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해결책(解決策)
낙양 중앙 관청.
관청의 건물 안으로 흠뻑 젖은 관원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이런 망할. 도대체 위에서는 뭘하고 있는 건지….”
황호에 빠졌다가 나왔어도, 지금보다는 덜 젖으리라.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고함부터 쳤다.
“대체 수문(水門) 개방 허가는 왜 안 떨어지는 게야?!”
“보고는 분명 올렸네.”
그의 외침에 폭우로 인해 비상대기 중인 동료 관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왜 허가가 안 내려오는 건가?!”
관원이 자신의 관복을 벗어 들고 쥐어짜며 분통을 터트렸다.
“위에서는 이대로 가면 황하 상류의 둑이 터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설마. 낙양 사람인 이상, 그걸 모르겠는가.”
그때 다른 관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위에서 허가가 내려왔는가?!”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사(知事)님께서 오늘 병결하신 참이라, 위에서 서로 책임을 미루느라 허가가 늦는 것이라더군.”
“그 망할 지사 놈은 평소에는 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집무실에서 안마만 받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는 자리에 없구먼!”
하지만 그들은 지사의 부재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낙양검가에 가서 허가를 받아야겠네.”
낙양의 실질적 통치자는 낙양검가였으니까.
“어차피 젖은 거, 내가 가도록 하지.”
관복을 쥐어짜던 관원이 다시 그 관복을 걸치고 문을 나섰다.
“제기랄. 애초에 출근을 관청이 아니라 낙양검가로 해야지, 원.”
낙양지사라는 자리는 그 주어진 권한과 책임이 막대했다.
하지만 실상, 중대사에 있어서는 항상 낙양검가의 결정에 따라 도장이나 찍는 존재가 아니던가.
“다녀오게.”
“빗길에 마차 전복이 벌써 몇 건이나 보고되었으니, 조심하고.”
“…제기랄.”
그리고 그렇기에, 그때까지.
병으로 쉬고 있다는 낙양지사가 자택에도 없다는 것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택에서는 그가 아침에 등청하여, 폭우 때문에 아직도 퇴청하지 못하고 비상 대기 중인 줄 알고 있었으니.
* * *
중원국의 수도, 황도(皇都).
황도 중심 거리의 모처(某處).
이공자 휴게실.
이공자 직속의 책사들이 성과를 자축하고 있었다.
“순조롭군요.”
황도십육가문의 가주들과의 회담은 예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던 참이었다.
“그 엉덩이 무거운 자들이 주군의 초대장을 받아 모였다는 것 자체가 반쯤 성공이나 다름없었으니, 이제 마무리만 잘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미 가주들은 전대 가주들과 낙양검가의 대공자가 연합을 하는 것을 대비한, 이공자의 연합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몇몇 조건 따위의 미세한 조정만이 남았을 뿐.
공씨 가문이 불참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상정 내의 상황이었다.
“이로써 대공자는 앞으로도 황도 십육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해 봐야 뻔합니다. 저쪽 편에섰다는 공씨 가문을 계속 동원하는 정도가, 전부일 테지요.”
정오 무렵 벌어졌던, 이씨 가문에 대한 대공자 측의 공격과 관련된 보고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오히려 덕분에, 주군께서 진짜 실권을 가진 나머지 열다섯 가주들을 포섭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일이 아주 잘 풀렸습니다.”
이공자 직속의 책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
하지만 아까부터 창밖을 보며, 침묵 중이던 이공자의 뒷모습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연합을 주군께서 이끌기 위해서, 그들에게 무리한 약속들을 해야 하긴 했지만….”
“그들이 십육가문의 현 가주들인것을 생각하면, 싸게 먹힌 것이지요.”
여전히 이공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습관처럼, 갑주로 둘러싸인 손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하고 있을뿐.
“…주군.”
그 심기 불편해 보이는 모습에, 책사들이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까드득-.
이공자가 입을 열었다.
“…순조로워.”
그 가래 낀 것 같은 쉰 목소리에 책사들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아주 순조롭-.”
“모르겠나?”
이공자가 뒤로 돌아섰다.
그의 황금 가면 아래서 붉은 안광이 스산하게 내리깔렸다.
“모든 것이 지나칠 정도로 순조롭단 말이다.”
"......."
순조로우면 좋은 것이지, 너무 순조롭다고 심기가 불편한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책사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과연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시면….”
이공자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연소현….'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첫 외출부터 그 난리를 치던 놈이, 황도에는 아무런 수를 써 두지 않았다고…?’
그가 입을 열었다.
“…북망산의 노마들이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던가?”
낙양검가의 전서응으로 받았던 정시 보고를 떠올리며, 수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가장 최신인 오늘 정오 기준의 보고에 따르면, 어젯밤 다들 자택으로 돌아온 이후, 누구도 자택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의 정시 보고는 아직이지만….”
공씨 가문에 대한 정보는 이미 이공자도 알고 있으니 보고를 생략 했다.
“어차피 협조를 해 주는 고위 관료들이 없었을 터이니, 굳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히려 그 노마들이 움직일 것을 대비하여 충분히 대비를 해 놓았던 것들이, 조금 아쉬울 정도….”
직속 책사들이 떠드는 소리를 뒤로하고, 이공자는 생각했다.
'...이상하군.’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창밖의 야경을 응시했다.
조경수들이 돌풍에 휘청이는 것을 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그가 한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설마.'
북망산의 노마들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이유.
대공자가 황도에 아무런 대비를 해놓지 않은 이유.
그러면서도 세력 차이가 막대한 자신과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
'연소현, 그놈이….'
그 모든 질문을 관통하는 단 한가지 답이 떠올랐다.
'이미, 노마들을 통해 이루려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인가?’
* * *
요새화된 빈민 노동자 지역.
봉기 세력 지휘부.
거창하게 지휘부라고는 하지만, 그저 주변의 다른 건물들보다 완성이 조금이나마 가까운 전각일 뿐이었다.
"......."
"......."
심지어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먹고 있는 음식조차, 그저 바가지에 퍼 놓은 흰 쌀밥일 뿐이었으니.
다른 빈민 노동자들이 먹고 있는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한 번 기습이 실패한 이상, 이 폭우 속에서 저들도 두 번을 시도하지는 못할 것이오.”
낙양의 봄 소속, 협사 하나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일단 또 하루 정도는 벌었구려.”
그는 오늘도 성공적이었다고, 주변에 힘을 불어넣을 말을 하고 싶었다.
"......."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신의 말이, 자신에게조차 그저 하루 더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라고 들렸다.
"......."
다시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서로 밥만 씹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제길.”
누군가 욕설을 중얼거렸지만,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흠흠."
낙양의 봄 협사들 사이에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빈민 노동자의 지도자가 헛기침을 했다.
“…말씀대로, 오늘의 공격 저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참전 경험이 있는 하급 무관 출신으로, 빈민 노동자들의 권유에 의해 자리를 맡게 된 지도자가 주변을 격려했다.
“저들도 우리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을 터이니, 쉽사리 덤벼들지는 못할것입니다.”
주변인들이 하나씩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
“놈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완공 직전의 건물들을 잃는 것에는 기겁을 할 터이니.”
주변이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을 때, 폭약을 담당하던 낙양의 봄 인원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다들 알겠지만….”
그가 자신에게로 모여드는 시선에서 눈을 피하며 말했다.
“…오늘의 폭발이 가능했던 것은, 이처럼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이오.”
그가 서로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입에 담았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지 않는 날, 오늘 같은 폭발을 일으키면….”
그는 차마 후의 이야기는 입에 담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 결과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재 진압은 양측다 불가능하니, 다음 폭발에는 단지 전체가 전소될 터였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단지 내에서 자신들은 전부 타 죽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빈민 노동자 지도자가 동의하자,
다들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혹여 화재를 통제하더라도, 피해가 일정이상 커진다 싶으면, 저들은 희생을 감수할 겁니다. 그렇게 총력을 퍼부어서라도 우리를 끝장내려 들겠지요.”
총력이라는 말에 다들 표정이 핼쑥해졌다.
지금도 이미 간신히 버틴다는 표현밖엔 설명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지도자가 주변을 향해 말했다.
“협사들께서는 이제쯤 이곳에서 물러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산발을 하고 있던 협사 하나가 물었다.
"설마 우리더러, 이제 와서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이오?”
“포위망이 대단히 엄중하지만, 지금같은 폭우라면 무공이 뛰어나신 협사들께서 충분히 빠져나가실 수 있겠지요.”
지도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여러분까지 같은 결말을 맞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헛소리.”
의외로 그 말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한 것은 방금 비관적인 결말을 입에 담았던 폭약 담당 협사였다.
“애초에 노동자들의 봉기 소식을 듣고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우리는 모두 각오를 하고 왔소.”
“옳으신 말씀.”
분위기를 띄우려다 실패했던 협사가 씨익 하고 웃어 보였다.
“이미 다들 유서는 써 놓고 왔으니, 걱정일랑 마시오.”
다른 협사들도 웃음을 지으며 하나둘씩 말을 거들었다.
낙양의 봄에 몸을 담고 있는 협사란, 그런 인물들이었으니.
“저승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군.”
“우리끼리 갈 생각을 하면 안 되지. 하나라도 적들을 더 데려가야 하지 않겠나.”
“아직 그 유명한 검가의 무사들과 제대로 자웅을 겨뤄보지 못했으니, 발을 빼는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지.”
그 말에 낙양검가 무사 출신의 협사 하나가 피식 웃었다.
“자넨 맨날 나한테도 박살나지 않나?”
“…아니, 이 사람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꼭 이런 상황에 그렇게 무안을 주어야겠나.”
그 대화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수십의 협사들이 누구랄것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공유했다.
그것은 전우애였으며, 동지애였다.
조금이라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 바치기로 한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
빈민 노동자 지도자가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내 장담하지.”
그 모습에 폭약 담당 협사가 말했다.
“저들에게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가장 멋진 폭발을 안겨 주겠소.”
그런데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지도자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 폭발이 어느 정도일지 과연 나도 기대가 되지만.”
그것은 낭랑한 소년의 목소리였고, 모두의 시선이 어리둥절해졌다.
“일단 지금은 추후로 미뤄두는 것이 좋겠소.”
낙양의 봄 협사들은 모두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왔기에, 젊은이는 누구도 데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시오?”
누구도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에,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손에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오한을 느꼈다.
"......."
그 오한은 난데없이 기척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느낀 것일까, 아니면 모습을 드러낸 하얀 가면 때문에 느낀 것인가.
아마도 후자일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공간을 밝히고 있던 유등들의 빛마저 오한을 느낀 듯 희미해졌으니까.
비에 젖었던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무고한 자들의 비명이 하늘을 찌르는데….”
그것은 쇳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은 목소리.
수백 인의 원통함과 비통함이 한데 뒤섞인 것과 같은 목소리.
“낙양 땅에서, 이 내가 그것을 듣지 못했으리라 여겼다는 말인가?”
불쑥.
하얀 가면을 쓴 존재가 구석에 드리우고 있던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그 존재를 이 자리에 있는 누가 모르겠는가.
심지어 이곳에는 금주와의 결전 당시에 참전했던 이들까지도 있었으니.
“아, 암천존자…!”
“암천존자라고?!”
모두가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암천존자 - 연소현이 가면 뒤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들은 각오를 충분히 보였다.'
그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역사에서도, 그들은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빠짐이 없이.
“그렇다. 내가 바로 암천존자라 불리는 존재이지.”
이제 그 또한 자신의 각오를 보여 줄 때였다.
위험을 감수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운명을 써 낼 각오.
“그리고….”
연소현이 가면을 벗어 들었다.
잠깐 썼던 것뿐인데도, 가면은 떨어지지 않으려 그의 얼굴을 일부 찢어 놓았다.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피를 무시하고, 연소현이 좌중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반갑소.”
얼굴 가죽 일부가 벗겨져 섬뜩하긴 했지만,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의 외모가 유등 빛에 드러났다.
“나는 낙양검가의 대공자.”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연소현이라고 하오.”
그 말에 좌중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암천존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도, 더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