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82화 (182/350)

제7편 전격전(電擊戰)

이씨 가문은 본디 현 중원국의 개국과 함께 세를 키우기 시작한 가문으로 낙양에서 이름있는 유력 가문이었다.

과거, 전대 왕조 시절엔 강서성(江西省)에 적을 두었던 그들 가문은 오래전부터 사패천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렇게 그들 가문은 강남(장강 이남 지역)과의 육로를 통한 상행(商行)을 바탕으로 자본을 축적하며, 낙양 지방 관직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리를 배출해 왔다.

그런 그들이 그 사패천을 등에 업고있는 이공자와 동맹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낙양 유력 가문의 위세를 보여 주듯, 이씨 가문의 회의용 누각은 연못 위에 지어져 호화롭기가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누각에는 이씨 문중(門中)의 인물들이 시시각각 모여 들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들의 용태는 좀 어떻다고 하더냐?”

일과가 한창 진행 중인 대낮인지라, 회의석을 차지하고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현직에서 은퇴한 가문의 원로들이었다.

“약선문 의원의 말로는 둘 모두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후유증은? 녀석들이 다시 관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가능하다더냐?”

장죽(長竹)을 문 노인들이 '녀석들'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청학구의 구장과 그 치안대장이었다.

원로들이기에 가능한 호칭이었다.

“그것은...."

말을 흐리는 집안 젊은이의 말에 노인들이 혀를 찼다.

그들은 가문의 유력 인사가 줄었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할 뿐, 구장과 치안대장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잘되었소.”

이씨 문중의 원로 하나가 장죽의 담뱃재를 털며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것으로 우리 이씨 가문이 다른 어떤 가문들보다도 먼저, 그 대공자를 제대로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어.”

“지금쯤이면, 이공자와 관계를 맺고있는 다른 가문들이 우리 가문을 부러워하고 있겠지.”

“딱 지금 온씨 가문 놈들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아쉽구먼.”

“온씨 놈들은 지금 똥줄이 탈 것이오.”

그들은 마찬가지로 이공자에게 줄을 선 경쟁자 온씨 가문을 들먹이며 낄낄거렸다.

“그런데 대공자 그놈도 어처구니가 없소.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고위 관료를 폭행하고 관병들을 습격해?”

“이게 다 대공자 그놈이 젊은 탓이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자애원이 공격당한 탓에 혈기가 쏠린 것 아니겠소?”

“어흠.”

신중한 성격의 원로들이 즉각적으로 의견을 피력해 낙관론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자를 얕보아서는 안 될 것이오. 어제 그자가 어떤 연유로든 북망산을 휘젓고 다녔다는 것을 잊지들 마시오.”

“이공자 측에서도 경고를 몇 번이나 하지 않았었소?”

“듣기로는 검가의 정계 내에서도 그자에 대한 소문이 매우 흉흉했소.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오.”

“어젯밤 죄악계곡 화재 현장에도 몇몇 유력 가문들이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었소.”

그런 말에 명분을 얻어 희희낙락하던 이들도 금방 낯빛을 가라앉혔다.

신중론을 듣고도 마냥 계속 상대를 얕보기만 할 정도로 그들이 쌓아 온 경험은 적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명분을 끝까지 물고 붙드는 것이오.”

“방심하여 공세를 늦추지만 않는다면, 대공자 그놈의 행보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 정도로는 충분하지.”

그들은 이어서 어떤 가문과 협력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공자를 압박할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갔다.

평생을 정략 속에 살아온 것과 마찬가지인 이들이라, 이내 명분을 활용할 온갖 방법들이 쏟아졌다.

“가주. 어째서 그리 침묵을 지키고 계시오?”

다들 장죽을 피워 대며 대공자를 향한 흉계를 꾸미는 사이, 원로 하나가 가주에게 물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직에서는 은퇴한 이씨 가문의 가주가 아까부터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수상하오.”

가주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무엇이 수상하단 말씀이오?”

“대공자 말이오.”

그가 말을 이어 나가려던 참이었다.

“본 가주가 생각하기로, 그 검가의 대공자가 이리도 쉽게 명분을 내어 줄-.”

그때 마치 진천뢰라도 터진 것같은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졌다.

* * *

이씨 가문 본가의 대문이 사라졌다.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진 대문으로 인해 자욱한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고, 그 먼지구름을 뚫고 강철의 우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

두 마리의 영물이 스스로가 만들어 낸 파괴의 현장을 자랑하는 것처럼 길게 울부짖었다.

그 광경은 지난밤 죄악계곡에서 하녀단장 향이 '철갑요새라면 길을 막고있던 건물을 돌파 가능하다' 라고 말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듯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저것은 도대체 무엇이고?!”

나이도 잊고 한달음에 대문까지 달려나온 원로들이 마부석이 빈 철갑요새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다들 뭣들 하고 있느냐! 당장 저 흉측한 짐승들을 제압해라!”

“누가 타고 있는진 몰라도, 끄집어내란 말이다!”

대문이 부서지자마자 이씨 가문의 본가엔 비상사태가 발령되었고, 항시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과 무장한 하인들이 철갑요새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뒤늦게 합류한 원로 하나가 철갑 요새를 보고 문득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에 약 선녀가 타고 다니던…?!”

그때 그 소란 사이로, 내공이 깃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뜸 창칼부터 들이대다니.”

소년처럼 보이는 인영이 먼지구름을 가로질러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명망 높은 이씨 가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손님 대접이 영 형편없군.”

자기소개는 따로 필요 없었다.

소년은 거대한 낙양검가의 대공자 깃발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대, 대공자?!”

창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얀 피부, 오만한 미소, 보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검은 외투가 펄럭이는 모습.

한 번도 직접 만난적이 없던 누구라도 보는 순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으니.

“그래, 본인이 바로 대공자 연소현이다.”

깔아 보는 시선과 노골적인 하대에 이씨 가문 원로들의 인상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애송이가…!”

“뭘 믿고 이리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이더냐?!”

삿대질과 노성이 날아들었다.

원로들 중의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연소현에게 말했다.

“낙양에서 다른 가문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것은, 낙양검가의 대공자라도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연소현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지.”

그 말에 앞으로 나선 원로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방금 그대가 저지른 일만으로도, 낙양검가의 집법원과 낙양 중앙 법원에서 그대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겠지?”

그 말에 연소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 알고 있는 것들을 뭐 그리 열심히 떠드는가? 본 대공자가 모르는 법조문을 가져오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나섰던 원로가 이를 드러냈다.

“그렇게 잘났다면, 다른 이의 사유재산을 침범한 이에게 자신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자기 방어권'도 알고 있겠지.”

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도 무장을 마친 이씨 가문의 하인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고, 이씨 가문이 키워 냈거나 고용한 무인들 또한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문의 식객으로 머물던 이름 있는 무림인들 또한 밥값을 하기 위해서 무기를 꼬나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드넓은 이씨 가문의 대문 안 마당을 병력으로 전부 채워 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충분히 병력이 모여들자, 원로가 연소현에게 말했다.

“이씨 가문이 네놈을 포박하여 직접 중앙 법원으로 압송을 할 것이다.”

그의 말에 연소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명백한 비웃음 소리가 드넓은 마당에 울려 퍼졌다.

모여든 병력의 눈매가 더욱 사나워지고 병장기를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무엇이 그리 좋다고 웃는 것이더냐?”

연소현이 일부러 과장되게 웃어 보이던 것을 그치며 말했다.

“아니. 네놈이 한 말이 정확히 내가 하고싶었던 말이라서 말이지.”

“…뭣이?”

연소현이 훌쩍 뛰어올라 우마차의 위에 섰다.

“본 대공자는 지금부터 직접 너희를 포박하여 중앙 법원으로 압송할 것이다!”

그 말에 원로들의 입가가 비틀렸다.

노골적으로 폭소를 터트리는 이도 있었다.

“사법권도 없는 네놈 따위가 무슨 권한으로 그딴 소리를 한단 말이더냐?”

연소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법적 권한이 있는 분들을 모셔 왔지.”

원로들이 연소현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관매직, 밀수, 세금 포탈, 인신매매, 살인 교사, 감금, 직권남용, 협박…."

목소리의 주인은 이씨 가문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 줄줄이 읊으며 무너진 대문을 거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이씨 가문이 받고 있는 혐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전부 말해 주기도 힘들구먼.”

그는 은퇴한 몸이라서 판관복이 아니라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낙양의 유력 가문의 제대로 된 인사라면 그의 얼굴을 몰라 볼 사람이 없었다.

“저, 저분은 청 판관이 아니신가?!”

처음엔 반사적으로 그를 칭하는 말을 높였던 이씨 가문의 원로가 비명처럼 외쳤다.

“청씨 가문의 가주가 직접?! 어째서?!”

일찍이 명판관이라 불리며 낙양을 넘어 황도에까지도 그 이름을 날렸던 인물.

나이에 맞지 않게 풍채 당당한 청 대인이 좌중의 시선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바로 지난밤, 하인들을 인도하여 화재 진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임시 지휘 막사를 찾아왔던, 청씨 가문의 가주였다.

“본인은 이제 판관에서 은퇴한 몸이라, 법을 집행하고 판결할 수 없으니, 가문의 힘을 좀 빌렸소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판관복을 입은 청씨 가문의 일원들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전부 현직에 있는 판관들이었다.

대대로 명판관을 줄줄이 배출하며, 지금도 현직에 수많은 판관이 있는 청씨 가문이 그 힘을 드러낸 것이다.

'판관이란 종자들은 하나만 덤벼 들어도 부담스러운데…!’

그런데 아예 그런 판관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이씨 가문 원로들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청 대인(大人)!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무슨 연유로 청씨 가문이 우리 이씨 가문에 선전포고를 하는것이오?!”

“대체 우리 이씨 가문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청씨 가문이 지난밤 죄악계곡의 화재 진화를 도왔다는 정보는 들었었지만, 그것은 화재 진화에 불과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여 주는 행위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이것은 가문 간에 끝을 보겠다는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억울한 척하지들 마시오. 본인의 '동맹군'인 대공자를 먼저 건드린 것은 그쪽 이씨 가문이었소.”

“동맹군이라니…?!”

굳이 동맹'군'이라 표현하는것부터가 매우 노골적이라, 청 대인의 의도를 못 알아듣는 이씨 가문의 원로는 없었다.

청씨 가문은 대공자의 편에 서서 이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었으니.

그들의 설전을 지켜보던 연소현의 입가에 걸린 오만한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패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순간은 적의 목덜미를 단숨에 끊어 낼 수 있는 순간이지.’

적들은 그가 청씨 가문 전체를 전쟁에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하지.”

청 대인이 손짓하자 청씨 가문의 판관들이 호령했다.

“수사관들은 압수 수색 집행을 준비하라!”

그들의 명에 각 판관이 거느린 수사관들이 일제히 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무장을 마친 그들의 모습은 비위를 저지른 이들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이씨 원로들의 눈매에 살기가 어렸다.

“우리 이씨 가문이 호락호락 당해 줄 것 같은가?!”

가장 앞에 섰던 원로 하나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이씨 가문은 이제부터 자기 방어권을 발동하여, 근거가 불충분한 혐의에 기반을 둔 터무니없는 집행을 막는다!”

그의 외침에 이씨 가문의 병력이 이를 악물며 병장기를 높이 쳐들었다.

“존명!”

그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자기 방어권이라는 얄팍한 주장으로 판관의 사법 집행을 막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압수 수색을 들어가면 당장 전부 잡혀들어가게 생겼는데, 뒤를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저런….”

그 모습에 청씨 가문의 가주, 청 대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유력 가문들이 자기 방어권을 악용하여 사법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구먼.”

집행을 해야 할 수사관들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청 대인의 말처럼, 유력 가문들에 사법 집행을 할 때마다 무력 충돌은 일상과 같이 벌어지는 일이었으니.

그들이 손을 들어 신호하자, 사법 집행 병력이 무너진 대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형을 갖추어라!”

“진압 대형으로!”

조장들의 외침에 따라 사법 집행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중갑과 중방패 그리고 단창으로 무장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로 향하는 정예 병단을 보는 것 같았다.

뒤로 한참 물러선 이씨 가문의 원로가 외쳤다.

“이씨 가문의 자랑스러운 일원들이여, 마지막까지 가문의 영광을 위-.”

전투의 시작을 명하려던 그는 끝맺음을 짓지 못했다.

백보신권에 얻어맞아 멀찌감치 날아가, 전각의 거대한 기둥에 처박혀 허리가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말이 많군.”

주먹을 거둬들인 연소현이 내기를 다스리며 외쳤다.

“쳐라!”

지휘권이 없는 연소현의 명이었음에도 사법 집행 병력이 일제히 돌진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히 군졸 따위들이 저항할 수 없는 권위가 담겨 있었다.

“마, 막아라!”

물론 그 돌진 진형의 가장 앞에는 자신의 기를 든 연소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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