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53화 (253/350)

제3편 위치 자각(自覺)

아주 조금 전.

“달려라! 달려!”

원각정의 하녀단장, 향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멈추지 마라!”

장갑마차 행렬이 좁은 골목 사이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아무렇게나 증축된 건물에 걸려, 보강했던 장갑판이 떨어져 나가도.

빈민들이 파내 간 탓에 가도에 생긴 구덩이에 바퀴가 걸려, 마차가 요동을 쳐도.

“전원 꽉 잡아!”

하녀단 전원은 잇몸에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고, 마차에 매달리다시피 몸을 지탱했다.

“푸른 연기…!”

그리고 그 와중에도 연노를 붙잡고 멀리 최상류를 주시하던 하녀가 눈을 번쩍였다.

“어르신! 신호입니다!”

지붕을 통해 상반신을 내밀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숙여 마차 내부를 향해 외쳤다.

“당백 대주가 우두머리들의 암살에 성공했군!”

마차 내에서 하녀들의 도움으로 몸을 단단히 고정한 사공자의 최측근, 곽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당백 대주! 시간 한번 정확해!”

정신없이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좁은 골목 곳곳에서 튀어나와 마차를 막아서는 적들이 박살 나는 와중에서도.

“아주 계획대로야!”

여인의 몸에 내공도 없는 나이 든 노인이 광소를 터트리는 모습은.

하녀단의 하녀들마저, 섬뜩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자아, 이제 우리가 제 몫을 다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야가 확하고 트이며 좁은 골목이 끝났다.

[엄청난 숫자의 적 발견!]

선두 마차의 하녀가 뒤의 행렬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적의 중앙 전열 확인! 현재 우리 위치는 적 중앙 전열의 우측 끝지점입니다!]

“정확하게 찾았군...!"

곽 노인은, 과연 남만(南蠻)의 와룡(臥龍)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겨우, 지도 한 장과 나침반 하나만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행렬을 정확한 지점으로 인도하다니…!’

그렇게 속으로 감탄한 하녀단장 향이 자세를 낮추며, 내공을 담아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전원 충격 돌진 태세!”

그녀의 지시가 들리기 전부터, 하녀들은 이미 자세를 낮추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 장갑마차는 골목을 전력으로 달리던 것 이상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소,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절대 겁먹고 제동 장치 건드리지 마라! 마차가 그대로 전복된다! 정비반을 믿고, 전투마를 믿어라!]

내공을 가지고, 무공을 익힌 이들조차도 아찔할 정도의 속도였다.

축과 바퀴가 금방이라도 박살 날것처럼 뒤흔들렸다.

“돌격!"

최후미의 마차에 탄 하녀가 분 뿔피리 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그리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장갑마차 행렬이 적의 후미와 충돌했다.

"------!"

투석기가 쏘아 낸 바위에 맞은 것처럼.

적들의 살점과 피, 박살 난 신체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 * *

죄악계곡 하류

"......!"

“…허어!”

옥상에 선 새 동맹 가문의 가주들이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흘렸다.

마치 자신들이 장갑마차 행렬의 돌진에 치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개중에 담이 약한 자는 마차가 적에게 충돌하는 순간에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엄청난 돌진력…!’

군문(軍門)인 서씨 가문의 부부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가의 장갑마차 기술이 중원국 전체에서도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공자의 장갑마차는 급이 다르군요…!’

전투마들도.

마차의 차체(車體)도.

그 마차를 끄는 하녀단도.

그들이 일반적으로 접했던 전투용 장갑마차와는 그 급이 달랐다.

“…돌진을 멈추지 않는군요.”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처럼.

적의 중앙 진형, 우측 후미를 들이받은 장갑마차 행렬은.

속도가 늦춰지지도 않고, 적진을 갈아 버리며 여전히 돌진 중이었다.

장갑마차의 막대한 무게.

한계까지 속도를 냈던 전투마.

무방비한 상태로 뒤를 내어 준적.

그리고 계곡의 내리막 경사가 만들어 낸 소름 돋는 결과였다.

“…저것은 차라리, 전차(戰車)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펼쳐지는 광경에 전율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는 그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출발하는 장갑마차에 탄 노인이 외치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장갑을 믿고, 기동력을 믿어라!”

“하녀단은 일시에 적진을 관통하여 적들을 양분할 것이야!”

그랬다.

적의 중앙 진형 후방.

그 우측 끝으로 돌진해 들어간 하녀단의 장갑마차 행렬은.

적들의 중앙 진형을 종(縱)이 아니라.

길게 횡(橫)으로 관통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연소현과 새 동맹 가주들이 있는 옥상의 아래층.

그 압도적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연소현의 새 동맹 가문의 가주들뿐만이 아니었다.

"......."

접객실에 있던 비단옷을 입은 이들이.

누구랄 것 없이, 창가에 달라붙어 그 광경을 눈에 새겨 넣고 있었다.

"......."

그들은 다름 아닌.

죄악계곡에 투자했던,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이들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 상황이었던 탓에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접객실에 갇혀 있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대공자의 전력(戰力) 인가?”

누군가가 흘린 말 한마디에, 홀린 듯이 창밖을 바라보던 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어지간히 인상이 깊은 모양들이시군요.”

그들에게 비꼬듯이 말을 던진 여인은.

자리를 비운 대공자와 사공자를 대신해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던, 사공자의 최측근.

당예린이었다.

“흐흠.”

“흠. 흠.”

묘하게 가시가 돋친 그녀의 말에도, 다들 헛기침이나 하는 것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여러분은 안전하게 이 죄악계곡을 빠져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아까부터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잠시 지체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아까부터 계속, 이라는 말에 당예린이 유난히 힘을 준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우, 우리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시오.”

한 인물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인물들도 한마디씩 볼멘소리를 거들었다.

“갑자기 관에서 대공자를 데려가러 왔다는데, 어찌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소?”

“투자금을 돌려받긴 했지만, 이곳에 발이 묶였으니. 우리도 항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오?”

당예린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들의 작태는 그 정도로 가관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그녀가 주변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다들 사공자님에게 투자금을 돌려받겠다고 줄을 섰었지요. 그리고 그러다가….”

그녀의 시선에 닿은 이들이 다들 눈을 피했다.

“대공자님이 죄악계곡에 도착하자, 다들 대공자님에게 직접 투자금을 돌려받겠다고 했다가.”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 이후. 삼·사공녀님의 일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다들 대공자님 대신 사공자님을 만나겠다고 아우성을 쳤었죠.”

"......."

"......."

자신들이 했던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었는지 기억들은 나는지.

“그리고 후에, 관병을 동원한 구장들이 찾아와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당장에 돈을 돌려 달라고 저에게 채근하셨죠.”

당예린의 말을 끊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제가 대공자님의 명을 받아, 일괄적으로 여러분께 투자자 명단에서 이름을 빼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자 다들 좋아하셨지요.”

그녀가 이제 거의 경멸에 가까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당예린이 창밖을 가리켰다.

“우리의 힘을 직접 확인하니까. 투자자 명단에 다시 이름을 올려 달라고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가 지금, 애들 장난하는 곳 같습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자, 다들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헛흠.”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뻔뻔한 것이.

눈치만으로 여태껏 낙양 바닥에서 살아남아 온 그들, 전문 투자자들의 미덕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가 명단에 다시 올려 주는 대신. 투자금을 추가적으로 내겠다고 한 것이 아니오?”

“그렇지. 그러니 얼마 더 투자하면 되겠소?”

“사죄의 의미를 담아, 추가 투자금을 두둑하게 드리리라.”

'이자들은, 진짜….'

그런 그들의 뻔뻔함에, 당예린은 속으로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죄금을 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투자금을 더 내겠다니.'

이건 그냥, 자신들이 이익을 더 먹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녀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투자자들은 더욱 뻔뻔하게 나왔다.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우리가 탄탄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 낙양의 투자계에 알려진다면. 더 안정적으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소?”

“그만큼 대공자의 세력이 탄탄하여, 우군(友軍)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겠지.”

하지만.

그녀가 속으로 질린 표정을 지으며, 침묵하던 것은.

저들의 뻔뻔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부 대공자님의 예상대로잖아.'

연소현은 이미 이런 상황이 될 것을 모두 예측했었다.

투자자들이 어떤 동향을 보일지.

그런 투자자들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 할지.

단순하고 명확하게, 그녀에게 지시를 끝내 놓았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당예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이어지자, 다들 얼굴이 굳었다.

“이전 투자금은 장부상 이미 여러분께 돌려 드린 것으로 되었으니.”

그녀가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투자를 하려거든, 다들 '새로' 투자금을 내주시지요.”

투자자들의 입에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을 이었다.

“이 사항은 대공자께서 직접! 제게 명을 내린 사항이니, 불만이 있으시다면.”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위, 옥상을 향했다.

“옥상에 계신 대공자께 직접 항의하시길.”

투자자들이 아무리 뻔뻔하다고 해도

지금 창밖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대공자에게 직접 항의할 만한 간덩이를 가진 인물은 없었다.

"......."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정확히 자각했으니.

“아, 참고로.”

당예린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그들을 내려다보듯 말했다.

“여러분이 이곳에 갇히다시피 계신 상황이라 외부 정보를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후후, 하고 그녀가 웃음으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지금. 이공자 측의 대선상회가 본가의 중앙감찰각과 내원의 수사를 받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

그 이상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다, 당장 투자금을 내겠소!”

“그대에게 지불하면 되는 것이오?!"

“계약서를! 당장 계약서를!”

* * *

옥상.

“대선상회가…?”

투자자들과 달리.

외부와의 소통 창구를 열어 놓고있는 새 동맹 가주들의 안색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예, 그렇습니다.”

가주들의 시선을 한데 받으며.

서씨 가문의 가솔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가주 대행에게 보고했다.

“지금 현재. 검가의 중앙감찰각과 내원이 합동으로 강제 수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씨 가문의 가솔과 거의 비슷하게 도착한 다른 가문의 전령들도 한마디씩 더했다.

“검가의 이공자 측은 강하게 반발 중이며….”

“대선상회 측은 자기 방어권을 위해 무력 충돌을 불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무력 충돌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묻는 이는 없었다.

그들보다도 훨씬.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가 그들의 눈앞에 있었으니.

“대공자님.”

모두의 시선을 등 뒤로 받으며.

뒷짐을 지고 상류를 바라보던 연소현이 그 자세 그대로 답했다.

“그들의 정보엔 틀린 점이 없소.”

그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내가 조금 기밀 정보를 더하자면….”

살짝 보이는 대공자의 얼굴에 걸린 것은, 미소였다.

“지금쯤. 삼공자 측은 본가의 연씨 혈족과 정치적 충돌을 시작했을 것이오.”

“......!"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새 동맹 가주들을 향한 미소였다.

“이로써.”

연소현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은 이 동맹이 더욱더 절실해졌고, 나에게 있어서 그대들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지.”

“......."

그때.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멀리, 계곡의 상류에서부터 승전을 알리는 연소현 측의 함성이 들려왔다.

연소현의 나직한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함성을 뚫고, 그들의 귀에 박혀 들었다.

“이제, 이 동맹에서 그대들의 위치를 충분히 자각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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