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편 침묵의 공조(共助)
부두 근처에서 닻을 내린 무장함선들은 연신 포구(砲口)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범선이 분명한 그들의 함선부터, 함포까지 어딜 보아도, 중원국의 선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분명 구라파 어느 국가의 무장상선(武裝商船)이나 전투함(戰鬪艦)을 나포하여, 개조한 물건이 틀림없었다.
“맙소사….”
이공자 측 낙양 계파 장로는 자신의 눈앞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낙양 한복판에서 포격이라니…!’
자신의 주군인 이공자와 구양 태상부인이 극단적인 최후의 수단을 준비해 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후 장로에게서 넌지시 들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
"......."
낙양 계파의 장로들은 그만,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사이에 무장함대의 사령선이 부두에 정박했다.
그 뒤로, 나머지 무장 함선들이 포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끼얏호!”
“육지다!”
갑판 위에서 강남 지역의 사투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이, X신 같은 새끼들아!”
어깨에 견장을 단 이들이 헛소리를 하는 선원들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고성을 질렀다.
“개소리하지 말고, 당장 내려서 집합해라!”
장로들의 눈에 선원들이 훌쩍훌쩍 날렵하게 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무공을 익힌 선원들이오]
[…사패천이 준비해 준 병력인만큼, 범상한 이들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건만]
[상상 이상이군요]
하선(下船)하는 전투 인원 전원이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우와, X발! 여기가 바로 그 월궁이라는 낙양이란 말이지?!”
“이 한밤중에도, 도시가 이렇게 대낮처럼 밝은 것을 보니 월궁이란 말도 헛소문은 아니었어!”
규율도 없어 보이고, 기본적으로 정신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었다.
[보았소?]
낙양 계파 장로의 물음에 다른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전원이 화기(火器)로 무장하고 있소.]
그들의 무장 상태는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화기.
그들은 누구랄 것 없이 전부, 화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수석총(燧石銃)이군』
부싯돌을 이용한 격발 방식을 사용하는 최신식 총기였다.
허리춤에 권총을 찔러 넣고 쌍칼을 차고 있는 자.
길쭉한 개머리판이 달린 소총을 어깨에 메고, 왜도(倭刀)를 허리에 찬 자.
심지어는 서반아(西班牙;Espana)의 장교용 기병도(sable)를 차고, 등에는 해동국(海東國)의 활을 멘자도 있었다.
아무리 강남 사정에 밝지 않은 낙양 계파의 장로들이라지만.
여기까지 보고도, 그들의 정체를 모를 수는 없었다.
[해적(海賊).]
[그 유명한, 사패천(邪覇天)의 해적 용병(海賊傭兵)들이오.]
사패천은 기본적으로 연합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무력 단체들이 끊임없이 서로 항쟁에 항쟁을 거듭하는 복마전과 같은 집단이다.
그런 사패천에서 가장 특징적인 형태의 조직이 바로.
지금 보고 있는 해적 용병단이었다.
[평시에는 해적질을, 고용주가 나타나면 용병질을 하는 이들이지.]
“하후 장로...."
장로 중 하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하후 장로를 돌아보았다.
“이게, 정말. 괜찮은 일이오? 아무리 저들이 용병이라지만. 저들과 사패천의 관계를 모르는 이가 없지않소?”
낙양 땅에 사패천의 용병들이 발을 디뎠다.
"......."
장로들을 호위하는 진형을 갖춘 이공자 측 무사들도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자신들의 검자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상관없소.”
하후 장로의 짧은 대답에, 동료 장로가 말을 덧붙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해적 용병들 방향에서 들려오는 고성(高聲)에 그대로 묻혀 버렸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장로들의 시선이 그 내공 가득한 목소리로 향했다.
“다음 배가 교대해서 바로바로 병력을 내려야 되는데, 뭐 하러 부두에 밧줄을 묶고 있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이 무엇 하는 인물인지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선장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자랑하는 해적 용병들 사이에서도,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등에는 해남(海南)식 거대한 장도(長刀) 한 자루.
푸석푸석한 백발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눈에는 광기를 풀풀 날리는 그 모습은....
'저 특징적인 외모는 분명-.'
이공자 측 장로의 생각은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밧줄을 묶는 실수를 했던 선원이 사과를 올리던 자세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그의 얼굴 한가운데에 뻥 뚫린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흘렀다.
해적 용병 선장이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 들어 쏴 버렸던 것이었다.
"......."
"......."
어이없는 모습에 얼어붙은 낙양 계파 장로들과는 달리, 해적 용병들은 동료가 죽은 모습에 박장대소를 했다.
“멍청한 새끼! 잘 뒈졌다!”
“우리 몫이 늘었어!”
“선장! 쓸모없는 놈들 좀 더 줄여 주시오!”
허리춤에 권총 세 자루.
매캐한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수하에게 넘기고, 새 권총을 넘겨받아 허리춤에 찔러 넣은 해적 용병 선장이 시체에 침을 뱉은 후에 외쳤다.
“뭐 해?! 팔아넘길 노예들 내려!"
“노예들 내리라신다!”
해적 용병들이 후다닥 움직여, 갑판으로 노예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한 번만-!”
노예들의 발을 줄줄이 묶은 쇠사슬 소리가 요란했다.
“끌어내, X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광경에 장로 하나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다가갔다.
“멈추시오! 당장 멈춰!”
선장이 백발을 휘날리며,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요?”
장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여긴 강남이 아니오! 낙양에는 대규모 노예 시장 따윈 없단 말이오!"
"엥?"
선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해적 용병들 또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그렇게 침묵하는 사이, 노예들이 멀쩡한 비단옷을 입은 장로들을 발견하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제, 제발 저희 좀 살려 주세요!”
“저희는 노예가 아닙니다! 양민(良民)들입니다!”
삐쩍 마르고, 퀭한 눈에, 오물로 범벅이 된 것 같은 불쾌한 냄새에 낙양 계파의 장로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아, 씁…."
선장이 그 아우성들을 뒤로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왜 오는 길에 노예들을 사냥해다가 낙양에서 팔아먹자는 의견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지?”
그런 그를 향해, 낙양 계파의 장로가 말했다.
“얼른 저들을 배에 다시-.”
선장이 명을 내렸다.
“다 죽여.”
뒤에서 들려오는 포격음을 배경으로.
갑판에 총성(銃聲)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귀를 아리게 하는 총성과 흑색 화약 특유의 자욱한 연기가 갑판을 뒤덮었지만.
납치당한 양민들의 비명은 선명했고, 흩날리는 선혈은 너무도 선연했다.
“이거, 이거. 오래 기다리셨소이다.”
강물에 풍덩풍덩 시체들을 던져넣는 해적 용병들을 뒤로하고, 해적 용병 선장이 이공자 측 장로들에게 다가왔다.
“낙양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라는데, 우리가 빠질 수는 없어서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소!”
킬킬거리며, 웃는 해적 용병 선장에게 대답한 것은, 앞으로 나선 하후 장로였다.
“낙양을 불태워도 되는 것이 아니라, 죄악 계곡을 불태워도 되는 것이오.”
하후 장로가 그의 별호를 불렀다.
"선혈선단(鮮血船團)의 사해흉살(四海凶殺).”
그 이름에 장로들이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그 선혈선단이라고?]
[선혈선단이라면, 사패천 내에서도 유명한 최정예 해적 용병들이 아니오?]
[서반아의 무장 상선단도 제압한다는 그들 말이오?!]
[어쩐지, 규모와 무장이 범상찮더라니…!]
선혈선단이라 불리는 해적 용병 함대의 주인이자, 사패천에서도 손 꼽히는 고수인 사해흉살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X발. 골짜기인지 계곡인지 불태우다 보면, 다른 곳도 좀 타고 죽고 그런 거지. 뭘, 그리 깐깐하게 굴고 그러시오?”
“사패천의 련주님께서 그대에게 직접 내린 명령이 있을 터인데?”
사패천 련주를 언급하자, 얼른 사해흉살이 두 손을 들고 물러났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사패천은 이 일에 전혀 조금도 관련이 없다오!”
그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전부, 이 사해흉살님께서. 낙양을 휘젓고 유유히 빠져나간 첫 해적이 되는 업적을 세우기 위한 일이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음 범선이 포격을 멈추고 차근차근 교대해 들어와 병력을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거짓 명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소. 계약만 확실히 이행해 주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사해흉살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 대공자와 사공자인지 뭔지만 빼고, 전부 죽이고 불태워 줄 테니까.”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대의 주군인 이공자는 미래에 검가와 사패천 양쪽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니, 이럴 때 잘 보여 둬야지.”
“선장님! 함선 운영 병력을 제외한 전투 병력 집합 완료했습니다!”
어느새, 부두에는 백여 명에 가까운 해적 용병들이 하선을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뭘 기다리고 자빠졌어?! 당장 이동 시작해!”
선장의 카랑카랑한 외침에, 해적 용병들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뱃사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연초를 피우기도 하면서.
그들은 죄악계곡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하나밖에 남지 않은 퀭한 눈으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하후 장로의 어깨를 툭 하고 친 사해흉살이 인사말을 남겼다.
“삶을 포기한 면상에 침착하게 미친 눈깔이군. 난 그런 눈깔을 한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오.”
그가 뒤로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나중에 살아서 요청하면, 선원으로라도 받아 주지.”
킬킬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사해흉살을 문득 바라본 하후 장로가 전음을 던졌다.
[하나만 묻지.]
흘긋, 사해흉살이 돌아봤다.
[그대들, 선혈선단은. 대체 언제부터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이오?]
잠시, 답을 해 줘도 될지 생각하던 사해흉살이 가벼운 마음으로 답변했다.
[그대는 어차피 곧 뒈질 관상이니, 저승길 노잣돈 대신 말해 주지]
사해흉살은 주변을 슬쩍 살펴, 지근거리에 자신의 전음을 가로챌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전음을 이었다.
[그대의 이공자와 구양 태상부인은, 훨씬 전에 이미 사패천에 지원 요청을 넣었었소]
[훨씬 이전이라면?]
[그대의 주군이 낙양을 떠나, 황도로 향했을 때부터.]
그 말만 남긴 채, 사해흉살은 유유히 자리를 떠나려다가 하후 장로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검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확실하오?”
“검가가 움직일 것 같았으면, 해적 용병 따위가 부두에 발이나 디딜 수 있었을 것 같소?”
“그건 그렇지.”
사해흉살이 웃으며 떠났다.
“천하의 검가도 완전 망조(亡兆)가 들었군.”
남겨진 하후 장로가 시선을 들어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그랬나.'
이공자가 황도로 향했던 그날은.
이공자가 자신의 눈알을 뽑고, 마지막 기회를 부여한 날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나는 그들 모자(母子)로부터, 아무런 신용도 받지 못했던 것이로군.'
이공자와 구양 태상부인은 처음부터 오늘같은 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왔지만.
그 웃음소리는 황하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선혈선단의 포격음에 허무하게 묻혔다.
* * *
낙양검가.
최고운영회의.
“…정말이었군요.”
신입 여성 최고위원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우리에게 보고가 전혀 올라오고 있지 않아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낙양 땅에 포격이 벌어지고 있는데, 기관(機關)이 보고를 올리지도 않는다니?”
다른 최고위원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정말로 기관이 이렇게까지 타락했다고?”
기관은 낙양검가의 중추인, 최고 운영회의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었다.
그런 기관이 현재.
아무런 보고도, 전하고 있지 않았다.
“의장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무것도 모른채 회의에만 몰두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의 회의장은 깊숙이 숨겨져 있는것이 기본으로.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포격음 따위를 눈치챌 수가 없었다.
“기관의 상층부가 이공자 측과 손을 잡은 겁니까? 아니면 삼공자? 아니면 부패한 연씨 혈족?”
“어쩌면….”
최고위원 하나가 한숨처럼 답했다.
“그들 모두와 손을 잡은 것일지도 모르지요.”
신입 여성 최고위원이 가림막 뒤에서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기관이 고귀한 사명을 버리고, 독자적으로 권력을 지향하고 있단 말씀입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그 증거가 아니겠소?”
아무리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지만.
“기관 상층부의 동태에 의심스러운 경황이 있다는 정보가 몇 번 있었지만, 매번 내사 결과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어쩌면, 내사를 진행했던 이들까지도 문제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오.”
“무슨?!”
기관의 타락은 그들에게 있어서, 뼈가 시릴 정도의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매년 거듭되는 기록적인 흑자 속에서.
검가는.
어디까지 추락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 이럴 때가 아니잖소!”
신입 남성 최고위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기관을 때려잡고 저 해적 놈들을 갈아 버려야 하오!"
“그, 그래요! 더 늦기 전에-!”
최고운영회의에서 이토록 가까운 조직이 이 정도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것은.
그들 대다수가 처음 겪는, 초유의 사태였다.
“다들,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마시오.”
묵직한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비동(秘洞) 안을 울렸다.
“내, 미리 그대들에게 말해 주었듯이.”
그것은.
최고운영회의의 의장이자.
낙양검가 무공학관의 관장이며, 과거 검존으로 알려졌던 인물의 목소리였다.
“이것은 대공자께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요.”
그의 입에서.
연소현의 이름이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