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30화 (230/350)

제5편 봉쇄(封鎖)

낙양 최고의 객잔 중 하나.

과거 이씨 혈족의 상단이 소유했던 금잔루에는 짙은 침묵이 드리워 있었다.

협사들 중 흡연을 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연초를 꺼내 물었다.

원래는 연초를 피우지 않던 이들도 그들에게서 건네받아 연초를 태웠다.

천장이 열려 있지 않았다면, 실내는 금방 연기로 가득 찼으리라.

이번에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청호위였다.

“저희 조직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부탁드린 것은 제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공자님의 수하가 된 다는 것은...."

그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저희도 대공자님께서 이루시려는 대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가 말끝을 심하게 흐렸다.

“의심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그러니까…. 으음.”

그는 염치가 있는 사람이었고,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연소현이 미소 지으며,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었다.

“나의 대의가 그대들의 대의만큼이나 순수할지가 의문이라는 말인가?”

“…아, 예.”

연소현이 할 말을 대신 해주자, 청호위가 한숨 섞인 대답을 했다.

“그것이 아무래도-.”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좌중의 절반 정도가 새어 나오듯 웃음을 흘렸기 때문이었다.

청호위를 비롯한 젊은 협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 보았다.

"......?"

그들은 왜 이 시점에 웃음소리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소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이든 협사에게 전음을 날렸다.

[내가 암천존자라는 사실을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오?]

그랬다.

청호위를 비롯한 이들이 연소현의 의도에 대한 순수성을 의심하는 것은 그들이 연소현이 암천존자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알리지 않았지요.]

나이 든 협사가 연초를 태우면서 연소현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연소현을 통해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에서 빠져나온 이들 중 하나였다.

[저희는 은인이 위험할 수 있는 정보를 함부로 입에 담고 다닐 정도로 신의가 없는 자들이 아닙니다.]

[상대가 동료더라도?]

[동료는 물론, 가족까지도 마찬가지지요.]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信義).

낙양의 봄이라는 조직이 지금까지 비밀리에 유지될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를 엿본 느낌이었다.

“대공자님이 우리만큼이나, 아니….”

나이 든 협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이상으로 순수한 대의를 품은 분이라는 것은 내가 보증하지.”

그와 함께 탈출했던, 연소현이 가진 또 하나의 정체를 보았던 이들이 그의 말을 거들었다.

“대공자님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려면, 차라리 나를 의심하도록.”

“나도 마찬가지일세. 내가 고민한 것은 우리 조직의 앞날이지, 대공자님에 대한 의심 때문이 아니었어.”

그때 구석에 홀로 앉아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누가 뭐라든.”

좌중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는 그들 중 가장 낙양검가를 혐오하고, 권력자를 증오하는 이였다.

'그때의 그 폭발물 전문가로군.'

연소현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는 화약고의 폭발물로 완공되어 가던 건물들을 인질로 잡을 수있게 했던 자였다.

“대공자님께서 그 지옥 같던 곳에 나타나셨던 그 순간부터.”

그는 남들이 자신을 보든 말든,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앞으로 대공자님께 내 모든 운 을 맡기기로 했소.”

그가 난간에 서 있는 연소현을 올려다보며, 좌중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이번 집회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앞으로 나는 대공자님의 사람이오.”

좌중 곳곳에서 침음이 새어 나오고, 곧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자네 아는 것이 있나?]

[없네. 나도 알고 싶군]

[도대체 대공자가 무엇을 보여 주었기에…]

주로 용봉지회 경기장 부지 현장에 없었던 젊은 협사들이었다.

“잠깐.”

그 모습에 나이 든 협사가 손을 들어 좌중을 안정시켰다.

“나는 대공자께서 우리를 찢어서라도 일부를 데려가시려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네. 필시 지금 우리가 휘하에 들어오길 원하시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시겠지.”

그의 맑은 시선이 연소현을 향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공자님?”

연소현이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런 연소현의 반응에 나이 든 협사가 한숨을 지었다.

“…아직 전부 끝난 것이 아니었군요.”

“끝나지 않았소.”

다수의 표정이 굳었고, 혹시나하던 이들은 혀를 찼다.

* * *

해가 지고 있는 낙양 구시가지.

평소라면 부랑자든 뭐든, 어슬렁거렸을 그 구역에, 누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삼 구역 수색 완료. 특이 사항 없음]

[오 구역 수색 진행 중]

한 무리의 인원들이 창고 지역에서 추적 작전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흑의를 걸치고, 얼굴을 가린 그들은 누구랄 것 없이 무기를 소지했다.

[다수의 마차가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 확인.]

[일 조는 흔적의 추적을 진행. 이조는 탐문을 통해 마차에 대한 정보를 획득한다]

그들의 모든 대화는 특수하게 고안된 전음으로만 이루어졌다.

현장에는 그들의 나지막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전령.]

[예.]

그들은 과거 무림맹주의 뒤에서 손을 더럽혀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던, 특수 임무 전담부대(專擔部隊).

가는 곳마다 시체와 피만 가득하다고 전해지는 악명 높은 지옥 사냥개들.

탐랑(貪狼)이었다.

[군사부에 보고하도록.]

탐랑의 우두머리가 이를 드러냈다.

[놈들의 흔적을 찾았다고]

* * *

삼공자 진영, 군사부.

“아직 추적조에서 보고는 없나?!”

제갈 대군사가 소리를 치자,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는 보고들을 정리하던 군사가 외쳤다.

“그들이 집회를 벌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구시가지에서 발견했습니다!”

“추가적인 정보는?!”

다른 군사가 방금 들어온 서류를 들여다보며 답했다.

“십여 대로 추정되는 마차들이 목격되었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그 진술을 쫓아 마차들의 행방을 추적 중입니다!”

제갈 대군사가 자신의 손에 쥔 백우선을 틀어쥐었다.

"놈들이 아예 자취를 감추기 전에 꼬리를 잡아야 한다!”

“존명!”

돌아선 그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오랫동안 마땅히 적수를 찾지 못하던 제갈가의 젊은 천재가 드디어 불이 붙었던 것이다.

“그놈들을 잡아들여 자백시키면, 최고운영회의도 놈들의 존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야…!”

대공자가 어떻게 손을 쓴 것인지, 용봉지회 건설 부지의 조사 감시단의 법무 책임자인 호법육부장이 올린 첫 보고서는 완전히 재앙이었다.

“대공자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호법부의 부장을 이리 빨리도 구워삶은 것일까요?”

상급 군사의 말에 다른 상급 군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은 오히려 최고운영회의가 그 초동 수사 보고를 깨끗하게 받아들인 것이 더 수상하오.”

“설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급 군사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대공자가 최고운영회의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에이, 아무리 그 대공자라지만…."

“혹시 모르지.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으로 보면-.”

“거기!”

들려오는 거슬리는 대화에 제갈 대군사의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할 일이 없나?!”

상급 군사들이 황급히 흩어져 각자의 부서로 돌아갔다.

“연소현….”

제갈 대군사가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반드시 그 협사 나부랭이들을 잡아들여, 연소현 네놈이 그들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밝혀 주마.'

그가 지휘실 내의 군사들에게 외쳤다.

“낙양의 봉쇄는?!”

“진행 중입니다! 현재 낙양 중앙 관청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놈들을 끝까지 추격해 궁지로 몰아넣으면, 대공자는 반드시 놈들을 낙양에서 탈출시키려 할 것이다!”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놈들은 결코 낙양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야.”

* * *

금잔루.

연소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삼공자의 좌우 대군사는 지금 낙양을 봉쇄하려고 들고 있을 것이오.”

그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도 않았지만, 좌중이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울리는 듯했다.

“봉쇄 이후 이 잡듯 낙양을 뒤져 그대들을 잡아들일 생각이겠지.”

협사 하나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탄식하듯 말했다.

“…검가를 건드린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혹독하군요.”

천하제일가.

지금 협사들을 쫓는 것은 그 일 에 지나지 않건만, 그 압박감은 그들이 겪어 본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수긍하고 있을 때, 다른 협사가 손을 들어 연소현에게 질문했다.

“대공자께서는 삼공자 측의 군사부가 저희를 놓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연소현이 짧게 대답했다.

“그들의 핵심 인사가 확인해 준바요.”

* * *

낙양검가, 군사부.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우리 문파들에게 넘기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오!”

"우리가 일을 망친 것이 아니잖소?!”

사마 대군사를 포위하듯이 둘러싼 삼공자 측의 문파 대표자들이 악을 쓰듯 외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봉기에 대해서는 형산북류가 이미 일차적인 책임을 졌잖소?!”

“어디까지나 이 일은 대공자가 뒤에서 손을 썼기에 생긴 일이오!”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를 연소현에게 빼앗긴 것에 대한 책임 논란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그대들, 군사부가 제대로 된 예측과 방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대형 문파의 문주 하나가 사마 대군사를 찌르듯이 손가락으로 가리 켰다.

“우리가 현장을 책임지고, 그대들 군사부가 우리의 뒤를 책임져야 하는것이 아니오?!”

그 말에 문파들의 수장들이 일제히 사마 대군사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 일은 군사부의 책임이지!”

“암, 그렇고말고!”

사마 대군사는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그 협사인지 하는 무림인들을 잡아서, 연소현 그자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면.’

사마 대군사가 벽면을 슬쩍 바라보았다.

'각 문파의 수장들도 모두 연소현에게 눈을 돌리게 되겠지.'

그와 제갈 대군사.

그러니까, 삼공자의 두뇌들은,

낙양의 봄 협사들을 잡아들여, 그들의 배후를 연소현으로 몰아갈 생각이었다.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키게 만든 것도, 처음부터 무림인들을 통해 그들을 선동한 대공자의 수작이라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쉽지.’

그 벽 너머에서 작전을 지휘 중일 제갈 대군사를 떠올리며, 사마 대군사가 좌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자 자, 다들 진정을 하시고….”

그들이 옥신각신을 하는 가운데, 참여하지 않은 인물도 있었다.

'꼴사나운 것들.’

그것은 점창의 전 장문인이었다.

가장 먼저 탈주했던 그는 원래라면, 군사부를 물어뜯는 첨병이 되어야 했지만.

현재 약점이 잡힌 것과 마찬가지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이었다.

'흐음. 그렇군. 낙양 봉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하지만 입은 다물고 있을지언정, 뒤에서 손을 쓰는 버릇은 어디 가질 않았다.

사마 대군사에게 올라온 보고서를 훔쳐보고, 듣고.

그가 연소현 측에 몰래 넘긴 기밀만 벌써 한가득이었다.

그는 얼마 전 만났던 연소현의 수하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 *

“그래서, 나더러 우리 측의 최고 기밀들을 넘기라는 것인가?”

“우리 측이라니. 언제부터 삼공자 측이 모두 한 가족이 되었다는 말씀인지?”

“가족은 가족이지.”

점창 장문인이 이를 부득 갈았다.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가고 싶어 하는 가족.”

어쨌든 한 가족이라는 말이었다.

“자네는 지금 그 가족을 배반하라는 것이고.”

유각풍문이라던가.

“어이쿠. 말씀이 험하시군요.”

연소현을 대리해서 왔다는 연하응이라는 자는 그도 이름은 아는자였다.

“가족을 배반하라는 말보다는, 저희와 함께 살아갈 길을 도모한다,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군요.”

누가 외원 소속 아니랄까 봐, 말을 하는 것도 꼭 외원스러웠다.

“애송이. 외교적인 수사는 집어 치우시지.”

점창의 전 장문인이 인상을 썼다.

“대공자가 나와 점창에게 이득을 주면 나는 딱 그만큼만 협조할 것이야.”

애송이라고 불렸지만, 평소에 권력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익숙했던 연하응은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을뿐이었다.

“좋군요.”

그가 손을 싹싹 비볐다.

“그럼 앞으로 삼공자 측에서 파악하신 기밀 전체를 넘겨주셔야겠습니다.”

“방금 내 말 못 들었나?”

점창 전 장문인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렸다.

“나는 받은 만큼, 줄 것이라고 했다.”

“어이쿠.”

그의 손이 검자루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을 본 연하응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서 말씀입니다.”

그가 능글거리는 얼굴 사이에서 시퍼런 눈빛을 빛냈다.

“대공자께서는 앞으로 장문인과 점창이란 문파의 목숨을 보존해 주실 것이니.”

그 눈빛은 결코 애송이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전부를 얻은 것과 같지요.”

연하응의 혓바닥은 마치 기름 위에서 굴러가듯 매끄러웠다.

“무슨 개소리를-.”

점창 전 장문인이 헛웃음을 짓는 모습에 연하응이 짧은 단어 하나를 입에 담았다.

“혈사(血史)."

"......."

점창 전 장문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연하응이 능글거리는 미소로 말했다.

“참고로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대공자께서 이 단어 하나면 장문인께서 협조를 해주리라 하셨을 뿐.”

"......."

점창 전 장문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은 과거의 어느 시점을 돌이켜 보는 듯했다.

잠시 후.

노인에게서 긴 한숨과 함께, 탄식에 가까운 말이 새어 나왔다.

“…역시 그 혈사는, 그 대공자가 뒤에서 가주를 대행하여 벌였던 일이었나.”

연소현의 전언은.

그가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던 의문에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예상대로, 그의 짐작대로.

그가 오래도록 두려워해 왔던 바대로,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연소현이 있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 단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연하지. 자네가 한창 개봉연가의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고, 징징거리며 개봉의 기루를 전전할때의 일이니까.”

이번에는 연하응이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좀 아프네요.”

“헛소리 말게.”

역시 상대는 점창의 전 장문.

지금에 와서는 별것 아닌 외원 고문의 과거사까지 꿰고 있는 것이었다.

"......."

점창 전 장문인이 몸을 돌렸다.

연하응은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나는 그에게서 전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대공자께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 드리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