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81화 (181/350)

제6편 첫 중돌(衝突)

그것은 누구도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연소현에게 턱을 얻어맞은 구장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아 바닥에 굴렀다.

주변의 이들은 구장의 입안에서 떨어져 나온 이빨들이 선혈과 함께 정오의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았지만, 구장의 주변에 서 있던 호위무관 삼 인은 훈련받은 대로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암습-!”

“구장님을-!”

그들이 외치는 말은 채 끝나지도 못했다.

가장 오른쪽에 서 있던 호위무관의 복부에서 마치 고목이 부러져 넘어질 때 나는듯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그의 갑주가 연소현의 전사경에 의해 산산이 박살이나며 울려 퍼진 소리였다.

내공을 제대로 끌어올릴 시간도 없이 일권에 얻어맞은 그는 공성추에라도 직격당한 것처럼 뒤로 날아가 담에 처박혔다.

“…이익!”

“흡!”

두 번째와 세 번째 호위무관들은 첫 호위무관이 날아가 담에 처박히기 전에, 각기 일 초식을 펼쳐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의 일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일격이 빗나갔다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연소현의 양 손바닥이 각기 그들의 가슴팍에 도달해 있었다.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두 호위무장의 몸이 쏜살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각기 다른 건물에 충돌했다.

벽을 뚫고 들어간 그들의 몸이 뭔가 중요한 기둥이라도 부러뜨렸는지, 어설픈 빈민가의 건물이 일제히 붕괴했다.

“감히….”

손을 거두어들인 연소현이 소매를 털었다.

그때 와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로 날아가 처박혔던 호위무관 위로 돌담이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리는 한가운데에서 모두의 시선이 모여든 가운데 연소현이 말했다.

“본 대공자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이 정도로 손속에 자비를 둔 것을 고맙게 여겨라.”

그 말을 듣고 있던 구장의 보좌 하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연소현을 가리켰다.

“아, 아, 아무리 검가의 대공자라 하여도, 이, 이런 무도한 짓을-.”

말은 끝나지 못했다.

연소현의 일권에 얻어맞은 보좌가 구장과 동일한 모습으로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

모두의 눈이 다시 한번 찢어질 듯이 커졌다.

먼지가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입을 쩍 벌린 관리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백주 대로,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관료들을 폭행하다니!

연소현이 넋을 잃은 것 같은 좌중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정확히 치안대장을 바라보았다.

“거기. 네놈이 관병의 책임자더냐?”

연소현의 시선을 마주한 치안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육모 방망이를 버리고 칼자루를 쥐었다.

하지만 앞의 상황을 모두 지켜본 그에게 감히 칼을 뽑을 용기는 없었다.

주춤거리는 그를 보며 연소현이 마치 명령하듯 말했다.

“관병들을 모두 거두어라.”

대공자의 명을 따라야 하는가.

“대, 대공자는 본관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관이란 자가 대공자의 명에 따라 버리면, 그의 관직 생활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구장님을 폭행하고, 관의 무관들을 기습하다니, 이 건은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을 것이오…!”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겨 점차 다가오는 낙양검가의 대공자를 보며,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와 연소현의 사이에 서 있던 이들이 역병 환자를 피하듯, 좌우로 갈라졌다.

“황제 폐하께서 임명하신 관료의 공무 집행을 무력으로 방해하는 것은 중원국의 지엄한 법도에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연소현이 다가올수록 그의 뒷걸음질은 빨라졌고, 입술과 혀를 놀리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대, 대공자! 본관은 이씨 가문의 일원으로, 낙양검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씨 가문?”

“그, 그렇소이다! 우리 이씨 가문은- ”

연소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저 뒤에 자빠져 있는 구장놈이 바로 이씨가문의 직계가 아니던가? 이씨가문이 낙양의 관에 가문의 일원들을 그렇게 꽂아 넣는다는데, 네놈도 그중 하나였구나.”

“그, 그런…?!”

연소현의 발걸음이 멎었다.

치안대장의 헛소리가 먹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치안대장의 등이 벽에 부딪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경고다. 병력을 거둬들여라.”

치안대장의 떨리는 시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리 중에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도움을 주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연소현의 명에 따를 수는 없었다.

후에 그가 관직도 없는 연소현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거둔 건에 대해 중앙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그들 모두가 적대적 증언을 쏟아 놓을 것이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 수 없소.”

“그래?”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 연소현이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관리들이 그의 시선이 닿을까 화들짝 물러나는 모습이 시야 안에 들어왔지만, 애초에 연소현이 바라보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아이고, 어머니. 눈 좀 떠 보시오…!”

“아부지! 아부지!”

머리가 깨져 죽은 남편을 붙잡고 눈물을 쏟는 부인의 모습.

일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붙들고 곡하는 가족들의 모습.

자빠져 꿈틀거리는 어미의 곁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

관병들에 의해 쓸려 나간 자리에는 비통함을 담은 외침과 통곡, 비탄이 남았다.

"......."

연소현의 시선이 묶여있는 자애원의 일원들을 향했다.

관과의 충돌을 피해 후퇴한 무장 병력을 제외한 모든 자애원의 일원들이 거기 있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빗장뼈가 내려앉았지만, 용케 의식을 잃지 않은 노의원의 시선이 연소현의 시선과 맞닿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기면 일단 빠지라고 했건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빈민들을 보호하다가 호되게 얻어맞고 붙들려 있었다.

“대공자! 대공자! 제발…!”

연소현은 관직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도 내려놓지 못하고, 잘못된 집행에 대한 후회도없는 치안 대장을 바라보았다.

다른 무관들처럼 한 방 얻어맞고 기절해 있으면 일이 끝나리라 믿고있는 그의 얕은 생각이 선하게 보였다.

“경고는 끝났다.”

연소현이 툭 하고 그의 어깨를 건드리고 돌아섰다.

“우윽..?!,,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연소현의 뒤로 치안대장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주르륵 쏟아졌고, 몸은 걷잡을 수 없이 경련했다.

끔찍한 암경이 그의 단전을 단숨에 파괴하고 전신의 경맥을 찢어발겼기 때문이었다.

양가비전, 굉뢰통천포.

더 이상 원래의 형(形)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굉뢰통천포였다.

연소현의 조절에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폐인이나 다름없이 여생을 보내야 하리라.

"......."

돌아선 연소현의 시선이 관병들을 향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는 관병들은 누구랄것 없이 손에 피가 묻은 육모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그 수가 백을 훌쩍 넘었다.

연소현의 입이 열렸다.

“모두 제압하여 쫓아내라!”

내공을 담은 외침은 그 자체로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일시적으로 후퇴한 채 몸을 숨기고 대기하고 있던 자애원의 무장병력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

관병 하나가 어설픈 모습으로 대응을 하려다가, 철로 보강된 봉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관병들은 어떻게든 대응을 해 보려 했지만, 그들은 군(軍)이 아니었고, 한낱 치안 병력에 불과했다.

머릿수는 비슷했지만, 장비의 수준부터 다른 자애원의 무장 병력이 그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이런 미친 자들이…?! 관병을 공격하는 것은 반란이나 다름없다!”

중간 지휘관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의 말처럼 관병을 공격하는 것은 역도(逆徒)로 취급당하는 중대한 범죄였지만, 지도자의 명을 따르는 자애원의 무장 병력에게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들에게 휩쓸린 중간 지휘관이 쏟아지는 몽둥이질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구석으로 모여!”

“대형을 맞춰라!”

훈련받았던 대로 구석에서 어떻게든 진형을 갖춰 대응을 하려는 관병들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짓쳐 들어와 진형을 뭉개 버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놈들! 선량한 백성들을 두들겨 패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야! 소리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때려잡아!”

수란과 청호위였다.

신이 나서 날뛰는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마다 관병들이 허공을 날고 땅을 굴렀다.

그 모습에 후열에 있던 중간 지휘관들이 비명처럼 소리를 쳤다.

“후, 후퇴하라!”

* * *

“으, 으아아…?!”

의식을 잃었던 청학구의 이씨 구장이 오물이 섞인 물을 뒤집어쓰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꽁꽁 묶여 머리를 제대로 들 수조차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일-?’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한 그의 귓가에 연소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들 하느냐? 놈이 정신을 차렸으니, 계속 집행하거라.”

그의 목소리를 듣자, 구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은 치안 병력이 챙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고 갔던 형틀에 묶  있었다.

그리고....

“다섯 대요!”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이씨 구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고, 형틀에 묶여 있던 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뒤틀렸다.

“여섯 대요!”

여섯 번째 곤장이 그의 둔부를 강타했다.

“으으읍…!”

입에 물려 있는 지저분한 재갈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빨들이 전부 부러졌으리라.

“일곱 대요!”

멀찍이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자애원 호두 마을 지부장, 노의원의 입가에서 흘흘, 하고 새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 죽어 가는 늙은이가 뭐 좋다고 그리 웃소?”

응급처치를 하던 늙은 무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먼저 떠났던 빈민들의 이주를 선도하고 돌아온 호두 마을 지부의 또 다른 지부장이었다.

“에잉. 자기가 의원이면서 오히려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

속이 상한 늙은 무녀가 혀를 차든 말든 웃는 노의원이었다.

그들 말고도 주변에는 연소현의 명에 따라 몰려온 지원 의료진들이 부상자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부상이 없는 빈민들을 원래 계획대로 이주를 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여덟 대요!”

* * *

포로처럼 붙잡혔던 관병들이 초주검이 된 이씨 구장과 치안대장을 업고 이씨 가문으로 달렸다.

그 모습을 손을 흔들어 배웅한 수란과 청호위였지만, 그들의 속은 그리 편치만은 못했다.

그들은 현장에서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고 있던 연소현에게 다가갔다.

“대공자님.”

그들을 돌아본 연소현의 입가에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가 걸렸다.

“두 분 모두, 몸은 시원하게 푸셨소?”

"예, 덕분에…가, 아니고.”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들이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자들을 그냥 저대로 보내도 될까요?”

수란의 질문에 연소현이 의외라는 듯이 답했다.

“죽이면 너무 일이 복잡해지지 않겠소?”

그 말에 두 사람이 펄쩍 뛰었다.

“고위 관료를 죽이다니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연소현이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농을 한번 해 본 것뿐 그가 그들의 말에 들어 있던 의도를 모를리가 없었다.

“그대들의 걱정은 잘알고 있소.”

관리들이 누구랄 것 없이 뻣뻣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그만큼 공권력을 건드리는 것이 큰 후환을 불러오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그저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초주검을 만들어 버린 것은….”

“게다가 치안대장과 구장 모두 그 이씨 가문의 사람이라지 않던가요.”

그들의 우려에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이대로 적들에게 훌륭한 명분을 준 채 그저 손 놓고 있으면, 일방적으로 물어뜯기겠지.”

그의 말에서 뭔가를 느낀 수란이 다시 물었다.

"그 말씀은 다 방법이 있으시다는...?"

연소현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나는 이제부터 이씨 가문에 쳐 들어가, 그들의 마지막 주춧돌 하나까지도 뽑아 버릴 참이라오.”

스산한 살기에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연소현의 말에 아연한 표정을 한 수란이 말했다.

“…이씨 가문을 무너뜨리시겠다고요?”

“구장 놈뿐만 아니라, 이씨 가문 전체가 이공자놈과 손을 잡았으니까.”

그의 안광이 번뜩였다.

“이것은 나와 이공자놈의 전쟁이오.”

연소현이 멀리 줄지어 이동하는 빈민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구장놈 하나의 볼기를 때린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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