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65화 (265/350)

제15편 징군(將軍; Checkmate)

“확실히….”

입을 연 것은 강호였다.

“구양 태상부인은, 태상가주께서 쓰러지신 이후.”

이공자의 어머니인, 구양 태상부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낙양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그녀의 이름을 반길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제가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매년 본가에서 엄청난 액수를 빼돌린것으로 보입니다.”

연소현은 검가전장의 전장장에게서 협조를 얻어 냈었고.

연씨 혈족의 비리를 찾아냈으며.

그리고 동시에, 구양 태상부인에의해 움직인 거대한 자금의 흐름또한 포착했다.

강호의 머릿속에는 그 모든 자료가 있었다.

가장 작은 숫자 하나까지.

“그리고 대선상회를 통해 그 자금을 세탁해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공자 측은 낙양의 암흑가를 지배하고.

덕분에.

대선상회는 합법적으로는 예술품 경매부터, 불법 도박장을 거쳐 암시장에 이르기까지.

자금 세탁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부족하지만.”

강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돈이 검가전장에서 빠져나갔다는것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대공자님의 전략. 즉, 사패천에게 구양 태상부인의 구명을놓고 거래를 하게 하려면.”

반드시 성립되어야 할 전제 조건이 있었다.

“구양 태상부인이 유죄라는 증거가 확실해야 하지요.”

강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이번, 내원과 중앙감찰각이 대선상회를 급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실히, 그렇죠.”

현월각주 세아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부분은 강 공자께서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어째서죠?”

현월각주 세아의 얼굴에 미소가 한결 더 진해졌다.

“구양 태상부인이 대선상회에 발생한 문제, 그러니까 시작된 수사에 대응하는, 그 대응법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연소현을 제외한 누구보다도, 대선상회에 대해 해박한 것이 그녀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선상회와 사투와같은 첩보전을 벌이던것이 그녀였으니까.

“대응법 말씀입니까…?”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사공자였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이야기지.”

사공자는 여전히, 연소현의 거대한 그림에 흥분한지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였지만.

이공자 측에 대해서 말하는 그의 표정만은 냉랭했다.

“내원과 중앙감찰각. 검가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조직인데. 그걸 무력으로 저항하다니.”

사공자 연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은 벽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격이 아닌가?”

“아…!”

강호가 자신의 손바닥을 쳤다.

“그런 대응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대선상회에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군요!”

“그렇겠지. 아니었다면….”

사공자가 부득 하고 이를 갈았다.

“'그 여자'라면 태연하게 수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이미 손을 털었을 테니까.”

'그 여자'라고 말할 때, 사공자의 눈이 진한 녹색으로 번뜩였고.

주변에는 물씬, 알싸한 냄새를 풍겼다.

“결국, 큰형님의 큰 그림대로.”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독인(毒人)의 살기였다.

“그 여자가 수사 대상에서 빠져 구명은 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전까지, 세파에 제대로 시달리게될 것이야.”

구양 태상부인과 이공자가, 연소현과 연비에게 품고 있는 비정상적인 증오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녀는 분명.

낙양검가를 썩게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원흉 중 일인(一人)이었다.

“…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 살기에 하얗게 질린 채로도, 강호는 제 할 말을 꿋꿋이 이어 나갔다.

“사패천이 순순히 구양 태상부인의 구명과 장강 하류의 정비 사업 허가를 교환하려 할까요?”

장강 이남.

흔히 강남이라 불리는 그곳은, 낙양과 더불어 중원국 해외 교역의 핵심 중 하나였다.

장강 수로 확장 정비 사업.

그 사업의 결과는 거대한 무역선들이 강남을 지나쳐, 장강의 상류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런 일을, 강남에서 해외 무역을 독점하며. 톡톡히 재미를 보고있는 사패천이 순순히 허용할리가 없을 텐데요.”

“…그렇기에 대공자께서.”

이번 대답은 어렵사리 입을 연, 공담웅에게서 나왔다.

“사패천 련주의 여식인 구양 태상부인의 구명과 교환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강남에서 독점 중인 이권이 막대하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귀한 자신의 딸이 아닌가.

“그 정도면. 충분히 교환가치가 있는-.”

“아뇨.”

그 말을 부정한 것은 현월각주 세아였다.

“사패천 련주는 절대 혈육의 정에 휘둘릴 인물이 아니에요.”

이번에도 헛다리를 짚은 것인가.

공담웅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어째서 대공자께서는 그 교환이 가능하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

그 질문에는 세아도 침묵했다.

이번에도, 역시.

“단순히 여식이기 때문이 아니야.”

대답은 사공자 연비에게서 나왔다.

“구양 태상부인이, 검가의 태상 부인이기 때문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말에 공담웅이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그렇군요!”

감을 잡은 강호가 외쳤다.

“구양 태상부인의 존재는, 검가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로군요!”

사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있어, 이공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존재니까.”

이공자는.

지금까지는 굳이 사패천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지만.

그의 어머니인 구양 태상부인이 사라져 목줄이 풀린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강호가 자신의 바짝 말라 오는 입술을 핥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마지막 대비가 필요하겠군요.”

그의 표정엔 결연한 구석이 있었다.

“궁지에 몰린 구양 태상부인이 할지도 모를 최후의 발악에 대한 대비 말입니다.”

“그렇지.”

그때까지 젊은이들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하던, 공량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야.”

다들 그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그들을 보며, 공량이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어 보였다.

“상대는 사패천 련주의 여식이자, 낙양검가의 태상부인이지. 낙양 내외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마지막 발악이란.

그 규모도, 그 강도도.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 그래도 말입니다.”

강호는 섬뜩함에 털이 곤두선 자신의 뒷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적어도 그 공격 대상을 추릴수는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일단.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는 아닐 거예요.”

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대공자님께서 관리 책임을 맡으셨지만, 사실상 검가 전체의 위신이 달린 곳이지요.”

그곳을 노린다면, 검가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공담웅이 머리를 짜내어 말을 꺼냈다.

“자애원은 어떨까 싶습니다. 대공자님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조직이니一."

“자애원은 아닐 거예요.”

세아가 이번에도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이공자 측이 자애원을 건드리면, 빈민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야.”

사공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용봉지회 경지장 건설 부지에서 있었던 민란(民亂)과 봉기(蜂起)가 낙양 전역에서 벌어질 테니.”

“그, 그렇습니까.”

풀이 죽은 공담웅.

“대공자님의 동맹 가문들도 아닐 것 같습니다.”

강호가 자신의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그들을 쓸어버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 봐야, 대공자께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다음은….”

“아니, 잠시.”

세아가 손을 내저었다.

“이 방식으로는 끝이 없어요. 아예 처음부터 우리 측에서 가장 '치명적인 곳'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렇군요!”

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격을 받았을 때, 가장 치명적인 곳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사공자가 쓴 웃음을 지었다.

“…바로 이곳이로군.”

"예?"

사공자가 자신의 팔을 펼쳐, 주변을 가리켰다.

“이곳 말일세. 죄악의 골짜기.”

“하, 그렇군요….”

세아가 탄식했다.

“사실상. 현재 우리 측의 사업 핵심은 두말할것도 없이 이곳이지요.”

죄악계곡 사업 성공 여부는,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성공은, 앞으로 이어질 '거대한' 사업의 반석이었다.

“그래서 큰형님은 외부에 많은 '친구'를 만들어 두셨지만….”

대공자는 죄악계곡을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는 두 구장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심지어, 투석기까지 동원해서 계곡 상류를 차지하고 있던, 암흑가마저 쓸어버리는것에 공을 들였다.

그것은 그만큼.

죄악계곡이 취약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리적인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강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이공자 측이 너무 큰 명분을 모두에게 주게 되지 않습니까? 사방에서 물어뜯을 겁니다.”

사공자가 팔짱을 꼈다.

“그렇다면, 역시 정치적 공세인가…."

“아무래도 그쪽이겠지요.”

강호가 긍정했다.

“당장 지금, 이 순간에는 황도에서의 소식에 귀를 곤두세운 최고위 관료들이 잠잠하지만.”

세아가 말을 거들었다.

“구양 태상부인이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약속하면,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사업 초기.

당해 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할수 없었을 정도로.

관료들의 온갖 행정적인 공격에 시달렸던, 사공자가 치를 떨었다.

“…확실히 그 여자는 막대한 보상을 제시해, 최고위 관료들에 더해서 심지어는 본가의 장로들까지도 손을 잡을 수도 있지.”

강호가 인상을 썼다.

“죄악계곡 사업은 이제 검가의 자금과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자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지.”

사공자가 혀를 찼다.

“하지만, 이 사업이 검가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면?”

대공자의 독립적인 사업이라는것과 관계없이, 장로들이 백지화할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억지로군요.”

“그 여자가 어디까지 대가를 약속하고 내어 줄지에 달려 있어. 만약一 ”

“그쯤들 해 두게.”

거기까지 듣고 있던, 공량이 킬킬 하고 웃고 있었다.

“확실히. 죄악계곡이 가장 취약하고, 타격받았을 때 반동이 크긴 하지.”

모두의 시선이 공량을 향했다.

“하지만.”

공량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들, 가르침을 잊은 모양이야.”

그 말에 강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르침, 말씀입니까?”

공담웅이 따라서 멍한 표정을 지었을 때, 사공자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왕은 미래를 만든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시각과 마음가짐이라 했었다.

“큰형님께서는 이미, 세상을 움직여 두신 것이로군요!”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연소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답이다.”

* * *

황궁.

“…성지(聖地)라고?”

황제의 물음에 강상이 긍정했다.

“예, 폐하. 선녀교단이 중원국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사옵니다만.”

강상이 말을 이었다.

“여전히 그들에게는 성지가 없지않사옵니까?”

옆에서 공손나강이 그 말을 거들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죄악계곡을 선녀교단의 성지로 선포해 주시면 되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가지신 고유한 권한이오니, 조정(朝廷)에 대신들을 모아, 선포만 하시면 되옵니다.”

과거.

앙숙과 다름없었던, 강상과 공손나강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황제로서는 매우 기묘한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대공자의 청이더냐?”

그들을 황제 곁으로 보내준, 대 공자의 청이 틀림없을 터.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강상의 태도는, 어딘가 조금 어리숙하게까지 느껴졌다.

대번에 관복을 벗고, 알몸으로 궁 밖으로 나서려던 대쪽같은 인물이.

어디서 청탁 같은 일을 해 보았겠는가.

“헤헤, 폐하.”

그 틈을 노리고, 공손나강이 달려들었다.

“작금(昨今)에 이르러, 선녀교는 중원 전역에서 믿고 따르는 이들이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교단이옵니다.”

그는 마치 파리처럼, 손바닥을 쉴 새 없이 비벼 댔다.

“거기다가 가난한 백성들을 솔선수범하여 구휼하고, 그들을 보살피니, 선녀 신앙이 없는 이들까지도. 선녀교단의 이름을 칭송할 정도이옵니다.”

환관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그였다.

황제의 귀에서 녹을 듯, 달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성지를 주어, 그 간의 공을 치하하시면. 천하의 만 백성들이 황제 폐하의 공덕(功德 으로 그것을 칭송하는-.”

“그만.”

황제가 단호하게 손을 들어, 공손나강의 입을 막았다.

“현재의 짐에게 필요한 것은, 듣기 좋으라고 늘어놓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이 아니라. 충심에서 비롯 된 직언(直言)이다.”

그 태도에 공손나강이 찔끔하고, 강상이 긴장할 때.

“게다가….”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짐을 은혜도 모르는 자로 만들 생각이더냐?”

강상이 반색했다.

“그 말씀은….”

황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조정에 대신들을 모아 선포하겠노라.”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공자와는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을 내저으며, 황제가 물었다.

“그런데, 성지라면. 소림사의 숭산(嵩山)이나, 아미파의 아미산(峨眉山) 같은 장소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러하옵니다.”

강상이 성지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종교의 성지가 되면, 해당 지역의 모든 행정권이 해당 종교에 일임되는 것이옵니다.”

그 말인즉슨.

성지는 사실상 지방 행정부에서 행정적으로 독립된 영역이란 말이었다.

“…훌륭하군. 훌륭해.”

그 말에 황제가 감을 잡았다는듯이 미소 지었다.

“대공자는 그 죄악계곡이라는 장소를 누구도 관여할 수 없게끔. 온전히 자신의 터전으로 만들 생각이었구나.”

황제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그 대공자답게, 한 수 한 수가 상식을 초월하는구나!”

* * *

낙양.

“…선녀교단의 성지라니.”

"......."

모두가 꺼낼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강호가 헛웃음을 지었다.

“실로 절묘한 한 수.”

성지라니.

상상도 못 한 방식의 방어이자, 적의 정치적 공격 자체를 무산시키는 단수(單手)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것으로, 장군(將軍)이군요.”

연소현이 움직인 말들은 방어 준비를 끝냈고.

그들의 예리한 창날은 적들의 궁(宮), 구양 태상부인의 목 앞까지 다다랐다.

“그렇군.”

사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 전쟁의 끝이 보이는구나.”

해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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