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탐랑(貪狼)
낙양 구시가지.
낙양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인 탄륭구가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옥상.
과거 무림맹의 특수임무 전담부대, 탐랑의 대주(隊主)가 번화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양 아래 거리는 형형색색의 유등들에 의해서 대낮처럼 밝았고, 거리에 오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공자 측이 대공자와 격돌하든.
삼공자 측이 대공자와 충돌하든.
약 십 년 만에 돌아온 대공자가 온 낙양을 제 것처럼 휘젓고 다니든.
중앙감찰각의 수사로 낙양검가가 발칵 뒤집히든.
행인들은 무심해 보였다.
[보고드립니다]
그의 주위로 수하들이 모여들었다.
[명하신 대로, 일 조부터 오 조까지는 지하대수로를 통해 '목표 대상'들을 추적 중입니다]
[육 조, 칠 조, 팔 조는 흩어져서, 지상에서 수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은형(隱形)과 잠행(潛行)의 달인 들인 그들은 옥상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 섞여,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 대공자가 배후에 있을지도 모를 자들이다. 협사 놀이나 하는 낭인들이라고, 방심하지 말라 전해라.]
[존명.]
스읏, 하고 거리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 작은 소리와 함께, 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사부로부터의 전언입니다.]
[낙양 봉쇄가 실패했다고 하더냐?]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장에 있는 것은 그들이다.
관청에서 움직임이 없는 것은 그들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예.]
[알겠다]
이유 따윈 묻지도 않았다.
손을 더럽히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다 보면, 알아봐야 해가 될 뿐.
어차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 더 많았다.
[군사부는 작전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대주께 일임했습니다]
전령을 맡은 수하가 머리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보고를 이어 나갔다.
그 전음을 함께 들은 수하들이 혀를 찼다.
[그럴 거면 진즉부터 맡기든가.]
[결국, 이번 일이 망쳐지면. 우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말이로군.]
대주가 짧게 전음을 날렸다.
[조용히.]
전음상 연결되어 있던 수하들이 즉각 침묵했다.
[…….]
잘 훈련된 사냥개들다웠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명을 받은대로만 움직이고, 임무를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
대주의 시선이 전령을 향했다.
[추가 지원은?]
전령의 머리가 더욱 깊이 내려갔다.
[군사부는 원래 관군들을 도와 낙양 봉쇄를 하려했던 병력의 배치를 현재 급히 재편성하여 이동 지시를 내렸지만…]
[그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목표 대상들은 전부 낙양을 빠져나간 다음이겠지.]
[…….]
대주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뀐 것은 없다.]
그의 감정이라고는 메말라 버린 전음이 주변의 수하들에게 전달되었다.
[목표 대상들을 찾아내어 포획하면 된다]
그들의 뒤를 맡아 줄 이들도, 그들의 실수를 처리해 줄 이들도 없었다.
그들이 다른 이들의 뒤를 맡아 주고, 다른 이들의 실수를 처리하는 이들이니까.
그의 공허한 시선이 거리를 향했다.
이 인구가 수백만에 이르는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물 정도로 거대한 도시는,
한낱 인간사의 권력 다툼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무력 사용 허가는 어느 수준까지?]
대주가 짧게 답했다.
[판단 자율. 필요하다면 신체를 절단하거나 부득이할 경우 죽여도 좋다.]
[...만약 대공자나 그의 수하들이 막아선다면 어떻게 대응합니까?]
[대공자는 내가 직접 상대한다.]
그 안의 인간들은 그들을 품은 도시만큼, 거대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았다.
[존명.]
그의 명을 받든 대주 직할조가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사방을 밝힌 유등 빛에 닿기도 전에 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
그림자를 틈타, 어둠을 틈타,
벽을 넘어 경지에 달한 그의 시선에는 이동하는 수하들의 신형이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대주의 시선이 그들의 목적지를 향했다.
낙양 번화가의 한가운데에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정원이 보였다.
그 정원의 한가운데 세워진 호화로운 전각.
금잔루.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정보 파악을 맡았던 수하가 보고했다.
[원래 이씨 가문 상단의 소유였던 금잔루의 현 소유주는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객잔은 현재 휴업 상태이며 객잔의 직원들은 전부 휴가 중입니다.]
지하대수로로 빠져나간 일부 목표 대상들의 흔적이 금잔루에서 시작되 었다.
그들을 쫓는 것은 다른 조장들의 몫이었고, 대주인 자신의 역할은 따로 있었다.
그가 금잔루의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의 옥상에 도달하자, 보고가 들려왔다.
[전원 배치 완료.]
척후를 맡은 수하의 보고가 이어서 들어왔다.
[금잔루 현관 앞에 우마차 발견. 모든 형태와 특징이 '철갑요새'에 대한 정보와 일치합니다. 소유주는 대공자 연소현』
[금잔루 외부에 아무런 활동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대공자는 자신의 우마차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 감인가.
아니면, 십 대 특유의 오만함인가.
그것을 직접 확인할 때였다.
대주가 짧고 단호하게 지시했다.
[돌입 개시.]
* * *
금잔루 전각의 굳게 닫힌 정문이 특수 목적으로 개량된 무공의 일수에 박살 났다.
[돌입! 돌입!]
벽면에 기대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기척도 없이 내부로 스며듦과 동시에.
각 층의 지붕에서 주요 창문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 또한 창문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했다.
[나도 돌입한다.]
'口' 자로 뚫린 천장에서의 돌입은 대주 한 명으로 충분했다.
그가 낙하했다.
경공도, 신법도 필요 없었다.
벽을 넘은 이의 초인적인 신체가 식당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신체가 착지한 식탁이 박살나며, 방치되어 있던 식탁 집기들과 음식물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
그리고 그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기도 전에,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 층 난간에 기대앉은 소년을 포착했다.
소년은 마치 선녀가 강림한 것 같은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느긋하게 과일을 씹는 중이었다.
“이봐.”
소년이 흘긋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발생한 재산 피해는 전부 삼공자 측에 물게 할 터이니, 각오하라고.”
정문과 창문들로 돌입했던 탐랑의 사냥개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 층, 복도 이상 무. 개별 객실 확인 중]
[삼 층, 복도 이상 무. 연회장 발견, 진입 중.]
[이 층, 대공자 및 원각정 시녀장의 신원 확인 완료. 추가적인 수색 진행 중.]
[일 층 수색 중.]
어지러이 들려오는 전음 속에서 대주가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소문 속에서 들려오던 종류의 경지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문이 과장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저 나이에 반박귀진(返璞歸眞)의 묘(妙)를 이룬 것인가.
“대공자.”
그의 부관이 앞으로 나섰다.
“순순히 협조하시오. 그렇지 않으며-.”
쾅!
대주가 순간, 내뻗은 손에서 포탄이 낙하하는 폭음이 났다.
"......!"
그의 부관은 자신의 머리를 가로 막은 대주의 팔이 없었다면, 자신의 머리통이 날아갔으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
그들은 새콤달콤한 냄새가 주위에 퍼지는 것을 맡을 수 있었다.
'...후자였군.'
저 대공자는 이미 반박귀진의 묘를 깨달은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대주, 자신의 손을 저릿할 정도로 타격한 그것이 연소현이 씹고있던 사과였기 때문이었다.
[너는 현장의 지휘를 맡도록.]
[…존명]
그 한 수로 자신이 전혀 대공자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부관이 얌전히 물러났다.
쾅!
대주의 손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이번엔 과일도 아니었다.
연소현의 백보신권이 물러나는 부관의 머리를 노린 것이다.
쾅!
이번엔 탄지신통.
부관은 몸을 날려, 커다란 돌기둥 뒤로 숨었다.
"......!"
그의 이마에 흥건한 식은땀이 대리석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대공자가 소림의 무공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은 전부 파악되었소.”
대주의 무감정한 눈과 시선이 마주친 연소현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죽여."
“충(忠).”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그의 시녀장, 정아가 난간 아래로 몸을 날렸다.
대주의 굵은 눈썹 또한 꿈틀거렸다.
[재주껏 살아남아라.]
함부로 검가의 대공자에게 입을 놀린 대가였다.
[조, 존명…!]
정아가 신법을 펼쳐 날렵하게 대주의 옆을 지나쳤지만, 그는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등을 보이면, 당한다.'
연소현의 시선 앞에서.
그는 요새 대포의 조준 앞에 맨몸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말의 대화도 없이.”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무리 상대가 무례를 범했다지만 손속이 과하시구려, 대공자.”
그의 삭막한 목소리 뒤로,
“우리는 쫓고 있는 목표 대상들을 넘겨받으면 물러날 것이오.”
그의 부관이 정아의 일검을 받아 넘기는 금속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대화?”
연소현의 입술이 비틀렸다.
“개가 사람의 말을 지껄일 줄 안다고 해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대주의 입술도 비틀렸다.
하지만 그것은 연소현의 입술이 비틀려 만들어 낸 비웃음과는 달랐다.
그것은 들끓는 살의가, 두꺼운 얼굴 가죽을 뚫고 표정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사냥개는 가끔 사람을 물기도 한다오, 대공자.”
그의 손이 자신이 등에 멘 장도(長刀)로 슬금슬금 향하며,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개는 사람 세상의 신분 따위는 못 알아먹거든.”
연소현이 등을 기대 있던 자세를 풀고, 난간 아래로 발을 내렸다.
그의 입가에 걸린 조소가 짙어졌다.
“신분은 못 알아보아도, 주인을 못 알아보는 개는 죽여야지.”
대주의 정신은 당긴 활처럼 극한까지 팽팽하게 긴장되었지만, 그의 육신은 반대로 이완되었다.
자연체(自然體).
벽을 넘은 고수다운 수법이었다.
“대공자. 당신은 내 주인이 아니오.”
대주의 손이 자신의 장도에 가까워질수록, 연소현의 난간을 짚은 손에도 내력이 들어갔다.
“아니.”
연소현이 말했다.
그의 오만한 시선이 무한한 자기 확신을 담고, 대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바로 정명(定命)한 검가의 주인이다.”
이리도 당당한 선언이라니.
그 말에 순간,
탐랑의 대주는 연소현의 말을 거의 납득할 뻔했다.
"......."
그는 장도의 손잡이를 붙잡고, 그것을 비틀어 쥐며, 생각했다.
'이것이 그 검주(劍主)의 첫 번째 아들인가.'
무검자(無劍者).
검조차 없는, 십 대 소년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예기(銳氣)는.
천하에 이름 높은 명검(名劍)을 방불케 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
"......."
연소현과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쳐 불이 튀긴 그 짧은 순간.
쾅
사 층의 난간이 부서지며, 야행복을 입은 탐랑의 인원이 허공을 날았다.
[기습!]
사 층을 수색하던 인원이었다.
[적의 기습이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각 층을 수색하던 이들이 기습을 받았다.
탐랑을 기습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형형색색의 가면을 쓴 이들.
수배가 되었기에, 지하대수로를 통해 낙양 밖으로 탈출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던 이들.
“하하하!”
낙양의 봄.
몸을 숨기고 있던 협사들이 가장 적절한 순간에 기습을 가한 것이었다.
“크흑…!”
사 층 난간을 뚫고 떨어지던 이가, 공중에서 정신을 추슬러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가 일층 바닥에 착지하는 그 순간.
"......!"
그는 자신이 격발 직전의 사선(射線)상에 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착지가,
탐랑 대주와 대공자 연소현.
그가 감히 가늠하지 못할 수위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 격돌하게 되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