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56화 (256/350)

제6편 황도(皇都)

황도, 모처(某處).

제국을 통치하는 수도의 정계는, 태산의 거대한 바위가 구르는 것과 같아서.

그것이 움직이기까지가 너무나 느리고, 굼뜨지만.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산사태를 일으켜 지각을 변동시킨다더니.”

그렇게 중얼거린 이의 목소리는 지독하게 쉬어 있었다.

기도 화상에 의해 손상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낙양검가의 이공자.

연자청이었다.

“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이 황제 폐하를 알현한다고 들었다.”

그것은.

태산의 바위가 구르고.

산사태가 일어날 전조(前兆)였다.

“정말인가?”

언제나 강한 자기 확신에 가득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드물게도.

노골적인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 이공자와 독대를 하고있는 것은, 낙양검가의 정보부처.

황도 지부의 지부장이었다.

“아직. 정확한 명단은 확보 작업중이지만, 그들이 황제 폐하를 알현한다는 정보는 명확한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까드득.

이공자 연자청의 왼손을 둘러싼 먹빛 갑주가 불쾌한 금속음을 냈다.

“…전혀,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뻔뻔한 대답에, 황금 가면 뒤에서 이공자의 붉은 눈빛이 사납게 번뜩였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그대의 일이 아니던가?”

목소리에는 살기마저 담겼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시죠.”

상대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본가의 '최상층'에서 온 지시로 이공자께 정보 공유 협력을 하고 있을 뿐.”

검가 정보부처, 황도 지부장은 이공자의 막대한 살기어린 눈빛에도 눈썹을 꿈틀거렸을 뿐이었다.

“이공자님은 아직 검가의 차기가주가 된 것도 아니고. 저는 이공자님의 수하도 아니며….”

그녀의 백안(白眼)에는 감정이라고는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낙양이 아니라 황도입니다.”

까드드득.

“건방진 년.”

이공자의 왼손을 둘러싼 장갑이 대단히 불쾌하다는 의미를 담아 소음을 자아냈다.

“내가 소가주에 오르는 날이 오면, 내 손수 너를 찢어 죽일 것이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녀는 일방적인 태도로,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이곳은 황도이고.

그녀는 낙양검가의 정보부처 지부장일 뿐만 아니라, 황도의 거물중 하나였으니까.

“추후, 추가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공유해 드리도록 하지요.”

“꺼져라.”

그녀는 어둠 속에 앉아 붉은 안광을 흩날리는 이공자를 향해, 담담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주군."

그녀가 방을 나서기 무섭게,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수하가 들어와 그에게 고했다.

“황도십육가문에서 긴급 회담 장소를 통보해 왔습니다.”

“알겠다.”

수하는 즉시 고개를 숙여보이고 밖으로 나섰다.

그 수하에 이어서 들어온 것은, 이공자의 참모진이었다.

“일이 주군께 유리하게 잘 풀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대 가주들에 관련된 일이 터지자마자, 십육가문의 가주들이 주군을 찾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의 참모진 중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께서 그들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셨다는 뜻이지요.”

“그들에게 주군이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참모진도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전대 가주들. 그 노마(老魔)들이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된 배후에는, 분명히-.”

“연소현 그놈이 있겠지요.”

“확실히, 기반도 제대로 없는 그놈이 그 노마들을 움직인 재주는 놀랍습니다만….”

낙양에서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는 연소현에 대한 정보는 그들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래 봤자.”

“연소현 그놈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모든 것은 주군의 손바닥 위입니다.”

참모진들이 히죽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놈이 그 노마들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진짜 권력을 쥐고 있는 십육가문의 현 가주들 사이에서, 주군의 입지만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니까요.”

그랬다.

황도를 향해 출발했던, 그날.

그 시점부터 이공자는 그것을 노리고 움직였다.

“원래라면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을 그들이지만, 연소현 그놈이 전대 가주들을 전부 만나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되면, 현 가주들도 필시 서로 손을 잡고 싶어 할 겝니다!”

그날.

그의 어머니인 구양 태상부인이 말했던 것처럼.

연소현이 전대 가주들을 한데 묶어 움직일수록.

현 가주들은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똘똘 뭉칠 수밖에 없고.

미리 그것을 경고하고, 그들을 모았던 이공자의 입지는 탄탄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분명,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산사태의 전조일지라도."

“그것은 필시. 주군께 유리한 지 각변동이 되는 것입니다.”

"......."

까드득.

하지만 그렇게 일이 풀려가고 있음에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이공자의 심기는 어딘가 불편했다.

“…대선상회 쪽 소식은?”

대선상회가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것이….”

눈치를 살피며 참모진이 입을 열었다.

“아직, 추가적인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황도와 낙양의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는 있지만, 현재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낙양에는 구양 태상부인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이공자의 비위를 맞추듯, 그의 심기를 달래 듯.

조심스럽게 참모진들이 입을 놀렸다.

“그분이 계신 이상.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대처를 잘하실것이 틀림없습니다.”

“주군께서는 황도에만 온전히 집중하시는 것이….”

까드득.

이공자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

참모진들이 불편한 침묵을 견디고 있는 사이, 이공자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오만한 년….'

그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정보 공유를 마치고 떠난, 정보부처 황도 지부장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이 내가 아니라, 연소현 그놈이었다고해도, 그렇게 뻣뻣했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그렇지 않다.’고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비록 감각일 뿐이지만.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그가 아니라, 연소현이었다면.

그녀의 태도는 달랐으리라.

“…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

그의 쉬어 빠진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펴졌다.

까드득.

어릴 적에 입었던 화상이, 아직도 자신의 반신을 태우고, 기도를 태우고 있는것만 같았다.

자신의 그 목소리를 스스로 들을 때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가 커지는 것을 느꼈고.

그만큼, 소가주가 되어 검가의 모두를 아래에 두겠다는 열망이 커졌으며.

연소현에 대한 증오 또한 커졌다.

“그 노마들이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된 것에는 연소현 그놈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연소현이라는 이름을 입에담는 그의 목소리에 살기가 물씬 짙어졌다.

“반드시, 그들이 무슨 연유로, 대체 어떻게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되었는지 파악해야만 한다.”

그는 얼마 전.

황도에 연소현의 손길이 드러나지 않자.

'이미, 노마들을 통해 이루려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전대 가주들이 황제와 만난다.

연소현의 숨겨져 있던 손길이.

그 그림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것이다.

그 그림은 밑그림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연소현은 이미 모든 그림을 그렸고, 붓을 내려놓기 전에.

화룡점정(畫龍點睛).

그림 속 용의 눈만 그리는 일이 남았을 뿐인가.

“물론입니다, 주군.”

그의 말에 불편한 침묵을 견디던 참모진들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파악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여러 경우를 미리 계산하여 대비가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곧 있을 십육가문의 가주들과의 회담에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참모진 중 하나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원수지간(怨讎之間)과 다름없는, 황제와 그 노마들을 만나도록 만들다니-.”

적이지만 놀라운 수완이다.

그렇게 말하려던 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

이공자의 붉은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었고, 이공자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황제는 어차피 병풍에 불과하다. 노마들은 실세라 불릴 수 없는 은퇴한 노인들에 불과하고.”

“그,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실수를 범한 참모진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황도의 진짜 실권자들은, 주군과 협약을 맺은 십육가문의 현 가주들이지요!”

거기에 더한다면, 새 황후를 배출한 민씨 가문 정도가 있으리라.

이공자는 대꾸 대신 손을 내저었다.

“전부 꺼져라.”

참모진이 즉시 고개를 깊이 숙여보였다.

“저희는 십육가문의 현 가주들과의 회담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겠습니다.”

텅 빈 서재에서.

이공자가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연소현.”

어떻게 단 세 글자의 이름이, 이토록 증오스러울 수가 있는지.

* * *

낙양, 죄악의 골짜기.

“황제 폐하와 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은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연소현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던 가주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구장들이 대공자와 독대를 하는 동안.

가주들은 따로 마련된 접객실에서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확실히 그렇소.”

“선황께서 돌아가시고, 그 어린 나이에 즉위했었던 황제 폐하의 처지를 철저하게 이용했던 것이 바로 그 노마들인데….”

“십상시(十常侍)가 따로 없었지.”

“만일, 그들이 북부전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황실의 권력을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겠지.”

“그 노마들이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십육가문은 역대 최고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소?”

“그렇소.”

가주 중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한 소리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노마들의 영향력을 그대로 다음 가주들이 이어받아, 여전히 황제 폐하를 멋대로 휘두르고 있는것이지.”

“노마들이 은퇴하게 된 배경에는, 현 가주들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소이다.”

그들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자신들이 연소현에게 충성을 바치느냐, 마느냐라는.

그들 가문 전체의 운명이 걸린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도, 그들의 대화는 끊어지질 않았다.

두 명의 구장들이 가져온 이야기가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 수군거림의 와중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 노마들의 움직임이 대공자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서씨 가문 가주 대행의 전음에 그의 남편인 데릴사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낙양 중앙 관청의 최고위 관료들은 그렇게 판단하는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대공자에게 사과문까지 써 가면서, 물러난 것이겠지요.]

거기까지 전음을 전한 데릴사위는 낯빛을 굳혔다.

조금 전에 있었던 대공자 연소현과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공자의 말대로, 황하의 하구가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바뀐다는 말인가요?]

데릴사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주 대행도 굳이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흠.”

“황제 폐하와 노마들이라….”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부쩍 대화가 줄어든 다른 가주들도.

이제, 그것을 점차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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