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34화 (234/350)

제9편 귀도(鬼道)

낙양 지하대수로.

중간 심도(深度).

어느 지점.

[삼(三) 조. 삼 조, 응답하라!]

전음을 돋우어 봤자, 소용이 없었다.

“…망할 대수로!”

지하대수로의 구조는 지나치게 복잡했고, 게다가 말 그대로 지하였다.

탐랑이 대대로 개량해 온 장거리 전음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이 지하가 전음을 잡아 먹는 것 같습니다.]

조장이 성질을 부리는 모습에 휘하의 사냥개가 고개를 내저었다.

[…삼 조가 응답이 되지 않으면, 우리 이(二) 조는 지원이 없습니다.]

조장이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마찬가지로 삼 조도 우리 이 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

무림맹의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겨 온 탐랑의 힘은 그 특이한 무공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 특유의 조직력에서 나왔다.

그 탐랑이라는 이름처럼 마치 늑대 무리와 같은 강한 조직력이 그들의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일 조와 사 조도 우리와 마찬가지 상황일 겁니다.]

[뒤에서 지원을 맡은 오 조는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척후를 보냈지만, 척후조차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광활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대수로에서 그들의 조직력은 실시간으로 와해되고 있었다.

[…조장. 이대로 계속 추적을 계속하실 생각입니까?]

이 조 조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그들은 은밀한 기동을 위해서 횃불 하나 켜지 않았고, 그저 몇몇이 소지한 손톱정도 크기의 야명주 빛이 전부였다.

사냥개 하나가 긴장된 시선으로 주변의 벽면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 지하대수로는 이전부터 민간에서 귀도(鬼道)라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목표 대상의 이동 흔적을 살피던 사냥개가 일어났다.

[저도 비슷한 정보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 악명 높은 이공자의 밀수업자들도 지하대수로를 밀수 경로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깊은 어둠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과거. 전대 왕조에서 이 대수로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시킨 노비들의 수가 백만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백만이라니.

사냥개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기울어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서, 어떻게든 이 대수로를 완성하려 했다고.]

그때야 다들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 거대 도시 낙양의 지하를 이리저리 복잡하게 관통하는 광활한 대수로는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노비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죽어가자 빈민들. 그다음에는 양민들. 결국에 아이들까지도 이곳에 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지하수로를 흐르는 물소리와 통로를 통과하는 거친 바람 소리 속에서 아스라이 비명들이 들려오는 듯했다.

감독관들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채찍 소리.

숨이 끊어지는 일꾼들의 단말마.

바위를 깨는 정과 망치의 소리.

곡괭이질을 하는 소리.

무너지는 천장의 토사와 바위에 묻혀 신음하는 이들의 소리까지.

사냥개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혼은 원귀가 되어, 이 미로와 같은 지하에 갇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지금도 이곳을 떠돈다고-.]

퍼뜩 정신을 차린 조장이 전음에 강하게 내공을 담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 내공을 강하게 실은 전음에 주절거리던 사냥개가 정신을 차렸다.

"......!"

그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조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어쨌든 목표 대상의 흔적은 찾았겠지?]

뭐에 홀린 듯했던 사냥개가 자신의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예. 찾았습니다.]

조장이 주변을 향해 말했다.

[당장 그 흔적을 추적한다]

[...예]

사냥개들은 침착하게 다시 추적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지만, 조장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사기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편이 오히려 우리가 안전한 길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장이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의 목표물들이 이 대수로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이 낙양을 속속들이 아는 자들이고, 누구보다도 대수로의 괴담들을 많이 알 터인데?]

사냥개 하나가 반문했다.

[…자포자기한 끝에 내린 선택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장이 고개를 저었다.

[녀석들은 이 대수로에 진입하기 전에 분명 대공자를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주 직할조에서 들었던 마지막 정보였지.]

[…그렇다면!]

[목표 대상들의 탈출 경로는 대공자가 짜준 것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실력을 믿는 것도 아니고, 목표 대상들의 생각을 추정하지도 마라.]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우리는 그 신산의 지략을 가졌다는 대공자를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대공자라면 틀림없이 수하들을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서 가장 안전한 경로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표 대상들의 뒤를 쫓는 것이, 우리에게도 가장 안전한 길이 되는 것이지]

수하들은 말없이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이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사기는 명백히 이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아군보다 적을 더 신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얄궂은 상황이었다.

가장 뒤에서 달리던 조장이 사냥개 하나에게 접근했다.

[자네.]

조장이 한 명에게만 전음을 전했 다.

아까 홀린 듯 과거 이야기를 떠들던 사냥개가 그 대상이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그 사냥개는 전음으로 대답하면서도, 신법에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였다.

[아까 그 기이한 역사 이야기 같은 것들은 대체 어디서 들었던 것인가?]

[예? 무슨 말씀인지…?]

조장이 답답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 전대 왕조 어쩌고 하던 역사 이야기 말일세. 백만이 희생되었다던 그 이야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요?]

수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조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어째서인지.

그는 자신이 했던 이야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적인 착란인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했었다는 말인가.

'…X같은 지하대수로!’

조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과거, 무림맹의 소재지였던 개봉의 뒷골목이 유독 그리웠다.

냑양은.

이 거대한 도시는.

어둠이 너무 깊어서.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 속에서 활동해 온 그들, 탐랑조차도.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 * *

“제, 길…!”

낙양의 봄 협사가 힘겹게 자신의 손도끼를 뽑아냈다.

탐랑의 사냥개가 피가 뿜어져 나오는 목을 한 손으로 붙잡고 휘청였다.

“크, 크르륵…!”

사냥개는 피거품을 입으로 흘리는 와중에도 단도를 휘둘러 협사를 공격하려 했다.

콰직.

머리통에 손도끼가 다시 틀어박히고 나서야, 사냥개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이거 꼴이 말이 아니군.'

손도끼를 든 협사는 헐떡이는 호흡을 어떻게든 다스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가장 후미(後尾) 경로를 자청했나.'

오기를 부려 자기 자신이 후미 경로를 자청해 놓고, 괜히 후회 중인 그였다.

몸 곳곳에 출혈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혈을 할 시간도 부족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멀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낙양 밖으로 도망가야 하는 처지지만, 그들의 이름값에 우리 이름이 모자라지는 않으니까.”

대공자 연소현에게 큰소리쳤던 과거의 자신을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대공자가 마련해 주었던 이 빌어먹을 정도로 복잡기괴한 대수로의 탈출 경로가 없었다면.

그래서 탐랑이 특유의 조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금 같은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목이 열 개라도 부족했으리라.

'…적의 기척이다!,

뒤편의 수로에서 나는 미세한 기척을 그의 극한까지 예민해진 기감은 놓치지 않았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내 다리야!’

다행히 탐랑의 사냥개들도 지치긴 한 모양인지라, 처음처럼 기척도 없는 습격은 더 이상 없었다.

'끝이 머지않았다…!’

대공자가 마련해 준 지도의 끝, 출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 신법을 전개했다.

사냥개들의 기척이 점차 가까워졌다.

'젠장, 젠장…!’

발이 무슨 쇳덩어리라도 매달린양 무거웠고, 호흡은 허파가 터질 듯 거칠었다.

그래도 달리고, 또 달렸다.

'딸아이 얼굴도 못 보고, 죽을 수는 없다…!’

호흡이 부족해지자,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하늘로 먼저 떠나보냈던 마누라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사냥개들의 숨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제 출구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그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빛이다!'

비록 밤이라 희미했지만, 일자 통로의 끝에 출구에서 들어오는 외부의 빛이 보였다.

'제발, 동지들이 출구에서 나를 기다려 주기를…!’

그때 그의 귓가에 파공성이 들렸고, 발을 헛디딘 그가 그 암기를 피해 낸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 였다.

“흐아아아아!!”

더러운 하수에 굴러, 한바탕 목욕을 한 그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고 달렸다.

그의 발치고 귓가고 할 것 없이, 암기가 쏟아졌다.

출구의 빛이 점차 가까워졌다.

[숙여라]

귓가에 닿은 알 수 없는 전음.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으아아압!”

그가 몸을 앞으로 날려, 바닥에 엎어진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공기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져 나뉘었다.

그것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어쩌면 수백 가닥의 섬광이 번뜩이고, 날아오던 암기들이 모두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졌다.

'고, 고수…!’

바닥에 엎드렸던 협사의 곁을 뚜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지나는 이가 있었다.

그의 나머지 네 자루의 검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이기어검…?!’

그가 손에 든 검까지 합쳐서 총 다섯 자루의 검.

그리고 이기어검.

사납기 짝이 없는 인상.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뭐냐?”

고수임이 분명한 중년인의 살기 번뜩이는 시선과 마주치자,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예? 저 말씀입니까?”

협사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자네가 누군지는 안 궁금하고.”

“그, 그럼…?”

중년인은 특유의 건들거리는 자 세로 검을 들어 통로의 안쪽을 가리 켰다.

허공에 부유하고 있던 네 자루의 검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처럼 함께 움직였다.

“쟤들 말이다.”

그곳에는 중년인의 살을 저밀 듯한 살기에 걸음을 멈추고 대치를 선택한 탐랑의 사냥개들이 있었다.

[상대는 고수]

[저 정도 고수라면 인명록에서 특징이 일치하는 고수가 있을 것이다.]

[파악 중.]

중년인의 인상이 사납게 일그러 졌다.

“왜 저거밖에 없어?”

그가 다시 엎어져 있는 협사를 바라보았다.

“나머지는 다 어디 갔나?”

“예? 예?”

그가 답답해하며 가슴을 두들겼다.

“아오”

공중에 부유하는 검들이 차라랑 거리며 울음소리를 냈다.

“자네가 가장 후미였잖아. 마지막이잖아. 그런데 사냥개들이 왜 저거밖에 안 남았냐고.”

“모, 모르겠습니다.”

중년 고수가 그의 곁에 다가와 쭈그리고 앉아 한숨을 토했다.

“진짜 소문처럼, 대수로에 귀신 들이라도 사는건가…?”

그 악명 높은 탐랑의 사냥개들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아, 진짜 오랜만에 주군의 허락을 받아서 검 좀 제대로 휘둘러 보나, 기대했는데 말이지.”

“아, 예.”

그가 수고했다는 듯이 대충 협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쩔 수가 없네.”

그의 광오한 눈빛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냥개들을 향했다.

“너희를 잡고 있으면….”

거칠게 흐르는 하수의 표면에 역으로 파랑이 일어날 정도로 광폭한 살기였다.

“나머지도 곧 도착하겠지?”

그의 특징을 분석하던 사냥개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서며 보고했다.

[부, 분석 완료. 사, 상대는….]

그의 심리를 드러내듯, 내공의 운용이 흔들려, 전음이 불안정했다.

[탈명 귀검(奪命鬼劍).]

원각정의 문지기, 탈명귀검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탈명귀검이다.”

사냥개들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우리 전음을 도청한 것이지?!]

[당장 전음 수법을 바꾼다!]

그들이 전음으로 소란을 떨든 말든.

탈명귀검은 그저 히죽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내가 은퇴했거나, 죽은 줄알던데. 그래도 아직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남아 있었구나?”

[전원!]

조장이 뒤로 뛰어올라, 탈명귀검과의 거리를 확보하며, 황급히 지시를 내렸다.

[이기어검에 주의하라! 대(對) 고수 전용 태세로 전환-!]

아니.

지시를 하려 했다.

탈명귀검이 날린 이기어검이 없었다면, 지시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

조장의 몸은 뒤로 뛰어오른 채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그의 두 조각이 난 시신이 흐르는 하수에 풍덩 하고 떨어졌다.

그 광경에 사냥개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 놀아 보자고.”

탈명귀검의 모든 검들이 길게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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