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38화 (238/350)

제13편 전선(戰線) 다각화(多角化)

손도끼를 든 협사와 그 동료 협사들이 노상강도단의 이름으로, 산길을 지나던 표국을 급습했던 그 시점.

그런 습격은 현재 낙양 근교(近郊)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 * *

황하(黃河),

동서대운하(東西大運河).

휘영청 빛나던 달이 잠시 구름 뒤에서 쉬고 있을 때.

동서대운하를 지나는 범선(帆船)이 있었다.

그 선박은 흔해 빠진 범선으로, 딱히 외형적으로는 큰 특징이랄 것이 없었다.

단지.

다른 범선들보다도 갑판(甲板)에 보이는 병력이 많았고,

싣고 있는 것이 곡물처럼 무거운 것은 아닌 듯, 흘수선(吃水線)이 훤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

그리고.

소리 소문도 없이 물에서 올라온 인영(人影) 하나가 선체(船體)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거미처럼 능숙하게 미끄러운 선체를 타고 오른 그녀는, 갑판에 오르기 전에 좌우를 살폈다.

'무장 상태가 장난이 아닌데?’

그러고는 그대로 네발로 기어 사사삭 하고 번을 서는 병력의 시선을 피해, 범선의 창고로 스며들었다.

'찾았다…!’

흰 천막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확인한 그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삐이이이이-!

범선의 선미(船尾) 부근에서 신호 화살이 길게 솟구쳤다.

소리와 함께 환하게 발광(發光)하는 그 신호 화살을 확인한 순간, 호송 지휘관의 낯빛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적의 습-!”

습격이라고 말하려던 그가 피를 토했다.

단도가 삐죽하고 가슴팍을 뚫고 나오니 피를 토할 수밖에.

"쿠, 쿨럭…!"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축재한 재물을 지키고 보호하는 자여.”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호송 지휘관의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칼이 비정하다 여기지 말도록 하여라.”

지휘관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찌른 이를 바라보았다.

“너, 너희는…?”

“우리 말인가?”

방수천으로 입가를 가린 협사가 잠시 고민하다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수상(水上) 강도단이다.”

협사의 손에서 다시 한번 단도가 번뜩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신호 화살이다!”

“전 승무원! 전투태세로!”

“전부 일어나! 갑판으로 올라가라!”

지휘관을 잃은 상태에서도 미리 정해진 대로, 훈련했던 대로, 대기 병력들이 대응했다.

하지만.

급히 갑판으로 올라온 병력의 눈에 비친 것은,

이미 피바다가 되어 버린 채, 수상 강도단에게 점령당한 갑판의 모습이었다.

"......!"

잠시 후.

신호탄을 확인한, 작은 선박 몇대가 범선에 다가와 인원들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협사님들, 고생하셨습니다. 벌써 세 척째 월척이로군요.”

내공이 없이 평범한 이들이었지만, 누구랄 것 없이 덩치가 크고 기민한 자들이었다.

“별것 아니오.”

누가 시키기도 전에 창고로 내려가 짐들을 꺼내 올리기 시작하는 이들을 보며, 협사가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자애원 여러분들이 이렇게 뒤를 받쳐주며, 힘든 일을 전부 해주니 가능한 일이오.”

그랬다.

그들은 자애원에서 파견된 자들이었다.

파견대의 수장이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대공자님의 가장 충성스러운 수족들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요.”

협사가 피바다에서 뒹굴고 있는 시체들에서 눈을 돌리며 물었다.

“…지금에서야 묻는 말이지만. 그대들은 이런 일에 거부감이 느껴 지지는 않소?”

“전혀요.”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파견대의 인원들은 시체를 피해서 능숙하게 짐들을 작은 배에 내리기 시작해 나갔다.

그들의 눈에는 딱히 시체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속이 시원합니다.”

“속이 시원하시다고?”

“네, 그렇습니다.”

파견대의 수장이 협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까지 저희는 그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또 돕는 것밖에 못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일은 끝이 없는 일이었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을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그 원흉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무력했지요.”

그의 시선은 깊었다.

협사는 그 시선 깊숙한 곳에 깃들어 있는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저희도 드디어.”

그 감정은 분노였다.

“그 원흉들에게 한 방 먹여 주는 것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희였다.

“그러니, 어찌 저희가 속이 시원하고,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협사가 탄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이야말로, 진정한 협사의 정신을 지닌 이들이로군.”

“과찬이시군요.”

자애원 파견대의 수장이 부끄럽다는 듯이 코를 긁으며 말했다.

“게다가. 애초에 자애원의 일을 하다보면, 허구한 날 보는 것이 끔찍한 광경이라 익숙하던 것도 있습니다.”

껄껄 웃어 보인, 그가 품에서 쪽지 하나를 협사에게 넘겨주었다.

쪽지에서는 알싸한 냄새가 났다.

벌써 몇 번째 받았던 것과 같은 쪽지였다.

“다음 사냥감이로군.”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천당가의 그림자단에게서 넘겨받은 정보이지요.”

* * *

그렇게,

깊어 가는 밤이 무색할 정도로, 습격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가도(街道에서는 노상 강도단이,

동서대운하에서는 수상 강도단이,

강도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이름을 입에 담지 않는 협사들까지도.

낙양을 빠져나가 이송(移送)되던 연씨 혈족들의 재산들을 철저하게 사냥중이었다.

협사들은 지시에 따라 뭉치기도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목표에 따라 자신들의 역량을 한계 이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역량을 끌어내게 해주는 이가 사령관으로 있기 때문이었다.

“사냥은 순조롭습니다.”

상관난화가 대공자 연소현에게 보고했다.

“그림자단, 자애원 그리고 낙양의 봄 협사들의 협력은 매우 순조롭습니다.”

그녀가 놀랍다는 눈으로 연소현에게 말했다.

"처음 일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잘 굴러가는 연합 병력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하군요…!”

“별것 아니다.”

연소현이 슬쩍 미소 지었다.

“각자 전문 분야별로 역할을 명확하게 분류했으니까.”

연소현은 전략 지도를 바라보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빼돌리는 재산을 추적하는 것은 그림자단이. 습격은 낙양의 봄이. 그리고 노획물의 확보는 자애원이 담당하고 있지.”

상관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때론 조직을 하나로 융합을 시키는 것보다, 조직마다의 전문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호 연대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군요.”

“정확하다.”

그녀가 연소현의 곁에서 그의 용인술(用人術)을 배우는 속도는 연소현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녀의 역할은 그저 옆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대들, 다선랑이 요 며칠간 지분을 확보해 둔 업체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군.”

기존의 자애원만으로는 그 모든 노획물을 재빨리 운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전문 분야가 물류 운송에 있는 업체들이니까요.”

자애원의 사업단 산하(傘下)에 새로 소속된 물류 운송 업체들의 전문성이 없었다면, 남들의 시선을 피해서 노획물들을 운송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별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연소현에게 곱게 눈을 흘겼다.

“전부 대표님께서 미리 지분을 매입하라 명하셨던 업체들이 아닙니까?”

연소현은 이전에 자애원의 사업단을 다선랑에게 맡기며, 지분을 확보해야 할 업체들의 목록을 넘겨준 바가 있었다.

“그들로서는 그저 자애원 파견대가 확보한 노획물을 비밀리에 운송하기만 하면 되니, 어려울 것이라고는 없지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지만, 막 매입한 업체를 수족처럼 부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업체마다 파견 중인 다선랑 구성원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리라.

“그런데 대표님.”

상관난화가 연소현이 들여다보고 있는 전략 지도를 함께 바라보며 물었다.

“이렇게 노획한 재산들을 전부 흩어 버리면, 활용도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지도에는 노획물들의 최종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상관난화의 말처럼, 화북 지역 곳곳으로 흩어지게끔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소현이 손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알다시피, 우리는 연씨 혈족들이 빼돌리고 있는 재산을 강탈한 것뿐이지. 그들이 대대로 쌓아 온 물적 정치적 자산은 그대로다.”

“그건…, 그렇지요.”

상관난화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까지 노획한 액수만으로도, 웬만한 가문의 전 재산을 상회하는 금액이었다.

그런 금액이 일부에 불과하다니.

머리로는 알고는 있지만, 낙양검가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연소현에게 직접 듣는 것은 또 느낌이 달랐다.

“부패한 연씨 혈족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강탈당한 자신들의 재산을 되찾기 위해서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야.”

그렇기에 노획물을 한 곳으로 모으면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들뿐만이 아니라….”

상관난화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삼공자 측의 좌우 대군사 또한, 절대 낙양의 봄 협사들을 쫓는 일을 그만두지 않겠죠.”

삼공자 측도, 부패한 연씨 혈족도.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원이 넘쳐흐른다는 것이니까.”

"......."

마치 남 말을 하는 듯한 태도.

순간적으로 상관난화의 말문이 막혔다.

연소현은 그가 그 모든 세력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잠시, 지도를 들여다보는 연소현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저 노획물들을 곳곳에 흩어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되돌이켜 보며 말했다.

“그 자금들을 전부 지하에 묻어 놓을 것이 아니면, 결국 추적당하게 될 터인데요.”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군.”

연소현이 그녀를 향해 돌아보더니,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연소현이 짧게 덧붙였다.

“그들은 그 남아도는 자원으로, 이제 서로를 견제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테니까.”

“…예?"

* * *

낙양검가, 모처.

“...뭐라고?”

보석 반지들이 꽉 쥐어진 손아귀에서 비명을 질러 댔다.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주인의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음성에 그의 수하가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주, 죽여 주시옵소서!”

그의 주인인 연씨 혈족이 보석 반지가 끼인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네 갈래로 찢어 비밀리에 후송하던 것들이 모두 강탈당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현재 사람을 추가적으로 풀어 파악 중입니다…!”

너무나 황당한 일을 맞이하면 사람이 화를 내지도 못한다고 하던가.

지금 딱, 이 연씨 혈족이 그러한 상황이었다.

“대체, 이게….”

잠시 넋을 놓을 뻔하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하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다, 다른 혈족들은?! 다른 혈족들에게서 소식은 없나?!”

부정하게 쌓은 재산을 오늘 빼돌리던 이는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특별히 전해 온 소식은 없습니다만….”

수하가 머리를 바닥에 찧은 채로 보고했다.

“누구랄 것 없이, 저택들에 불이 난 것처럼 뛰어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아서는….”

연씨 혈족의 입이 벌어졌다.

“다들 똑같은 수법으로 당했다…?”

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그리도 쉬이 털릴 수가 있단 말이지? 수준급의 무사들을 배치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짐작하기로는.”

그의 옆에 서 있던 최측근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눈을 피하기 위해서, 운송 방식을 여러 갈래로 찢어 놓았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듯합니다.”

“즉각적인 추적은….”

최측근이 고개를 저었다.

“평소였다면 본가 정보부처의 힘을 빌렸겠지만….”

아니, 힘을 빌리기 이전에 이미 낙양검가의 정보부처가 모든 움직임을 파악했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 정보부처의 시선을 떼놓았지. 재산의 이동을 감추기 위해, 우리 선택으로….”

너무나 공교롭지 않은가.

그가 자신의 이마를 쓸었다.

“누군가 처음부터 이 상황을 노렸다는 말인가? 중앙감찰각의 수사에 맞춰서?”

최측근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누가…?”

집무실이 침묵에 잠겼다.

"......."

그는 일단 대공자를 제외했다.

그가 아는 한, 대공자는 이런 일을 꾸밀 수는 있어도, 집행할 정도의 조직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다음 후보는-.'

들려오는 외침에 그의 생각이 끊겼다.

"주인님!"

그의 수석 집사가 급히 집무실에 들어왔다.

“방금 저택의 정원에 이런 쪽지가...!"

쪽지는 화살과 동봉되어 있었다.

누군가 화살에 쪽지를 묶어 정원에 날린 것이다.

그가 급히 쪽지를 펼쳐 읽었다.

“이것은 그대들이 편을 잘못 택한 대가다.”

그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순간.

그의 머리에서 모든 일이 하나로 이어졌다.

“…삼공자 측 놈들!”

애초에 낙양을 봉쇄하려던 것도, 그들이었다.

처음에는 중앙감찰각의 수사를 도와, 삼공자 측의 비리를 덮으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놈들의 짓이었어!”

대공자가 비리의 근원인 검가전장을 방문했을 때.

연씨 혈족은 사태의 수습을 위해서, 이공자 측의 소집에 응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대들이 편을 잘못 택 한 대가다.]

삼공자 측은 그런 자신들에게 선전포고에 가까운 경고를 날린 것이 틀림없었다!

“이, 개 같은 후레자식들…!”

갈 곳을 못 찾던 분노가 일제히 솟구쳤다.

그의 최측근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고, 고정하십시오, 주군!”

그가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삼공자 측에 쳐들어가려는 주군을 말렸다.

“아직, 모든 것이 명확해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전부 이간책일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연씨 혈족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그래, 이간책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삼공자 측을 쳐야 한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 어째서…?”

그가 잘근잘근 씹듯이 말을 뱉었다.

“얻어맞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모두가 나를 우습게 알 것이니까.”

"하지만…, 나중에 진범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최측근의 말에 연씨 혈족이 이를 드러냈다.

“그러면 그땐, 그놈도 박살 내면 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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