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29화 (229/350)

제4편 객잔(客棧)

낙양 구시가지.

낙양의 봄 비밀 집회.

“방금,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의 법무 책임자인 호법원의 육부장이 최고운영회의에 첫 수사 보고서를 제출했소.”

연소현이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보고된 보고서의 내용을 협사들에게 전달했다.

“추가적인 수사는 불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대공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우…."

“…천만다행이군.”

그들은 일찍이 협의를 위해, 낙양에 봄을 부르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는 했었지만.

막상 그 낙양검가가 본격적으로 그들을 사냥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은, 과연 차원이 달랐다.

긴장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전부….”

그들 중 하나가 연소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틀림없이 대공자께서 힘을 써주신 덕이겠지요.”

연소현에게 가면 뒤의 그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청호위로군.'

대대로 명판관을 배출한 낙양의 명문가이자, 현재 연소현을 도와 이공자 측 가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청씨 가문.

그 청씨 가문 가주의 조카이자, 과거 명(名)포쾌 출신의 해결사, 청 호위였다.

“이 끝없는 후의에 대한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청호위의 목소리에 누구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대공자님.”

“대공자님 덕분에 몇 번이나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연소현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대공자께서는 저희 낙양의 봄에 바라는 것이 있으십니까?”

연소현이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그대들은 나를 이 비밀 집회에 초대했었소. 낙양의 봄은 나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초대를 한 것이오?"

“그것이….”

“흠흠."

그러자 좌중의 인물들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연소현과 안면을 텄던 청호위가 나섰다.

“원래. 저희 낙양의 봄은 연소현 대공자께 대의(大義)에 함께할 생각이 있으신지 확인하고,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었습니다.”

연소현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지원이라.”

청호위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드렸다시피 원래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저희가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기에,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청호위가 말끝을 흐렸다.

연소현의 입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래서. 그 지원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단 말씀이오?”

“…또 그것은 아니오라.”

청호위의 난처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상황이 많이 어려운 모양이군.'

연소현은 겉으로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불쾌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낙양 구시가지의 폐허와 마찬가지인 창고.

어딘가 하수가 노출된 곳이 있는지, 불쾌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비밀 집회라는 표현은 거창하지만.

장소는 보잘것없었다.

"대공자께서는 부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해하지 않소.”

청호위에게 담담하게 답변하는 연소현의 시선이 이번엔 낙양의 봄 협사들을 훑었다.

나름 은인인 연소현이 찾아온다는 말에, 다들 말끔한 차림새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옷 군데군데를 기운 자국과 때가 반질거릴 정도로 탄 모습은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었다.

'청호위가 말했던 지원은 역시, 금전적인 지원을 말한 것이었군.’

대의를 추구하고, 협을 실행한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오묘한 법칙이랄까.

어째서인지 협행이라는 옳음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는 가난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이들, 협사 하나하나는 중원국 어딜 가도 대접을 받을 만한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빈곤했다.

이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전 재산을 털어 가면서까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리라.

"대공자님.”

청호위가 안절부절못하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나이 든 협사가 나섰다.

“그 지원에 대한 것은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이 든 협사의 눈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맑고 투명했다.

“저희 낙양의 봄은 배은망덕한 자들이 아닐뿐더러, 물에 빠진 것을 건져 준 은인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말을 할 정도로, 경우가 없는 이들도 아닙니다.”

협사들이 그 말에 납득했다.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한번 납득하자,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를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값을 계산하기 힘들 정도의 은혜입니다.”

어느 정도 여론이 통일되기 시작했다.

“청호위는 어디까지나 원래 목적을 물으신 대공자님의 질문에 답변을 한 것뿐입니다.”

나이 든 협사가 두 손을 모아 연소현에게 말했다.

“그것과 별개로 저희의 이번 집회는, 어디까지나 대공자께 어떤식으로 은혜를 갚을지 논하기 위해서 열린 것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짧게 동의를 표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나이든 협사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군.'

연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낙양의 봄의 의사 결정 방식인가.’

누군가 특별히 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던 낙양의 봄.

그 의사 결정 과정은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그러니 대공자께서는 저희가 은혜를 갚을 길을 제시해 주시면-.”

나이 든 협사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대들은 나에게 은혜를 갚을 방법을 논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했지만.”

연소현이 살짝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그대들에게 베푼 은혜를 갚게 할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나름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일령이 들어와 연소현에게 보고했다.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경계를 서던 낙양의 봄 협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차들입니다!”

“골목으로 십여 대의 마차들이 접근 중!”

혼란이 시작되려던 찰나.

“내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마차들이니, 안심해도 좋소.”

연소현의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나직하게 실내에 울려 퍼졌다.

“…대공자께서 준비하셨다고요?”

부서진 창틀을 통해, 골목에 마차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평생 가도 타볼 기회가 없어 보일 정도의 고급 마차들이었다.

"이 집회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 먼저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준비했소.”

연소현이 짧게 덧붙였다.

“그대들에게 좀 더 어울리는 장소로.”

연소현의 입가에 걸린 의미심장한 미소에,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미소를 따라 지었다.

* * *

작은 하천 건너편으로 죄악의 골짜기가 보이는 지점.

낙양 탄륭구, 초호화 객잔.

화려한 낙양의 번화가에 위치한 초호화 객잔은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는지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출입을 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그 초호화 객잔의 입구엔 '임시 휴일'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객잔의 근본적인 분위기부터가 어수선한 것은.

근래에 그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전부 퇴근을 시키라고요?”

“그래요.”

점장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눈이 부실 정도의 미모를 소유한 여인이었다.

사천제일미.

다선랑, 상관난화.

그녀가 점장의 손에 작은 금낭(金囊)을 쥐여 주었다.

“이 정도라면 직원 전체가 하루정도 낙양 교외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금낭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점장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충분하고도 남지 말입니다!”

“새 주인께서 오랫동안 전 주인에게 충성해 온 그대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니, 감사하게 여기시길.”

“직원들에게도 틀림없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요!”

그가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는 그의 뒤에서 상관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있겠죠?”

무엇을 알고 있냐는 것인지, 점장은 묻지 않았다.

십여 년간 이 초호화 객잔의 현장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저희 직원 일동은 오늘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요.”

사람이 가벼워 보이는 것과 별개로 그는 수완가였다.

그가 문고리를 잡은 채, 상관난화를 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저희 직원들은 오늘 전부 휴가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녀가 그를 그대로 남겨 쓰기로 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에게 당근만 줄 수는 없었다.

“그대들의 새 주인께서는 기본적으로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신분에 맞게 때때로 매우 엄격하시기도 해요.”

상관난화의 입가에 건조한 미소가 걸렸다.

“불운하게 그대들이 해고된다면, 그대들의 가족들이 받게 될 것은 충분한 위로금일 거예요.”

퇴직금이 아니라 위로금.

그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받는다는 말.

상관난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가 마른침을 꿀떡 삼키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망하실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직원용 복도로 나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상관난화 또한 자리를 떴다.

그녀가 호화로운 손님용 복도로 나섰다.

열린 천장을 통해 선선한 바람이 드는 식당이 내려다보였다.

그곳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이들의 목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언젠가 낙양에 찾아올 봄을 위하여!”

얼굴에 벌겋게 취기가 오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외치자, 모두가 함께 외쳤다.

“우리는 기나긴 겨울을 버티게 하는 장작이 되리라!”

낙양의 봄 협사들이었다.

처음에는 압도적인 호화로움에 주눅이 들어 쭈뼛거리던 그들은, 곧 술이 들어가자 승리를 자축하기 바빠졌다.

“즐거운 표정들이군요.”

상관난화의 말에 복도의 난간에 기대 식당을 내려다보며 대공자 연소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마땅히 즐거워야 할 사람들이지.”

연소현을 발견한 협사 하나가 그를 향해서 자신의 잔을 높이 들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의 은인이신 대공자님을 위해서!”

협사들이 연소현을 향해 전원 술잔을 들어 올렸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자는 찻잔이라도 들어 올렸다.

“대공자님을 위해서!”

그들이 쓰고 있던 가면들은 이미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연소현의 수하들이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혹시 모를 신분의 노출 따위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으니.

"......."

그들을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들어 보인 연소현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역시 대공자님!”

“과연 술 또한 제대로 즐길 줄 아시는군!”

그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은 연소현이 뒤를 돌아서서 난간에 기대 상관난화를 바라보았다.

“직원들은?”

“전부 퇴근시켰습니다.”

연소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가에서 대를 이어 키워 온 직원들이야.”

그가 상관난화에게 빈 잔을 건네주었다.

“이 낙양에서도 최고라고 할 만큼 맡은바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이지. 그들이 없다면, 이 금잔루(金盞樓)는 반쪽에 불과하지.”

빈 잔을 받은 상관난화에게 연소현이 직접 술 주전자를 기울여 술을 따라 주었다.

“이씨 가문에 감사해야겠군요.”

연소현이 개전과 동시에 쳤던 가문.

이 금잔루의 원래 주인은 그 이씨 가문이었다.

“이 훌륭한 객잔과 뛰어난 직원들을 '선뜻' 넘겨준 이씨 가문을 위해서.”

금잔루는 상관난화가 협박을 통해 이씨 가문의 상단에서 뜯어냈던 재산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말에 킬킬거린 연소현이 자신의 새 잔에 술을 부어서, 그녀를 향해 들어 보였다.

“이런 훌륭한 객잔을 선뜻 내놓게 만든 여인의 수완에 감탄하는 의미로.”

서로를 향해 잔을 들어 보였던 두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술잔을 비워 냈다.

“크흠.”

멋지게 들이켜는 것은 좋았지만, 의외로 독한 술에 기침을 하며 상관난화가 복도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던 연소현이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두 주목해 주시오.”

그가 두 번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이 층 복도 위에 서 있는 연소현을 올려다 보았다.

“모두 고생들 하셨소. 이 연회가 감히 그대들이 지금까지 치러 온 희생에 대한 대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으면 한다오.”

연소현의 말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연소현이 손을 들어 보였다.

“이번이 그대들이 검가와 정면으로 부딪친 처음이었지. 그리고 모두가 이번 일로 느꼈을 것이오.”

연소현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이대로는 그대들 모두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산화하여 한 줌 재가 되리라는 것을.”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희는 변화를 위해서 협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협사가 말을 이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기에, 일어서서 목소리를 낸 것이지요.”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말을 선선히 수긍했다.

“그렇소. 의미 깊은 일이지. 하지만.”

소년의 깊은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한겨울의 장작이 되어 한 몸 태워 재라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소년의 깊은 눈빛이 그들 하나하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성공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고, 동시에 그대들 또한 살아서 행복한 봄을 맞이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그대들 모두.”

연소현이 말했다.

“앞으로 나를 따르도록 하시오.”

그가 선언했다.

“내가 이 낙양에, 그리고 이 중원국에, 앞으로 진정한 봄을 가져올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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