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35화 (235/350)

제10편 탈명귀검(奪命鬼劍)

짧게 자른 머리에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

정체를 감추려는 듯, 낡아 빠진 흑의 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오히려 특유의 광포한 살기가 어우러져, 더욱 그 존재감을 크게, 아니.

절절하게 느끼게 했다.

[붙어! 더욱 바짝 붙으란 말이다!]

반으로 갈라져 오수에 처박힌 조장 대신 지시를 내리는 부조장의 전음이 급박했다.

[절대 이기어검을 활용할 틈을 주지 마라!]

탐랑의 사냥개들이 탈명귀검을 물어뜯기라도 할듯 달려들었다.

[존명!]

그들이 전력으로 탈명귀검에게 짓쳐들어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탈명귀검의 검들이 번뜩였다.

푸확!

칼을 잡은 팔이 날아갔나 싶은 사이,

다리가 잘리고,

목이 달아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달려들던 사냥개는 옆에서 동료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탈명귀검의 다른 검이 긋고 지나간 자신의 손가락들이 일제히 허공에 떠올랐다.

"......!"

목구멍에서 신음이 채 새어 나오기도 전에,

잘린 손가락이 있던 자리에서 피가 치솟기도 전에,

손가락들을 앗아 간 검이 뱀처럼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과일을 깎는 과도처럼,

검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자신의 팔을 나선형으로 가르며 올라오는 모습이 사냥개의 망막에 새겨졌다.

그리고 그 눈알에, 그대로 검이 부드럽게 틀어박혔다.

날이 닿기도 전에, 그 살벌한 예기(銳氣)가 먼저 각막을 절개(切開)하고, 동공을 갈라놓았으며, 유리체를 반으로 토막 내고, 망막을 꿰뚫었다.

퍼억!

수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검이 머리를 뚫고 튀어나왔다.

그렇게 뒤통수에 구멍이 뻥하고 뚫린 시체가 스러지듯 오수에 처박히는 사이에도.

[물어라!]

사냥개들은 멈추지 않았다.

달려들었다.

그것은 죽음을 향한 돌진과 같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주인에게 충성하고,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의 지시에 절대복종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탐랑.

사냥개인 것이다.

[몸을 아끼지 마라! 달려들어!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상대를 물어뜯으란 말이다!]

네 자루의 검이 자아내는 검광으로 된 벽을 뚫고, 살아남은 사냥개들이 탈명귀검에게 달라붙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겨 준 것은.

“잘 왔다. 그러니….”

탈명귀검이 직접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검 한 자루였다.

“이제 죽어라.”

탈명귀검 독문검법(獨門劍法).

수라오음극(修羅五陰極).

일혼참명(一魂僭命).

검을 양손으로 틀어잡은 탈명귀검이 격렬하게 움직여, 단숨에 사방을 토막 쳤다.

사위를 발기발기 찢어 버리는 움직임.

그 움직임에는 이기어검으로 보여 주었던 우아함도, 절제도 없었다.

그것은 수라(修羅)라는 이름에 한 점 모자람이 없는 흉포한 검기(劍技)였다.

“크, 헉-?!”

“칵-!”

접근했던 이들이 팔을 잃고, 몸통이 갈라지고, 다리가 찢어진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와중에도, 사냥개들의 날붙이들이 탈명귀검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겼다.

[계속 몰아붙여!]

첫 번째 파도가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 비산하는 동료들의 핏물을 뚫고, 다음 사냥개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탈명귀검이 앞서 덮쳐들었던 사냥개 하나의 등을 수직으로 갈라놓는 사이에,

그의 등을 넝마처럼 찢어 놓았다.

찢어진 흑의 무복 사이로 탈명귀검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치명상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의 직감은 등을 보이고 있는 탈명귀검의 입가에,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미소가 걸려 있는 그 미소를 본 순간.

“흐흐흐...."

확신이 되었다.

'미친-!’

탈명귀검은.

그 악명, 그 소문 속 그대로의 사내였다.

그는 상처를 입으며, 상대를 죽이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죽어라.”

탈명귀검 독문검법(獨門劍法).

수라오음극(修羅五陰極).

폭살(爆殺).

사냥개들의 뒤에서 돌아온 검들과 그가 직접 든 검이 폭풍을 만들어 하나의 참상을 빚어냈다.

또 갈기갈기 찢긴 신체 조각들이, 허공에 무더기로 튀어 올랐다.

“흐흐.”

그 과정에서 탈명귀검에게도 또 상처가 더해졌지만.

“흐흐흐."

호흡조차 고를 생각도 없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는 모두의 모골(毛骨)을 송연(悚然)하게 만들었다.

광기(狂氣).

그 이외에 무슨 단어로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까.

“흐하하하하!”

* * *

'저, 저자는-!’

아직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아무리 그 흉명이 널리 떨치던 시절이 과거라 할지라도.

마치 방금 들었던 소문처럼 생생하게 그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혈신악귀(血神惡鬼).

오검광인(五劍狂人).

과거, 검가의 태상가주가 행했던 낙양검가의 강남정벌(江南征伐).

그 강남정벌 시기에 있었던 큰 전투마다 언제나 가장 앞에 섰던,

검가의 가장 대표적인 수위무사(首位武士).

강남으로 향하는 길을 내어 주지않던 남궁세가의 최정예들을 도살하고,

장강(長江)을 사파(邪派) 무인들의 시체로 메우고,

남해안(南海岸)을 해적용병(海賊傭兵)들의 피로 물들였다던,

검가의 가장 흉포한 검.

강호에서 칼 밥을 좀 먹었다는 이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도, 그의 별호 넉 자를 떠올리지 못할 수는 없었다.

'탈명귀검…!’

지난날, 강남의 악몽(惡夢)이 이 곳에서 지금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 * *

오른손에 쥐어진 탈명귀검의 검, 색(色)이 사냥개 하나를 후려치듯 번뜩였다.

쾅!

일순, 공기의 벽을 부순 중검(重劍)에 맞은 상대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어느새 왼손으로 돌아온 검, 수(受)가 번뜩이더니, 옆구리를 찌른 상대의 몸통을 다섯 조각으로 갈라 놓았다.

푸화학!

중검법(重劍法) 우나찰(右羅刹).

속검법(速劍法) 좌수라(左修羅).

전후좌우, 전 방위를 점하고 달려드는 사냥개들을 가로막은 것은, 나머지 세 자루의 검.

상(想), 행(行), 식(識).

그 세 자루의 검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을 피와 살로 수놓으며,

각각이 다른 무사가 쥐고 있는 검처럼,

전혀 다른 원리와 정수를 담은 검법을 구현해 냈다.

달려들던 사냥개는 달려들던 대로

물러나던 사냥개는 물러나는 대로,

우회하던 사냥개는 우회하던 대로,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상관없이,

그대로 사지가 분해되어 오수에 처박혔다.

이것이 바로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전혀 다른 형태의 다섯 자루의 검으로 펼쳐지는 탈명귀검의 독문검법이자 성명절기(成名絕技)인,

수라오음극(修羅五陰極),

오의(奧義).

오온조화(五蘊造化).

사냥개들의 목숨이 숨을 내쉬는 호흡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마다, 가공할 속도로 줄어들었다.

[나도 가세한다!]

무기를 틀어잡은 부조장의 전음이 비명처럼 찢어졌다.

[한꺼번에 덮쳐! 어떻게든 놈의 틈을-!]

그의 지시는 끝을 맺지 못했다.

"......!"

부조장의 면상을 어느새 다가온 탈명귀검의 손아귀가 틀어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말이다.”

탈명귀검의 강철 같은 손아귀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친 부조장은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까부터 쨍알쨍알 시끄럽다고.”

“큽...!"

부조장의 양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탈명귀검의 양쪽 갈비뼈 사이를 찔렀지만.

제대로 날이 파고들기도 전에, 그의 몸이 날아든 네 자루의 검에 산산조각이나 흩어졌다.

“시도는 좋았다.”

탈명귀검이 손을 움켜쥐어, 자신의 손안에 남아 있던 부조장의 머리통을 바수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서서, 엎드린 채 질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협사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

콰지직.

최후에 남아 있던 다섯 명의 사냥개들이 각각 검에 꿰뚫려 대수로의 천장에 꽂혔다.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린 사냥개들의 사체에서,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떨어지는 핏줄기들이 만들어 낸 차양을 지나서, 탈명귀 검이 협사에게 다가왔다.

“뭐야? 왜 아직도 엎어져서 그러고 있나?”

그가 매달린 사체들을 지나치자,

사체들을 고정하고 있던 검들이 뽑혔다.

촤차차차창-!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칼날을 번뜩이며, 다섯 자루의 검들이 검집에 내리꽂히듯 돌아왔다.

“자.”

탈명귀검이 아직도 엎어져 있는 협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협사는 감히 그 손을 마주 잡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괘, 괜찮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탈명귀검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공포에 질려 떨리는 눈, 금방이라도 도망칠 듯 뒤로 뺀 자세, 마지막 솜털 하나까지도 빳빳하게 일어난 신체.

과거에는 너무 익숙하던 반응이 사뭇 새로워, 새삼스럽게 자신이 흘려보낸 세월을 실감했다.

문득, 예전에 대공자 연소현이 연습용 검을 차고 다니던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대의 검이 낡아서, 무엇을 위해서도 뽑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가 오게 될 것이야. ”

탈명귀검이 말했다.

“이 정도면, 아직 녹슬었다고 할만큼 낡은 검은 아니지?”

협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에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방금, 그 악명 높던 탐랑의 조 하나를 순식간에 토막 쳐버린 자에게 무슨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어이…!”

“아직 살아 있나…?”

기나길었던 대수로의 끝에서, 동료 협사들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 왔다.

그들의 귀에 익은 목소리와 낯익은 얼굴에 협사의 어깨에서 긴장이 쭉 빠졌다.

“여기다! 여기라고!”

그가 손을 내저으며 외치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살아 있었구먼!”

“명줄 하나는 질긴 놈이라니까!”

그들이 달려오는 모습에 협사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대탈주극의 막이 내려가고 있었다.

* * *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대수로의 끝에서 쏟아지는 오수가 황하에 섞여 들었다.

그렇게 냄새나고 비위를 상하게 하던 오수였건만.

거칠고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의 강물에 휩쓸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오수에 떨어졌던 그 많은 피도.

살점도, 내장도, 사지의 조각들도.

황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는 그저 흐르고 있었다.

그 거대한 강이 세차게 흐르는 광경은 세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희로 애락이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썩어 빠진 기득권층도.

뒤틀린 권력 구조도.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저항하던 것도.

모두 멀게만 느껴졌다.

"......."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손도끼를 든 협사의 등을 동료 협사가 강하게 후려쳤다.

"악!"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등에서 짜릿한 고통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그 고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료 협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를 부둥켜안았다.

“전부 살았어! 우리 전부가 살아서 낙양을 탈출했다고!”

“잘했다! 이 녀석아!”

손들이 거칠게 그의 머리통을 쓰다듬고 두들겼다.

“전부 네 녀석이 후미를 맡아 준 덕분이라고!”

손도끼를 든 협사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랬다.

사람은 황하가 될 수 없다.

이 고통이 있는 이상,

자신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무릇 기뻐하고, 슬퍼하며, 노여움을 느껴야 하고, 즐 거움을 만끽할 수밖에 없다.

'그 탈명귀검이 상처를 일부러 입어 가며 싸우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한참을 소란 떨며, 탈출을 자축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그에게서 떨어졌다.

이미 탈출 과정에서 없던 체력까지 끌어 썼던 그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음?’,

동료 협사가 손도끼의 협사에게 물었다.

“탈명귀검 대협은 어디로 가셨는가?”

그 목소리에 다른 이들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자네가 마지막이었는데, 어째서 함께 나오질 않은 것인가?”

“그분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대공자, 아니. 대형께서 그런 분을 휘하에 거느리고 계실 줄이야.”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

손도끼의 협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탈명귀검 대협께서는 다시 지하 대수로로 들어가셨네.”

"......?"

모두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걸렸다.

“엥? 무슨 연유로…?”

“이미 우리는 전부 탈출하지 않았나?”

손도끼의 협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 * *

조금 전.

“대, 대협! 지금 어디 가시는 것입니까?!”

“음?"

손도끼를 든 협사의 외침에, 탈명 귀검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보면 모르겠나?”

“다시, 저 지옥같은 대수로로 들 어가시려는 것입니까?!”

탈명귀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당연하지.”

“도대체 어째서…?!”

탈명귀검이 몸을 돌려, 지하대수로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수로를 통해 돌아가는 것이 빠르거든.”

협사가 급히 대공자가 주었던 지도를 꺼내 들었다.

“하다못해, 이거라도…!”

“필요 없다.”

오수가 흐르는 소리 속에서, 어째서인지 그의 나직한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귓가를 울렸다.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베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면 된다.”

살불살조살부살모(殺佛殺祖殺父殺母).

그것이 탈명귀검의 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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