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80화 (280/350)

제5편 공방(攻防)

죄악계곡 중류.

일번(一番) 포반.

“장전(裝으)을 서둘러라!”

포반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들 그 고생을 해서, 투석기를 중류로 옮겨 재설치까지 했잖나?!”

계곡 중류는 지금 적의 포격을

피해 후퇴하는 아군 병력과 물밀듯 이 밀려 들어오는 적군.

그리고 후퇴하는 아군의 후미를 보호하기 위해 투입된 아군 병력으 로 일대 흔전(混戰)을 거듭하는 와 중이었다.

“당장에라도, 우리 위치까지 적 들이 밀어닥칠 수 있단 말이다!”

포반장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아! 한 발도 못 쏴 보고 이대로 다 뒈질 셈이냐?!”

죄악계곡 정벌전이 끝났을 때.

그는 자신들이 일등공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치하 정도는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단히 인상적인 활약이었어!”

그리고 전투 후 찾아왔던 전쟁자 문단의 노군사로부터 예상대로.

아니, 예상 이상의 치하와 금전 적 보상을 받았지만.

“그런데, 미안하지만. 당장 투석 기들은 전부 분해해서, 중류로 옮 겨 설치해야겠네. ”

그 생고생을 떠올린 포반 인원들 이 이를 악물었고, 장전은 기록적 인 속도로 끝났다.

“장전 완료! 발사 준비 완료!”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옆 건물 옥상에 배치된 관측수가 사령부의 지시를 받았다.

“사령부로부터, 발사 명령입니 다!”

그 순간.

포반장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수하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와 정 확하게 똑같았다.

“발사!”

카르르륵!

금속 사슬이 급속도로 풀리며 비 명을 지르고, 도르래들에서는 불똥

이 튀었다.

콰앙-!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모든 힘 을 전달받은 거대한 바위가 허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계곡 중류로 몰아닥치는 적군의 머리 위를 넘어서.

계곡 하류에 개미 떼처럼 몰려들 어 불을 지르고 약탈을 감행하는 적군을 지나서.

혼란에 빠져든 낙양의 번화가 위 를 넘은 바위는, 제삼부두를 지나 황하에 도달하더니.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바위를 멍 청한 얼굴로 바라보던 해적 용병선 의 관측수에게 직격했다.

한낱 피육으로 만들어진 인간 하 나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로 박살 낸 바위는.

콰드득!

주 돛대 (Main mast)를 이루는 육중한 나무 기둥을 단박에 부수더 니, 마침내 힘을 잃고 갑판 위로 떨어졌다.

“으, 으아아-?!”

비명조차 끝을 맺지 못하고, 갑 판 위의 해적 용병 선원이 그대로

떨어진 바위에 짓눌렸다.

조금 더 후방에 위치한 해적 용 병 선혈선단의 사령선.

“오(五)번 함 피격(被擊)!”

사령선의 관측수가 외치는 소리 는 보고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

다.

“오번 함 피격!”

오번 함의 육증한 주 돛대가 부 러져 넘어가는 광경은.

우지지직-!

마치 거목이 뿌리째로 넘어지며 그 지면을 뒤집어엎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번 함의 갑판은, 지진 이 찾아온 대지처럼 갈래갈래 뒤틀 려 해적 용병 선원들을 잡아먹었다.

“저, 적의 포격이 이어집니다…!”

첫 바위는 정확하게, 오번 함을 때렸지만.

다행히.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연달 아 날아온 바위들은 근처에 떨어졌 다.

비산하는 물보라를 맞으며, 사령 선의 인원들이 살짝 안심하는 순간.

콰지직-!

다섯 번째 바위가 오번 함의 옆 구리를 강타했다.

“..r

사령선의 해적 용병 선원들이 자 신도 모르게 비명들을 질러 댔다.

콰드드드득-!

주 돛대가 넘어지며 뒤틀리던 선 체가 비명을 지르며 이제는 숫제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남쪽 바다에서 무수한 포격전을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온 오번 전투함이었지만.

압도적인 질량 포격에.

그렇게.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대파(大 破)되었다.

“아군 포반의 공격이 연달아 목 표에 적중!”

일번 포반의 관측수가 외쳤다.

“목표 대파! 목표의 대파가 확인 되었습니다!”

그 순간 누구랄 것 없이, 포반의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좋았어!”

“이 X같은 해적 새끼들! 약 선 녀님의 자애가 가득한 바위 맛이 어떠냐?!”

하지만 막상, 그들의 뒤에 선 포 반장은 어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 고 있었다.

‘이게 되네?’

죄악계곡의 중류로부터 황하까지 는 절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단순한 직선거리라면, 대포도 아 닌 투석기의 사거리가 절대 닿을 수 없는 거리였던 것이다.

‘지형의 고저 차이 덕분에 사거 리가 늘어나 가능할 것이라고 하더 니.,’

전쟁자문단 노군사의 측량이 정 확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그는 얼른 자신의 표정을 숨기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수하들에게 외쳤다.

“아직 전투 안 끝났다! 당장 재 장전을-!”

그가 그렇게 외치면서 앞으로 한 발 내디딘 순간.

씨이잉-.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위치가 노출됐다!”

관측수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콰콰쾅!

연속적인 폭음이 귀청을 울리고, 지축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 다.

“저, 적들의 포격이다!”

“엎드려! 엎드려!”

선혈선단의 대웅 포격.

포격전이라면 이골이 난 선혈선 단이 투석기의 사거리 밖으로 물러 나는 대신 대웅 포격을 선택한 것 이다.

“으아。}아-!”

옆 건물의 옥상에 있던 관측수가

아래로 몸을 던지기 무섭게, 대포 의 포탄(砲彈)이 그 건물의 옆구리 를 터트렸다.

콰르릉!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서, 무어라 다들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지만.

연속된 포격의 소음 속에서 내공 도 없는 이들의 비명 따위는 제대 로 들리지도 않았다.

“엎드려!”

포반장은 구석에 몸을 숨기고,

머리를 감싼 채.

“전원 엄폐하라!”

그 말만 목이 터져라,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전원이 북부전쟁의 참전 자들이었고, 적군의 활과 투석기 따위를 동원한 대웅 사격에는 익숙 했지만.

함대 규모의 대포를 동원한 대응 포격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 준이었다.

“..!”

이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던 포반장의 뒤통수를 후려치

는 매서운 손길이 있었다.

“정신 못 차려?!”

포반장이 급히 머리를 들자, 그 의 시야에 보인 것은 한 노인의 모 습이었다.

“노, 노군사님…?”

“그래, 나다. 이놈아!”

전쟁자문단의 노군사는 단숨에 포반장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어째서 노군사님이 이곳에-?!”

콰앙!

정신을 차린 포반장은 근처에 떨 어진 포탄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사령부에 계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위험이고, 뭐고-!”

콰아앙!

또 한 발 지근거리에 포탄이 꽂 혔지만, 노군사의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위력은 이쪽이 우위에 있다!”

허리 굽은 노인의 것이라고는 상 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쩌렁쩌렁 한 목소리였다.

“이건 누가 먼저 겁먹느냐의 문

제야! 그러니 당장, 웅사(應射)를 하란 말이다!”

적의 포격을 압도하는 듯한 노군 사의 기백에 포반장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옙! 알겠습니다!”

지축과 함께 몸이 정신없이 혼들 리고, 사방에서 먼지와 돌가루가 비산했지만 노군사를 막을 수는 없 었다.

“당장 일어나지 못해?!”

노군사는 연신 포반 인원들의 엉 덩이를 걷어찼다.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고양감이 가슴속에서부터 들끓는 것을 느끼 며, 포반장이 달려가 수하들을 일 으키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아! 당장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근처의 옥상.

남만의 와룡이라 불리는 노파가 우뚝 서 있었다.

“웅사를 시작했나?”

적들의 집중포화를 뚫고.

일번 포반에서 다시 바위를 쏘아 올리는 모습이 노파의 눈에 포착되 었다.

“전쟁자문단의 노군사가 성공했 군…!”

비록, 급하게 쏘아 올린 바위는 형편없이 빗나가 황하 저편에 떨어 졌지만.

그 의미는 충분했다.

용기가 전염되기라도 한 듯이, 다른 포반에서도 대응 포격이 시작 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계곡의 지형 환경과 투 석기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한 대웅 방식이었겠지.’

아군의 포반들은 사방이 석조 건 물에 둘러싸인 채 적의 포격을 견 디며, 동시에.

투석기는 곡사(曲射)를 통해 적 함대에 화력 투사가 가능했다.

“좋아!”

노파가 돌아서서 지팡이를 옥상 바닥에 찍었다.

“우리도 제 몫을 다해야 하지 않 겠나?!”

노파의 시선 끝에 골목골목을 가 득 메우며 달려오는 육인회 조직원 들이 보였다.

첫 발사 이후, 아군 측 포반의 위치가 노출되면 적들이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포반에 접근 하지 못하게 해라!”

그렇기에 대공자 측은, 적의 돌 격에 대한 대응이 준비되어 있었으 니.

[연노대 (連腎隊)!]

원각정 하녀단의 단장 향이 전음 으로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주요 옥상 곳곳 그리고 주요 골 목 곳곳에 거치된 연노들이 일제사 격을 개시했다.

어둠을 가르며, 연노의 철시가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암혹가 인원

을 꿰뚫었다.

“끄어 억!”

몇 겹을 껴입은 가죽 갑옷이 무 색하게, 그 몸통을 단숨에 꿰뚫어 버린 철시가 그 뒤에서 따라오던 인원들을 몇이나 꼬치처럼 꿰어 버 렸다.

* 골목을 올라오던 이들이 베 어진 짚단처럼, 우수수 넘어갔다.

“여, 연노다!”

“검가의 연노라고…?!”

쏟아지듯 들어오던 인원들이 골 목 모퉁이에서 발이 묶였다.

“미, 밀지 마!”

“X발!”

뒤에서 계속 진군하는 아군 병력 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골목으로 밀려 들어간 이들은 날아든 철시에 의해 그대로 벽에 박혔다.

“우회해! 발을 멈추지 마라!”

암혹가의 간부 하나가 자신의 철 퇴를 휘둘러서, 멈춰 섰던 아군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정면이 안 되면, 돌아서 돌격하란 말이다!”

그의 외침에 따라, 우르르 다음

골목으로, 그리고 그다음 골목으로 밀려들었지만.

“끄아악;”

“커헉…!”

그 골목에도, 그다음 골목에도 어김없이, 연노가 거치되어 철시를 토해 내고 있었다.

“다음 골목으로…!”

여러 갈래로 쪼개진 병력은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각자 다음 골목으 로 우르르 밀려들었지만.

“연노가 없는 골목을 찾아라!”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골목을 가로막고 선 창과 방 패의 벽이었다.

“자애원 중장무장단!”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대 형 방패들 사이로 단창들이 동시에 고개를 내밀었다.

“돌격!”

골목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 돌진 한 중장무장단의 첫 번째 열이 골 목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던 암흑가 의 조직원들과 그대로 충돌했다.

콰직!

중장무장단의 무게와 고지대의 이점이 막강한 돌진력을 만들어 내

고.

“그대로 밀어붙여라!”

마치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것 처럼,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바스 러지는 소음과 함께.

암혹가의 조직원들이 골목골목에 서 그대로 압착되는 광경이 펼쳐졌 다.

“밀리지 마라!”

“머릿수는 이쪽이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암혹가 간부들은 목소리를 높였 고, 그들은 끊임없이 새 병력을 골

목골목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하지만 죄악계곡의 골목 지형에 서, 대형 방패와 단창을 앞세운 자 애원의 중장무장단은 무저갱처럼 조직원들을 빨아들였다.

“제기랄!”

무장도 군기도 허술한 일반 조직 원으로는 답이 없었다.

“이런 망할 놈들!”

결국, 진격을 독려하던 암혹가 간부가 자신들의 지휘부를 향해 욕 설을 내뱉고야 말았다.

“왜 아군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아직도 무림인들을 투입하지 않는

건가?!”

물론, 그 이유는.

“당신들이 먼저 정예들을 투입하 기 전에는, 우리가 먼저 조직의 무 림인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 오!”

“우리, 단지회도 마찬가지입니 다!”

“어, 어흠. 우리 멸갑문의 무림인 들은 적의 후방을 노리기 위해서, 크게 우회하고 있소.”

“헛소리하지 마시오! 절벽으로 둘러싸인 죄악계곡에 우회로는 무 슨, 우회로란 말이오?!”

어김없이 오늘도 펼쳐지고 있는.

암흑가 두령들의 신경전과 서로 를 향한 견제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정예들을 보전하면.

후에, 암흑가의 이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으니.

“다들,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어?!”

그들이 투입 결정을 내린 것은.

“너희 전부가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것이야‘?!”

그들의 목줄을 쥔 주인이나 마찬

가지인 구양 태상부인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다음이었다.

“다, 당장 투입하겠습니다!”

“저희도…!”

그녀가 원로원에 항의차 잠시 방 문했던 사이, 난장판을 치고 있던 그들이 그때야 재빨리 명을 내리기 시작했지만.

“태상부인…!”

이미, 때가 늦었다.

“서, 선혈선단이 적 투석기의 사 거리 밖으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 보고에.

구양 태상부인의 얼굴이 악귀처 럼 일그•러졌다.

“뭐라고?!”

당황한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창 가로 다가가자, 그녀의 시녀들이 급히 황하 방향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선혈선단의 전투함들이 돛을 펼치고 바람을 받아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안 된다!”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 다.

“지금 포격을 그치면, 아군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공자 측 투석기들의 바위가 암 혹가 인원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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