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45화 (245/350)

제20편 대선상회(大仙商會)

사람의 머리가 쌓여 만들어진 탑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전혀 복식이 통일되지 않은 인부들이 수레나 지게 따위로 머리를 실어 오면, 사공자 측 무사들이 그것을 계속해서 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박 포쾌의 물음에, 사공자 측 인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 머리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누군가가 어째서 우리에게 머리를 보내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는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오히려, 막 관청에 신고를 하려던 참인데. 먼저 알고 오셨구려. 잘 되었습니다. 수사를 좀 해주시지요.”

"......."

순간 박 포쾌의 말문이 막혔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능청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럼 이렇게 탑을 쌓고 있는 이유는…?”

박 포쾌는 탑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으려 하며 물었다.

“그거야, 물론.”

그에게 대답을 해주는 사공자 측 무사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수사를 돕기 위해서, 증거품들을 한데 모아 놓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 미소는 박 포쾌를, 그리고 공권력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것만같았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박 포쾌는 후배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모르겠다는 건가?”

“물론입죠.”

그곳에서는 어디선가 머리를 가져오는 인부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지던 후배 포쾌의 모습이 있었다.

“저희는 그저 지정된 장소에서 '물건'을 여기로 옮기라는 의뢰를 받은 것뿐입니다요.”

“의뢰주는?”

“그런 건 모릅니다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럼 의뢰 완수 이후, 돈은 어떻게 받는가?”

“이 머리가 들어 있던 수레가 제 임금입니다요.”

"......."

딱 보아도 빈민 출신의 일꾼들.

이들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자들이었다.

이미 잘린 머리를 나르는 정도는 이들에게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리라.

“…알겠네.”

일꾼들을 보내 주고, 박 포쾌의 방향을 바라본 후배 포쾌가 어깨를 으쓱였다.

[선배. 조금이라도 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낙양검가의 대공자나 사공자 정도 되는 이들의 수하들이, 일에 허점 같은 것을 남겨 둘 리가 없었으니.

[우리는 할 만큼 했다. 물러가자.]

[옙!]

후배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래…, 뭐. 이 정도면.'

윗선에서 내려온 수사 지시를 수행하는 시늉은 했다.

더 이상은 사양이었다.

대충 일을 마무리한 그들이 물러 나려던 차에, 한편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아직도 안 된단 말이오?!”

짐짓 고성을 내지르는 이는 복식만 봐도, 딱 고위 관료였다.

“대공자님이든 사공자님이든, 상관없다 하지 않았소?!”

구장들이 대공자나 사공자를 만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책 수립이 끝났거나, 아니면 드디어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배후가 압력을 더 크게 행사했을지도 모르지.’

박 포쾌가 뒤에서 비웃고 있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위 관료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정말 어떻게 좀 안 되겠소?"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간청을 하다시피 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그를 상대하는 사공자 측 인물도 난감한 기색이었다.

“그대가 구장들을 납득시킬 정도의 합당한 이유가 필요한 것이라면…."

현관 방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위 관료의 고개가 그쪽을 향했다.

“제가 주도록 하지요.”

한 무리의 인원이 따르고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본 고위 관료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낙양 고위 관료가 저들의 복식을 몰라볼 수는 없었다.

“검가의 내원?!”

고위 관료의 시선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자의 허리께를 향했다.

'일곱 개의 금술...!'

그가 기억 속에, 일치하는 외모적 특징이 있었다.

“…내원의 총관비서 되시는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마른침을 삼킨 고위 관료에게, 내원의 총관비서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구장들께서도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고, 설득하실수 있겠지요?”

고위 관료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믄요!”

물론이었다.

총관의 비서가 여기 있다는 말은, 곧

'그 내원총관이 이곳에 있다…!’

-는 말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고위 관료는 '어째서 검가의 내원이 여기에?!’ 따위의 말은 하지않았다.

그렇다고,

'내원총관께서 이곳에 계신 겁니까?!’

같은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낙양검가의 내원이란 곳은,

그런 곳이었고.

낙양검가의 내원총관이란 인물은,

그런 인물이었으니까.

그 내원총관이란 자는, 젊은 시절 자신이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검가의 내원총관이었고.

그가 늙어서 고위 관료가 된 지금도 여전히 검가의 내원총관이었다.

* * *

고위 관료가 황급히 내리막을 달리는 것을 창으로 지켜본 사공자 연비가 입을 열었다.

“내원총관께서는, 본인이 이곳에 계신 것을 굳이 감출 생각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이 노부가 무엇이 꺼릴 것이 있어, 이곳에 있다는 것을 감출 필요가 있겠소?”

내원총관이 느긋하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오히려, 노부와의 만남을 감추고 싶은 쪽은 대공자 쪽일 터인데?”

그 말은 연소현이 현재 뒤에서 어떤 일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내가 진행 중인 일이라니? 나도 모르는 일을 내가 진행할 수가 있겠소?”

연소현이 짐짓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았지만.

“헛소리는 그만하시오, 대공자.”

검가의 노괴 앞에서 그런 것이 통할리가 없다는 것은, 연소현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낙양의 모두가, 그대의 격노를 느끼고 있지만. 이 노부를 속일 수는 없다오.”

"......!"

그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의 사공자가 황급히 자신의 표정을 숨기며,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큰형님?!’

연소현의 눈이 불쾌하다는 듯이 찡그려졌다.

“…동생들을 위한 내 분노의 진실성에 의심을 표하는 것인가?”

“아니.”

실내를 휘감아 조이는 듯한 연소현의 압박에도, 꼿꼿한 자세로 앉은 내원총관에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 분노는 진실이겠지. 하지만….”

깊은 곳에서 번뜩이는 내원총관의 눈빛이 연소현의 눈빛과 맞부딪 쳤다.

“이 노부는 그대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대를 지켜보았소.”

내원총관의 눈빛이 더욱 깊어지며, 일순 연소현의 시선을 꿰뚫는 듯했다.

“어릴 적부터 그랬지. 그대는 하나의 이유만을 위해서, 한 번 움직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내원총관의 목소리가 그의 눈빛처럼, 덩달아 깊어졌다.

“그 가슴으로는 순수한 듯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 머리는 사람의 머릿속을 파헤치듯 읽어내고, 눈으로는 천 리 너머를 바라보며, 입으로는 미래를 떠들었지.”

내원총관의 말에, 사공자가 침음을 꾹 하고 삼켰다.

“오른손이 앞을 가리키면, 왼손은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오른팔이 한없이 자애롭게 사람들을 보살피면, 왼손은 한없이 무자비하게 적들을 도살했지.”

연소현이 자신의 본질을 후벼 파는 내원총관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내원총관의 입술이 달싹이며, 연소현의 노림수를 꿰뚫었다.

“대선상회 (大仙商會).”

대선상회는 이공자의 대외 정보 기관의 이름이었다.

"......."

연소현이 잠시 침묵한 사이, 내 원총관이 말을 이었다.

“그대는 지금, 이 난리를 틈타서. 뒤에서 틀림없이 대선상회를 정조준하고 있겠지.”

“…다 알고 오신 것 같으니.”

연소현이 침묵을 끝냈다.

“나도 쓸데없이 부정해서 서로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하겠소. 게다가….”

연소현은 의자에 편히 뒤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본인 또한, 내원총관께서 친히 이렇게 와주셔서 대선상회의 약점이 노출되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질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오.”

내원총관도 시퍼런 눈빛을 거두었다.

“역시, 대공자. 말이 잘 통해서 좋소이다.”

사공자가 손을 들었다.

“자, 잠시만요!”

지금 이곳에서 자신만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이 두 사람은, 천재로 불리는 사공자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를 생략해가며 나누고 있었으니.

“분명. 큰형님께서는 지금 이 모든 사태가 이공자 측이 벌인 눈속임이라고 하셨었지요.”

그리고 연소현은 내원총관의 등장으로, 이 일이 눈속임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두 분의 말씀으로 미뤄 볼 때, 이공자 측이 눈속임으로 가리고 싶은것이.”

소년은 영특한 머리로, 자신들만 이해하는 방식으로 말을 이어 나가던 두 사람의 대화에서 상황을 유추해 냈다.

“그 대선상회의 노출된 약점이라는 것입니까?”

“그렇소, 사공자. 대선상회는 단순한 정보조직이 아니라오.”

사공자를 바라보는 내원총관의 시선은 대공자를 볼 때보다는, 조금 더 호의적이었다.

“이공자 측은, 아니. 정확히는.”

노인은 짚고 있던 지팡이를 흔들어 보였다.

“구양 태상부인은 과거로부터, 대선상회를 통해. 비밀리에 낙양검가의 자금을 세탁해서 막대한 금액을 외부로 유용해 왔소.”

"......!"

대공자가 말을 덧붙였다.

“정확히는 아버지께서 쓰러지신 다음부터 였지.”

“아니…!”

사공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원총관께서는 원래, 일이 그것이지만. 큰형님께서는 어떻게 그 사실을…?”

말을 하던 도중 사공자가 스스로 깨달았다.

“검가전장…!”

그가 탄성처럼, 비명처럼 소리를 쳤다.

“큰형님께서 검가전장에서 얻으셨다는 장부!”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 정도로 막대한 금액이 나올 곳은 오직 검가전장밖에 없으니까.”

사공자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그럼 큰형님께서 검가전장을 방문하셨던 이유가…!”

표면상으로는 연씨 혈족의 비위나, 그곳을 방문하고 있었던 이공자 측 동맹 가문들의 발을 묶는 것 따위의 다른 이유들이 있었지만.

“대선상회로 빠져나갔던 그 막대한 자금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군요!”

“그렇지.”

사공자의 머릿속에서 일들이 하나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부패한 연씨 혈족들이 굳이 그 시점에 이공자 측이 주최한 모임에 참석하기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도…!”

“검가전장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빼돌린 것이 이공자 측이었으니까. 그 모임의 이유는 나를 공격하는 것보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었다.”

“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요! 큰형님께서 삼공자 측을 전선으로 되돌리셔서, 이공자 측이 더 이상 구심점이 될 수 없었으니까!”

“이공자 측은 부패한 연씨 혈족과의 연계에 실패하자, 더욱 초조해졌지.”

“그리고 연씨 혈족들이 낙양 밖으로 검은돈을 빼돌리기 시작했고-."

이번에 사공자의 말을 받은 것은, 내원총관이었다.

“게다가 연씨 혈족들이 빼돌리던 자금이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약탈을 당하기까지 했소.”

정체불명, 이라고 말하는 내원총관의 시선이 연소현을 향했지만.

“이제, 중앙감찰각이 수사해야 할 부패한 연씨 혈족들의 자금이 사라졌으니, 다음 수사 대상이 될것이 뻔한. 대선상회도 더 버틸 수가 없어진 것이지.”

연소현은 태연히 시선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래서였군요!”

사공자가 손뼉을 쳤다.

“삼공자 측의 추적이 좌절된 이후에도 낙양이 봉쇄되지 않았던 이유!”

자신의 큰형님은 지금의 공격이 눈속임일 가능성이 육할이라고 했었다.

“그래. 아마도, 이공자 측이 손을 써서, 이 난리 통에도 낙양이 봉쇄되지 않게 하고 있었던 것이라.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봉쇄된다면, 대선상회의 자금또한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로군요!”

그렇기에 육 할의 가능성.

내원총관이 이 자리에 와서 확신을 심어 준 순간, 그 가능성이 십할이 되었다.

현재 대선상회는 검가에서 횡령했던 막대한 자금을 외부로 빼돌리려 하고 있었다.

누가 찾으려 해도 감히 찾을 수 없는 그 금액.

하지만, 연씨 혈족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그 금액을 그들 스스로가 움직이고 있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인 것이다.

“중앙감찰각은 지금까지. 여기저기 수사를 할 것처럼 연기를 피워 댔지만, 지금까지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는 않고 있었지요!”

그것은 대선상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한 정확한 시점에 대선 상회를 치는데, 온전히 중앙감찰각 전체의 힘을 집중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검가전장에 방문하셨던 그때부터 이미, 큰형님은 적들의 머리! 구양 태상부인의 약점을 노리고 계셨던 것이로군요!”

연소현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고,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검가전장의 방문? 아니라오. 사공자.”

그 말에 사공자 연비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연소현의 사고(思考)를 비슷한 속도로 따라 갈 수 있는 인물.

연소현을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었던 인물.

내원총관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을 것이오.”

연소현이 수수께끼를 낸 사람처럼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원총관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라고 생각하시오?”

내원총관이 대답했다.

“북망산에 방문했을 때부터.”

그가 천천히 느릿하게, 하지만 확신을 담아 말을 이었다.

“황도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은 명실상부하게 중원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기도 하지. 그들이 예술품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라오. 그리고 예술품 시장은-.”

사공자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자금 세탁!”

내원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품 시장은 대선상회의 대표적인 자금 세탁 수단 중 하나라오.”

사실.

황도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과 연소현이 접촉하는 그 순간부터.

연소현의 대선상회에 대한 압박 계획은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였던것이다.

연소현이 황도십육가문을 방문한 것이, 단지 그 이유에서만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 이유 또한, 있었다는 말이었다.

“...하."

사공자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큰형님은….”

“아니군.”

그때 연소현의 표정이 의뭉스러운 그대로,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을 바라보던 내원총관이 말을 바꾸었다.

“북망산을 방문했을 때부터가 아니었어.”

“…예?"

내원총관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표정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감탄.

혹은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황도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과 연합하려는 대공자의 계획이, 그들을 방문하는 시점에 시작되었을리가 없지.”

그 말에 연소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그 미소를 보며, 내원총관의 표정이 조금씩 더 크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필시, 그들을 방문했을 시점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계획이 시작되어야만 했겠지.”

연소현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하나의 의도 안에 또 다른 의도가 있고

하나의 노림수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고

하나의 안배 곁에 또 다른 안배가 있다.

“그렇다면….”

그 미소에 내원총관이 추측에 확신을 얻었다.

“…처음부터였군.”

마침내.

연소현이 웃었다.

“정답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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