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66화 (266/350)

제16편 벼랑의 끝

황도.

어느 저택의 회의실.

달그락.

"......!"

한없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유등에 불을 붙이던 하녀 하나가 자신이 낸 작은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적잖은 경력을 가진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긴장은, 지극히 타당한 상황이었으니.

"......."

"......."

회의장에 둘러앉은 이들의 면면을 보자면, 긴장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도십육가문의 수장인 현 가주들부터, 기괴한 횡금 가면을 쓴 낙양검가의 이공자까지.

손짓 한 번이면.

그녀의 목숨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날아가리라.

"......."

"......."

그녀에게는 다행히도.

그들 중.

누구도 하녀가 실수로 낸 소음 따위를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이는 없었다.

“…처음엔 노마들에게 모든 시선을 붙잡아 두더니. 강상, 그 미친 늙은이가 궁으로 기어들고.”

가주 중 하나가, 유등을 밝힌 하녀들이 전부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강상에게 이목이 쏠리니, 이번엔 노마들이 궁으로 기어들어 갔다고…?”

담뱃대와 궐련 따위에서 피어오른 자욱한 연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휘황찬란한 회의장의 유등이 유독 어둡게 느껴졌다.

“그리고 고작해 봐야, 노마들이 황제를 끼고 권력이나 좀 만져 보려는 것인가 싶었지. 그랬더니….”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장강 수로 확장 정비 사업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식이오?”

“이미 준비가 거의 끝났다는 이야기도 있더군. 대체 이게 어떻게된 일인지….”

“황제가 선대 황제의 숙원 사업이었던 장강 수로 확장을 성공하게 된다면.”

“황실은 그만큼 위신을 얻게 되고.”

“반대로, 우리는 그만큼 위신을 잃게 되겠지.”

권력은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다수가 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존재한다.

그 사실을 여기 모인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다시 한번.

회의장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제길.”

수하로부터 쪽지를 건네받은 가주 하나가, 내용을 읽더니 씹어뱉는 어투로 말했다.

“…황제가 손님들이 장기간 묵을 방을 준비하라고 명을 내렸다고 하오.”

올 것이 온 느낌이라.

다른 가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궁에 다시 들어가니. 아예, 나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나갔다가는 우리가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리라, 확신하는 것이 아니겠소.”

또 다른 가주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답답해 죽겠군. 그 성지인지 뭔지 하는 이야기의 자세한 정보는 아직이오?”

“…아직이오.”

황궁은 자신들의 앞마당.

황궁의 사람은 자신들의 하수인.

평소에 그렇게 그들이 자신했던 만큼.

밤이 깊어 갈수록.

정보는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그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줄 소식은 없었고.

정보라기보다는 소문에 가까운 소식뿐이었다.

“…이건, 상대의 지략 이전의 문제 같군.”

“그런 것 같소.”

다른 가주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되짚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교묘하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이가 우리 중에 있었어.”

그들의 시선이 마치 약속이나 한것처럼.

하나둘씩 한 사람에게 향했다.

“무, 무슨 소리요? 교묘하게 잘못된 정보라니!”

쏘아지는 듯한 시선들을 한 몸에 받은 이가 발작적으로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말은 마치, 이 내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소?!”

그를 쏘아보던 가주 중 하나가 탁 하고, 자신의 담뱃대를 내리쳤다.

“양씨 가주.”

흩날리는 담뱃재 사이로, 억울한 표정의 양씨 가주를 쏘아보는 이의 눈길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그대의 아버지, 양오단 전대가 주가 전해 주었다는 내부 정보가 전부 틀렸지않소?”

“노마들 사이에서, 그들과 한배를 탄 척하며. 정보를 빼내고 있다더니.”

다른 가주도 눈을 희번덕거리며 양씨 가주를 압박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지 않은가?”

“지금 보니, 아주 의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소만.”

이를 부득 가는 가주도 있었다.

“내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대의 아버지. 양씨 전대 가주는 아예 입궐을 하지도 않았다고 하더군.”

“입궐한 인원은 열네 명으로. 공씨 가문의 노마 공량과.”

그가 손가락을 들어 양씨 가문의 현 가주를 가리켰다.

“그대의 아비인, 양씨 가문의 전대 가주 양오단이 없었어.”

“그리고 그대가 아비에게서 받았다는 정보는 모두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방향을 보게 만들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뭔가, 달랐을까.

아니.

그렇다 해도, 현재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할 일은 없었을것이다.

“이쯤에서 실토하는 것이 어떻소?”

“대체 뭘 실토하라는 말이오?!”

말들이 터져 나올수록, 양씨 가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이런 망할-!’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양오단을 떠올렸다.

'함정이었나?! 그 늙은이가 나를 속인 것인가?!’

그의 품속에는 지금도.

자신의 아버지, 양오단의 이름으로 도착했던 서신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도 양오단의 진의에 대해 의심을 했다.

자신이 받았던 서신이 양오단이 보낸 것이 확실한지도, 몇 번이나 검증했다.

한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심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양오단이 아니면 모를 '그 비밀'이 적혀 있는지라, 서신을 쓴 것은 양오단 본인이 분명했다.

“자 자, 진정들 하고 생각해 보시오!”

그가 좌중을 향해 항변했다.

“이렇게 결과가 나오면, 전부 현장에서 들통날 일인데. 어째서 내가 그대들을 속일 이유가 있단 말이오?!”

그는 필사적이었다.

“정보라는 것은 언제나 정확할수가 없는 법이고, 그것이 내부에서 나온 정보라 하여도. 마찬가지가 아니오?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소?!”

그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애초에, 모두가 내가 준 정보만 가지고 움직였던 것도 아니지 않소?! 전부 각자의 정보망이 있잖소!”

결사적인 설득의 그 태도보다는 그 논리와 내용에.

가주들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

그의 말처럼.

적어도, 현장에서 결국 들통날 일이라면.

양씨 가문의 현 가주는 지금쯤, 무슨 핑계를 대고서라도, 현장을 빠져나갔어야 했다.

“…확실히, 그동안 정보가 너무 잘 맞았기에. 우리조차 크게 의심을 하지 않긴 했소.”

“…그런 부분이 교묘하다는 것이아닌가?”

“하지만. 우리 또한, 각자 그 정보를 검증하지 않았었소?”

“…그건 그렇지.”

다른 가주가 입맛을 다셨다.

“일단, 양씨 가주에 대한 추궁은 좀 더 진상이 밝혀진 다음에 하는것이 낫겠소.”

그들의 대화 내용에, 양씨 가문 가주의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칼날이 목젖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 기분.

'다, 다행이군!’

지금처럼, 패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지목당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망할 늙은이가 내 뒤통수를 치다니…!’

양씨 가문의 가주는 속으로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하늘에 맹세컨대, 반드시 이 늙은이를 찾아서. 내 손으로 직접 주리를 틀고 말리라!’

하지만.

그는 감히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찾는 양오단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양오단은 이미 북망산에서 암천 존자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 * *

그 시각, 황궁.

“참으로 신통한 일이로다.”

황제가 마련해 준 황궁 내 거처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공손나강이 헛웃음을 흘렸다.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풀렸소.”

“현 가주들이 거짓 정보에 휘둘리는 통에, 방해가 들어올 틈도 없었지.”

맞장구치는 것은 공손나강과 마찬가지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노마들이었다.

그들은 취침하기 전 숙소 하나에 모여,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양씨 가주, 그놈은. 아직도 제 아비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상상도하지 못하는 것 같소이다.”

“어찌, 그가 알겠소?”

노마 하나가 피식 웃었다.

“그 서신들이 대공자의 손에 쓰였다는 것을 아는 우리도, 그 사실을 몰랐다면 속았을 터인데.”

새삼스럽게 연소현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는 이도 있었다.

“터무니가 없을 정도로 감쪽같더구려.”

감쪽같은 연소현의 위조 서신.

이는 북망산에서 양오단이 암천존자에 의해 사망한 뒤에 준비되었던 것이었다.

“죽일 때는 별생각 없이 죽이는것 같더라니.”

그날 보았던 암천존자의 모습을 떠올린, 노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공자에겐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것은 노마들에 의해, 양오단의 죽음이 감쪽같이 숨겨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공손나강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대공자가 그날 말했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이오.”

당시, 북망산에서.

마음속으로 이미 딴마음을 품고 있던 양오단을 처단했던 연소현은 이렇게 말했었다.

“제가 천기를 읽은 바에 따르면, 곧 양씨 가문과 민씨 가문이 기습적으로 혼약식을 알리고, 동맹을 선포할겁니다.”

만일, 그 기습적인 동맹 예정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 이야기가 서신에 없었다면, 현 가주는 그 서신을 쓴이가 양오단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그랬다.

양씨 가문의 현 가주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양오단밖에 모르는 그 사실이 서신에 담겨 있자, 서신을 쓴 이가 양오단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역으로 생각해 보란 말이오.”

공손나강의 말에 다른 노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역으로?"

공손나강이 자세를 낮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야기가 담긴 서신을 양씨 가문의 현 가주가 양오단이 쓴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면,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말이겠지.”

부분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이들에게는 더 친절한 설명은 필요없었다.

“둘밖에 모르는 계획을 알고 있는 대공자는. 정말로 천기를 읽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노마들 중 하나가 그렇게 외침과동시에, 좌중에서 탄식에 가까운 감탄이 터져나왔다.

“정말로, 대공자가 천기를…?”

“천기를 읽은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소?”

“민씨 쪽에서 대공자에게 이야기를 흘렸을 리도 만무하니….”

연소현이 회귀를 통해 알고있는 미래사(未來事)와 가진바 기상천외한 능력이 합쳐지자.

믿으라 해도 믿을수 없는 일을, 믿어 버리게되는 노마들이었다.

“…참, 이렇게 다시 이야기하니. 새삼스럽지만. 대공자는 대단한 인물이구려.”

“그런 인물이 한편이라는 사실이 든든하지 않소?”

“홍복(洪福)이구먼, 홍복이야.”

“말 그대로, 대공자는 큰 복이오. 우리에게도, 황제 폐하께도.”

"대공자가 없었으면, 대체 어찌했을지….”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연소현이 노마들의 목에 건 목줄은 더욱더 단단히, 그들을 통제해 가고있었다.

* * *

“이번 일은, 이제 우리 손을 떠난 것 같군.”

밤늦게까지 한참 동안 회의를 이어 나가던 십육가문의 현 가주들이 두 손을 들었다.

“어차피, 황제가 이번 일에 성공한다 해도. 첫걸음에 불과하지 않소?”

“우리에게 타격은 좀 있겠지만.”

슬슬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을 봐야 할 시간이었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많지.”

“장강 수로 확장 정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니지 않소?”

“강남의 사패천이 순순하게 허용을 해 줄 리도 없으니 말이오.”

“마침, 여기 사패천 련주의 손주분께서도 계시지.”

그들이 이공자를 보며 웃었고, 이공자또한 고개를 끄덕여서 그들에게 안심하라는 뜻을 전했다.

기회는 강자의 것이고.

그들은 강자다.

아무리 황제가 전대 황제의 숙원 사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강상이 돌아왔고, 노마들이 돌아 왔다고 해서.

그 역학 관계가 변하지는 않는다.

기회는 여전히.

자신들의 편이었다.

그때, 이공자의 수하가 급히 들어왔다.

“주군. 급보입니다.”

그렇게 이공자의 귓가에 속삭인 그가 쪽지를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일단. 올 가을에 있을 용봉지회건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것이 어떠하오?”

“오오, 그렇군. 이렇게 우리가 모이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니.”

“오히려 잘되었군.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모일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니오?”

“이참에 결정들을 내려놓으면 좋겠-.”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대화가 끊어졌다.

이공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가 뒤로 나뒹굴고 있었다.

“이공자?”

“무슨 일이오?”

이공자가 손에 든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가 급보. 내원과 중앙감찰각, 대선상회 급습 성공]

핵심은 다음 내용이었다.

[최고운영회의가 구양 태상부인에게 사법 거래 관련 논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임]

구양 태상부인에게서 최고운영회의가 사법 거래를 통해 얻을 이익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건 틀림없이 사패천과의 거래다..!’

낙양검가에 대한 영향력을 놓칠수 없는 사패천으로 하여금, 황제의 장강 수로 확장 정비 사업에 협조하게 만드는 거래.

연소현의 노림수가.

이공자 측에게 정확히 틀어박힌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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