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69화 (269/350)

제19편 뇌성(雷聲)

낙양검가.

아미파 연금(軟禁) 저택.

어두운 밤에 달도 뜨지 않았건만, 연금당한 아미파 일원들은 유등조차 켜지 않고 있었다.

연소현에 의해, '다선랑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었다.

“…이대로 사천으로 압송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물거리는 듯한 중년 비구니의 중얼거림은 의문형 이었지만.

사실, 여기 모인 모든 비구니들이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사천으로 압송되는 즉시.

형장(刑場)의 이슬이 되리라는 것을.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하급 무승들은 대공자의 편에 붙었다고 합니다!”

“천한 것들…!”

아미파 소속의 한 고위급 비구니가 분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진정으로 아미파를 걱정하는 우리같은 이들은 갇혀있고, 배반자들은 밖에서 대공자의 집을 지키는 개노릇이나 하고있다니…!”

배반자.

그것이 연소현을 돕고있는, 아미파의 무승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었다.

“그 배반자들! 나중에 척살대를 보내서라도 모두 목을 베어 버려야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외치는 염불이, 어찌 이토록 어울리지 않을 수가 있는지.

“이대로 압송당할 수는 없습니다!”

“나가서 배반자들을 처단해야지요!”

눈에 불을 켜고 하급 무승들의 척살을 외치는 이들의 행태는 집단 광기라 불러야 마땅한 모습이었다.

[접근하는 이가 있습니다…!]

야밤에 방문객이라니.

외부를 감시하던 비구니의 전음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계십니까?”

상대는 아미파의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비구니들의 탈주를 막기 위해 대문 밖을 지키던 검가의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횃불을 들어 올리며, 방에서 뛰쳐나오는 비구니들을 경계 했다.

“무례하구려!”

“어찌. 이 늦은 시각에, 허락도 없이 들이닥친단 말이오?”

비구니들이 거세게 항의하지만, 무사들은 굳게 다문 입을 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허락이라….”

무사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가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뇌옥에 모시는 것이 아니라, 연금을 하는 정도면. 우리 검가는 충분히 아미파에게 그 이름만큼의 대접을 해 준 것 같소만.”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비구니들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은.

그 말을 한 노인이 명백히 범상찮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검가의 장로 정도 되는 인물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구나]

권위를 내세우길 좋아하는 이들이니만큼, 그들은 권위에 약했다.

[어느 진영의 인물일까요?]

대공자 연소현이나 사공자 연비의 편으로 알려진 장로는 아니니.

그 간악한 대공자가 보낸 인물은 아니리라.

“다들 입을 다무신 것을 보아하니, 납득을 하신 모양이군.”

허옇고 긴 눈썹을 들썩이며, 검가의 장로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이 노부의 수준에 적합한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 어떻소?”

그 말에 비구니들의 시선이 방안으로 향했다.

"......."

아까부터 상석(上席)에 앉아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심지어, 방금 찾아온 검가의 장로란 이보다도 더 큰 존재감을 가진 이가 어두운 방 안에 있었다.

“…이공자 측에서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소?”

단박에 자신의 진영을 알아맞히는 재주에, 장로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군.'

그의 내공을 담은 시선이 어둠을 뚫고 방 안에 앉은 노파를 향했다.

아미파의 총무사태.

다선랑의 일부 인원을 암살하라 최종적으로 결정했던 인물.

'과연, 아미의 백발성성(白髮星星) 고독노귀(蠱毒老鬼)인가.'

미래를 꿰뚫고 있던, 연소현에 의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무할 정도로 패배한 노파지만.

“이공자 측의 구양 태상부인이 구석까지 몰린 것은 잘 알고 있소.”

총무사태는 사천도 아니고, 이 낙양검가 한복판에서.

그것도 연금 중에.

잘도 고급 정보를 모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구려.”

장로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을 소개 했다.

“본인은 이공자님을 모시는 검가의 손 장로라고 하외다.”

“강남 파벌의 장로이시군.”

“…그렇소.”

총무사태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손 장로 아미파에 무슨 용건이오?”

이 상황에서도 자신을 아미파라고 일컫는 총무사태였다.

노파는 눈알을 희번덕이며, 주름가득한 얼굴에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공자 측이 지금, 나와 약속할수 있는 거래는 거의 없을 터인데?”

손 장로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측이 원하는 것은 귀하와의 거래가 아니오.”

총무사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손 장로가 손을 들어 보이자, 주변의 무사들이 일제히 대문 밖으로 물러났다.

“…흐음?”

총무사태는 노회한 고수 특유의 감각으로 무사들이 단지 마당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라.

아예, 아미파 고위 인원들이 연금되고 있던 저택에서 철수를 하고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수작이오?”

위협을 당한 독사가 쉭쉭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런 수작도 아니라오. 총무사태.”

손 장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총무사태의 무시무시한 압력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아미파의 배반자들을 처단하고. 그대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대공자 연소현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은 없소?”

"......!"

아미파의 인원들이 술렁거렸다.

비록 순간이지만, 총무사태 또한 그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손 장로는 분명 보았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말했듯이 본인이 가져온 것은 거래도, 수작도 아니오.”

그리고 입으로는 뱀의 말을 속삭였다.

“본인이 귀하에게 주는 것은, 따끈따끈하게, 아직 식지도 않은 복수라오.”

총무사태의 눈에서 일순, 벼락과 같은 기운이 번뜩였다.

손 장로가 장담컨대, 그 기운의 이름은.

광기(狂氣)였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총무사태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저 멀리서, 은은하게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쪽은 벌써 시작했군.”

그 소리를 들은 손 장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총무사태를 바라보았다.

“더 늦으면, 그대의 복수는 다른 이들의 차지가 될 것 같구려.”

* * *

조금 전.

낙양 어느 부두.

강남에서부터 낙양을 잇는 동서(東西)대운하.

그 대운하의 대형 부두 중 하나에 상당수의 인원들이 모여있었다.

“일 처리가 늦군.”

이공자 측의 책사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차자, 해당 부두를 책임지는 관료가 벌컥 성질을 냈다.

“이게, 쉬운 일인 줄 아시오?!”

다른 책사가 피식 웃었다.

“그저, 알아서 오는 배를 통과만 시켜 주면 되는 일인데. 너무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오?”

“뭣이라?!”

부두 측 관료들이 얼굴을 붉혔다.

“지금 황제 폐하의 관료에게 무슨 말버릇인가?!”

“헛소리 말고, 받아먹은 만큼 일이나 제대로 하는 것이 어떻소?”

그 소란에서 조금 떨어진 부두의 사무실에서는 고위층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소.”

낙양 최고위 관료의 말에, 이공자 측 장로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으셨소. 그만큼 추가로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릴 터이니-.”

“그런 말이 아니오!”

최고위 관료가 이를 부득 갈았다.

“원래라면, 배를 통과시키는 정도라면 그저 군(軍)의 상층부에 허가만 받으면 될 일이었단 말이오.”

“그건 알고 있소만?”

동서대운하를 통해 낙양에 진입하는 모든 선박은, 군의 엄중한 통제 아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걸 제대로 하라고, 우리 측이 그대가 낙양의 차기 지사가 될 수 있도록 밀어 주겠다 약속을 한 것이 아니오?”

“그건 그렇지만…!”

다른 이공자 측 장로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낙양의 최고위 관료가 몸을 움찔하면서도 강하게 말했다.

“그 낙양 방어군의 최고 지휘부가 문제이지 않소?!”

빼액 하는 최고위 관료의 목소리에 이공자 측 장로들이 인상을 썼다.

“낙양 방어군의 최고 지휘부라면, 낙양의 수호 가문들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 물음에, 최고위 관료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대공자의 지원을 받은 군문의 서씨 가문이 지금 수호가문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소식은 못 들었소?!”

죄악계곡의 소탕 이후.

연소현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서씨 가문은 이 야밤까지도 화려하게 날뛰고 있었다.

“그건 들었지만, 무슨 상관이오?"

“바로 조금 전에! 서씨 가문이 비리의 증거를 낙양 중앙 법원에 제출하고, 수호가문들의 임무와 권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요청을 냈단말이오!”

"......!"

이공자 측 장로들이 당황했다.

“방금? 하지만 이 시각에 재판부가 그렇게 쉽게-.”

최고위 관료가 장로의 말을 끊었다.

“그 재판을 맡은 것이, 청씨 가문의 판관이란 말이오! 대공자 연소현의 동맹인 그 청씨 가문!”

“그런…?!”

이공자 측 장로들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공자 그놈이 벌써, 여기까지 손을 써 두고 있었던 말인가?!]

[설마, 우리 계획이 새어 나간 것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이공자 측 장로들이 충분히 당황하는 것을 찬찬히 확인한, 최고위 관료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손을 쓴 것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그대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배는 도착도 하지 못했을 것이오. 알겠소?”

그 말에 이공자 측 장로들이 안도했다.

“…그 말은 최종 검문소를 통과하긴 했단 말이군.”

그들은 안도하는 와중에도 뒷덜미가 섬찟했다.

[거사(巨事)가 당장, 오늘 밤이라 들었을 때는. 구양 태상부인이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했건만]

[만약, 내일이었다면.]

[...실패했겠구려]

“그럼, 성공했지.”

최고위 관료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 내가 누군데, 이 정도 일을 해내지 못하겠소이까?”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최대한 생색내는 데 성공한 그가 코를 세웠다.

“그러니, 이공자 측도. 이렇게 내게 장로들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이제 이공자님과 나와의 독대를-.”

“알았으니, 그쯤 해 두시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가 그렇게 말하자, 최고위 관료가 울컥했다.

“아니, 내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 뿐인데. 이렇게 나오면….”

그쯤 하라고 말했던 인물과 눈이 마주친 최고위 관료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렇게 나오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대의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로 최고위 관료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나오면?”

이공자에게 눈이 뽑혔던, 하후 장로가 스산한 말투로 다그치듯이 되물었다.

“이렇게 나오면 어쩌겠다는 건가?”

말투만 스산한 것이 아니었다.

이공자에 의해서,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하후 장로는.

이미, 한참 전에 자신의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고.

"......."

"......."

동료 장로들마저 그의 시선을 피할 정도로, 그는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당연한 일이었지만.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최고위 관료쪽이었다.

“그저, 어려움을 알아주길 원했을 뿐이라오.”

고양이 앞의 쥐 꼴이었던 최고위 관료를 구한것은, 이공자 측 무사의 보고였다.

“배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신호 확인 결과 우리 측 선박입니다.”

최고위 관료가 살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자! 이러지 말고, 다들 배가 들어오는 것이나 확인합시다!”

“그러지요.”

장로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부, 분명 선박 다섯 척이라고 하셨었지요?”

최고위 관료가 얼른 창가로 다가가 커다란 창을 열었다.

“이 사무실의 장점은, 이 창을 통해서 부두에 들어오는 선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본 그가 말을 더듬었다.

“볼 수 있다는...."

선박들이 어둠 속에서 물길을 가르며 접근하는 모습을 확인한 그가 입을 쩍 하니 벌렸다.

“무, 무슨?!”

창가에서 돌아선 그가 이공자 측 인원들을 향해 발작처럼 외쳤다.

“내, 내게는 분명, 낙양에 인원들이 밀입하기 위한 상선이라고 하지 않았었소?!”

장로 하나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문제가 있소?”

“저, 저건…!”

최고위 관료가 손을 들어서, 부두로 들어오는 선박들을 가리켰다.

“저건, 무장 함선들이잖아!”

그의 말처럼.

부두에 들어오는 거대한 범선들의 옆구리에는 십여 개의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서 머리를 비쭉 내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하, 함포(艦砲)까지 실린 무장 함선이라니?!”

새하얗게 질린 최고위 관료가 부들거리며 외쳤다.

“다, 당신들 대체 낙양에서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저벅저벅 다가온 하후 장로가 그대로 그를 창밖으로 걷어차 버렸기 때문이었다.

"으아악!"

비명은 길지 않았고, 곧이어 퍽하고 머리통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전부 죽여!"

그리고 동시에 부두의 관료들과 입씨름을 하던 이공자 측 인원들이 검을 뽑아 그들을 모두 죽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부두 바닥에 피비린내가 더해졌다.

“…하후 장로.”

동료 장로들의 낯빛이 어두웠다.

“이렇게 관료들을 도살하면, 뒷수습은 어찌하려고-.”

“뒷수습?”

하후 장로가 피식하고 웃었다.

“내겐 이미 뒤는 없소.”

그가 창밖으로 수신호를 보내자, 수하 하나가 신호 화살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콰콰콰콰쾅!

무장 함선의 함포들이 일제히 뇌성(雷聲)을 울리며 불을 뿜었다.

목표는.

죄악의 골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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