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편 격노(激怒)
“대공자께서 동맹이 되고 싶은 가문들에게 그들 전부의 목을 베어오라 시키셨다고요?”
사공자의 최측근, 책사 당예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삼 사공녀님의 상회에 대한 공격은 낙양 상계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이루어졌다고 들었는데요?”
사공자, 연비가 짧게 되물었다.
“그래서?”
사공자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수하들에게까지 이렇게 냉정한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라니요?”
당예린의 표정이 더욱 떫어졌다.
그녀가 항변하듯 말했다.
“아시다시피, 방해 공작정도는 상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희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많고요.”
그녀는 자신이 그 사공자에게 이렇게 기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삼 사공녀의 상회가 아예 망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상계의 싸움에 '그런 식'으로 대응하면, 낙양 땅 곳곳에 피바다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녀가 강하게 말했다.
“주군과 대공자님. 두 분의 이름에 악명이 더해질 것이란 말입니다! 이공자와 삼공자처럼요!”
사공자가 미소 지었다.
“그런 식이라….”
그 미소에는 보통 미소를 구성하는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것은 감정을 흉내 내는 가면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의 큰형님처럼.
“큰형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런 식이다. 물론 나 또한 원하는 바이기도 하고.”
"......."
그 낯선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예린은 다시 한번 쓴소리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주군.”
젊은 당예린이 더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나이 든 노파가 끼어들었다.
당예린과 마찬가지로, 사공자의 최측근이자, 남만의 와룡(臥龍)이라 불렸던 곽 노인이었다.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곽 노인은 고개를 깊숙하게 숙여보였다.
그런 노파에게 연비가 말했다.
“결과를 내가 직접 살피고 큰형님께 직접 보고드릴 것이니,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진행하라.”
* * *
곽 노인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한 당예린은, 노파에게 외쳤다.
“이건, 멍청한 짓이에요! 적들에게 우리의 역린(逆鱗)을 알아서 드러내 주는 것과 같단 말입니다!”
그저 경제적인 방해 공작 정도에 이 정도의 과한 대응을 한다?
그것은 적들에게, 삼 사공녀가 그들의 약점이 맞는다는 것을 친절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역린이라.”
노파의 시선이 젊은 책사를 향했다.
혈기가 올라 있던 당예린이 그 깊은 시선을 받고,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世難)에 나오는 말이지. 상황에 맞는 정확한 표현이었네.”
노파의 말투는 조곤조곤했다.
“자네 정도 되는 책사라면, 틀림없이 그 역린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겠지?”
“물론이죠.”
당예린이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투로 답했다.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된 비늘이 있는데, 만일 누군가 비늘을 건드리면….”
거기까지 말하던 그녀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 입을 닫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곽 노인이 그녀가 하던 말을 대신 끝맺음해 주었다.
“만일 누군가 그 비늘을 건드리면, 용(龍)은 반드시 그자를 죽이게 되지.”
당예린이 자신의 이마를 쥐었다.
“방금. 그 역린을 건드리고 있던 것은, 바로 저였군요….”
그녀가 길게 침음하는 소리를 들으며, 곽 노인이 말했다.
“흔히 역린을 용의 약점이라고 여기지만, 다들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이 있네.”
“…그게 뭐죠?”
곽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은 급소를 찔리면 죽지만, 용의 역린은 건드린 자가 죽는다는 것이지.”
"......"
당예린이 침묵했다.
곽 노인이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밖을 가리켰다.
“오전부터, 주군의 집무실 앞에 길게 서 있던 자들을 보았겠지?”
"…예."
“그 두 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있는 이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짓이야. 겁을 상실한 짓거리처럼 보이기도 하지.”
노파의 어조는 여전히 조곤조곤 했다.
“이렇게 보면. 아직, 낙양의 많은 이들이. 주군과 대공자님. 그 두 형제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네.”
노파의 시선이 오전의 햇살이 평화롭게 비치는 창밖을 향했다.
“이번 일로, 모두가 알게 될 거야.”
곽 노인의 말은 그렇게 끝났지만, 당예린은 생략된 뒷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약점이라 생각하고, 삼 사공녀를 건드린 이들은 모두 파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 형제는 급소라는 약점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용이라는 의미가 되지.'
* * *
낙양, 어느 상회의 회의실.
강화(江華) 상인 연합.
이른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상회 건물의 안쪽에 위치한 그 회의실에는 마치 연회라도 벌이듯, 술과 음식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한 상인이 약간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삼 사공녀의 상회를 건든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별일 없겠지요?”
그 자리에는 많은 상인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 전부가 이번 일에 가담한 상인들이었다.
“별일이라.”
다른 상인들이 낄낄거리며 그를 비웃었다.
“별일이야 있겠지요.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있겠소?”
“간덩이 작은 것하고는….”
“그러니, 그대의 상단이 매년 제 자리인 것이 아니오?”
그들의 비웃음에 처음 우려를 표했던 이가 얼굴을 붉혔다.
“아니, 대공자가 며칠간 무슨 일을 벌였는지. 그대들도 보지 않았소?”
그 말에 그를 비웃던 이들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견고하게만 보이던 유력 가문인 이씨 일가(一家)가 하루아침에 산산이 붕괴했고, 그들의 재산은 전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낙양검가의 후계자들을 대리한 유력 가문들의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었다.
“분명 보았지.”
풍채 좋은 상인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말려들면, 우리 강화 상인 연합이 똘똘 뭉친다 해도, 물에 젖은 화선지가 찢어지듯 찢어지게 될 것이오.”
자신의 불안을 공감해 주는 이가 하나라도 생기자, 처음에 불안을 표했던 이가 반색했다.
“그, 그렇지 않소? 그러니 지금 이라도-.”
“하지만.”
풍채 좋은 상인이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애초에 그들과 우리는 경우가 다르오.”
그 말에 나머지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들 가문은 사실상 후계자들을 대리하여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고, 우리는 그저 상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 않소?”
다른 상인이 히죽하고 미소 지으며, 그 말을 거들었다.
“우리는 그저 하씨 가문 낙양 상회의 차(茶) 시장 점유율을 먹으려고 하는 것뿐이지.”
그것이 그들이 내건 대외적인 이유였다.
다른 상인도 그 히죽거리는 미소를 공유했다.
“겨우 이 정도 수준의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상회를 처분하고 있는 것은 저쪽이 아니오?”
상인 하나가 괜히 정색했다.
“겨우 그 정도 당했다고, 상회를 처분하다니.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럽구려.”
“…그건 그렇지만. 저들은 낙양 검가의 공녀들이지 않소?”
“그래서 검가의 이공자 측에서 내부의 반발을 눌러 주기로 약조를 하지 않았소?”
그랬다.
그들의 뒤에는 이공자 측이 있었다.
“그러니 걱정은 이 정도만 하는 것이 좋겠소.”
풍채 좋은 상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오.”
다른 상인들도 적당히 하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만일 대공자가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이공자와 삼공자 측과 대립하는 이 와중에 우리까지 어떻게 할 힘이 부족할 것이오.”
“것참. 전부 미리 나누었던 대화가 아니오?”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리는 자도 있었다.
“돌아올 것이라고 해봐야, 상계에서의 보복 행위가 전부일 것인데.”
“그걸 공동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우리 연합의 상인들이 더욱 하나로 뭉쳐야 하지.”
“게다가 이 일에 동참한 것은 우리 연합뿐만이 아니잖소!”
“우리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풍채 좋은 상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이 정도 건드렸다고, 이 많은 이들에게 무슨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으면.”
그의 웃음은 넉살 좋기만 했다.
“이 낙양 상계는 이미 피바다가 되었을 겁니다.”
다른 상인 하나가 벌떡 일어나, 술잔을 들었다.
“자! 그러지 말고, 우리 연합의 결성을 축하하기 위해서 다 같이 한 잔을 드는 것이 좋겠소!”
“옳소!”
다들 흥에 겨워 서로 잔을 채워주고 있는 사이, 불안함을 토로했던 상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바깥 공기라도 좀 마셔야겠소.”
그는 핀잔을 주는 이들을 피해,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호화로운 정원에 펼쳐진 풍경이 흔들리던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큰일이 있어 봤자,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회의 전각 밖에서 경계를 서던 상회의 경비조가 그를 보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경계 중, 아무 이상 없습니다.”
상인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품에서 연초를 꺼내 물며, 속으로 방금 들었던 풍채 좋은 상인의 말을 되뇌었다.
'그래. 내 생각이 지나쳤던 게야.'
이 정도 일로 무슨 큰일이 벌어 질 것 같았으면.
이 낙양 상계는 이미 피바다가 되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품을 뒤지던 그가 난색을 표했다.
“ 으음?”
경비조의 조장이 다가와 그에게 불씨가 든 통을 내밀었다.
유사시를 대비해 들고 다니던 불씨 통이었다.
“불이 필요하십니까?”
“아아, 고맙네.”
경비조장이 미소를 지었다.
“별것 아닙니-.”
그의 말은 끝이 나지 못했다.
"......!"
경비조장은 머리가 화살에 꿰뚫린 채, 천천히 모로 고꾸라졌다.
그와 가까이 서 있던 상인은 얼굴에 경비조장의 피를 묻힌 채, 물고 있던 연초를 떨어뜨렸다.
“뭐, 뭐…?”
백주(白晝)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기습-!”
평범한 상인이 머리로 눈앞의 일을 이해하려 할 때, 경비들이 잇따라 쓰러졌다.
“컥!"
“허억…!”
그들의 머리와 가슴팍에는 누구랄 것 없이 피에 젖은 화살이 돋아나 있었다.
상인이 물고 있던 담배가 바닥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어느새 정원에 제 발로 서 있는 것은 상인뿐이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쇠뇌를 든 무리가 담을 넘어 정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무장 상태로 볼 때나, 솜씨로 볼 때나, 이름난 용병단이 분명했다.
"......."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손을 내 젓자, 단원들이 단박에 창호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했다.
“누, 누구냐?!”
“어어?!”
처음에는 당황한 목소리들이, 곧 비명으로 바뀌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 제발 살려 주시오!”
“거기 누구 없느냐?!”
그 비명들과 집기들이 부서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용병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멍청히 서 있는 상인에게 다가왔다.
“흐음.”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연초를 집어 들어 코에 대고 그 향을 음미했다.
“좋은 연초를 피우는군.”
상인이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외쳤다.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이러시오?!”
용병단장이 그 연초를 입에 물고 어깨를 으쓱였다.
“용병단이 의뢰 때문에 움직이지, 무슨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
몇몇 상인들이 밖으로 도망치려다가 붙잡혀서 목이 뎅겅 베였다.
누군가가 뿜은 더운 피가 창호지에 길게 흩뿌려졌다.
“한낱 용병단이 낙양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무사할 것 같소?! 낙양은 강남 같은 무법 지역이 아니오!"
“그래, 그렇지.”
그녀는 대충 대답하며 바닥에 떨어진 불씨 통을 주워 들고 연초에 불을 붙였다.
상인은 발작하듯이 외쳤다.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관리들이 아니더라도, 이런 대량 살상을 그저 넘어갈 관리들은 이 낙양에 없소!”
용병단장이 그를 향해 연기를 길게 뿜고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하지만?”
그녀가 킬킬 웃었다.
“지금 이 순간 피바다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니라고 들어서 말이지. 다들 X나게 바빠서 일일이 신경도 쓰지 못할걸?”
“피바다가 한둘이 아니라고?”
무언가 눈치챈 듯.
상인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표정이 걸렸다.
“서, 설마…?!”
“나한테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말해 봤자 소용없어.”
용병단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는 의뢰받은 대로, 일을 처리할 뿐이니까.”
그때 그녀의 수하 용병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 없이, 그들은 허리께에 잘린 머리통을 하나둘씩 걸고 있었다.
“대장님! 이쪽은 일 끝났습니다!”
용병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쪽도 이제 끝나 간다.”
상인이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이제 끝나 간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머리통이 잘려 나갔다. 그의 머리를 집어, 대충 수하에게 던져 준 용병단장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이제 끝났다.”
* * *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낙양 곳곳에 이곳처럼, 피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