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편 연합군(聯合軍)
시뻘건 눈알을 한 남자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죄악계곡의 특산품.
목속(烯粟)의 효과는 더할 나위없이 확실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거친 심장박동 소리가 자신의 정수리를 뚫고 나오는 듯했다.
상대가 그 누구라 해도 상관없었다.
결코,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아니, 누구든 단박에 때려죽일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그의 몸에 가득 차올랐다.
“으오아아아아...! ”
그래서 그는,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든 거대한 바위를 정면으로 막아섰다.
* * *
콰앙! 하는.
폭음에 가까운 굉음과 함께, 홁먼지가 피어올랐다.
산산조각이 난 신체 조각들이 비산하며, 피 보라가 흩날리는 광경이 아스라이 보였다.
“좋았어!”
연소현 측 포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영점 사격에서 맞히다니!”
멀리.
이윽고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죄악계곡 상류에 위치하던 요새화 된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광경에.
“아예, 박살을 냈구먼!”
포반장(砲班長)이 기분 좋게 외쳤다.
“짜식들! 잘했다! 나중에 상황 종료되면, 내가 돼지 한 마리 잡는다!”
포반 인원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고, 포반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발사각(發射角) 유지! 일발 장전!”
장전 작업을 서두르는 포반 인원들이 시커먼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었다.
“훈련 때도 그랬지만. 아주 그냥, 몸이 기억을 하고 있구먼.”
“아이고. 이 짓을 몇 년을 했었는데 그걸 까먹겠는가?”
여기 있는 모두가.
다들 친해질 정도로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지만, 기이할 정도로 손발은 척척 맞았다.
그들이 전투 공병 출신으로, 북부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지.”
도르래를 통해 줄을 당기고 있던 인원이 피식 웃었다.
“일용직 공사에 지원했다가 낙양시내에서 발석기를 만들고 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오.”
그와 함께 줄을 당기고 있던 이가 말했다.
“전쟁터에 끌려갔던 것이, 인생에 도움 되는 것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오.”
“덕분에 전투수당이라는 것도 받게 되었으니, 무슨 불만이 있을수 있겠어?”
돈만 된다면야, 시체 머리들이 든 수레를 끄는 빈민들로 들끓는 것이 낙양이었다.
“점검 끝!”
“장전 완료!”
자애원이 약속한 두둑한 전투수당.
그 전투수당은 빈민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참여율로 이어졌다.
“자애원 만세다!”
누군가 그렇게 외친 소리를 들은 포반장이 씨익 웃으며 외쳤다.
“낙양의 기생충 같은 놈들에게, 약 선녀님의 자비가 가득한 돌덩이 맛을 보여 줘라!”
* * *
연소현 측 사업 본부 옥상.
연신, 거대한 바위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목표가 된 계곡의 상류에 연신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군(軍)도 아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연소현의 새 동맹 가문 일원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다들, 그저 멍하니.
옥상 난간을 붙잡고, 요새화된 죄악계곡 상류가 발석기로 난타당하는 광경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기대 이상이군. 훌륭해.”
그들의 뒤에서 뒷짐을 서고 서 있던 연소현이 칭찬했다.
“기록상 문제가 없는 이들을 가려 뽑아, 편제(編制)만 새로이 했을 뿐입니다.”
연소현의 곁에 선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보고하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딱히 거창한 훈련도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겸손이 지나치군, 노(老)군사.”
염 장로의 무력 단체인 전쟁자문단.
그 전쟁자문단의 노군사가 염 장로의 곁이 아니라, 그동안 죄악계곡에 머물렀던 이유가 바로 오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투석기 제작을 위한 물자는, 죄악계곡의 재건축을 명목으로 들여 왔고.”
사실상, 원재료의 단계에서 건물과 투석기 간에 차이는 없었으니.
“정밀 부품은 낙양의 공방들에서 순조롭게 수급했으니.”
자애원의 사업부.
다선랑의 업무 처리는 훌륭했다.
“뭐. 제가 한 것이라고는 사실 뒷짐지고 잔소리를 한 것밖에 없지요.”
잔소리라고 표현했지만.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연소현이 어찌 모르겠는가.
“제대로 된 교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칭찬은 전투 종료 이후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전투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말투는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노인의 믿음직한 말투에, 연소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도록 하지.”
그리고, 그사이에.
연소현의 새 동맹 가문 가주들은, 이제야 투석기의 등장이 가져 다준 충격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한바탕 퍼부어, 방어 요충지들을 파괴하고, 이후 관병들로 밀어붙이려는 것인가?”
나이 든 가주 하나가 중얼거리는 말에, 이번에는 대답하는 자가 있었다.
“글쎄요….”
그는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였다.
“눈에 띄는 방어 요충지들을 파괴해서, 필패(必敗)나 마찬가지였던 상황의 승기를 끌어올렸지만.”
이곳에 군문과 관련이 있는 가문은 서씨 가문뿐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소?”
그렇기에 서씨 가문의 일원들에게 질문과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인상을 쓰고 상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계곡 상류의 저 협소한 골목길과 급격한 경사는 여전합니다. 관병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른다 해도, 승산이 얼마나 있을지는….”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는, 전장에서 공을 인정받은 실전을 거친 장수였다.
“과연, 그런 것인가.”
“그저 관병들로 뚫기엔 불가능하 다는 말이로군.”
가주들 사이에서, 그런 그의 말에 굳이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관병들의 막대한 희생이라니?”
그때 낭랑한 웃음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 웃음소리의 주인, 대공자 연소현을 향했다.
“본 대공자는 애꿎은 관병들을 희생시킬 생각 따윈 없다오.”
본디, 암흑가의 정벌은 관의 의무였지만.
연소현은 사기도 낮고 훈련도 충분치 않은 관병들을 무리하게 운용하여 그들의 목숨을 허무하게 날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
“관병들을 희생시키지 않으시겠다고요?”
모두의 앞에서 정면으로 연소현에게 반박을 당해, 얼굴을 붉힌 자신의 남편 대신.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주공(主攻)이 없이 공 격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전열을 담당할 병력이 없이는 대공자의 장갑마차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겁니다.”
“과연, 군문의 서씨인가. 그대의 말대로라오.”
의외로
연소현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마차는 기병대와 크게 다를것이 없소. 그 기동성을 잃으면, 돈좌(頓挫)될 뿐이지.”
그 말에, 괜히 서씨 가문 가주 대행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하지만 연소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소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본 대공자가 언제 전열을 담당할 주공이 없다고 하였소?”
“아미파의 비구니들을 비롯한 몇몇 무림인이 대공자님을 따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 말에 얼굴을 붉혔던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
“겨우 무림인 몇몇으로는 주공이라고 하기 민망하지 않겠습니까? 암흑가 측에도 무림인들은 많습니다만.”
연소현에게 무안을 당한 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는지, 그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물론 그렇지.”
연소현이 손짓하자, 노군사가 옥상의 망루(望樓)에 서 있던 이에게 신호했다.
“전투의 기본은 머릿수가 아니겠소?”
연소현의 말에 호응하듯.
망루에서 흔드는 붉은 신호 깃발이 힘차게 휘날렸다.
“머릿수라고요?”
검가의 대공자에게 머릿수를 채울 병력이랄 만한 것이 있었던가?
멀리.
연소현이 되찾아 두었던 중류의 전진기지에서 마찬가지로 커다란 빨간 깃발이 휘날렸다.
그리고.
“저, 저 병력들은 도대체?!”
중류의 전진기지로부터, 그리고 전진기지의 주변으로부터.
완전무장한 병력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저들이 주공을 맡아 전열을 형성할 나의 병력이라오.”
수백의 인원이 쏟아져 나오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연소현이 새 동맹의 가주들에게 말했다.
“더없이 신실하고, 고귀한 신앙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자들이지.”
신실함과 고귀한 신앙.
그리고 충분한 머릿수.
거기까지 듣고, 저들이 정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이는 이곳에 없었다.
“자애원?!”
* * *
죄악계곡 중류.
연소현 측 전진기지 근처.
“대공자님의 뜻입니다! 치안별관의 관병들은 추후 명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류에 도착한 치안별관의 관병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기 명령이었다.
관병에게 검가의 대공자가 지시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들이 전부, 대공자의 병력이라고?”
눈앞, 수백의 병력은 그들의 정신을 빼놓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선배. 저 병력은 아마도 자애원의 자경단….”
후배 포쾌가 말을 하던 중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저 정도 수준의 무장이라면, 자경단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군요.”
그들의 무장과 자신들의 무장 상태를 비교한 관병들이 주눅든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대체, 낙양 어디서 저 정도 숫자의 병력을 중무장시킬 장비가 나온 것일까요?”
단창(短槍)을 세워 들고, 대형 방패를 들고, 허리께엔 칼까지 차고있다.
철판 조각을 이어 만든 비늘 갑주의 아래에는 두꺼운 가죽 갑주까지 입었다.
자애원 병력의 장비는 그야말로 중무장이라는 말이 정확할 정도였다.
“…상태를 보아서는 신품(新品)은 아닌 것 같은데.”
안력을 돋우어 그들을 살피던 박 포쾌의 말에, 후배 포쾌가 의문을 표했다.
“신품이 아니라면, 어디서 쓰던 물건들이라는 말입니까?”
그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다 한들. 낙양 근교에서 구할 수 있는 수량이 아닐 텐데요?”
그리고 그 질문은 마찬가지로, 연소현의 새 동맹 가주들에게서도 나왔다.
“북방의 물건이라오.”
이번엔 그들의 질문에, 연소현이 직접 대답을 해 주었다.
“북방…?!"
북방과 관련된 상가(商家)의 가주가 눈을 번쩍였다.
“그렇군요! 분명, 북방에는 과거 전쟁에서 풀렸던 무장이 남아 넘치지요!”
“하지만 한 번에 저 정도 수량을 취급할 정도로 규모를 지닌 상단이라면…?”
게다가 한두 개도 아니고.
무장을 저 정도 수량으로 거래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저 무장들은.”
연소현이 넌지시 대답을 해 주었다.
“북방에서 동가휴가 보내준 물건이라오.”
"동가휴라면…."
“분명히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가주들이 낯익은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이에서, 상가의 가주가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북방의 전쟁 대상(大商)?!"
그 별명을 듣자, 가주들이 그 이름을 즉각 기억해 냈다.
“피가 흐르는 강에서 금을 캐낸다는 그 대상단의 주인 말인가?!”
“북방에서 교전이 있는 곳마다, 반드시 그곳에 있다는 그 죽음의 상인?!”
“대공자님!”
북방과 관련된 상가의 가주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소현에게 외쳤다.
“북방의 전쟁 대상과 대량 거래를 할 정도로 인연이 있으신 겁니까?!”
그 말에 연소현이 피식 웃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가휴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낙양검가의 적손(嫡孫)이신, 대-공자님의 칩거가 끝난 것을 경축(慶祝)-드리며, 앞으로 부디 운수대통(運數大通)하시어-, 만수무강(萬 壽無疆)하시봅고-, 만사형통(萬事亨通)하시기를-, 기원하옵나이다-!”
간이고 쓸개고 전부 빼줄 것처럼 등장했었던 그자는, 현재 자신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상태나 다름없었다.
“아니. ’우구라이 부족'의 '아루쿠 타이'라 불러야 하나?”
연소현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방 땅에 도착한 동가휴는 즉시, 연소현의 명령대로 대량의 무장을 보내왔다.
“물론, 인연이 있으니 거래를 한것이지.”
연소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나는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오.”
"어허, 대단하시군요…!"
가주들이 수군거렸다.
“저 정도의 인원을 전원 중무장시키려면, 그 금액도 만만찮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겨우 만만찮다는 말로 표현할 정도가 아닙니다. 실로 막대한 금액이 필요하지요.”
“대공자에게 우리가 모르는 자금줄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숨겨진 후원인들이라도?”
그들의 말이 옳았다.
자금이 나가야 할 구석이 무수하게 존재하는 연소현에게, 저 정도 병력을 무장시키는 돈은 지극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저 무장들을 전부 무상으로 대여(貸與)했지.’
대여라지만, 실상은 강탈이다.
“역시.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실력은, 그저 소문 속 과장인것은 아니었군.”
“북방 전쟁 대상과의 인연이 있을 줄이야….”
다들 분위기를 살피며, 연소현의 수완에 슬그머니 감탄을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위기를 맞추는 것일 뿐.
모두가 현재 상황과 연소현의 자신감에 완전히 수긍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본 대공자는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갖추었다오. ”
연소현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동맹에서 그대들의 위치를 자각하시오. ”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의 말.
하지만.
'...이 정도로 승산을 완전히 확정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서씨 가문 데릴사위의 시선을 느낀 연소현이, 마치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자.”
연소현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될 모양이구려.”
연소현이 손을 들어 상류를 가리켰다.
제암진천경 - 1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