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편 동맹(同盟)
“큰형님.”
사공자 연비가 연소현에게 고했다.
“방금, 마차 행렬이 계곡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연소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새 동맹들이 오는구나.”
“구장들과 적대적인 그들 가문을 동시에 동맹으로 영입하여,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큰형님의 지략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만….”
연비가 조금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 가문은 기본적으로, 방금의 그 구장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시녀장 정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의복을 정리하던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의라고는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동맹으로 늘어가는 것은....“
사공자는 말을 줄였다.
여기서 더 이야기하는 것은, 큰 형님인 연소현의 의사에 반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연비. 너는 좋은 이들을 더욱 가까이하고, 그런 이들과 관계를 훌륭하게 구축해 나가는 것을 잘하지.”
연소현의 부드러운 시선, 그리고 난데없는 칭찬에 사공자가 뒷머리를 긁었다.
“…부족한 재주입니다만.”
“전혀 부족하지 않다.”
사공자의 수하들이 사공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단지 그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략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성품과 행동이, 그 자신과 수하들을 가족처럼 한데 묶는 재주와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연소현은 연비를 향한 자신의 시선만큼이나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했다.
“진정으로 큰일을 도모하려면, 그저 자신과 잘 맞는 이들, 훌륭한 이들만으로는 부족하단다.”
연비의 마음을 달래는 듯한 그 부드러운 어조와 별개로.
의복의 정리를 마친 연소현의 모습은 평소보다 한결 더 위엄이 흘렀다.
“…큰형님 말씀대로입니다.”
“네 말처럼 저들은, 이공자나 삼공자 측과 원한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우리와 아무런 접점이 없다.”
연소현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성향이 그리 악하지도, 큰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 많지도 않지만….”
연소현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들이 이공자와 삼공자에게 밉보여, 주류에서 밀려났기 때문일 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쁜짓도 별로 못 했다는 뜻.”
연비 또한 얼굴에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흔해 빠진 유형이지요.”
“그래.”
창밖을 내려다보며 연소현은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이 동맹에서, 저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연비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이 반짝였다.
“기선을 제압하시겠단 말씀이시 군요…!”
* * *
달리는 마차 안.
“가주 대행. 잠시 후, 죄악계곡에 위치한 대공자 측의 사업 본부에 도착할 것입니다.”
마부석에서 들려온 수하의 말에, 가주 대행이라 불린 여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제 곧….”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대신해서, 서(徐)씨 가문의 가주 대행의 신분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녀.
그녀의 나이는 삼십 대 초반에 불과해 보였다.
“무검자(無劍者).”
그녀의 앞에 앉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요즘, 낙양에서 세 발짝마다, 그 이름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이자, 최측근.
그리고 가문의 데릴사위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과장되기 마련이라지만. 그가 지금까지 이루어낸 것은, 객관적으로 접근해도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지요.”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턱을 쓰다 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는 과연 어떤 인물일지, 기대되는군요.”
“개인적인 호기심은 접어 두세요.”
그런 그를 향해, 가주 대행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우리에게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창밖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이 대공자가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점이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대공자는 자신의 동생들을 위한 보복 행위까지도, 외주를 주어야 했을 정도로 손이 부족한 상황이니 말이지요.”
그녀 자신보다도 어린 남편을 최측근으로 쓰는 것은, 이렇게 그가 이십 대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통찰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동맹은커녕, 우리의 요청에 대꾸도 없던 대공자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죄악계곡의 정리까지도 시도하다니….”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음이 급해 행동을 서두르게 되는건, 어린 나이 때문일까요.”
“가주 대행의 말씀대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지요. 단지.”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대공자는 현재, 자신에게 적대적이던 구장들을 회유해서 관병까지도 써먹어야 할 정도의 상황이고.”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그의 말을 받았다.
“우리, 서씨 가문이. 이 동맹 내의 다른 가문들보다 우위에 설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이지요.”
그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밖을 향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는 마차를 호위하며 달리는 기마대의 모습이 있었다.
그들은, 서씨 가문의 무장 철갑 기마대 였다.
“우리 서씨 가문은, 유서 깊은 군문(軍門) 이니까요.”
데릴사위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 대공자에게 가장 절실한 전투 전력을 우리 가문이 보유 중이지요.”
죄악계곡은 천연 요새.
암천존자라는 존재의 죄악계곡 청소 이후.
그곳에 자리 잡은 암흑가가 그리 뿌리를 깊이 내리지는 못했다지만, 마약 산업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그들의 세력은 강력했다.
“가문의 병력들에 소집령을 내려 두었으니. 날이 저물기 전에, 이 죄악계곡에 도착할 것입니다.”
대공자가 서두르듯이 청소의 시작을 선언했기에, 서씨 가문의 대처는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어차피 대공자도 포위망을 구축하고, 충분히 병력이 증원될 때까지 당장 움직이지 못할 테니 상관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대공자와의 동맹에서 조건의 우위(優位)는 우리 서씨 가문이 가져갈 것입니다.”
* * *
다른 가문의 마차 안.
"용병단의 소식은?!”
“아직입니다!”
차창(車窓) 밖으로 외치는 노인의 물음에, 옆에서 함께 말을 달리던 수하가 급히 답했다.
“혹시, 상인들을 습격하는 일에 고용했던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면-."
“그딴 놈들은 규모가 작아서 안 된단 말이다!”
노인이 역정을 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에 전쟁 임무가 수행 가능한 규모의 용병단이라고!”
그런 규모의 준비된 용병단이 낙양에서 쉽게 구해질 리가 있는가.
게다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용병을 찾는 상인들 덕분에, 지금 낙양에서 용병단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수하는 속으로 욕설을 하며, 노인에게 답했다.
“당장, 사람을 더 풀어 보겠습니다!”
“그게 안 되면. 어중이떠중이라도 여러 용병단을 고용해서, 머릿수라도 채울수 있게 하란 말이다!”
“예, 가주님!”
말을 돌려 멀어지는 수하의 모습에 노인도 다시 차창을 닫아걸었다.
“망할, 대공자.”
노인이 이를 부득 갈았다.
“갑자기 죄악계곡 정벌이라니.”
그의 일그러진 시선이 앞서 달리고 있는 서씨 가문의 마차를 향했다.
“이건 완전히 서씨 가문 놈들만 노가 난것 아닌가?”
군문인 서씨 가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아버지.”
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그의 아들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대공자가 벌인 일이라기엔, 너무 급작스럽지 않습니까? 아마도 자기 나름대로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준비야 당연히 했겠지!”
벼락처럼 터져 나오는 아버지의 호통에 그의 아들이 찔끔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준비를 해 봐야. 지금 대공자의 전력으로는 모자랄 것이 틀림없다는 점이란 말이다!”
그, 그래도 소문에 따르면, 그의 하녀단이 검가의 검대 하나 정도 전력이라고-.”
“어리석은 놈!”
그의 아들이 항변해 보았지만, 노인은 호통을 칠 뿐이었다.
“하녀단이라 해 봐야. 제대로 조직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들이다. 뭔가 그들이 제대로 증명한 것이 있긴 있더냐?”
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이름부터가 하녀들. 그저 내공에 재능이 있는 하녀들을 모은 집단일 뿐이다.”
노인이 보기에.
그것은 검가나 할 수 있는 사치 행위에 불과했다.
“원래, 대공자 측에서 제대로 된 전력이라 해 봐야 누가 있더냐?”
“사공자의 당가 출신의 병력이 그나마 정예로 추측됩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배치되어 있더냐?!”
“아, 아마도 그들은….”
그의 아들이 자신의 머릿속을 급히 뒤져 답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월각과 대선상회간의 마찰에 전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래, 이놈아! 내 말이 바로 그것이다.”
노인의 확신을 담은 목소리가 마차 안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순간에, 대공자에겐 제대로 된 병력이 없단 말이다!”
그가 애가 탄다는 듯이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지금만큼 대공자와의 동맹에서 우위를 점하기 좋은 순간이 또 없을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행렬에 있는 모든 가주들이 동일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가병(家兵)들이라도 일단 전부 끌어모으란 말이다!”
“용병단이 없어? 낙양 바닥이 안되면, 하남에서라도 끌어와야 할 것이 아니더냐?!”
“상관없어! 어차피 대공자도 충분한 병력을 모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야!”
그리고.
그들의 그런 생각은,
그들이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어서 오시오.”
전부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들 시간을 잘 맞추셨군.”
계곡의 거친 바람에.
자신의 흑잠사 외투를 펄럭이며, 낙양검가의 대공자 연소현이 그들을 두 손 벌려 환영했다.
“마침, 딱. 공격을 시작하려던 참이었소.”
"......!"
지금 공격을 한다니, 다들 말문이 막힌 순간에 서씨 가문의 젊은 가주 대행이 나섰다.
“대공자님!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해가 지기 전에 저희 서씨 가문의 병력이 도착을-.”
“필요 없소.”
연소현의 목소리는 밑도 끝도 없이 단호했다.
다른 가문의 가주가 나섰다.
“대공자. 관병들과 그대의 현 전력으로는 충분치 않을-.”
“아니.”
연소현이 다시 한번 말을 끊었다.
“이미 본 대공자는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갖추었다오.”
“그게 무슨-?”
가주들 중 누군가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그대로 묻혔다.
“하녀단 총원 전투준비 완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전술 기동으로 급속 이동한다!”
구르릉.
바퀴들이 구르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갑마차 행렬의 등장이었다.
장갑을 추가로 덧대고, 하녀단의 전원을 태울 수 있게 추가적인 수량마저 확보한 장갑마차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그 모습은 장갑'마차'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차(戰車)라 불러 마땅했다.
“하녀단은 일시에 적진을 관통하여 적들을 양분할 것이야!”
행렬의 중앙에 위치한 마차에 탄 노파 하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장갑을 믿고, 기동력을 믿어라!”
곽 노인
남만의 와룡이라 불리는 노파가 멀리서 자신과 눈이 마주친 연소현과 눈짓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하녀단 출진!"
장갑마차에 정신이 팔렸던 새 동맹의 가주들이, 연소현의 공력이 담긴 쩌렁쩌렁한 외침에 화들짝 놀랐다.
“충(忠)!”
누가, 검대는커녕.
제대로 된 전적도 없는, 애송이들의 집단이라고 했던가.
"......."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이 침음을 냈다.
'예상과는 천지 차이잖아?!’
하녀단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살기와 정련된 예기는, 검가의 어느 검대 못지않았다.
이들의 하녀단이란 이름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저들이 기대 이상으로 대단하긴 하지만….”
서씨 가문의 가주 대행 옆에 서 있던 그녀의 데릴사위 남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부인에게만 하는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장갑마차만으로 뚫기엔, 죄악계곡의 상류는 요새와 같습니다.”
몇몇, 군사적 조예가 있는 이들 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곳곳에 위치한 방어 거점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마치 그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전투 공병단! 위장막 제거!”
저편에서 목청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들은-?!”
계곡 하류 곳곳에서 거대한 위장막들이 걷혀 나갔다.
얼마 전 있었던 화재로 인해 불타 버린 흉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가려 놓은 것이라고 생각들 했지만.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줘라!”
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흉포한 전쟁 기계의 모습에, 새 동맹 가문의 인원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투, 투석기(投石機)라고?!”
낙양이라는 거대 도시 한복판이 아니라,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투석기들.
“일발 장전!”
그 모습에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투석기를 만들고, 운용하다니. 대공자는 대체 어디서 저런 인원들을… ”
연소현이 그 물음에 답하는 일은 없었다.
“첫, 한 방에 영점을 잡는다!”
투석기들을 지휘하는 이가 소리 를 높였다.
“못 따라오는 새끼들은 전부 취사반으로 보내 버리겠어!”
쩌렁쩌렁하게 계곡을 울리는 그 목소리, 거리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일 번 포반(砲班) 준비 완료!”
“이 번 포반 준비 완료!”
“삼 번 포반…!”
주르륵, 포반마다 깃발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발사!”
암석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연소현은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는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일별하고, 미소를 지었다.
“잘들 보시오.”
연소현 진형의 인물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전투가 개전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동맹에서 그대들의 위치를 자각하시오.”
연소현이 오연(傲然)한 미소로, 자신의 새 동맹 인원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