는 쪽지를 동료 장로들에게 넘 기고는 다시 시선을 죄악계곡으로 돌렸다.
“뭐?!”
“이제야, 육인회가 무인들을 투 입했다고?!”
그의 뒤에서 쪽지를 읽은 장로들 이 내는 노성이 쩌렁쩌렁했다.
“놈들은 아직도 전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가?!”
“이 망할 놈들이…!”
아무 말도 없이 멀리 죄악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하후 장로를 대신해 서, 장로 중 하나가 나섰다.
“자 자. 다들 좀 침착들 하게. 본 가의 장로들이 이 무슨 추태인가?”
그가 동료 장로들을 진정시켰다.
“아무리 암혹가의 무인들의 수준
이 떨어진다 해도, 그들의 수는 결 코 무시할 수 없지 않소. 다들 잘 알지 않소?”
“그건 그렇소.”
“전장에서 머릿수는 결코 무시를 못 하는 법이지.”
동료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거리 며, 진정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미 소를 지었다.
“이제 곧 전황이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그의 마지막 물음은 하후 장로를 향한 것이었지만.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아니면,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다는 것인지.
하후 장로로부터는 아무런 답변 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위가 날아온다!”
눈이 좋은 혹도 무인이 외치며
먼저 몸을 날리자, 나머지 흑도 무 인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떨어지는 바위를 피했다.
콰앙-!
내공이라고는 한 푼도 없는, 조 직원들의 피가 튀고 몸이 짓이겨졌 지만.
혹도 무인들은 누구 하나, 작은 부상을 입은 이도 없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목표로 부여받 은 대상 골목 근처에 도착했다.
“정보대로입니다, 대주! 정면 골 목의 끝에 연노가 배치되어 있습니 다!”
척후로 보냈던 수하의 보고에, 돌아오는 대주의 지시는 짧고 명확 했다.
“우리 철혈대(鐵血隊)는 옥상을 통해 적의 연노 진지(陣地)를 급습 한다.”
철혈대는 육인회의 일석을 차지 한 단지회의 정예 무력 조직.
“적들에게도 무림인들이 많다고 하니, 격전이 예상된다.”
대주의 말에, 모두가 입가에 잔 인한 미소를 지었다.
겁 따위는 먹지도 않았다.
매일같이 피와 살이 튀는 낙양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그들 이었다.
“좋아, 출발.”
두 번의 지시도 필요가 없었다.
칼을 입에 문 이들은, 일제히 벽 면을 거미처럼 달라붙어 옥상을 향 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공이라는 힘을 가진 그들은, 아무런 준비나 도구 없이도, 전장 을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전술이었 다.
그때.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
그들이 타고 오르던 벽에 달려 있던 창문이 벌컥 열리더니, 곰의 앞발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기습 전에 상대에게 말을 건넨 다고?’
철혈대의 흑도 무인이 그 손의 주인을 비웃으며,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손올 피했다.
“멍청한 애송이 놈’!”
그리고 동시에 그 손을 향해, 둥 에 메고 있던 칼을 뽑아 휘둘렀다.
그 빛살 같은 검이, 단박에 곰 같은 손들을 잘라 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따당!
“•••뭣?!”
마치, 내력을 가득 담은 상대의 무기라도 때린 것처럼.
그의 칼이 상대의 금빛이 도는 팔목을 때리고는 그대로 튕겨 나왔 다.
“이놈아. 이것이 바로, 소림(少 林)의 금강나한공(金剛羅漢功)이라 는 것이다.”
공담웅.
소림파의 속가제자이자, 공씨 가 문의 차기 후계자.
그가 창밖으로 상반신을 쑤욱 내 밀고, 두 손으로 허공에서 뜬 혹도 무인의 멱살을 붙잡았다.
“흐랏차!”
그러고는 호쾌한 기합과 함께, 그 특유의 괴력으로 혹도 무인을 그대로 벽면에 내리 처박았다.
“이 새끼가…?!”
콰직, 하고 벽에 박힌 머리가 수 박처럼 터짐과 동시에 벽을 타고
오르던 이들이 방향을 바꾸어, 일 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죽여 버려!”
자신을 향해, 수십의 흑도 무인 의 무기와 살기가 번뜩이는 광경.
“어이쿠!”
공담웅은 기함하여 머리 잃은 시 체를 놓아 버리곤, 창가에서 뒤로 굴렀다.
와지끈!
그가 몸을 피한 창틀이 혹도 무 인의 철퇴에 맞아 그대로 산산이 부서지고.
“쫓아라!”
그 부서진 창틀을 통해, 흑도 무 인들이 쏜살처럼 실내로 짓쳐들어 왔다.
“어? 어?”
철혈대 무인들의 움직임이 예상 보다 재빨랐는지, 공담웅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내며 도망치다가 그 대로 자빠졌다.
“X신 같은 놈!”
“팔다리부터 잘라 버려!”
그리고 그런 그를 비웃으며, 흑 도 무인들이 달려드는 순간.
찰칵.
“……?!”
그 자리의 모두가 무림인이었던 만큼, 그 소음은 모두가 똑똑히 들 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무림인이 라 할지라도, 복도를 통째로 쓸어 버릴 기세로 쏟아지는 암기의 폭풍 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콰지직!
폭음과 함께, 철혈대 무인들의 몸이 육편(肉片)이 되어 찢어졌다.
“•••역시, 사천당가의 암기 함정
인가?”
공담웅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 을 느끼며, 재빨리 그 자리에서 모 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런 풍경은 그곳에서만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쫓아라!”
연소현 측 아미파의 무숭 두 명 을 한 무리의 흑도 무인들이 쫓고 있었다.
“홉!”
아미파의 무승들은 유려한 신법 으로 좌우 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았고.
그녀들에게 따라붙던 이들도 똑 같이 벽면들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 어올랐다.
“..?1”
벌컥! 벌컥!
좌우 골목의 창문들이 열리고, 활을 든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각정 하녀단의 하녀들이었다.
“피, 피해-!”
방향을 바꿀 수도 없는 허공에서
어떻게 화살을 피한단 말인가.
그나마 재주 좋은 이들은 무기를 휘둘러 급소를 피했지만.
그들이 다시 바닥에 착지했을 즈 음에는, 이미 아미파의 무승도.
활을 든 하녀단의 인원들도.
전부 모습을 감춘 뒤였다.
“이런, X발!”
“홀흘흘.”
계곡 중류의 옥상에서 노파가 빠 진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웃음소 리를 흘리고 있었다.
“우리 무인들이 정면으로 상대해 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지.”
남만의 와룡.
밀림에서, 밀림의 나라인 월국의 군사 지휘관들을 괴롭혔던 전설적 인 군사.
곽 노인은 유격전의 달인이었다.
“자아.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오 려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죄악계곡의 지형은 그녀의 눈에는 밀림과 마찬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