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편 불구경
삼공자 측, 군사부.
군사부 전각, 최상층에 마련된 공중정원(空中庭園)에서는 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점창 장문인.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말을 해 보시죠!”
“그대의 점창파는 재가도 받지 않고, 심지어는 요청조차 없이, 무단으로 작전 지역에서 이탈했소.”
좌우 대군사가 날카롭게 몰아붙여오자, 점창의 전 장문인이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제길.'
책임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탈출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흐르며, 꼬이고 있었다.
“장문인께서 체면 때문에 다른 이들 앞에서 말을 하기 저어된다 하여, 이렇게 따로 자리까지 마련했지 않습니까?”
“혹시?”
사마 대군사가 눈빛을 섬뜩하게 빛냈다.
“그대가 주동자였던 것이 아니오?”
“주동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점창 전 장문인이 속으로 뜨끔하여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사마 대군사는 그런 얄팍한 연기를 꿰뚫어 보는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대가 탈영하기 직전, 아군의 지휘부에 일부러 책임자 추궁을 통해 혼란을 야기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소.”
“나는 모르는 일이오.”
사마 대군사는 무림맹이 해체되던 그 마지막 순간까지 무림맹의 군사였고, 무림맹의 말기에 있었던 그 끔찍한 정치적 혼란 시기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켰던 인물이었다.
“시치미 떼지 마시오, 점창의 전 장문. 그대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그대가 했던 방식' 그대로 되돌려줄 수밖에 없소.”
“내가 했던 방식이라니…?”
삼십 대라는 젊은 나이에 대군사로 발탁될 만큼 뛰어난 능력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제갈 대군사가 자신의 백우선(白羽扇)을 흔들며 대답했다.
“몰라서 묻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형산북류가 일차적인 책임을 졌다고는 하지만, 그는 현재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 이야기는 점창의 전 장문인이 했던 방식대로, 책임 논란을 만들어, 형산북류의 문주 다음의 제물을 점창의 전 장문인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주둔지에 발이 묶여 있는 지휘부는 다음 희생양을 원하고 있지요.”
점창의 전 장문인이 발작처럼 외쳤다.
“대군사라는 사람들이 무슨 생사람 잡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오?! 오히려 나는 공을 치하받아도 모자랄 사람이오!”
그 말에 제갈 대군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공을 치하받는다고요? 무슨 이유로?”
점창의 전 장문인이 몰래,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자신의 손을 닦으며 외쳤다.
“나는 위기를 직감하고, 내 책임하에 있던 병력을 즉각 회군시켜, 전투력을 온존했소!”
그는 불을 토하듯, 열정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현재 주둔지에 남아 있는 병력들의 상태가 어떻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거의 삼할에 이른다고 하지 않소?! 무사라는 체면상, 입을 다물고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현재 우리 진영의 전력이 급감한 시점이란 말이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점창의 전 장문인이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우수한 결단으로 점창의 전력을 보존하는 것에 성공했소! 그런 내게 상을 주지 않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벌을 주려 하다니!”
그는 이제 아무 말이나 떠오르는 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군사부, 그대들이야말로! 이 사건에서 책임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희생양을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나는 이 사실을 그저 참고만 있지 않을 것이오! 당장에 우리 장로들을 모아놓고…!”
그는 침을 튀기며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속으로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으아아아! 연소현 이 마귀같은 놈아!’
그는 속으로 대공자에 대한 원망을 가득 담아 외쳤다.
'대체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어째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야?!’
그의 계산 착오는 거기서부터 발생 했다.
원래 그의 계산대로라면, 대공자의 움직임에 의해서, 삼공자의 진영이 불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가 나야했다.
'그래야 내 탈영 문제가 묻힐 것인데…!’
하지만 연소현은 어째서인지.
원각정에 틀어박힌 채로, 하루가 넘게 침묵하고 있었고.
그는 군사부에 불려와 무단이탈의 죄와 당시 지휘부에서 있었던, 희생양 만들기에 대해서 추궁당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내 인생에서 한 번만이라도 도움이 되란 말이다! 이 마귀같은 놈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입은 쉴 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몸은 대군사들의 자격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재신임 투표를 통한-!”
사마 대군사가 탁자를 내리쳤다.
“그만!”
탁자 위의 다기가 와르르 엎어졌다.
그는 늙어 주름진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그대의 헛소리는 이제 충분히 들었다! 현 시각부로 우리 군사부는 공식적인 경위 조사를 시작하여…!”
점창의 전 장문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진 김에 눈을 질끈감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이 마귀 같은 연소…, 아니. 연소현 대공자! 연소현 대공자!’
“당시 지휘부 천막에서 있었던 사건을 마지막까지 조사하여, 실체를 밝혀내, 반드시 고의적으로 여론을 선동하여 희생양을 만들어 낸 범인을 찾아내고!”
'이 늙은이를 한 번만 살려 주시오!’
제갈 대군사가 냉랭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또한! 그 건과 별개로 점창파의 탈영에 대한건을 공식적으로 다루어, 진영의 지휘부에 대한 기강을 바로잡는…!”
점창 전 장문인이 속으로 비명처럼 외쳤다.
'대공자님! 제발!’
그의 간절함이 무심한 하늘에 닿기라도 한 것일까.
“좌우 대군사님!”
공중정원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오는 상급 군사의 외침에, 점창 전 장문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서, 설마…?!'
“무슨 일인가?! 일절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를-!”
“급보입니다!”
상급 군사가 좌우 대군사의 불편한 심기를 살필 겨를도 없이 외쳤다.
“최고운영회의가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 소요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뒤를 이어 전령 하나가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대공자가 탄 것으로 확인된 우마차가 원각정을 벗어났습니다! 행선지는 현재 파악 중!”
제갈 대군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 어났다.
“뭐라고?!”
사마 대군사가 내리쳤었기에 탁자위에서 나뒹굴던 다기들이, 결국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졌다.
'드디어 움직였구나…!’
살았다.
그들과는 정반대로, 점창 전 장문인은 눈을 감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희를 느꼈다.
“이럴 거면, 왜 지금까지 미루다가…?!”
사마 대군사가 자리에서 노구(老軀)를 일으키며 탄식했다.
“적어도 제대로 그들에게 따져 보긴 해야겠다! 당장 최고운영회의 행정각으로 갈 채비를 해라!”
그들은 후다닥 자리를 비웠다.
'오오 믿고 있었다고, 대공자!’
혼자 공중정원에 남게 된 점창 전 장문인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나에게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어졌다!’
그러면서 얼른 그 또한 공중정원에서 떠났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 대공자가 떨어트린 불씨라면.
그저 발등만 뜨거운 것이 아니라, 곧 곳간을 태우고, 들불을 일으킬 대화재가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그가 '조금 일찍' 주 둔지를 떠났던 것 정도는 사소한 문제가 되리라.
당분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면서, 조용히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구경할 시점이었다.
'고맙소! 대공자!’
그는 자신이 대공자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감사를 표하게 되는 날이 올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를 비운 공중 정원.
깨진 최고급 다기들만이 바람에 달그락거리며, 삼공자 진영의 행태를 비웃는 듯했다.
* * *
용봉지회 경기장 건설 부지.
삼공자 측 주둔지.
삼공자의 지휘부 측은 거세게 항의하고 있었다.
“염 장로!”
“이제 그대들은 물러가도록 하시오!"
“아무리 최고운영회의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소?!”
수십 명이 몰려와 외치는 소리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것참….'
책상에 걸터앉은 염 장로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 본 장로는 최고운영회의로부터 이곳에서 있었던 항명 행위에 대한 조사 권한과 통제 권한을 위임받았고-.”
“조사는 이쯤 하면 충분하지 않소?!”
염 장로의 말이 조금 길어진다 싶으니, 여지없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첫날에는 암천존자로 인한 혼란으로, 그들도 우왕좌왕했지만, 하루가 지나자,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최고운영회의는 분명히 우리에게 소요 사태의 해결 권한을 줬었소!”
“그런데 지금 염 장로 그대의 행동을 보아하니, 조사는 뒷전이고, 소요 사태 해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군!”
염 장로가 다시 한번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본 장로는 그대들의 공을 가로채고자 하는 의도가 없소. 그저 최고 운영회의의 의지를 관철하는 전쟁부의 의결을 따를 뿐-.”
이미 수십 차례 반복됐던, 똑같은 말에 삼공자 측 지휘부 인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럼, 최고운영회의가 아니라. 전쟁부가 우리 일에 개입하려는 것이로군!”
“전쟁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할 것이오! 이 일을 쉬이 넘어갈 것이라 기대하지 마시오!”
염 장로가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표정 아래에서 다시 한번 한숨을 삼켰다.
"......."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염 장로와 눈이 마주친 종남의 문주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태도가 마치, 당신이 잘못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라, 염 장로의 속이 더욱 불편해졌다.
최고운영회의가 이번 일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는 이상, 그의 곤란함은 계속될 것이다.
'주군….'
그는 의식을 잃었다는 연소현이있는, 멀리 원각정이 위치한 방향으로 괜히 시선을 던졌다.
연소현이 쓰러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는 딱히 걱정을 하지않는 기색이었다.
어째서인지, 그 대공자는.
쓰러진 것조차 계산에 있었던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입을 다물고 있지만 말고! 좀 말을 해 보란 말이오?!”
“그럴 거면, 이곳의 통제권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고, 당장 본가로 돌아가시오!”
그들은 점점 염 장로에게 다가오며 소리를 더욱 크게 질렀다.
항의의 동작이 커지고, 더욱 위협적으로 되어 갔지만.
“지금 최고운영회의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본 장로를 위협하는 것이오?”
염 장로는 그 검악파산이라는 별호처럼, 마치 산맥같이 굳건히 버 다.
'얼마까지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마치 그의 곤란해하는 속마음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그 이름 높은 무인, 검악파산을 이토록 몰아붙이는 광경을 볼 수 있을 줄이야…!”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들을 노골적으로 비꼬는 그 낭랑한 목소리는 염 장로에게 이제 익숙해진 목소리였다.
'주군-!’
염 장로가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자, 좌중의 시선이 그의 뒤를 따랐다.
“역시 과거 무림맹에 소속되었던 정파 수장들의 실력은 놀랍구려! 아주 낙양검가의 장래가 밝은 것 같아, 기분이 좋소이다.”
가장 뒤에서 상황을 방관하던, 종남의 문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무검자…?”
어느새 천막 안에 들어온 연소현은 그런 종남의 문주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소. 내가 그대들의 친구, 대공자 연소현이오.”
연소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
무검자라고 지껄였던 종남의 문주가 그 눈빛에 섬뜩함을 느끼고, 급히 한 발 물러섰다.
"......."
어느새 불편한 침묵에 휩싸인 천막 안에서 연소현이 좌중을 둘러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이야. 이거 다들 환대를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염 장로가 침음하는 이들 사이를 헤치고 나와 그 거대한 몸을 굽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본가의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그때야, 삼공자 측의 지휘부 구성원들이 마지못해 연소현에게 손을 모아 인사했다.
“…본가의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인사조차 제대로 올리는 것이 싫은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이도 있었다.
연소현은 그딴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특유의 휘적거리는 발걸음으로 천막의 가장 안쪽을 향했다.
“본 대공자는 그저 구경, 아니. 실례. 참관을 하러 온 것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좋소.”
그가 염 장로가 기대어 있던 그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꼬고 그 위에 팔꿈치를 얹어 턱을 괸 채로 말했다.
“뭐 하시오? 계속들 하시오.”
삼공자 측 장로 하나가 이를 갈며 나섰다.
“…대공자. 이 건의 뒤에 대공자가 있다는 정보가 어제부터 계속 돌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나섰다.
“이게 어떻게 되어 가는 상황인지 책임을 지고 설명을 해 주시오!”
“당장 우리 측에게 이 현장의 통제 권한을 돌려 달란 말입니다!”
이죽거리는 이도 있었다.
“책임을 지고 설명을 하는 대신, 설명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도 좋지.”
그러든 말든, 연소현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염 장로.”
염 장로는 그의 곁에 서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 정도쯤이야,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삼공자의 지휘부 인원들이 이상함을 느낀 그 순간.
“보고드립니다! 현재 최고운영회의의 행정각주가 외곽 검문소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밖에서 번을 서던 무사가 천막 안에 들어와 고했다.
“최고운영회의의 행정각주?!”
“그자는 최고운영회의의 대리인과도 같은 자가 아닌가?!”
“그 말은 최고운영회의가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는 것일 터인데…!”
순간 혼란해졌던 그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연소현에게로 향했다.
최고운영회의의 이번 결정의 배후에 있었다는 소문이 있는 대공자가 그들의 주둔지를 방문한 이 시점이.
너무나 공교롭지 않은가.
“오오. 정말인가? 최고운영회의가 움직였다고?”
연소현은 무슨 일인지 모르는 척, 놀란 시늉을 하더니, 그 얼굴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제대로 불구경을 할 시간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