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47화 (247/350)

제22편 편복(蝙蝠)

죄악의 골짜기, 순찰 본부.

죄악계곡의 기괴하게 증축된 가옥 몇 채를 엮어 만든 건물은, 좋게 봐줘도 '본부'라고 거창하게 부르기는 좀 어려웠지만

그래도 솜씨 좋은 자애원의 장인들에 의해, 내부는 꽤 쾌적한 활동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다.

"......."

하지만 그런 쾌적한 환경에도, 순찰 본부 인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망루에서 계곡 초입을 내려다보던,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

황호사협이라 알려진 이들 중, 공씨 가문의 차기 후계자인 공담웅이었다.

“…이거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마치 햇빛을 반사하는 강물처럼, 멀리 무수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게, 전부 병력인가요?”

그에게 질문한 것은 그와 함께 망루에 올라있던, 아미파의 사감 비구니였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요 며칠간, 이 죄악계곡의 치안 유지를 위해 합을 맞춰 왔다.

“병력의 병장기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이지요.”

그들이 입고 있던 갑주는 한없이 어색하던 이전과는 달리, 이젠 몸에 딱 맞는 것처럼 보였다.

“…많군요.”

사감 비구니는 자신의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공담웅이 멀리서 눈을 떼지 않고 병력의 움직임을 살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들의 머릿수가 문제가 아니지요.”

“그렇죠.”

사감 비구니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

그녀가 한숨처럼 말했다.

“문제는 저들이, 마구 베어 넘겨도 상관없을 흑도들이 아니라-.”

공담웅이 말을 받았다.

“낙양의 정식 치안 병력이라는 점이지요.”

“관의 병력과 싸우게 되면….”

공담웅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감 비구니도 굳이 대답을 찾지 않았다.

어떻게 되어도 나쁜 결론이 나올 만한 이야기를 굳이 끝까지 할 필요는 없었으니.

"......."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두 사람은 불안한 침묵 속에서, 병력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것이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나마. 병력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인가.'

방어하기에도 용이하다.

계곡의 지형상, 전술적 이점은 그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관과 부딪치게 되면 여러모로 손해가 막심할 것이다.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최상책인데….'

그의 시선이 '대공자-사공자 합동 사업 본부'를 향했다.

“...구장들이 대공자님을 만나기 위해서 들어간지, 얼마나 되었죠?”

그의 시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본 사감 비구니의 물음에, 공담웅이 대답했다.

“이제 일각(一刻)쯤, 되었습니다.”

“…아직, 그것밖에 안 되었나요.”

초조함 속에서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공담웅과 사감 비구니의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은 단지, 오후의 햇살이 뜨겁기 때문은 아니었다.

'연 대협….'

공담웅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번에도 뭔가, 수가 있으시겠지요?’

그는 대공자를 향해 기대감을 품으면서도.

'나는 그저 이렇게, 연 대협께 기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가?’

한편으로는 답답함을 느꼈다.

상인들의 머리로 쌓인 탑.

아직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죄악의 골짜기.

격변 중인 낙양의 정계.

격화되고 있는 낙양검가의 후계자 간의 다툼.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없구나.'

근래 들어.

어떤 순간보다도 지금.

공담웅은 자신의 미력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쌓은 내공도, 공부(工夫)도 세파(世波)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구나.'

그의 머릿속에, 연소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세상에 의지할 것이, 남은 것이, 자신의 두 주먹밖에없는 이들에게 부끄러워해라. ”

그때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너희는 그들과 다른 훌륭한 배경을 타고 태어났지만, 그저 제 성질을 못 이겨 쉬운 길을 택한 낙오자들일뿐이니.”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것 같았다.

'나에게 그저 눈앞의 불의에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연소현의 말처럼 쉬운 길을 택한 것뿐.

'나는 두 주먹밖에 남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

황도십육가문 중 하나인 공씨 가문.

자신은 그런 공씨 가문의 차기 후계자 공담웅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할아버지를 찾아뵙자.'

그렇게.

낙양의 빈민가에 위치한 망루 위에서.

공담웅.

후에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길 인물이,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찢고 우화(羽化)를 시작하고 있었다.

* * *

“대공자.”

탄륭구의 구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이런 상황에서, 낙양검가의 대공자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어, 유감이라는 말을 하고 싶소이다.”

“그렇소이까?”

그 말에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병력을 물리면 되지 않겠소?”

"당연하지만, 불가하오.”

대답은 탄륭구의 구장과 함께 앉아 있던, 가효구의 구장에게서 나왔다.

“어째서 그렇소이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연소현의 시선을 피하며, 혀를 찼다.

“대공자. 그대는 일을 너무 거창히 벌이셨소. 고작해야 경제적 보복으로 끝내도 될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게다가, 조금이라도 더 숨기기 는커녕. 상인들의 머리로 탑을 쌓기까지 하면…."

탄륭구의 구장 또한 헛기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대공자께서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은 것이오.”

“그렇소이까?”

“그렇다고 하지 않았소?”

탄룡구의 구장이 짜증을 내다시피 대답을 했다가, 사공자의 묵묵한 시선을 받고 다시 헛기침을 했다.

“어흠…!”

그는 후딱 자신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대공자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 오는 위압감은 대화가 흘러갈수록 강해졌다.

"......."

게다가 아까부터, 무슨 심기가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아무 말이 없는, 사공자는 당장에라도 자신들을 전부 찢어 죽일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어린놈이 눈알은 무슨 살인귀를 보는 것 같군.'

아마도 직전에 여기 방문했다던, 내원총관과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

'그 검가의 노괴에게 한 방 먹은건가?’

그의 생각이 연결되기 전에, 연소현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본 대공자가 여러분께 어떤식으로 협조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오?”

가효구의 구장이 즉답했다.

“이 백주에 벌어진 대량 살상에 대한 수사에 전면적으로 협조하시오.”

탄륭구의 구장은 한술 더 떴다.

“혐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터이니, 순순히 자수한다면. 정상참작에 힘을 써보도록 하겠소.”

"......!"

자수라는 말에 사공자가 발작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를 제지하는 연소현의 손짓이 있었다.

“정상참작이라…."

나직하게 깔리는 목소리.

두 구장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하지만.

그들이 물러서는 법은 없었다.

호두 마을을 행정구역으로 두었던, 청학구의 구장.

그가 연소현의 행사를 방해하다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두드려 맞은 것은 알고 있었다.

이어서, 이씨 가문이 멸문한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낙양의 가장 힘있는 가문들이 대공자와 이공자를 대리해,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 또한.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행동은 지극히 중립적이며 또한 정당하다.'

두 구장이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이건 대공자 스스로 판 무덤이야.'

자신들은 낙양의 최고위 관료로서, 마땅하게 해야 할 일을 하고있다.

'우리 행동에는 절차상으로도, 명분상으로도, 정치 중립적으로도, 어떤 문제도 없어.'

그렇기에 그들은, 그 모든 압박속에서도 연소현에게 독니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아.'

두 사람이 독사와 같은 눈으로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쩔 것이냐, 대공자.'

순순히 협조하고, 극악한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정당한 공무 집행에 무력으로 저항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이름값을 똥통에 처박을 것이냐.

'선택해라.'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연소현이 자신의 뒷덜미를 주물렀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다는 표정과 행동.

두 구장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대공자를 잡았-!’

두 사람의 생각은 끝을 맺지 못했다.

“두 분이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을 하질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우리 쪽에서 먼저 솔직한 말을 꺼내야겠소.”

구장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솔직하지 않다니?"

“두 구장께서는, 백주에 벌어진 대량 살상때문이 아니라.”

대공자는 자신의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오?”

두 구장은 거의 동시에, 즉시 연소현의 말을 부정했다.

“생존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는 어디까지나, 공무를 집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연소현과 눈을 마주치자, 자신이 하려던 변명을 까먹었다.

호선(弓瓜線)을 그리는 연소현의 눈매는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어째서인지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험험.”

애써서 말을 이어 나가려던 그들의 노력은 다음에 이어진 연소현의 말에 의해서, 완전히 끝났다.

“두 구장께서, 대선상회에서 받았던 '검은돈' 때문에 찾아왔다는 것을....“

연소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본 대공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오.”

"......!”

"......!"

두 구장이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연소현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이공자 측에서, 본 대공자를 잡으라 넣었던 압박이, 그대들에게 통할수 있는 것도...."

이제 뱀과 같은 시선이 된 것은 연소현 쪽이고, 구장들 쪽은 구렁이 앞의 쥐새끼가 되었다.

“전부 그대들이 그동안 대선상회로부터 검은돈을 받아 왔기 때문이 아니오?”

두 구장이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갑자기, 그건 대체-!”

“마, 말도 안 되는-!”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연소현은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제 할 말을 꺼냈다.

“대선상회가 급히 자금을 이동중이라는 것은 알고들 계시겠지. 그런데 지금 곧. 본가의 내원과 중앙감찰각이 대선상회를 급습할 것 이라오.”

"......!"

'역시, 내원총관이 대공자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나?!’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뭐, 그대들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그 얼굴들을 감상하며, 연소현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약, 그래도 말이오. 만에 하나라도 그대들에게 짚이는 구석이 있다면….”

연소현이 마귀처럼 속삭였다.

“급습 이후에 있을 대대적인 수사에서, 내가 그대들의 이름을 빼줄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

두 구장이 석상처럼 굳었다.

"......."

연소현 또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압박은, 상대의 반감(反感)을 형성할 뿐이니까.

그는 그저.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자신의 찻잔에서 올라오는 차향을 음미할뿐.

두 구장은 검은돈을 받은 사실을 계속 부정하고 싶었다.

만약, 연소현에게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떠보지 않았을 테니까.

“…대공자.”

하지만.

“대공자께선 무엇을 원하시오?”

그들에게 연소현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했다.

* * *

두 구장이 떠난 자리.

“큰형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사공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소제(小弟). 옆에서 지켜보아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연소현을 바라보는 사공자의 눈에는 진한 의문이 깃들어 있었다.

“큰형님께서는 내원과 중앙감찰각의 대선상회 급습이 실패하리라고 여기는 것입니까?”

연소현은 의뭉스럽게 되물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느냐?”

연비가 강한 어조로 외쳤다.

“아니라면, 큰형님께서 저딴 탐관오리(貪官汚吏)들에게 수사에서 제외해 주겠다는 거래를 하실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연소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선상회에 대한 급습은 성공할것이다.”

“그럼…?”

“하지만.”

연소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있을 수사가 실패할 것이야.”

“수사가 실패한다고요…?”

“그래."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사공자가 입을 작게 벌렸다.

“저들은 어차피 없었을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 나와 거래를 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

"......."

멍하게 있던 사공자가 순간적으로 번뜩인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혹시 그렇다면. 내원에 흔쾌히 공을 넘기기로 하셨던 것도...?!”

그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결국에 수사가 실패로 끝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에, 연소현이 물었다.

“음? 뭐라고 했느냐?”

사공자가 멍한 얼굴로 연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큰형님께서는 어떻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수사의 결과까지도 알고 계신 겁니까?”

그것은 이미, 예측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었다.

“정말로 큰형님께서는, 소문처럼 미래를 읽어 내시기라도 하는 겁니까?”

대붕에게는 지평선을 넘어, 미래의 모습까지도 보이는가?

그것은 예측보다는 예지(豫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미래를 읽는다고?”

연소현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으냐?”

“그렇다면 어떻게…?”

“가끔은 말이다.”

연소현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보다, 원하는 미래가 이루어지도록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 * *

죄악의 골짜기, 초입.

“다들, 전투를 준비해라!”

구장들에게서 명령을 받은 관병의 지휘관이 외치자, 모두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검가의 대공자를 공격한다고?”

“X발, 말도 안 되는 짓을…!”

곳곳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하지만 지휘관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검가의 대공자 측과 협력하여, 죄악의 골짜기에 자리 잡은 암흑가 놈들을 모조리 소탕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왜 갑자기, 암흑가를 친단 말인가?

“구장들께서 직접 알아보신 결과!”

모두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지휘관이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있었던 상인들에 대한 공격은 전부, 죄악계곡의 암흑가 놈들이 사주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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