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편 눈속임 (Misdirection)
“관군에서 파견한 제독(除毒) 부대가 도착했습니다!”
“당장 정문 개방해!”
관병들이 반색하며, 거대한 정문을 열어젖혔다.
낙양 중앙 관청의 치안별관에 한 무리의 인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제독 부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그들은 전부, 온몸을 알 수 없는 소재로 감싼 것도 모자라서, 얼굴까지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군의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 날이 올 줄이야.”
관병 하나가 중얼거리자, 나머지 관병들이 누구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
관군과 관병의 사이가 좋을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치안별관의 인원들은 도움이 된다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 시각부로, 치안별관은 완전히 통제된다.”
지휘권도 없는 제독 부대 지휘관의 명령에, 얼른 관병들이 접근 금지를 의미하는 붉은 끈으로 치안별관 주변을 두르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 *
군의 제독 부대가 독에 의해서 죽어 나자빠진 늙은 상인의 시신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제독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
“에, 에취…!”
후배 포쾌가 흠뻑 젖은 채, 기침을 하고는 제독 부대의 간부에게 투덜거렸다.
“제독수(除毒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지독하게 차가운 것이오?”
제독수는 중원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일백(一白) 가지에 이르는 독에 대한 제독 작용을 하는 특수한 용액이 었다.
“제독수가 차가운 것이 싫으면.”
제독 부대의 간부가 그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차갑게 대꾸했다.
“다음부터는 그냥 독에 노출된 채로 살면 되겠지.”
“…것참, 까칠하구먼. 그냥 한번, 물어본 것뿐이지 않소?”
무슨 독에 중독됐을지도 모른 채로 살 수는 없잖은가.
후배 포쾌는 비치되어 있던 천으로 대충 몸을 닦고, 상자에 천을 던져 넣었다.
그러자마자, 제독 부대의 병사 하나가 다가와서 상자째로, 가져가 버렸다.
그가 입고 있던 옷가지와 들고있던 소지품들과 마찬가지로, 소각을 하러 가는 것이리라.
“…뭔, X발. 역병 환자라도 된 기분이군.”
그는 찝찝함을 중얼거리며, 임시 천막의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먼저 나온 자신의 선배 포쾌와 제독 부대의 지휘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혈독(血毒) 말입니까?”
“그렇소.”
선배 포쾌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당문도 아니고 본가인 당가의?”
“시신의 상태를 보아하니,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소. 물론 단정 지으려면, 조사가 끝나야겠지만.”
제독 부대의 지휘관이 충고하듯 말을 더했다.
“지금 낙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라면 당장 손을 뗄 것이라오.”
"......."
피독면(避毒面)의 유리알 너머에서 차가운 시선이 선배 포쾌를 향하고 있었다.
“이번엔 딱 한 명만을 죽이는 혈독이었지만. 다음번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오.”
지휘관의 걸음이 멀어지자, 후배가 조심스럽게 선배 포쾌에게 다가갔다.
“…당가의 혈독이라니. 이거 진짜로, 대공자가 이 난리에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낙양에서 당가의 독이라면.
누구나 낙양검가의 사공자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공자는 현재.
대공자와 함께하고 있었다.
“당가의 혈독….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군.”
선배 포쾌는 품을 뒤져 연초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그의 연초함은 입고 있었던 의복들과 함께 소각된 지 오래였다.
“…죽고 싶지 않으면, 관여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겠지요.”
후배 포쾌가 설마 하는 눈으로, 선배를 바라보았다.
“설마, 선배. 이런 일에 수사를 한답시고 머리를 들이밀지는 않으시겠지요?”
선배가 피식 웃었다.
“네가 평소에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자살하고 싶었으면 마누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났을 때 자살했겠지.”
그가 중앙 관청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최상부에서도,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명령이 내려올 것이야.”
평소에 권력자들의 문제라면,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치안관청의 우두머리들이었다.
“물론, 그 명령은 비공식적인 경로로 내려오겠-.”
“박(朴) 포쾌!”
아니나 다를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상관인 포두가 급한 걸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예, 예. 말씀하지 않으셔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박 씨 성을 쓰는 선배 포쾌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검가의 대공자가 있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고-.”
“박 포쾌, 자네. 제정신이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예?”
그의 직속상관인 포두가 딱딱한 낯빛으로 말했다.
“낙양의 백주에, 다른 곳도 아니고 치안별관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는 말일세.”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두 포쾌에게 포두가 말했다.
“그런데 그 유력 용의자를 조사 하지도 않는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그러니까, 지금.”
박 포쾌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확인했다.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사를 하라고요?”
“그래. 지금 당장, 자네들은 수사 본부에 합류해서 대공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 이미 수사본부는 구성해 두었으니까!”
"......."
그의 직속상관은 미친놈을 보는 듯한 수하의 시선을 꿋꿋이 무시하며 끝까지 제 할 말을 마쳤다.
“이건 치안총감님의 명령이야!”
제 할 말만 마치고, 멀어지는 포두의 뒷모습을 보며, 후배 포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확실한 건."
박 포쾌가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가 모르는 저 위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연초가 미치도록 마려웠다.
* * *
반 시진 후.
죄악의 골짜기 초입(初入) 부근.
“…정말로 상층부가 단체로 미쳤나 보군.”
완전무장한 박 포쾌가 장갑마차에서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엄청난 병력….”
따라 마차에서 내려선 후배 포쾌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탄륭구와 가효구의 치안 병력을 전부 끌어모은 수준인데요?”
그의 말에는 한 치의 과장도 없었다.
“이건 수사의 수준이 아닌데…?”
죄악계곡 초입은 정렬하고 있는 병력으로,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으니까.
“…상층부는 대공자와 정말, 전면전이라도 벌일 생각인 것일까요?”
낙양에서?
낙양검가의 대공자와?
겨우 관병들을 데리고 전면전이라고?
그것도 혐의만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막상 병력들이 모이는 것을 보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확인해 봐야겠지.”
박 포쾌가 한쪽에 모여 있는 지휘부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곧, 모여 있는 이들의 외곽에서 아는 얼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박 포쾌!”
그를 발견한 중년인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짐짓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도 이 단체 자살 모임에 참여하러 왔나?”
“…단 표두님.”
박 포쾌는 자신의 옛 상관에게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겨우 수사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이 병력들은 다 뭐고요? 정말, 상부가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겁니까?”
이 정도 병력이라면, 죄악계곡을 행정 구역으로 두고 있는 탄륭구와 가효구의 전 병력이라 할 만했고.
현재 낙양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력 충돌을 생각하면.
“치안 유지는 아예 포기하기로 한 겁니까?”
목소리가 조금 높았는지.
주변인들이 그들 방향으로 시선을 보냈다.
“에이,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자네 부인이 떠난 이야기나 좀 하지.”
“무슨…?!”
[입 다물고 따라오게.]
단 표두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
[지금 여기엔 탄륭구와 가효구의 구장들까지 직접 와 있다네]
[구장들까지 직접 말입니까?!]
그들은 현재 낙양의 총 행정 책임자인 낙양부지사의 바로 아래에 있는 최고위직들이었다.
[그래. 뭔진 몰라도, 지금 일이 엄청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같다.]
[…그 구장들이 정말로 대공자와 무력 충돌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당연하지.]
단 표두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구장들은 아마도. 뭔가 '청탁'을 받고, 대공자에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다]
박 포쾌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구장쯤이나 되는 이들이, 누구의 청탁을 받았다는 겁니까?]
[당연히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 하지만 청탁을 넣은 이가.]
단 표두가 확신을 담아 전음을 전했다.
[이 낙양 땅에서 낙양검가의 대공자를 겁내지 않는 이라는 것만은 확실하지.]
[…환장하겠군요]
[동감일세]
자신들은 지금 무슨 일에 말려들 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박 포쾌가 자신의 이마를 감싸쥐고 물었다.
[그 구장들은 지금 대공자를 만나고 있는 겁니까?]
단 표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째서요?]
[구장들은 겁을 집어먹고, 자기들끼리 회의한다고 어딘가에 처박혀있는 중이야.]
[여기까지 와서요? 이 병력들까지 전부 모아 놓은 다음에 겁을 먹었다고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단 표두가 손을 들어 계곡의 위쪽을 가리켰다.
[자네가 직접 보면, 이유를 알게 될 걸세.]
잠시 후.
"......!"
병력들을 지나쳐, 계곡의 입구에 오른 박 포쾌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머리끝이 쭈뼛하고 섰다.
“이, 이런 미친…?”
그는 왜 구장들이 겁을 먹었는지, 단번에 납득했다.
납득 못 할 수가 없었다.
계곡으로 오르는 길목 한가운데.
"......."
탑이 있었다.
그것은 낙양 각지에서 배송되어, 높게 쌓여 가고 있는 수급(首級)들의 탑이었다.
어림잡아도,
백은 훌쩍 넘는 머리통들이었다.
”...우읍!”
그는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봄날의 햇볕 아래서.
꼬여 든 수천 마리의 파리들이 왱왱거리고,
머리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진득하게 말라붙어 가고 있었으며,
따스한 날씨에 실시간으로 부패하고 있는 시체 썩는 냄새는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 * *
사공자 연비가 뒷짐을 지고, 창밖으로 인두(人頭)의 탑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탑을 쌓으라 명한 것은 자신이었다.
"......."
뒷짐을 진 그의 손에는 머리끈이 들려 있었다.
연다은과 연다혜.
두 쌍둥이 누님들이 자신의 머리를 묶을 때 썼었던 그 머리끈 두가닥이었다.
“…이걸로 두 구장의 움직임은 묶어 두었습니다만.”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이공자' 측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닦달할 테니까요.”
그의 몸이 돌아 실내를 향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큰형님을 바라보았다.
"큰형님께서 저들을 그저 잠시 묶어 두기만 원하신 것은, 전부 이유가 있어서겠지요.”
“그래.”
봄날 오후의 태양은 밝았고.
밖을 내다보던 연비의 눈에 실내의 그림자 속에 앉아 있는 연소현의 모습은 마치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큰형님께서는….”
연비가 잠시 말을 아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누님들을 공격한 배후와 구장들과 낙양 치안총감을 움직인 배후에, 이공자 측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래.”
“하지만, 저것이 이공자 측의 주공(主攻)이 아니라는 것도 확신하시고요?”
“그래."
사공자가 연소현의 생각을 짐작해서 말했다.
“어차피 누님들을 공격한 이들은 전부 박살이 날 테니, 이공자 측은 그들과 한 약속을 애초부터 지킬 필요도 없었겠지요.”
“그렇지.”
“그들은 버림 패였군요.”
“그래.”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밖에 있는 구장들과 마찬가지로.”
사공자, 연비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최고위층까지도 버림 패로 써서 눈속임을 걸 정도로 이공자 측이 숨기려는 것이 있단 겁니까?”
“그래.”
“큰형님께서는, 어떻게 저들의 수를 확신하시는지요?”
“원래는 저들의 공격이 눈속임일 확률이 육(六) 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연소현이 천천히 손에 깍지를 껴, 자신의 턱을 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자신과 마주 앉아 있는 이를 향했다.
“이 인물이 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이상.”
연비의 시선이 연소현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이제 확률은 십(十) 할이다.”
노인
마치 겨울철을 견디지 못하고 고사한 묘목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앙상한 노인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노인의 눈빛만큼은 시퍼렇게 살아 있어, 끔찍한 위화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연소현이 노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소?”
그 미소에는 호의라고는 한 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내원총관(內院總管).”
내원을 통솔하는 이.
전전 대 가주와 전대 가주를 모두 모셨던 인물.
전대 가주의 가장 충실한 종.
검가에서 가장 두려운 흑막(黑幕).
내원총관이 연소현을 향해 씹어 먹을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소. 대공자.”
서로 살기 한 줌 없었지만.
"......."
사공자 연비는 숨 막힐 듯한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내원총관과 대공자.
그 두 사람이 드디어 자신의 눈앞에서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