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68화 (268/350)

제18편 공공(公共)의 적

황도, 십육가문 회의실.

“그래서, 이공자.”

십육가문의 현 가주 중 하나가 이공자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 시각에, 우리를 이렇게 다시 불러 모은 이유가 무엇이오?”

별다른 말들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른 가주들의 시선도 날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

대응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연소현이 이미 장강 수로 확장 정비 사업의 준비를 끝냈다는 소식은.

그들을 예민하고 초조하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대응을 위해서입니다.”

그 특유의 쉬어 터진 목소리에.

“대응?”

가주 중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이미 끝난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지 않소? 사패천은 그대의 어미로 얻을 수 있는 낙양의 영향력을 절대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할것이오.”

이공자가 꺼낸 말에 잠자코있던 가주들까지도, 노성을 토했다.

“그러니, 결국. 사패천은 장강 하류의 사업을 허가해 줄 수밖에 없단 말이 되는 것이고.”

“이미 외통수라고!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대응을-!”

“아직.”

이공자는 가주들의 말을 끊으며, 갑주에 싸인 손을 들어 보였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자신감에 찬 그 태도에 가주들이 성질을 죽이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듣고 있소.”

“어디, 계속해 보시오.”

이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회의실 안을 걷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이 되는 것은 누구입니까?”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거기서 핵심이 되는 인물은 단 하나였다.

“검가의 대공자.”

가주 하나가 그리 대답하자, 다른 가주가 피식 웃었다.

“뭐, 그래서. 이공자, 그대가 검가의 대공자를 제거하기라도 할 것이오?”

그것은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실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검가의 사정은 우리도 잘 알고있소. 이공자, 그대가 대공자를 제거하는 순간.”

“그대 또한 후계자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고.”

“뒷짐만 지고 있던, 삼공자가 소가주의 지위에 오르게 되겠지.”

“아니면, 이공자가 대공자를 살해했다는 사건을 발판 삼아서, 검가의 장로원이 '장로원 내각 제도'를 도입하겠지.”

중원국 최고의 권력자들답게.

낙양검가의 사정에 대해서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모두 지당하신 말씀들입니다. 하지만….”

이공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만약, '그놈'의 모든 기반이 파괴되면 어떨까요.”

오싹한 살기가 실내를 걷는 이공자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놈의 모든 것이 죽고, 불타. 자기 홀로 남게 되는 상상을 해 보란 말씀입니다.”

이공자의 황금 가면 아래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놈을 제외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나면, 놈은 예전처럼. 그저 머리만 굴리고 혓바닥만 놀리는 신세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

가주 중 하나가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다면야,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결과가 되겠지.”

다른 가주들 몇몇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의 기반은 낙양 죄악의 골짜기에 집중되어 있지 않소?”

“황제가 직접 선포한 성지를 치는 것은, 그대의 극단적인 수단이 성공하더라도. 절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오.”

굳이, 이공자가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잠깐.”

가주 하나가 자신의 몸을 원탁 앞으로 당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성지 선포는 아직이지 않소?"

그들은 이 나라, 중원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이들이며.

그만큼, 황도의 정치판에 있어서 비상한 머리를 가진 이들이기도 했으니까.

“확실히 그렇지.”

황제는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모든 대신들을 모아, 선녀교단의 성지를 선포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일 아침에 있을 일이지, 이미 벌어진 일은 아니니까.”

가주들이 눈빛을 빛냈다.

그들이 원탁 앞에 몸을 당겨 앉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했다.

“'황도에 갑자기 열병이 돌고 있다', 정도면 되지 않겠소?”

“그렇지. 열병이 유행하고, 열병에 몸져누운 대신들이 속출하니. 어찌 그들이 입궐할 수 있겠소?”

한번 아귀가 맞아 들어가자, 계획이 무서운 속도로 성립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들이 내일 입궐할수 없다면?”

“황제의 성지 선포도, 연기가될 수밖에 없지.”

“강상, 그 미친 늙은이의 재상 임명식도 마찬가지고.”

그들의 대화에.

황도에서 없던 열병이 탄생하고.

주요 대신들이 앓아눕는 시늉을 하게 될 것이다.

열병이 유행한다는 이유로, 누구 하나 궁에 접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황도의 정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십육가문의 힘이었다.

“사흘.”

의견 교환과 결정을 마친 가주들 이 이공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 방식으로, 그대에게 사흘을 벌어 줄 수 있소.”

무한정 시간을 벌 수는 없었다.

황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고, 사흘이 넘어가면, 무슨 방식으로든 대신들을 모을 것이다.

“그 기간 내에 그대가 성공해 내면.”

이공자가 나직하게 웃었다.

“그놈이 진행했던, 그 모든일이 없었던것이 되겠지요.”

연소현이라는 구심점이 힘을 잃으면.

노마들은 고삐가 풀려 제각기 날뛰기 시작할 것이고, 강상이 다시 재상이 될 일도 없을 것이며.

장강 수로 확장 정비 사업이 진행될 일도 없다.

황제는 다시, 옥새를 찍는 꼭두각시로 돌아가야 했다.

“모두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로군.”

회의장이 한바탕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공자.”

가주 하나가 웃음기를 지우고, 이공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직접 병력을 동원하면 어찌 되었든 이공자, 그대가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오.”

이공자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건 나의 문제이니, 가주들께서 걱정해 주실 필요까진 없으십니다.”

질문했던 가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그렇지만.”

“그럼, 그런 것으로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회의실의 문을 열고 나서는 이공자의 뒤로 가주 하나가 외쳤다.

“기억하시오, 이공자! 사흘이오!”

“사흘…?”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멈췄던 이공자가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단 하루면 충분합니다.”

떠나는 이공자의 뒷모습을보던 가주들이 웅성거렸다.

“하루라고?”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라도 전부 해 두었단 말인가?”

“최후의 수단 정도는 있었겠지.”

“…그렇다 해도, 극단적이군.”

“사파의 핏줄이 어디 가겠소?”

문을 열고 나온 이공자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시하고, 어둠이 깊이 내려앉은 창밖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낙양이 있는 방향이었다.

이미, 자신의 어미는.

그 원한에 미친 복수자는 움직이고 있으리라.

그녀는 포기를 모르는 인물이었으니까.

* * *

낙양검가, 모처(某處).

이공자의 예상처럼.

구양 태상부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죄를 면하게 해 주는 대신에, 사패천 련주인 아버지에게서 장강 하류 사업을 뜯어내겠다고?’

그렇게 되었다가는.

사패천에서 그녀의 이름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녀가 이를 부득 갈았다.

'최고운영회의 놈들. 나에게선 단 하나도 이득을 챙길 수 없을 것이야!’

검가의 가주에게 패전의 대가로 팔려오듯 시집을 왔던 그날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검가전장에서 내가 챙긴 돈은, 원래 내 것이어야했던 돈이란 말이다!’

그녀는 억울했다.

그리고 원통했다.

언제나 생각하는 바였지만.

연소현이 자신의 아들보다 조금이라도 늦게 태어나기만 했더라도.

약소유.

그 망할 것이, 몇 년만 더 일찍 죽어 없어졌더라면.

낙양검가의 모든 것이 지금 자신의 것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아둔합니다. 어찌, 진짜 원흉을 찾을 생각 전에 대뜸 공격부터 시작한단 말입니까?”

삼공자 측의 제갈 대군사가 그렇게 혀를 차며 말하자, 부패한 연씨 혈족의 대표로 자리에 나온 이가 탁자를 내리쳤다.

“우리가 아둔하다고? 그대들. 삼공자 측이 우리 연씨 혈족의 사정을 무시하고, 낙양을 봉쇄하려고 했던 것이 먼저가 아닌가?”

"무시한 것이 아니라, 몰랐지 않습니까?!”

“몰랐다고? 헛소리하고 있군!”

“그쪽이야말로 허튼소리 하지 마시오!”

삼공자 측과 부패한 연씨 혈족은 지금 이 한밤중에도 맹렬히 정쟁(政爭)을 이어 나가고 있었고.

창칼이 오가거나, 피만 흐르지 않을 뿐.

그것은 이미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분! 모두 신분에 맞는 품위와 품격을 지키시지요.”

구양 태상부인이 그렇게 말하자, 삼공자와 부패한 연씨 혈족.

양측의 인물들이 잠시 입을 다물긴 했다.

“으음…!"

“흠…!”

하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시작할 듯, 그들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쯧쯧.

구양 태상부인이 속으로 혀를 찼다.

삼공자 측과 부패한 연씨 혈족.

양쪽 다 이공자 측에 있어서,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꼴도 보기 싫은 자들이었고.

'오히려, 내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놈들이 싸우는 것을 박수라도 치면서 환영했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두 분 모두.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구양 태상부인이 양측에 손을 들어 보였다.

“지금. 우리의 공공의 적은 연소현, 그놈입니다.”

그녀의 말에 금방이라도 다시 터질 것 같던 두 사람이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구양 태상부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연씨 혈족 측도 물증이 없을 뿐. 이미 심증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삼공자 측과 마찰을 유도한 것은 연소현 그놈이 틀림없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부패한 연씨 혈족 측 대표가 이를 갈았다.

“…우리도 심증이야, 차고 넘치지만. 그놈이 우리 재산을 강도질 했다는 물증이 없지 않소? 이쪽도 체면이 달렸단 말이오.”

구양 태상부인은 삼공자 측, 제갈 대군사에게도 말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웃는 것은. 연소현 그놈 하나가 될 것입니다. 삼공자가 본가에 복귀할 날이 얼마 남지않은 시점에서. 좌우 대군사께선 그런 대실패를 첫 보고로 올리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녀의 말에, 제갈 대군사가 못 마땅하지만 어쩔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백우선을 흔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전부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까.”

부패한 연씨 혈족의 대표 또한, 입맛을 다셨다.

“연소현. 그놈은 지금 명백히 선을 넘고 있소. 주제도 모르고 검가를 제 것처럼 휘젓고 있으니, 원.”

“심지어 이제는 본가를 넘어. 황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있습니다.”

구양 태상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녀는 자신의 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두면. 그 오만방자한 놈이 더욱 기고만장하게 굴것은 뻔한 이치.”

그녀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오랜 세월 대립의 각을 세웠던 이들이 순순히 손을 잡을리가 없었다.

“기회가 지금뿐이라고 하셨습니까?”

제갈 대군사가 슬쩍 그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제가 볼 때, 기회가 지금뿐인 것은 가장 초조한 구양 태상부인 쪽이겠지요.”

부패한 연씨 혈족의 대표도 그녀를 보며 조소를 보냈다.

“대공자를 지금이라도 박살 내야, 자신을 향하고 있는 중앙감찰각의 수사를 무마시킬 것 아니오?”

중앙감찰각의 움직임에 가장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연소현이었다.

"대공자가 힘을 잃고, 중앙감찰각이 수사에서 떨어져 나가면. 수사 권한이 충분하지 않은 내원 또한 물러설 수밖에 없겠지.”

그들의 날이 선 말에도, 구양 태상부인은 굳이 반박하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신 말씀들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녀가 시선을 들어,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두 분은. 지금보다 대공자가 세력을 더 키웠을 때. 상대하실 자신이 있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녀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 적수가 없어 보였던, 천하의 내원총관마저. 연속으로 두 번이나 물을 먹은 참입니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 켰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여기서 제가 무너지면, 다음 순서는 여기 두 세력이겠지요.”

단박에 두 사람이 침묵했다.

"......."

"......."

그런 그들의 반응에 구양 태상부인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연소현. 이것은 네놈이 스스로 판 무덤이다.'

그녀의 말대로.

대공자 연소현은 그동안 너무 우월한 능력을 과시해 왔다.

그리고 그렇기에.

대공자의 적들에게 이제 그 능력은 실제보다, 더욱 크고 실감나는 위협이 되고 있었다.

“…구양 태상부인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협조를 원하시는 겁니까?”

먼저 입을 연 쪽은 삼공자 측의 제갈 대군사였고, 이어서 부패한 연씨 혈족의 대표도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것을 말해 주시오.”

드디어.

활짝 표정이 핀 구양 태상부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를 본 두 사람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삼공자 측은 절대 선을 넘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연씨 혈족 또한 마찬가지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구양 태상부인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부담과 위험은 우리가 떠안을 것이니.”

'연소현.'

그 미소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넌 너무 설쳤어.’

“그렇다면야, 뭐. 이견은 없습니다.”

“나도 이견 없소.”

그 모습에 그녀의 앞에 앉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다고? 원하는 결과가 나와도 손해가 막심할 터인데?’

'제정신이 아니군. 모자(母子)가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 * *

죄악의 골짜기.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하고 있던 연소현이 눈을 떴다.

“무슨 일이냐?”

“대공자님께서 명하신 대로.”

연소현의 새 비서, 강호가 연소현에게 고했다.

“골짜기에 주둔 중인 병력에게 야식 지급을 완료했습니다. 고기도 듬뿍 넣었으니, 힘이 펄펄 날 것입니다.”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그런데, 대공자님.”

강호가 조심스럽게 연소현에게 물었다.

“대공자님이 병력에 지시하신 사항들은 하나같이….”

말을 우물거리는 강호를 향해 연소현이 물었다.

“하나같이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것 같으냐?”

“예, 그렇습니다.”

강호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대공자님께는. 적들이 그 갖은 부담과 높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벌이리라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까?”

강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연소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강호뿐만이 아니었다.

대공자 측 최상층부에서는 오직, 사공자 정도만이.

“대붕의 뜻을 우리가 알겠느냐?”

라고, 강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을 뿐.

지금 이 상황은 누구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결국에 막대한 반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겐 확신이 있다.”

연소현이 다시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연소현의 행동은 축객령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강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물러났다.

“…병력의 지휘관들과 군사들에게 계속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을 지시해 놓겠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연소현이 짧게 답했다.

“그래.”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연소현의 머릿속에서, 그의 기억 속 저편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형님! 큰형님! 이 소제가 아둔하여, 놈들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기억 속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사공자 연비였다.

“놈들은 제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무공 하나를 모르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도살했습니다!”

회귀 전.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던.

작은 규모의 사업을 꾸리려 했던, 사공자는 이공자에게 상상도 할 수 없던 공격을 당했었다.

“큰형님! 소제를 위해서 얼굴이라도 한 번만 비쳐주십시오! 큰형님!”

아직도.

원각정의 담 너머로 들려오던, 연비의 외침이.

그 비통한 목소리가.

“큰형님!”

너무도 생생했다.

눈을 감은 연소현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와라."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닮았다.

“내, 너희를 기다리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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