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48화 (248/350)

제23편 동상이몽(同床異夢)

죄악의 골짜기.

연소현 측 진영(陣營).

“전(全) 인원 전투 준비!”

“최소한의 인원만 남고, 전원 출전한다!”

“지휘부 인원들은 즉시 현 시각부로 지휘소로 집합!”

인원들이 바삐 뛰어다니는 가운데에서.

공담웅이 자신의 뒤통수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대공자께서 정말로 해내셨군.”

그의 옆에 함께하고 있던, 아미파의 사감 비구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관병들과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병들과 함께, 죄악계곡을 청소하게 되었군요.”

그녀가 짓고 있는 저 표정은, 아마도 공담웅 자신의 얼굴에 떠올라있는 표정과 같으리라.

“정말. 터무니가 없는 일들을 태연히 해내는 사람입니다, 연 대협은."

연소현이라면.

일이 어떻든 풀어내지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할 때만 해도,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막상.

실제로 눈앞에서 절대 풀어낼 수 없을 것 같던 일이 풀려 나가자, 느껴지는 감각은….

“짜릿하군.”

“짜릿하군요.”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이, 공 형제! 지금이 한가하게 연애질이나 할 때요?!”

전투준비를 서두르던 황호사협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감 사매(師妹)! 아무리 불가의 가르침에서 인연이 소중하다지만, 사매는 결혼하지 못하는 비구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집합 장소로 달려가던 아미파의 인원들에게서도 짓궂은 말이 날아왔다.

“시, 시끄럽소!”

“시, 시끄러워요!”

또다시 같은 말을 외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미소 지으며 두 손을 모아 보였다.

“무운(武運)을.”

“부디, 무운을.”

오후의 공기가 전장의 긴장감을 품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죄악의 골짜기 초입.

탄륭구-가효구,

연합 관병(官兵) 진영.

“전원! 자신의 앞에 있는 동료의 장비를 점검해 줘라!”

연소현의 진영과 마찬가지로, 전투를 준비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갑자기 죄악계곡의 암흑가를 친다고요?!”

후배 포쾌가 자신들이 타고 왔던 마차에서 추가적인 장비들을 착용하며 외쳤다.

“선배!”

주변이 워낙 소란스러워, 소리를 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능숙한 손길로 각반을 조이고, 자신의 창을 받아든 박 포쾌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구장들의 입장에서는. 칼을 빼 들었으니. 무라도 베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뭐라고요?!”

박 포쾌의 말은 호령 소리와 구령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말하기에는, 대단히 예민한 주제였다.

[병력까지 이렇게 대대적으로 동원한 뒤에, 그냥 맨손으로 물러났다가는 구장들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죄악계곡의 암흑가를 범인으로 만들어, 토벌한다는 겁니까?]

[아마도.]

후배 포쾌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들과 대공자가 무슨 거래를 어떻게 했기에…]

[그건 모르지.]

박 포쾌가 자신의 창날을 감싸고 있던 가죽을 벗기고 날을 점검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이때까지. 이 낙양에서 권력이 관련된 수사를 하면서. 그 속사정을 알게 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더냐?]

쇠뇌에 활줄을 걸던 후배 포쾌의 손이 멈췄다.

[…한 번도 없지요]

[진짜 제대로 된 권력자를 잡아 넣었던 적은?]

[.......]

그들이 판관도 아니고.

한낱 포쾌 주제에 무슨 권력자를 어떻게 제대로 상대해 봤겠는가.

"......."

박 포쾌가 시선을 돌려, 죄악계곡의 상류를 향했다.

오전에 날이 맑았던 것이 무색하게.

봄날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어느샌가 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 때문일까.

천연 요새.

계곡의 상류 지역에 낀 구름이, 자신의 눈에는 유난히 짙게 느껴졌다.

[...우리 같은 장기 말들의 시야에서는, 그저 눈앞의 적과 옆의 동료만이 보일 뿐이지.]

그가 창을 어깨에 걸치고, 갑주틈에 끼워 두었던 연초를 꺼내 물었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가 후배에게 다가가, 연초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오?!”

그러고는 낯빛이 어두운 후배에게 물려 주며,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암흑가 놈들과 진창에서 뒹구는 것이 우리 전문이 아니더냐?”

“그건, 그렇죠.”

연초를 문 후배가 피식 웃었다.

그때.

“우측으로! 중앙관청 치안 별관 소속 마차는 길 우측으로!”

길을 막고 있던 그들의 마차가 우측으로 빠졌고, 박 포쾌와 후배도 마차를 따라서 길의 우측으로 붙었다.

“이랴, 이랴!”

그들이 길 우측으로 붙기 무섭게, 마차들이 쏜살같이 그들을 스쳐 지났다.

“…이런 동네에는 절대 안 어울리는 마차들이군요.”

“그렇군.”

후배의 말에 박 포쾌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마차마다 형태도, 마부들의 의상도, 마차의 문양도 전부 달라.”

“각기 다른 가문 소유의 마차들인가 봅니다.”

그의 말처럼 그들을 스쳐 지나간 마차들은 각기 다른 가문의 소유였다.

“나름. 유력 가문들의 마차들인것 같은데….”

“대공자를 만나러들 가는 것일까요?”

“아마-.”

그들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중앙관청 치안 별관 소속 전 병력은 지금부터 계곡 중류까지 이동을 시작한다!”

가장 정예 병력이 선두에 선다.

들려오는 지시에 박 포쾌가 즉시, 수하 병졸들에게 외쳤다.

“자, 다들 들었겠지?!”

후배 포쾌도 짐짓 기세 좋게 외쳤다.

“자아, 다들 즐거워하는 행군 시작이다!”

그렇게, 그들은 중류의 연소현 측 전진기지까지 행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포쾌는.

방금 자신들을 지나친 마차들에 탄 이들이.

자신들을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던 '원흉(元兇)들'.

그러니까, 연소현과 동맹을 맺기위해서.

현재, 낙양을 피바다로 만들고 있는 의뢰를 넣은 장본인들이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 * *

근처.

안전한 장소에 임시로 확보된 건물.

“일단, 맨손으로 물러가는 대신에 뭐라도 건진 것은 다행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탄륭구와 가효구, 두 구의 구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관병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인데.”

“그렇지요.”

그들의 대화 내용에 시중을 들던 그들의 집사들이 속으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관병들의 피해를 걱정하다니.

드디어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인가?

“그놈들 하나하나 키우는 것이 다 돈인데, 아쉽습니다. 오늘 무더기로 죽어 나가면, 내년 예산이 걱정이군요.”

“뭐.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고, 결국에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어쩌겠습니까?”

개과천선이라니.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지요. 왜냐하면.”

가효구의 구장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음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대공자에게는 협력하고 있는 세력이 지극히 적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청씨 가문과 공씨 가문. 막강한 두 가문이지만….”

탄륭구의 구장 또한 가효구의 구장과 닮은 미소를 지었다.

“그 두 가문 모두, 현재 이공자 측의 동맹 가문들과 전쟁을 벌이느라 손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들리는 바에 따르면, 두 가문 모두 상당한 출혈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질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이것은 전쟁이었다.

이공자 측의 동맹 가문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으니, 쥐가 고양이를 무는 모양새로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구장 중에서 대공자에게 협력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인 것이지요.”

“위기를 기회로!”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저, 이공자 측의 등쌀에 대공자를 압박할 생각으로 왔지만.”

“오히려 손이 부족한 대공자와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두 사람이 기분 좋게 웃었다.

“비록, 안전을 담보받기 위해서….”

가효구의 구장이 손을 저어 주변의 사람을 전부 물렸다.

“안전을 담보받기 위해서라지만.”

그가 한층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선상회에서 받았던 금액의 절반이나 대공자에게 넘긴 것은 조금 아쉽군요.”

“하지만 그렇게 해야, 우리가 검가 내부 수사에서 걸리면, 대공자도 함께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들같이 영악한 자들이, 그저 대공자의 약속만 믿고 물러났을리가 없었다.

대공자에게 넘겨준 검은돈의 절반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그건 그렇지만….”

가효구의 구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워낙에 금액이 금액이다보니 말입니다.”

이공자 측이 최상위 관료인 그들에게 먹인 금액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 돈의 절반이 연소현에게 들어 간 것이다.

"으음."

탄륭구의 구장이 금액을 떠올리자, 아스라이 쓰린 속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생각은 그만합시다.”

“좋게, 좋게 생각해야겠지요.”

“그렇지요. 대신 우리는 현재 대공자가 유일하게 가용 가능한 동맹이 되는 것-.”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구장님!”

“지금, 중요한 대화 중인데. 이 무례한-!”

“즉시, 이것을 보셔야 합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수하가 그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이건….”

별것 아니라면, 곤장을 치리라고 마음먹은 탄륭구 구장의 얼굴이 쪽지를 읽어 나갈수록 굳어졌다.

“이건, 나와 적대적인 가문들의 명단이로군.”

쪽지를 넘겨받은 가효구의 구장 또한 명단을 읽고 인상을 썼다.

“그리고 내 가문과도 적대적인 가문들이군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가문들이 었다.

왜냐하면….

“이 가문들은 우리가 이공자와 삼공자의 청탁으로, 몇 번이나 행정적 불이익을 주었던 가문들이 아닙니까?”

탄륭구의 구장이 쪽지를 구겨 버리며 수하에게 물었다.

“대체 지금 이 명단을 급히 봐야 한다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방금."

수하가 마른침을 삼키고, 그에게 말했다.

“방금, 그 가문들의 마차가 일제히 죄악계곡을 방문했습니다.”

두 구장이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유는?!"

“임시 검문 지점에서 보고하기로는, 그들의 방문 목적은 '동맹'으로서, 검가의 대공자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동맹이라고?!”

동맹

대공자와 동맹이라니.

“…그, 그렇다면?!”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대공자나 사공자 측에서. 상인들을 습격한 이들을 직접 고용한 흔적은 없다고 했었지?”

수하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차 조사 결과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갑자기. 공씨 가문과 청 씨 가문 이외에, 알려진 동맹이 없던 대공자에게. 동맹이라는 가문들이 나타난다고?”

“그것도 이공자나 삼공자 측과 적대적인 가문들이?”

낙양 정치판에서 비상한 머리를 자랑하는 그들이.

지금 일이 돌아가는 방향을 눈치 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자들이, 그 가문들이…! 상인들을 도살한 이들을 고용한 원흉들이었구나!”

탄륭구의 구장이 혼자 손뼉을 쳤다.

“그랬어! 바로 그렇게 된 것이었어! 이보시오, 가효구의 구장!”

탄륭구의 구장이 자신의 추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가효구의 구장을 바라보았다.

“내 말 좀 들어 보시….”

그런데 가효구 구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식은땀까지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 이보시오. 가효구의 구장.

대체 무슨 일-.”

“우린 망했소.”

가효구의 구장이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탄륭구의 구장을 바라보았다.

“망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탄륭구의 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우리는 대공자의 동맹 중에 하나가 되기는 했-.”

그의 목소리가 멈췄다.

탄륭구의 구장 또한 깨달았기 때 문이었다.

“…우, 우리는.”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대공자와의 동맹이 제대로 시작 되기도 전에, 우리와 적대적인 이들과 무더기로 같은 동맹에 속하게 되었단 말인가?”

한 동맹 안에서도, 파벌은 존재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은 동맹에서.

최약체 파벌로 자동 등록된 순간이었다.

“…우린 망했군.”

그리고 그들이 꿈꾸던 황금빛 미래가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막대한 금액까지 바치면서.”

가효구의 구장이 넋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자살을 택한 것인가?”

탄륭구의 구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어째서인지.

그들의 귓가에 대공자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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