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202화 (202/350)

제2편 봄(春)을 기다리는 자들

검가전장, 정문 앞.

삼공자 측을 전선에 복귀시켜, 이공자 측이 연소현 측에 더 이상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간단한 논리.

논리만으로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전략.

하지만 어째서 누구도 그 전략에 대해서 논하지 않느냐면, 이유는 간단했다.

“오라버니.”

“대체 어떻게 삼공자 측의 낙양 전력이 전부 달라붙어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어내시겠다는거죠?”

민중 봉기에 의한 소요사태는 결코 이성적인 판단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 주장은 논리적일지언정, 목숨을 잃는 것을 불사하고 봉기를 일으키는 것은, 논리 이상으로 감정이 끓어넘치기 때문이다.

이공자 측만큼이나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삼공자 측이 수습에 애를 먹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귀여운 녀석들.”

연소현은 대답 대신,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용기를 낸 손길이었다.

“오라버니….”

그녀들이 정말 그 방법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라, 당장 다시 헤어져야 하는것이 아쉬워서 그런 것을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지금도 그녀들의 시선이 불안한 듯 우마차와 연소현을 오가고 있건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다시 한번 꼼꼼히 닦아냈던 그 손은, 평소이상으로 깔끔했지만.

그의 손길은 마치 자신이 부정한 것이라도 되는 양,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어른들의 일은 어른에게 맡기면 된다.”

그녀들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을, 연소현이 입에 담았다.

“…단지 지금은 이 못난 오라비에게 오라비 노릇을 할 기회를 다오.”

'...단지 지금은 이 못난 아비에게 아비 노릇을 할 기회를 다오.’

그 예전,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했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어, 두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그녀들 또한 느꼈다.

“그러니 너희는 이 오라비를 믿고, 내가 말했던 것처럼, 그저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연소현이 먼저 용기를 내어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처럼, 그녀들 또한 좀 더 용기를 냈다.

연소현의 얼굴에 깜짝 놀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

그녀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곧잘 그리했던 것처럼, 말 대신 연소현을 꼬옥 안아 주었던 것이다.

“…다치시면 안 돼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다음번엔 저희와 더 길게 시간을 보내 주세요.”

그녀들의 포옹에 당황한 듯 연소현의 손이 잠시 허공을 헤매다가, 그녀들을 마주 안아 주었다.

“…알겠다.”

서로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서로 어색했던 순간이, 딴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로.

그 포옹은 자연스러웠고, 또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이 오라비가 꼭 약속하마.”

포옹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연소현의 갈 길이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난히도 그 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행복의 순간은 짧다.

그렇기에 그 순간에 감사하며, 그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같이 분투해야 한다.

지키는 것은 어렵고, 싸움은 길다.

그것을 다시 한번 삶을 살고 있는 연소현은 잘 알고 있었다.

뼈에 사무칠 정도로.

“중앙감찰각주.”

"예, 하명하십시오.”

연소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을 부르자, 조용히 등을 보이며 대기하고 있던 독고야연이 돌아섰다.

“이것은 하명이라기보다는 당부다.”

연소현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내원총관을 조심해라.”

“…내원총관 말씀입니까?”

“그래.”

연소현은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않았지만, 독고야연은 납득하고 물러 났다.

내원총관이 예측할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이었다면, 연소현이 경고가 담긴 당부를하는 대신, 대응책을 말해주었을 터였으니.

“너희에게도 당부할 말이 하나있다.”

연소현은 포옹은 풀었지만, 차마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 두 자매에게 말했다.

“당분간. 적어도 이번 일이 일단락되기 전까지는. 정보부처에서 전달해 주는 정보를 날것 그대로 신뢰해선 안 된다.”

두 자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소현을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인가요?”

"......."

연소현이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 아이들의 어깨를 짚은 채, 근접 전음을 사용했다.

[정보부처의 국장(局長)들 또한 연씨 혈족이다. 그들이 이번 일에 끼어들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낙양검가의 최상층에서도 아는 이가 거의 없는, 정보부처 수장들의 신상에 대한 정보였다.

"......!"

“…명심하겠습니다.”

연소현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어 일별한 후, 우마차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기 전, 연소현이 연하응에게 물었다.

“이공자 측이 무슨 대외적인 명분으로 서신을 보내 연씨 혈족들을 불러 모으고 있더냐?”

실제로야, 연소현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낀 부패한 혈족들을 끌어모으는 것이겠지만, 대외적인 명분은 따로 있을 터였다.

“그것이….”

연하응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명문가 이씨 가문과 장씨 가문을 멸문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함이라고 해 두었더군요.”

장씨 가문은 연소현이 손을 쓴 적이 없었다.

이공자 측은 이번 기회에 연소현에게 자신들이 한 짓까지 덮어씌울 의도인 모양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녀석들이로다.”

연소현이 남긴 서늘한 웃음소리와 함께, 우마차의 문이 닫히고, 철갑요새의 육중한 몸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멀어지는 우마차의 모습을 배웅하는 연다은과 연다혜가 손을 꼭 잡았다.

철갑요새의 모습이 거리 저편으로 사라진 이후에도, 그녀들의 시선은 한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봄날의 밤바람은 유난히 따스했다.

곧 봄비가 내릴 듯, 공기 중에서는 특유의 냄새도 났다.

하지만 소녀들은 아직 봄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진짜 봄이 오면.'

기억 속 언젠가처럼 원각정의 개울가에 앉아, 큰오라비와 함께, 언니들과 함께, 동생들과 함께,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떠들 날이 오리라.

그녀들은 그렇게 믿었다.

* * *

낙양검가 특등급 폐관수련장.

"......."

달이 구름 뒤에 숨은 사이, 채비를 갖춘 중년 여인이 조용히 폐관 수련장의 밖으로 나섰다.

“스승님.”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호위 각주의 발걸음이 멈췄다.

“…운기조식을 중간에 끊다니. 제대로 수련을 할 생각이 있는 것이더냐?”

그녀의 시선이 폐관수련장 전각의 위를 향했다.

“몰래 빠져나가, 새 수련법의 성과를 날리고, 벌을 받았던 것으로 부족했던 것이냐?”

날카로운 질책.

평소였다면, 잔소리를 피해 얼른 달아났을 연서린이었다.

“이 시각에 어딜 그리 가시는 겁니까?”

하지만 오늘의 그녀는 달랐다.

“…호위각의 업무에 관련된 것이니, 그것은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그렇습니까?”

전각의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이공녀 연서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저와 상관없지요.”

그러면서도 시선을 호위각주에게 고정한 채,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당한 말로 둘러대던 호위각주의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그런 제자의 모습에, 호위각주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저 초월적인 직감은 괴물 같던 제 아비와 똑 닮았구나.'

그녀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돌아가서 운기행공이나 마저 하거라.”

“스승님.”

그런 호위각주에게 연서린의 말이 날아들었다.

“가시면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그 말이 기어코 호위각주의 발을 얽어 맸다.

“...폐관 중인 네가 뭘 안다고 그리 떠드는 것이냐?”

“멀리 떨어져 있기에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답을 하는 제자에게 분노한 호위각주가 기어코 몸을 돌렸다.

“연서린…!”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제자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전각의 난간 너머, 멀리서 연서린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고모님. 아직도 소현이 녀석을 모르시 겠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그것이 마지막 이었다.

'아직도 연소현 그놈에 대해서 내가 잘 모른다고…?’

하지만 사라진 연서린이 그 자리에 있기라도 하듯, 호위각주의 매서운 눈길이 한동안 그 자리에 맴돌았다.

“각주님.”

불현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호위각주가 돌아서자, 채비를 갖춘 연씨 혈족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가시죠.”

그녀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주변에서 연씨 혈족들이 작은 소리로 떠들었다.

“우리는 다른 혈족들과 다르게, 검가전장의 비밀 장부나 이공자 측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가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번 들여다보는 정도는 해 봐야겠지요.”

“괜찮은 거래다 싶으면,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에 연소현 그놈을 완전히 밀어내 버리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지요.”

“불안 요소는 일찌감치 제거해 두는 것도 앞길을 위해서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들의 시선이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호위각주를 향했다.

“각주님. 서린이 녀석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제 서린이 녀석이 소가주 경쟁에 참가하겠다고 발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날을 위해서 지금까지 서린이 녀석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키워 온 것이 아닙니까.”

그랬다.

그들은 천의무봉 연서린을 낙양검가 최초의 여성 가주로 만들고자하는 이들이었다.

“서린이에 대한 통제는 나의 일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항적이던 연서린의 모습이 떠올라, 심기가 불편한 그녀가 날카로운 반응을 뱉었다.

“나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그대들은 그대들의 일에나 신경 쓰시오.”

그녀의 말에 혈족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뭐, 그건 그렇지만….”

그녀의 가시 돋친 태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곧 그녀에게 신경을 끄고, 자신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연소현, 항상 그놈이 문제야….'

무단으로 탈주하여 연소현을 만나고 온 날을 기점으로, 연서린의 태도가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괜찮다.'

어릴 적부터 그녀를 지켜봐 온 호위각주가 그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서린이의 '목줄'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니까.'

* * *

텅 빈 연무장.

연서린의 검이 허공을 수놓듯, 주변을 가득 메웠다.

수련관의 계곡에도 봄이 찾아와, 벚꽃잎이 휘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날리는 꽃잎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짙은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더니, 기어코 물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곧 기세가 제법 거세졌다.

하지만 그녀가 쥔 아버지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그 검무(劍舞)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은 마치,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치르는 제관(祭官)처럼 경건하기 그지없었다.

* * *

달리는 철갑요새 내부.

“비밀 집회는 일정대로 치러지겠지만….”

낙양의 봄에 소속된 해결사, 수란이 말끝을 흐렸다.

“삼공자 측의 포위망이 한층 더 견고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예, 이젠 당장에라도 큰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 것 같아요.”

연소현의 말에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많은 지사들이 경기장 건설 부지 안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무공이 뛰어난 이들이 감히 빠져나올 시도조차도 못 하고 있어요.”

그녀가 초조함에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그 포위망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연소현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래서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연소현이 물었다.

“문제가 무엇이오?”

“그것이….”

수란이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집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인원이 너무 적다 보니.”

그녀가 머리를 조아렸다.

“요건을 갖추지 못해 대공자님의 입회에 대한 투표조차 진행할 수가 없는 상태라….”

투표.

우두머리가 없이, 운영되는 낙양의 봄다운 방식이었다.

물론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질 못하고 있지만.

“이런 비상 상황을 대비한 회칙은 없는 것이오?”

연소현의 물음에 그녀가 민망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회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나, 조직 특성상 몇 줄 되지도 않습니다….”

연소현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애초에 조직이 제대로 정비되어, 시계의 내부처럼 정교하게 돌아갈 것 같았으면, 연소현이 낙양의 봄에 관여하고자 했을 이유도 없었으리라.

“인원이 부족한 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수란이 그 말에 슬며시 고개를 들어,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방법이라도?”

연소현이 빙긋 웃었다.

“어차피 포위망이 풀리면, 제대로 된 투표를 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니오?”

잠시 연소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수란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사이에도, 연소현을 태운 우마차가 비밀 집회 장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나워져 가는 빗줄기도 감히 두 영물이 끄는 철갑요새를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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