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편 활로(活路)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 무리의 인원들이 가도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짐을 가득 실은 마차에 지게를 진 일꾼들.
횃불이나 등불 따위를 들고 가벼 운 무장을 한 경비 병력까지.
어떻게 보아도, 낙양 근교(近郊)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의 상단 행렬이었다.
"으음."
허름한 옷을 걸친 이가 초조한 듯, 자신의 옆구리에 찬 손도끼를 만지작거리며 행수(行首)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렇게 훤히 불까지 밝히고 가도를 걷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시오?]
그와 마찬가지로, 상행(商行)의 경비 병력이나 일꾼 따위로 위장한 동료 협사들이 불안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적들의 추적에 따라잡힐 것이오]
신나는 강도단 역할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추적을 피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 마지막 난관이었다.
[차라리 우리끼리 어둠을 틈타 숲과 산을 통과하는 것이….]
가만히 전음을 듣던 행수가 말위에서 협사들을 돌아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미 늦었소.”
[늦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행수가 고삐를 한 손으로 쥐고 머리 위를 가리켰다.
“다들, 아까부터 머리 위로 전서구와 전서응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소?”
그러자 그때야 하늘을 확인한 협사들이 침음을 삼켰다.
“…으음.”
초조함에 시야가 좁아진 탓이었을까.
이제야 일반적인 새들과 다르게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허공을 날아 지나는 몇몇 새들을 관측할 수 있었다.
[…엄청난 수로군]
잠깐 올려다본 것만으로도 몇 마리나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사방에 소식이 들어갔다는 말과 같았다.
“이제, 다들 아시겠지?”
행수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흘렸다.
“어차피 지금, 그대들이 어떤 경로로,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든, 이미 저들은 대비하고 그대들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
협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황의 불리함을 깨달았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불안한 침묵이었다.
“다들 제대로 죽상을 하고 계시는군.”
그런 협사들의 반응에 행수가 껄껄 하고 웃었다.
“저랬던 얼굴들이 탈출 이후에 활짝 펴지는 것을 보는 게, 바로 이 직업의 묘미지.”
그런 태연한 행수의 모습은 어딘가 비범한 구석이 존재했다.
[이 상단 행렬에 합류하라는 명을 받고 합류하기는 했지만…]
손도끼의 협사는 전음을 관두었다.
애초에 행수부터가 전음 따위는 쓰지도 않고 있었으니.
“대체 그대의 상단의 정체가 무엇이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상단이지만, 태연하게 비밀 이야기를 일꾼들이나 호위 병력 앞에서 하는 행수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한 이들이나.
안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구석이 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이 상단의 이름은 활로(活路), 활로 상단이오.”
행수가 협사들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주 불운한 처지에 놓여 오도가도 못하는 이들을 돕는 전문 상단이지.”
그 말에 협사들의 얼굴에 황당한 표정이 걸렸다.
“…별 신기한 상단도 다 있군.”
“낙양에서 지금까지 별의별 직업을 다 보았지만. 탈출을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개인 활동가는 보았어도, 상단 규모로 이 일을 하는 조직은 처음이군.”
“대단하지 않소?”
그들의 말에 행수가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우리가 이 거대 도시 낙양에서도 최초로 이런 시도를 했소이다. 나름의 자랑거리라오. 후후.”
그는 그렇게 자랑을 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런 시도를 한 것이 우리가 처음이다 보니. 아직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아, 신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까. 생각보다 장사가 되지 않아 파산할 뻔했었다오.”
신용도를 팍팍 깎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행수가 직접 손님들에게 하는 것은, 신용도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괜찮다오!”
손도끼 협사의 혼잣말에 행수가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망해 봐야, 대표가 혼자 뒤집어쓰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것이 전부니까.”
실제로 연소현의 회귀 전 역사에서 그들, 활로 상단은 한 번 제대로 망했었다.
남은 이들이 다시 한번 투자금을 모아 도약에 성공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
행수는 뭐가 그리 웃긴지, 혼자 껄껄 웃었다.
“게다가 이번에 친절한 투자가분들을 만나, 지분의 과반수를 사주셔서, 그분들께서 상단의 새 주인이 되셨으니, 일이 아주 잘 풀렸소.”
“아하.”
이제 협사들도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눈치를 챘다.
“다선랑이 이 상단의 새 주인이었군.”
“그렇소이다!”
행수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금도 탄탄하니, 직원들의 임금이 체불될 걱정은 끝났소. 게다가….”
말을 하려던 행수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다선랑의 뒤에 낙양검가의 대공자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세상에는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하는 것이 있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것도 있지.’
수다를 좋아하는 것과 달리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아무튼."
그가 입을 싹 닦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연씨 혈족과 검가의 삼공자 측에서 펼친 수색망을 돌파하면, 우리 상단의 평가도 쭉쭉 올라갈 것이오.”
그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이 활로 상단은, 앞으로 업계를 선도하는 아주 전도유망한 상단이 될 거요!”
“…잘됐으면 좋겠구려.”
행수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대자, 협사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나름대로 침착함을 되찾은 모습이 었다.
'됐군.'
그 모습에 행수는 가는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불안한 고객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그들이 사고를 쳐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은, 이 바닥에서 가장 흔히 있는 실패 사유였으니까.
[이대로 가도를 통과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관문(關門)이 되겠군.]
[힘으로는 통과가 절대 불가능하니까요.]
침착함을 되찾은 협사들이 자기들끼리 전음을 주고받았다.
[...저 행수를 믿어 보는 수밖에 없겠군.]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자였지만.
그들의 대형이 아무 이유없이 자신들을 이 활로라는 웃긴 이름의 상단에 맡길리가 없었다.
[관문이 보이오]
선두를 맡은 협사의 전음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원시 천존이시여….]
* * *
잠시 후.
“자, 다 끝났소.”
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라?'
손도끼 협사가 뒤를 돌아봤다.
분명히 방금까지 철벽처럼 느껴지던 그 관문이.
이제 그들의 뒤, 저 멀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협사들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이렇게 쉽게 통과한다고?’
평소보다 수배는 많아 보이는 관문의 경비병들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았었다.
바삐 오고 가던 기마 순찰대도 그들을 무시했었다.
“여기서부터는 하남성의 권역이오.”
협사들이 가져가야 할 노획물들을 따로 뺄 것을 지시하던 행수가 협사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들 그러고 계시오?”
손도끼 협사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대체 무슨 술법을 사용한 것이오?”
그의 말에 행수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술법이라니, 내 얼굴에 금칠을 제대로 해주시는구려. 하지만 이건 주술 같은 것이 아니라오.”
그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저 위에서 압력을 행사하여도, 아래에서는 아래 나름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그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흔들어 보였다.
흔히, 금전을 의미하는 동작이었다.
“병력을 두 배를 보강하든, 열 배를 보강하든. 그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당연히 그곳에는 절실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지.”
행수가 말문이 막힌 협사들을 향해 는을 찡긋해 보였다.
“거대한 포위망에서 빠져나갈 신묘한 방법을 찾는 것보다는, 이렇게 사람의 사이에서 구멍을 찾는것이 훨씬 간단하다오.”
"......."
협사들은 순간 그의 말에서 현기(玄機)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가벼움 속에 비범함을 감추고 있는 인물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대단하시군.”
늙수그레한 협사가 행수에게 물었다.
“그저 행수나 하기에는 대단한 인물 같으신데, 원래 무엇을 하던 분인지 여쭈어도 되겠소?”
“아이고, 별것 없소.”
행수가 손을 내저었다.
“본인은 그저, 사업 하나 잘해 보려다가 쫄딱 말아먹을 뻔했던 멍청한 자에 불과하오.”
“…그대가 이 상단의 주인이었소?”
“이제는 전 주인에 불과하오.”
행수, 아니.
활로 상단의 전 대표가 부끄럽다는 듯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밥값을 하려면, 직접 현장에서 행수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뭔가, 협사들의 눈빛이 측은해지기 시작하자, 그가 급히 손을 저었다.
“자 자. 짐들은 전부 분배해 뒀으니, 사람 불쌍하게 만들지 말고, 어서들 떠나시오.”
상단의 일꾼들이 협사들마다 하나씩 등짐을 준비해 준 참이었다.
“등짐 안에는 미리 받았던 지시대로 '귀중품'들이 분배되어 있을 것이고, 그대들의 새 호패(號牌)와 각자를 위한 목적지를 표시한 지도도 있을 것이오.”
“각자를 위한 목적지라고 했소?”
활로 상단의 전 대표가 어깨를 으쓱였다.
“수색망은 돌파했지만, 아마 개별적인 추적 전문가들이 따라붙을 수도 있소.”
당연히 각자 찢어져서 갈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대들의 지도를 일일이 살피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중원국 곳곳으로 찢어져야 할 터이니, 지금 작별 인사를 해두시오.”
“…그렇군.”
협사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작별의 순간은 언제나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곤 했다.
* * *
시녀장 정아가 등불 아래서 보고서를 처리하던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원각정 행정동이 돌아가기 시작한 이후, 서류 작업에서 연소현의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그럼에도, 최종 결재는 언제나 연소현이 직접 해야했다.
“주인님.”
“음?”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는 연소현이었지만, 정아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제 완전히 탈출한 낙양의 봄 협사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인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시녀장이라면 무슨 질문이라도 해도 좋다고 하지 않았었나?”
“…황송하옵니다.”
연소현은 결재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고 도장을 찍으며, 그리고 때때로 붓을 들어 내용에 수정을 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정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다른 이들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광경이었지만, 정아에게는 익숙한 연소현의 능력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낙양 외부에서 우리의 기반이 될 것이다.”
"......!"
낙양에서 세력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 연소현은, 벌써 그다음을 노리고 있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던 정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리 연씨 혈족으로부터 회수한 풍부한 자금이 있다지만, 그들만으로 가능할까요?”
“당연히 그들만으로는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연소현이 서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연소현이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협사들은 어디까지나 무력 방면을 맡을 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은 주(主)가 아니라 부(副)가 되는 것이지.”
연소현이 처리가 끝난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정아를 바라 보았다.
“너도 알다시피 다선랑 중 둘을 밖으로 보냈고.”
그가 방금 처리가 끝난 서류를 가리켰다.
“방금 행정동에서 경험이 풍부한 자들을 뽑아 각 지역으로 합류 명령을 내렸다.”
지금 연소현의 행정동은 날이 갈수록 큰 뜻을 품고 모여드는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인원을 파견해야겠지.”
"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소현이 정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중원국 곳곳에 있는 선녀교단의 교도들이 전력으로 그들과 협력할 것이다.”
등불에 비친 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선녀교단의 총본산을 중심으로 한 낙양 자애원의 정비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니. 앞으로 자애원이 중원국 전체에 세력을 구축해야지 않겠느냐.”
잠시 너무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에 머리가 어질해졌던 정아였다.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사옵니다만.”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고 연소현에게 물었다.
“중원국 전체에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것만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사옵니다.”
연소현이 즉답했다.
“분명 힘들지.”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 내가 단지 지략을 부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눈이 무한히 깊어졌다.
“미래에 펼쳐질 일들을 전부 알고 있다면 어떨 것 같으냐?”
* * *
멀리 동녘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동쪽으로 홀로 걷고 있는 인물의 허리께에는 손도끼가 달랑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군.’
노획물의 일부가 든 등짐을 지고, 평범한 행상인으로 위장한 협사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떠오르는 태양의 강렬한 햇빛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경기장 건설 부지에 갇혀 전부 죽기를 각오했다가.'
낙양검가의 대공자에게 구원받아 그를 대형으로 모시게 되고,
그다음에는 대수로를 통해 대탈출을 했다가.
그리고 그다음 순간에는 연씨 혈족의 은닉 재산을 털었으며,
이제는 동쪽으로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다음 순간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묘미라더니….'
자신의 현 상황이 딱 그 모양이 었다.
그 든든한 동지들과 헤어지고, 홀로 길을 떠나야 함에, 불안함이 들 만도 하련만. 어째서인지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근래에 겪었던 기적과도 같은 일들 때문일까.
'아니. 이건 전부 대형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겠지.'
겨우 약관(弱冠)도 되지 않은 소년을 대형으로 모시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십칠 세에 불과한 대형의 존재가, 앞에서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만큼이나 든든했다.
'자, 가보자.'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괜히 가슴이 벅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