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31화 (231/350)

제6편 좌향기성(坐享其成)

금잔루.

“역시, 라고 해야 할지. 대단하십니다, 대공자님…!”

청호위의 말에 연소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별것 아니오.”

연소현의 표정은 평온하여, 정말로 스스로는 그것을 별것 아니라 여기는 듯했다.

“삼공자의 군사부가 호법원을 통해 그대들을 체포하려 수작을 부렸으니, 나 또한 대비를 해놓은 것에 불과하지.”

나이 든 협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힘과 지혜를 모두 지닌 이를 상대하게 되면, 우리 조직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

청호위를 포함한 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와 해결사 수란이 자애원의 본산에 있던 연소현을 방문했던 것이 아니던가.

나이 든 협사가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노인의 맑은 시선이 난간에 서있는 연소현을 향했다.

“여기서 각자도생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해보느냐, 아니면. 대공자님을 따르느냐.”

나이 든 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술잔을 들어 보였다.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맑고 곧은 시선이 연소현의 시선과 마주했다.

'참으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도다. 마치 용소(龍沼)와 같은 눈이로구나…!’

그는 연소현을 향해 말했다.

“우리 낙양의 봄은 모두가 형제와 같으니, 앞으로 대공자님을 우리의 대형(大兄)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를 따라 모두가 연소현을 향해 잔을 들어 보이고, 단숨에 술을 들이 켰다.

글월 좀 읊어 본 듯한 학사복의 협사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했다.

“이곳이 도원(桃園)은 아니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대공자님을 향한 결의(結義)가, 역사 속 촉한(蜀漢) 소열제(昭烈帝)와 그 형제들의 도원결의에 비춰도 모자람은 없을것입니다.”

다른 협사도 외쳤다.

“이 최고급 술이 개복숭아 술이니,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이 부러울 것이 무엇 있겠소!”

장난기가 얼굴에 어린, 젊은 협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은 우리처럼 이토록 호화로운 곳에서 훌륭한 술로 맹세를 하지는 못했으니, 우리 쪽이 나은 것 같구려.”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삼국연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도 거기에 맞추도록 하지.”

연소현이 자신의 잔을 새로 채워들고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하오!”

그러고는 뚫린 천장을 통해, 하늘을 향해서 잔을 높이 들어 보인 다음, 단숨에 들이켰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형!”

“대형의 손이 되고 발이 되겠소!”

“그러니 대형께서는 약속대로 반드시 이 낙양과 중원국에 봄을 불러 주십시오!”

십 대 소년에게 대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가 없었다.

연소현의 존재감이란, 그 외모를 넘어서는 무언가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군!"

덩치 좋은 협사 하나가 자신이 들어 보였던 술을 단숨에 마시고, 무기를 들었다.

“대형께서 말씀하시길, 검가의 삼공자 놈들이 낙양을 봉쇄했다고 하셨지.”

그를 따라서 성질 급한 몇몇이 자신들의 무기를 들었다.

“우리가 길을 열겠소!”

술을 항아리째로 들이켠 협사 하나가 연소현을 향해 외쳤다.

“대공자께서 우리의 대형이 되자마자, 처음으로 내리는 명으로 형제들의 목숨을 희생하게 하실 수는 없지!”

“옳은 말이군.”

술기운이 치솟았음에도 양손에 손도끼를 휘휘 돌리며, 중년 협사가 진한 미소를 띠었다.

“첫 명령부터가 그런 것이라면, 앞으로 재수가 없을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알아서 나서겠소.”

연소현이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감탄이 어렸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 편한 대로 단순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협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편히 살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대의를 따르는 것은, 그저 욕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길이었다.

“좋아!”

“해보자고!”

하지만.

그들의 의사 결정과 행동은, 세뇌된 원각정의 하녀단만큼이나, 빠르고 단순했다.

“형제들.”

연소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전의를 불태우던 이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대들의 대형이 되자마자, 형제들이 희생당하는 꼴을 보지는 않을 것이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연소현의 말에서 뭔가를 눈치챈 나이 든 무사의 눈이 커졌다.

“…그 말씀은 설마. 대형께서 대비해 놓으신 수가 또 있으시단 말씀입니까?”

연소현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대비한 것이 아니오.”

"......?"

* * *

삼공자 군사부.

“제갈 대군사님!”

군사 하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낙양 중앙관청에 파견되었던 인원들에게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제갈 대군사는 그 말투에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떤 문제가 생겼나?”

“낙양의 봉쇄가 거절되었습니다!”

“거절이라니, 그들이 무리한 조건을 원하더냐?”

“아닙니다! 우리 측 인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시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제갈 대군사의 눈이 흔들렸다.

기껏해야 삼공자 측의 혼란을 알고 있는 관리들이 더 큰 대가를 요구하는 정도가 그가 상정했던 문제였던 것이다.

“…어째서?!”

전령 역할을 하는 군사가 땀을 줄줄 흘리며 외쳤다.

“모르겠습니다! 관료 중 하나가 말하기를 '자신의 집부터 살피라'고 말했다는 전언이 있긴 합니다만...!"

"......!"

그 한마디로.

제갈가의 젊은 천재는 모든 일의 내막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 이, 이…!”

제갈 대군사가 분노에 몸을 떨며 외쳤다.

“이 망할 연씨 혈족 놈들이…!”

그의 말을 들은 상급 군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

그들로서는 제갈 대군사가 가진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으니.

* * *

낙양의 어느 부두(埠頭).

그곳의 모든 것들이 석양빛으로 물든 가운데, 비단옷을 입은 노인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좀 더 빨리 실을 수는 없는 것인가?! 더 빨리하라고!”

그의 옆에 있던 부두를 책임지는 관료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었다.

“아이고, 어르신. 일꾼들이 모두 달라붙어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인내하시지요.”

관료의 말대로 무수한 일꾼들이 달라붙어 짐들을 나르고 있었지만, 하나하나가 초고가의 물건들이 든 상자들이었다.

그들의 일은 어르신이라고 불린 비단옷의 노인이 바라는 만큼 빠를수가 없었다.

“절차는?!”

노인이 관료를 돌아보고 침을 튀겼다.

“절차는 모두 끝났겠지?!”

“아이고, 물론입니다.”

관료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하역(荷役)이 끝나는 대로 배가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절차를 끝내 놓았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야. 아니면 내, 친히 네 목을 졸라 죽여 줄 것이니…!”

노인의 말과 행동은 저렴하게 느껴졌지만, 그가 그만큼의 힘을 가졌다는 것은 낙양 땅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거, 걱정하지 마시지요! 감히 누가 있어, 낙양에서 연씨 성을 쓰는 어르신의 행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낙양에서 재산을 빼돌리고 있는 것은 부두의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얼른, 얼른 옮겨라!”

“오늘 내로 낙양의 권역을 벗어나야 한다!”

짐꾼들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있었다.

그들이 서둘러 마차와 수레 따위에 짐들을 고정하는 것을 보며, 연씨 혈족 하나가 이를 갈고 있었다.

'망할 연소현!’

그는 지난날에 있었던,

이공자 측과 연씨 혈족들의 모임에 나갔던 중년인이었다.

'망할 이공자 측 놈들!’

모임의 의미는 사라졌다.

구심점이었던 이공자 측이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망할 삼공자 측 놈들!’

그리고 그건 전부 삼공자 측이, 용봉지회 건설 부지의 소요 사태에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속속들이 예전처럼 이공자와의 전선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망할 최고운영회의!’

그가 뒷짐을 진 상태로 팔이 떨려 올 만큼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내공까지 들어간 그의 손에 낀 온갖 보석이 박힌 반지들이 서로 부딪치며 끼끽하고 비명을 질렀다.

'평소라면, 이런 일 따위를 내가 직접 처리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인데…!’

밑에 거느린 수많은 수하들에게 맡겼을 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았다.

'망할 검가전장!’

연소현이 정보를 흘려, 검가전장과 관련된 연씨 혈족의 비리가 중앙감찰각에 넘어갔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망할 중앙감찰각!’

중앙감찰각이 냄새를 맡고 움직이고 있는 지금.

부정 축재를 통해 비밀리에 쌓은 재산들을 어떻게든 낙양 밖의 안전한 곳으로 빼돌려야 했다.

'망할…! 망할…!’

그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주군]

뒤편의 그림자 속에서 들려온 전음에 그가 시선도 두지 않고 전음으로 답했다.

[좌우 대군사의 수작질은 제대로 틀어막았겠지?]

그림자 속에 숨은 그의 수족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감히 그들 '따위'가 연씨 혈족의 행사를 막을 수는 없지요.]

삼공자 측의 좌우 대군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연씨 혈족이 살기를 흘렸다.

[망할 놈들. 이 시점에서 낙양을 봉쇄하려 하다니]

[놈들이 중앙감찰각과 무슨 거래라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돕는 것이겠지요.]

오해였다.

하지만 워낙에 시점이 공교로웠기에 어쩔 수 없는 오해이기도 했다.

[망할 놈들!]

낙양의 봉쇄를 막아, 일이 원하는 대로 풀렸지만.

중년인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들을 싣고 있는 하인들을 향했다.

“서둘러라! 이놈들아!”

그의 집사들이 호통을 치며 하인들을 채근하고 있었다.

중앙감찰각의 수사가 들어올 때는 들어오더라도, 증거는 하나라도 적은 편이 좋았으니까.

* * *

금잔루.

학사복의 협사가 감탄했다.

“맹자 왈(曰), 가좌이치야(可坐而致也)라, 천년 뒤의 동지(冬至)를 앉은자리에서 가늠할 수 있다고 하더니, 대형께서 딱 그 말에 맞는 분인 것 같습니다!”

“말했듯, 별것 아니오.”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좌향기성(坐享其成)이라. 가만히 앉아 남이 노력한 것을 낚아챈 것에 지나지 않으니.”

짧은 대화였지만, 학사복의 협사는 연신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허허…!”

연소현이 언급한 좌향기성이라는 말 또한, 자신이 먼저 입에 담았던, 맹자의 소오어지자(所惡於智者)에서 비롯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대체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아듣지 못한 협사가 손도끼를 든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대형의 말씀은, 삼공자 측의 낙양 봉쇄가 실패했으니. 우리가 빠져나가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이번엔 다른 누군가가 답하기 전에 연소현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리고….”

연소현이 대답과 함께 손짓하자,

마차를 몰았던 원각정의 하녀들이 곱게 접힌 쪽지들을 들고 들어와 협사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대형. 이것은…?”

협사들의 질문에 연소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대한 낙양의 지하대수로에서, 자애원이 안전을 확보한 수로들을 표기해 두었소.”

"......!"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각자 다른 경로를 표기해 두었으니, 누군가 실수를 저지른다 하여, 다른 형제들에게 위협이 가는 일은 없을 것이오.”

몇몇 이들이 손을 들었다.

그 안에는 청호위와 수란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희는 지도를 받지 못했습니다만…."

연소현이 대답했다.

“그대들은 삼공자의 수배 명단에 없는 이들이오. 그들이 낙양의 봄 전체를 파악한 것은 아니니까. 그대들은 나와 함께하면 되오.”

지도를 받지 못한 이들이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젊은 협사들로,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 소요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낙양을 떠나야 하는 형제들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연소현의 말에 힘이 실렸다.

“내 반드시 그들에게 아무런 일이 없게 할 것이니.”

“대형…!”

“이제 움직일 시간이오.”

감격의 물결이 퍼져 나가자, 연소현이 손을 들어 보여, 그들의 말을 막았다.

“내 생각보다 삼공자 측의 사냥개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소. 내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탐랑'이오.”

“무림맹의 지옥 사냥개들…!”

연소현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요. 이후 개별적인 추적을 떨쳐 내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대형.”

손도끼를 든 협사가 히죽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낙양 밖으로 도망가야 하는 처지지만, 그들의 이름값에 우리 이름이 모자라지는 않으니까.”

연소현이 미소와 함께 그들을 일별했다.

“낙양의 봄은, 이제. 중원의 봄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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