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43화 (243/350)

제18편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낙양의 어느 뒷골목.

“머리통들은 제대로 숨겨 두었습니다!”

상인들의 수급(首級)은 의뢰인과 미리 약속했던, 버려진 창고에 보관되었다.

이로써 의뢰는 훌륭히 마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이쪽으로! 서둘러라!”

강화 상인 연합을 급습해 그들을 도살하다시피 한 용병단이 철수를 서둘렀다.

“이때까지 내가 준 돈은 전부 술처마시는 데 썼냐?! 왜 이리 힘이 없어?! X 빠지게 달리라니까!”

골목의 중간에 서서 방향을 지시한 이후, 후미에서 수하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 용병대장이었다.

“대장님…!”

그런 그녀를 향해, 수하 하나가 접근해 그녀와 함께 달리며 물었다.

“정말로 우리가 이 개판을 만들고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것 맞습니까?!”

용병대장이 대답 대신 달리면서 위를 쳐다보곤 일갈(一喝)했다.

“이 새끼들이…! 뭐가 볼 게 있다고 구경질이냐?! 눈알 뽑히고 싶어?!”

살기등등한 목소리.

“히, 히익…!”

골목의 건물들에서 그들을 흘금거리며 내려다보던 주민들이 후다닥 창문을 닫아걸었다.

“대장! 목격자가 너무 많습니다…!”

수하가 우려를 표했다.

기본적으로 남의 일에 지독하게 무관심한 낙양의 주민들이지만, 제보 현상금이 달리면 이야기가 달랐다.

치안 관청에서 수사 나온 이들에게, 없는 이야기까지도 지어내서 전부 고하리라.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용병대장은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녀에게도 확신이랄 만한 것은 없었다.

“지하대수로 입구 발견!”

수하의 보고가 들리자마자, 그녀가 외쳤다.

“당장, 전부 기어들어가!”

창살로 된 출입구를 수하들이 미리 준비해 온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혹시 모를 추격을 지연시키는 사이.

그녀는 숨을 헐떡이는 수하들을 지나쳐, 수로의 안쪽으로 향했다.

“호오…! 딱 시간 맞춰 도착하셨소이다!”

거기에는 유등을 든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용병대장은 거칠어진 숨결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계약할 때 큰소리친 대로, 낙양밖으로 우리 용병단을 빼내 줄 수 있는 것이 맞겠지?”

“물론이라오!”

중년 남자가 껄껄 웃으며,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낙양, 아니. 중원국 최초, 최고의 탈출 전문가들의 집단! 이 활로(活路) 상단만 믿으시오!”

다름 아니라, 그는.

이른 새벽에 낙양의 봄 협사들을 탈출시켰던, 바로 그 활로 상단의 전 대표였다.

“의심스럽군….”

용병단장의 부관이 칼자루를 쥐며 앞으로 나섰다.

“지하대수로로 빠져나가려는 것인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어이쿠, 아니라오!”

중년 남자, 활로 상단의 전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유등을 든 그가 손을 내젓자, 그림자들이 어지럽게 춤을 췄다.

“평소에도 지하대수로는 끔찍한 곳인데, 지금은 길을 잃어버린 '사냥개들'까지 안에서 배회하고 있습니다. 지금 들어가면 열이면 열은 다 죽게 될 것이오!”

“사냥개들…?”

설마 그 사냥개들이, 과거 무림맹의 탐랑(貪狼)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용병단이었다.

“우리는 지하대수로의 '얕은 심도(深度) 통로'를 잠시 거쳐서….”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외쳤다.

“성문으로 걸어 나갈 겁니다!”

“걸어 나간다고…?”

대번에 모두의 시선이 의심스러워지자, 활로 상단의 전 대표가 자신의 가슴을 쳤다.

“걱정일랑 접어 두시고, 놀랄 준비나 하시오!”

그가 익살맞게 눈을 찡긋했다.

“이전 고객님이 그랬는데, 우리 상단의 솜씨가 마치 술법과 같다더군!”

* * *

낙양 중앙 관청,

치안별관(治安別官).

“가효구에서 사건 발생! 병력 지원 요청입니다!”

“우리도 남는 병력이 없다고 전해!”

중앙 치안 관청이라고도 불리는 별관 건물은, 현재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머리! 내 머리 가져가지 마! 돌려 달라고! X발 새끼들아!”

웃통을 벗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남자가 자신을 끌고 가는 관병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머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는 증거품이다! 압수해!”

포쾌의 호령에 관병 하나가 싫은 표정으로 가죽 포대를 압수했다.

“이런 X같은 놈들! 그게 얼마짜리 머리인지 너희가 알아?!”

가죽 포대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가 웬 작은 상인 가문을 급습해 잘라 낸 상인의 머리통이 그 가죽 포대에 들어 있었다.

“…미친놈.”

포쾌가 끌려가면서도 사방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놈을 보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욕설은 비단, 그자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좋은 말 할 때, 이 손 놔라!”

“대가리가 박살 나고 싶어?! 덤벼 이 X새끼들아!”

한쪽에서는 현장에서 잡혀온 용병들이 집기들을 집어 들고, 관병들과 대치 중이었다.

“응급 환자 발생!”

다른 쪽에서는 청부업자 하나가 다른 청부업자를 의자로 때려죽였다.

“퉷”

그녀가 시신에 침을 뱉고는 피투성이가 된 의자를 집어 던졌다.

“X새끼…. 내가 먼저 노린 머리통에 찝쩍거린 대가다.”

곧 그녀는 달려든 관병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미쳐 돌아가는군.”

평소에 원한 관계가 있는 이들이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선배.”

후배 포쾌가 그에게 다가왔다.

“벌써 이게 몇 건째 사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신고가 들어와도 출동할 병력도 없어요.”

후배 포쾌가 고개를 내저었다.

“연초 한 대 태울 시간도 없습니다. 죽겠어요.”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진이 전부 빠져 버린 표정이었다.

“암살단 소속 암살자를 상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

나머지 암살단은 전부 현장에서 도주해 버렸다.

운이 나쁘게 부상을 입어, 무리에서 버려진 암살자 하나만을 겨우 체포했었다.

“그놈들은 아주 독종이라니까.”

선배 포쾌가 연초를 꺼내 물며, 킬킬거렸다.

“어휴. 아주 말도 마시죠.”

후배 포쾌가 선배가 내밀어 준 연초를 물며 고개를 내저었다.

“뭔 짓을 해도, 무슨 입을 꿰맨 것처럼 꿈쩍도 하질 않습니다. 처음엔 혀가 없는 줄 알고 입을 강제로 열어 봤다니까요?”

입안에서는 숨겨 둔 암기만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이 참수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로군.”

“체포된 놈들 중에 제대로 입을여는 놈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후배 포쾌가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누구랄 것 없이. 애초에 돈만 보고 움직이는 놈들이니. 이유 따윈 알지도 못할 겁니다.”

선배 포쾌가 사무실을 밝히던 등불을 이용해 연초에 불을 붙이곤, 한숨을 쉬듯 연기를 뿜었다.

“이 정신 나간 상황에, 낙양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어.”

다른 이들이 들을까.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낙양검가의 후계자를 대리한 유력 가문들의 전쟁에서도 끄떡없던, 낙양의 번화가에 행인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하더군.”

“…상인들이 앞다투어 용병이나 낭인 무사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평소에 이 정도 규모의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지면 낙양을 통째로 봉쇄하고도 남았을 터인데.

낙양검가의 눈치를 보는 고위 관료들이 지나치게 뜸을 들이고 있었다.

뭔가 어젯밤부터 이른 오전까지 걸쳐 있었던 일의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는데, 한낱 포쾌들이 그 내막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낙양 부지사는 지금쯤, 사라져 버린 지사를 엄청 욕하고 있겠군요.”

선배 포쾌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욕하기 전에. 자리에 없는 지사를 부러워하고 있을 거다.”

선배 포쾌가 건네준 연초로 자신의 연초에 불을 붙이려고, 후배 포쾌가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이는 순간.

“제발 도와주시오!”

현관에서 화려한 비단옷의 노인이 외쳤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그는 아예 버선발이었다.

“대공자가…!”

대공자라고? 무슨 대공자?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노인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다시 한번 외쳤다.

“검가의 대공자가 내 목을 노리고 있소!”

그 말에.

한 모금도 빨지 못한 연초가 후배 포쾌의 입에서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 * *

“질문에 얼마든지 답해 주리다. 하지만 그 전에 신변 보호를 확답해 주시오.”

“지금 신변 보호를 받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니, 안심하고 말씀하시죠.”

비단옷의 노인을 앞에 앉힌 선배 포쾌가 그에게 물었다.

“검가의 대공자라니.”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먼저, 방금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확인했다.

“'그 낙양검가'의 대공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의 목소리는 충분히 낮고 작았다.

낙양검가든 대공자든.

누군가에게 들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이름이었으니.

“그렇소.”

비단옷의 노인이 불안한 듯 충혈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낙양검가의 '그 대공자' 말이오.”

그 대답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상한데요…?”

후배 포쾌가 인상을 쓰며, 옆에서 팔짱을 꼈다.

“그 대공….”

그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표현을 바꾸었다.

“그 인물이라면, 요즘 한창 주변이 시끄럽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이가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을 뒤에서 조종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우리도 그런 줄로 알았지.”

비단옷의 노인이 한숨을 쉬며, 떨리는 양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아니었어. 그자는 완전히 미치광이였다오.”

“도대체….”

선배 포쾌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왜 그 대공자가 사람들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겁니까?”

“전부, 우리가 오만했기 때문이라오. 우리가 너무 오만했어.”

노인이 다리를 덜덜 떨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우리는 용의 역린을 건드리고만 것이야. 사실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죠.

처음으로 확보한 증인이었다.

게다가 낙양검가의 대공자가 관련되었다면,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뭐, 사실.

낙양이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 피바다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 사냥당하는 사람들이, 그 대공자에게 무슨 일을 했던 겁니까?”

노인의 초점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 미치광이 대공자에게 한 짓이 아니오.”

그 눈에 비친 포쾌들의 모습도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동생들이자 동맹인 삼공녀와 사공녀의 상회를 노린 일이었지.”

“삼, 사공녀의 상회요? 검가의 삼, 사공녀?”

“그렇소.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됐냐 하면….”

노인은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지금 현 상황이 벌어지게 된 까닭을 포쾌들에게 설명하는 것에는 간신히 성공했다.

“적대적 상행위에 이 정도의 보복을 가한다고요?”

하지만 납득을 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후배 포쾌가 고개를 흔들었다.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질 않는-.”

비단옷의 노인이 빼액하고 소리 를 질렀다.

“그래서, 내가 미치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따르면….”

선배 포쾌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이 난장(亂場)으로 습격을 벌이고 있는 용병단과 암살단, 전문 청부업자와 일용 청부사들이….”

그의 눈살이 크게 찌푸려졌다.

“전부 대공자의 사주(使嗾)를 받은 자들이라는 겁니까?”

“당연히 아니지!”

후배 포쾌가 불만을 토했다.

“아까는 그 인물의 짓이라더니, 그럼 대체 뭡니까?”

“아이고, 부처님…!”

포쾌들이 따라오질 못하자, 노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 마귀 같은 미치광이 대공자가 직접 손을 더럽힐 것 같은가?! 당연히 대신해서 손을 더럽힐 다른 자들이 있는 것이지!”

“다른 자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노인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나도 모르지!”

뻘겋게 충혈되어 있던 노인의 눈은 한층 더 시뻘게지고 있었다.

“특정 집단일 수도 있고, 어떤 가문들일 수도 있지. 아니면 유력 인사들일 수도 있고…!”

일개 포쾌들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사건이었다.

"......."

후배 포쾌는 뒷짐을 지고, 한숨을 쉬었고.

선배 포쾌는 연초를 물고, 서류들 속에 묻혀 있던 문방사우를 끌어당겼다.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그럼 먼저 제대로 된 조서를 작성하시죠.”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상황이 지금 조서 따위를 쓴다고 뭔가 해결될 것 같은가?!”

이제 노인의 눈은 충혈되다 못해,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고, 얼굴마저 벌겋게 달아올랐다.

“상대는 그 대공자야! 자네들이 뭔 수를 쓸 수조차 없다는 말이야!”

노인이 연신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니 괜한 헛짓은 하지 말고, 나의 신변에 대한 보호나 제대로....”

노인이 잠시 휘청였다.

“보호나 제대로….”

포쾌들의 눈이 커졌다.

“어어? 어르신?”

후배 포쾌가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선배 포쾌가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쿨럭…!”

얼굴마저 완전히 시뻘게진 노인이 그 자리에서 피를 한 사발 토했다.

시커멓게 죽은 피였다.

“아니, 이게 무슨…?”

노인의 다리가 풀리고, 자신이 토한 죽은피에 머리를 처박았다.

“결국. 분노한 용(龍)에게서 벗어 날 수 없었던 것인가….”

그것이 노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은 노인의 입에서 꾸역꾸역 시커먼 피가 흘러나왔다.

“…독(毒)!”

후배 포쾌가 기겁을 하며, 얼굴을 가렸다.

“처음부터 안색이 이상하더니.”

선배 포쾌가 자리에서 물러나서 이를 악물었다.

“…이미, 중독이 된 상태로 들어왔던 것인가?”

그때, 관병 하나가 급히 현관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탄륭구에서 사건 발생! 상단이 고용한 호위 용병단과 정체 모를 무력 집단 간에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선배 포쾌가 연초를 바닥에 던졌다.

“X발, X 같은 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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