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57화 (257/350)

제7편 충성과 맹세(盟誓)

"......."

"......."

전음 대화 이후,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과 그녀의 남편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저는 잠시….”

그러고는 그녀가 조신한 몸가짐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그 대공자와 십육가문 전대 가주들의 관계가 사실이라면.”

“결국. 황제 폐하와 그 노마들을 만나게끔 판을 짠 것이 대공자라는 의미도 되는 것 아니겠소.”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주들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슬쩍슬쩍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옷 가짐을 바로 하고 싶다.”

“예,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녀가 그렇게 대기하고 있던 시녀를 따라 내실로 향하자, 이내 그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잃었다.

“이쪽에 내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수준 높은 응대.

깜찍한 외모의 시녀의 태도는 공손하면서도, 말투는 우아했다.

“만일 물이 필요하시다면, 따로 명을 해 주시면-.”

“내실은 되었다.”

뒤로 접객실의 문이 닫히고, 복도에 나선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시녀에게 한 말이었다.

“내실 말고, 다른 방을 원하신다면-?”

“아니.”

가주 대행이 그녀의 말을 다시 한번 끊었다.

“대공자를 뵙게 해 다오.”

"......!"

눈을 크게 뜨는 시녀에게, 가주 대행이 짧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대공자님을 뵙길 원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 말이다.”

자신의 말을 재확인하는 시녀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낀 가주 대행이 시녀를 다그치려 했다.

“지급(至急)한 건이니, 한시의 지체도 없이-.”

“후후.”

가주 대행의 말은 시녀의 웃음소리에 끊겼다.

그 알 수 없는 웃음에 가주 대행이 뭐라 입을 열려던 순간, 시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의외로 군문(軍門)인 서씨 가문이 가장 발이 빨랐군요. 가주 대행께서 첫 번째입니다.”

"너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틀림없이, 범상한 시녀가 아니었다.

“저는 원각정의 시녀.”

시녀는 자신의 시녀복을 우아한 태도로 펼쳐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일령이라고 합니다.”

“…대공자의 사람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일령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복도의 저편을 향해 손을 펼쳐 보였다.

“주인님을 뵙고 싶다면,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녀를 따라 연소현의 집무실 방향으로 향하는 서씨 가문 가주 대행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원각정의 시녀가 미리 배치되어 있었다니….'

머릿속이 복잡한 만큼 심경도 복잡했다.

'그리고 우리 서씨 가문이 첫 번째라고…?’

길을 안내하는 일령이라는 시녀의 발걸음은 경쾌했지만.

반대로 가주 대행은 자신의 걸음이 무거운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거미줄 한가운데 떨어진 것처럼.

그동안 계속.

연소현이라는 인물이 펼쳐놓은 거미줄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시녀 일령이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서자, 가주 대행은 그녀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음?"

접객실에 먼저 앉아 있던 인물들이 가주 대행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저들은...?’

눈이 커진 것은 가주 대행도 마찬가지였다.

접객실에 앉아 있는 것은, 서씨 가문과 관계가 좋지 않은 두 명의 구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연소현의 모습은 없었다.

'대공자는 이 구장들을 만나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그럼 대공자는 어디에?

그녀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시녀 일령이 손을 들어 안쪽의 문을 가리켰다.

“주인님께서는 이 안쪽의 집무실에서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계십니다.”

그러자, 서씨 가문 가주 대행의 모습을 불만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두 명의 구장이 볼멘소리를 했다.

“아니. 우리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말이야.”

“어째서 대공자께선 서씨 가문을 먼저 만나 주시는 것인가?”

시녀 일령이 능청스럽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어휴,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지요. 겨우 이 시간을 못 기다리십니까?”

일령이 자신의 허리께에 두 손을 올렸다.

“아니면, 지금은 돌아가시고. 나중에 다시 약속을 잡으시든가요?”

"......!"

그 말에, 오히려 서씨 가문 가주 대행이 깜짝 놀랐다.

다른 곳의 시녀였다면, 치도곤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도발적인 언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새로 잡으라고…?”

“어흠. 우리가 어디, 못 기다리겠다고 했는가?”

“그러니, 차나 더 가져다주게.”

“예 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두 구장은 대공자가 아니라, 심지어 그의 시녀에게도 기가 밀릴정도로 의기소침해 있었다.

'황도에 돌고 있다는 소문이 정말, 예사롭지가 않은 모양이군.'

지방의 관료들은, 평소엔 자신의 지역에서 왕노릇을 하다시피 하지만.

비상시엔 누구보다도 황도의 상황에 예민한 이들이었으니까.

“주인님, 일령이옵니다.”

시녀 일령이 살며시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안을 향해 고했다.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께서 주인님을 만나 뵙길 청하고 있사옵니다.”

"......."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은 순간, 대공자가 요청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했지만.

“들라 하라.”

다행히 연소현의 허락이 떨어졌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시녀 일령이 문을 열어 주었다.

“고맙네.”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집무실의 상석(上席)에 앉아 있는 연소현의 모습이었다.

'저건 누구지…?’

그리고 대공자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청년은 그녀도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젊다보다는 어리다에 가까운 인상의 소유자.

"......."

청년은 슬쩍 그녀를 향해 묵례를 해 보이고, 시선을 돌려 자신의 안경(眼鏡)을 만지작거렸다.

'…안경이라.'

고가의 물건이었다.

'대공자가 상석에 앉은 것을 봐서는, 대공자보다 신분이 높은 인물은 아닐 것인데.’

그녀의 머릿속에 든 낙양 주요 가문과 그 가문들 소속의 주요 인물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누구지?'

안경 쓴 청년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 본 대공자를 보자 했다고?”

그녀의 생각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그래. 지금은 대공자에게 집중해야 할 때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연소현에게 향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 결정이 옳은 결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들던 의혹을 떨쳐 버린 그녀가 연소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으로서, 저희 서씨 가문은 낙양검가의 대공자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려 합니다.”

잠시.

사위가 침묵에 잠겼다.

“…그런가.”

유감스럽게도.

만남을 허락했을 때와 달리, 이번엔 연소현이 그녀에게 즉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 정도는 각오했다.’

굴욕, 이라는 감상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디 충성 맹세를 받아 주시길.”

그러고는 머리를 더욱 깊이 숙이길 택했다.

연소현은 그들에게 몇 번이나 그들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고,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서씨 가문의 충성이라….”

연소현이 다시 말문을 열었지만, 그 대상은 가주 대행이 아니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안경 쓴 청년을 향해서였다.

“저, 저 말입니까…?”

청년은 당황했다.

“그래. 자네 생각을 물었네.”

처음엔 당황했던 청년은 이내.

“서씨 가문은….”

자신의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유서 깊고 훌륭한 군문입니다. 북부전쟁 당시, 적잖은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한번 나오기 시작한 말은 유수(流水)처럼 쏟아졌다.

안경 너머로 청년의 시선이 가주 대행을 향했다.

“그것보다도, 왕조를 넘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제국을 향한 충정을 잊지 않았지요.”

도대체 청년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서씨 가문이라는 낙양 유력 가문을 내려다보듯 평가를 하는 것일까.

“이번 대에 와서, 그들의 가풍(家風)과 가훈(家訓)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맹세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고.”

어떻게 서씨 가문의 가훈과 가풍에 대해서 꿰뚫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한번 바친 충성을 스스로 걷어찰 리도 없습니다.”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군.”

이번엔 가주 대행에게 한 말이 맞았다.

“그, 그렇습니다. 저희 서씨 가문의 가훈은 '대죽(大竹)처럼 푸르고 곧아라’.”

그녀가 머리를 더 숙여, 바닥에 가져다 대다시피 했다.

그것은 고개를 숙인다고 하기보다는 오체투지(五體投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서씨 가문이 대공자께 한번 바친 충성. 앞으로 누가 가주가 될지라도 감히 먼저 맹세를 어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좋다.”

연소현의 승낙.

“나 연소현은 서씨 가문이 충성을 바치는 것을 허락하겠다.”

“가, 감사합-.”

그녀가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자, 연소현이 손가락을 세워 그녀의 말을 막았다.

“군문에서는 충성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저희 서씨 가문에서는.”

완전한 하대.

하지만 가주 대행은 불쾌한 기색하나 없이 대답했다.

“군문의 도리를 다해, 전장에서 아낌없이 목숨을 바쳐 충성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지.”

무릎을 꿇고 있던 그녀는 연소현을 약간 불안함을 담고 올려다보았다.

'목숨을 바치길 원하는 것인가?’

“허나.”

이어진 연소현의 말에 그녀의 숨통이 트였다.

“첫 번째로 충성을 바친 그대의 용기와 지혜를 높게 평가하여. 첫 명령으로 목숨까지 바치길 원하지는 않겠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감사합니다!”

“현재, 서씨 가문은 아무런 군단도 맡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정치에서 밀려난 군문이 사령관을 배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대에게 첫 명령을 내리겠다.”

“하명하소서.”

그녀의 머리 위에서 연소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낙양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가문들을 공격해라.”

"......!"

그리고 그들의 위치를 서씨 가문이 가져오는 것이다.”

연소현의 말이 이어졌다.

“정치적인 공격이든, 정말로 공격을 감행하든, 과거의 비리를 들추든, 아니면 심지어 중상모략을 하든 상관없다.”

연소현의 명에 가주 대행이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고, 즉시 그 의도를 이해했다.

“…낙양 수비를 맡고 있는 가문들은. 이, 삼공자 측과 면밀한 관련이 있지요.”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로, 연소현을 향해 말했다.

“대공자께서는 이, 삼공자 측이 혼란스러운 틈을 노리시는 것이로군요.”

“그렇다.”

“물론. 서씨 가문은 그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만….”

그녀가 말을 흐렸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첫 명령부터, 토를 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들을 당장에라도 공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들의 위치를 빼앗아 오는 것은. 곧 저희 서씨 가문이 낙양의 수호가문(守護家門) 중 하나가 된다는 뜻.”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추후 더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거기까지는 저희 서씨 가문의 능력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낙양 지방 관청의 결정도 아니고, 황도의 결정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

서씨 가문의 능력 운운하기 전에.

애초에 낙양에서 어찌할 수 있는일이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녀는 연소현의 얼굴을 감히 바라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걸려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너희 서씨 가문이 공격으로 충분히 충성을 증명하면.”

연소현이 선언하듯 말했다.

“서씨 가문은 낙양의 새 수호가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연소현의 자신감.

그 끝 모를 확신이 담긴 선언에, 가주 대행의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대공자는 낙양에 앉아서, 자신 이 황도의 일을 결정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인가!’

대체 어떻게.

같은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연소현이 그녀에게 보여 준 모든 모습이, 그러했듯.

그녀는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돌아가는 일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 *

“드디어, 낙양의 유력 가문 하나를 완전히 휘하에 두셨군요.”

그녀가 나가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입을 연 것은 안경을 쓴 청년이었다.

“경하(敬賀)드립니다, 대공자님.”

"별것 아닌 일이다.”

연소현의 여상(如常)한 태도는.

방금 있었던 일이, 정말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보였다.

“그보다는 원래,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자꾸나.”

“…예, 대공자님.”

청년은 안경을 고쳐 쓰고 연소현에게 물었다.

“저를 이곳에 부르신 까닭은-.”

연소현이 그의 말을 정정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강호, 자네가 나를 찾아 온 것이지.”

안경 쓴 청년.

중앙감찰각의 강호가 연소현에게 말했다.

“…저를 작전에서 빼셨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대선상회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그 때문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가 긴장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황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본가로부터 들었습니다.”

그가 마른침을 삼키고 연소현에게 물었다.

“혹시 그 일이, 은퇴하셨던 저의 조부(祖父)님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연소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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