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63화 (163/350)

제13편 혼란(混亂)

죄악(罪惡)의 골짜기.

관병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검가는 눈을 감고 침묵하는 곳.

사공자 측 죄악계곡 사업 부지 책임자는 당백(唐栢)이라는 중년인이었다.

"...."

당백은 평소처럼 표정 하나 없는 자신의 얼굴 가죽 아래가 오갈 데 없는 분노로 뜨겁게 달궈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주군인 사공자가 자신을 대리인으로 삼아 주신 것은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 이후로 단 하루도 이 죄악계곡이 최악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 최악이로군.'

수십 명이 달라붙어 물을 나르고 불을 끄는 모습이 무안할 정도로 세차게 타오르는 화염은, 밤하늘마저 불태워 버릴 기세였다.

그 화염을 눈 안에 담듯이 노려보던 당백이 몸을 돌렸다.

[보고드립니다.]

귀신같은 신법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의 수하가 지근거리에서 전음을 구사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여겨졌던 빈민을 붙잡았으나, 방화와는 관계가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백은 무표정 그대로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다른 용의자는?]

[현재로서는…]

손을 저어 보인 그는 수하와 일별하고, 화재를 피해 임시로 설치한 대응 지휘부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당백 대장!”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같은 사공자 측의 문사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평소처럼 서로 목에 핏대만 세우며, 결론이라고는 없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으리라.

“당장에 화재도 화재지만, 계곡 중류 지점에 위치한 전진기지의 인원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중류 지점에서는 현재 파악된 것으로만 백골파, 흑강패, 삼오통방, 세 개의 암흑가 조직들이 항쟁을 벌이는 중이오! 전진기지의 인원들을 구출하려면, 그들의 항쟁을 정면으로 뚫고 가야 하는 상황! 그 정도의 병력을 각출하면, 화재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화재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먼저 그들을 구출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그쪽에 자애원의 책임자들과 인원들의 발이 묶여있으니 그들을 먼저 구하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일단 낙양 행정부 유관 부서의 협력을 얻어서…!”

"그만.”

당백이 기세를 슬쩍 발출하여, 그들의 끝도 없는 난상 토론을 정지시켰다.

“먼저 화재부터 진압하는 것이 우선이오.”

그들이 뭐라 말을 더 하려 했지만, 당백의 예리한 기세에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니, 문사들이 차라리 나았다.

“화상에 듣는 응급조치용 약초가 부족합니다! 붕대 또한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원 담당 책임자인 자애원 소속의 의원이 사방에 외치며, 애타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환자들이 너무 많소! 당장에 안전 영역을 확대해서라도 그들을 받지 않으면, 전부 길거리에서 죽어나갈 것이오!”

“안전 영역을 확대하려면 당장 불을 끄고있는 내 수하들부터 경비 업무로 돌려야 하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환자 치료와 이송을 책임지는 자애원의 젊은 의원과 사업 부지의 경비를 위해서 고용한 용병단의 단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북쪽! 북쪽에 화염이 번지고 있습니다!”

“남동쪽 화염은 제압되었지만, 그 너머까지 진압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전령들은 쉴 새 없이 뛰쳐 들어와 정신없이 화재 현황판을 갱신하고 있는 문사들을 더욱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거, 이거. 오늘 밤은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군요.”

실눈의 여인이 당백에게 다가오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당백과 마찬가지로 사공자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책사 당예린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 잘도 여유로워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는 당백의 눈이 좁아졌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시죠? 저 나름대로 현월각 측과 정보를 공유하던 참이었으니.”

과연 그녀가 온 방향에서는 현월각의 분석 요원들이 땀을 뻘뻘 흘려 가며, 현장 요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가공하고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용의자는 네 부류로 좁혀진다고 하는군요.”

당백이 낮게 코웃음 쳤다.

“방화범, 정신이상자, 자살 희망자, 머저리, 그리고 적(敵). 내 분석에 따르면 다섯 부류군.”

“또 비꼬시긴.”

그의 현월각에 대한 냉소적 반응에 당예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대공자님의 수하이고, 우리에게는 협력자예요. 좀 더 신용을 하시는 편이…."

"그 양통인가 하는 현월각 측 죄악계곡 책임자는 어디 갔나?”

“그건 저도….”

양통은 현재 연소현의 우마차에 탄 상태였지만, 현월각의 요원들이 그런 정보를 알려 줄리가 없었다.

“세상에 믿어도 좋을 정보 단체는 없다. 책사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그의 말에 당예린이 팔짱을 꼈다.

“그런 말을 하시는 당백 대장께서는 애초에 이 세상에서 신용하는 사람이 주군 빼고는 없잖아요?”

"...."

대인 불신을 가진 당백은 할 말이 없었다.

“용의자 네 부류로 돌아가죠.”

그렇게 당백의 입을 다물게한 당예린이 제 할 말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는 마교도를 찾는다고 낙양의 빈민가라면 어디든 헤집고다니는, 검가 삼공자 휘하의 제마멸사대(制魔滅邪隊).”

당백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제마멸사대의 광적인 마교 증오는 유명했으니.

“두 번째로는 죄악의 골짜기 중상류를 차지하기위한 항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우리의 개입을 막으려는 암흑가 조직. 이 경우에는 세력다툼에서 선두로 나서고 있는 '백골파'겠지요.”

백골파는 흑골파가 암천존자라는 미상의 존재에게 쓸려 나간 후, 새로 생겨난 신흥 조직이었다.

“세 번째로는 진짜 '마교도'에 의한 사건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진짜 마교라.”

“대장께서도 이곳에와서 마교도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하셨지 않나요?”

당백은 대답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흰자위 없이 검은 눈깔을 한 최악 최흉의 광신도들.

과거 그들의 본거지였던 십만대산에서 가까운 사천에서도 소문만 무성한 그 마교도를 죄악계곡에 와서야 직접 목격했던 당백이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근 몇 주사이에 부쩍이나, 검은 눈알을 한 이들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늘었더군요.”

“…그들과 화재가 어떻게 관련이 있다는 거지?”

당예린이 매끈한 자신의 턱을 만졌다.

“뭔가의 제사? 의식?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불을 지르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현월각측도 잘 모른다고. 오히려 자애원쪽에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다음은?”

“마지막은….”

당예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술사나 도사 혹은 수행자 따위들이 저지른 짓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소매를 들어 입가를 가렸다.

“이 시대에 무슨 미신 숭배자들인지. 하여튼 사천이나 여기나, 미신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서 돈벌이가 되니, 그런 시대에 덜떨어진….”

그녀는 말을 줄였다.

당백이 사천당가의 차마고도(茶馬古道) 순찰단(巡察團) 출신이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으음."

당백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는 사천과 운남의 밀림과 고원 등의 험지들을 오가며, 온갖 부족들의 원시 주술과 기이하고 뒤틀린 신앙들을 직접 목도했었다.

“자신이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순진한 짓이지.”

당백이 낮은 목소리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일단 제가 순진한것으로 해 두죠.”

사천 도시 출신의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비문명권 세계의 이야기 였다.

'그런데 사천의 어떤 도시보다도 거대한 낙양 도심 한가운데에서 미신 이야기라니.’

한숨을 내쉰 그녀가 뭐라 말을 이어가려던 참에 전령과 자애원의 인원이 한 덩이가 되어서 굴러들어 왔다.

“야, 약탈입니다! 빈민들이 대규모로 군집해 약탈을 벌이고 있습니다!”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일단은 당장에 상점가를 털고 있지만, 언제 이쪽으로 향할지 모릅니다!”

초유의 사태에 당황한 이들의 웅성거림이 커지자, 당백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당장 필수 인력만 남기고 전부 대처하러 가시오!”

천막 안의 인원들이 이를 악물고 뛰쳐나갔다.

당백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은 문사들이 입구에 비치된 육각봉을 들고 나갔고, 심지어는 현월각의 정보요원들까지도 무장을 챙겨들고 천막을 나섰다.

그렇게 우르르 인원들이 몰려 나가던 와중에, 오히려 역으로 들어 오는 이가 있었다.

“허허, 이것 참. 차라리 월국(越國)의 정예연대와 밀림에서 격돌하던 때가 그리울 지경이야.”

두건을 쓴 고령의 여인이 지팡이를 짚고 혀를 차며, 당백과 당예린 쪽으로 다가왔다.

“곽 어르신.”

당백의 인사에, 곽 어르신이라 불린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여기 있었군.”

그녀는 사공자의 최측근이자,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만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전략 참모였다.

“이 계곡 하나에 추정 인구가 이만에서 삼만이라니. 아무리 낙양이라지만 정도를 넘었어.”

그녀가 혀를 찼다.

“그러니 한번 중상류에서 일이터지면, 이 하류까지 휩쓸리고 마는 게야.”

“…위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흑가 조직 간의 항쟁 때문에 벌어진 화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것도 영향이 있겠지. 그리고 동시에 다른 원인들 또한 동시에 작용하고 있을 걸세.”

그녀가 지팡이를 바닥에 치며 코웃음을 쳤다.

“이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동네에서 이 정도의 큰일이 발생했는데, 이유가 단 하나뿐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나?”

"...."

당백이 침음했다.

당예린도 인상을 쓰고, 생각에 잠겼다.

곽 노인이 천막 안에서도 느껴지는 매캐한 공기에 고개를 저었다.

“계곡 중류(中流)에 고립된 전진기지의 대처는….”

그녀는 말을 삼켰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화재 진압이 먼저겠지.”

"예, 일단 정예들만 뽑아서 제가 직접 가볼 생각이긴 한데….”

당백의 말에 곽 노인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당장 어떻게 그들을 구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들을 호위해서 데리고 돌아올지가 문제겠지.”

정예 병력이라도 충분하면, 전진기지에서 접근하는 암흑가 조직원들을 전부 척살해 버리기라도 했겠건만.

현재 그들의 정예 병력은 대다수가 대선상회와의 일전을 위해 그쪽에 배치가 된 상태였고, 당분간은 그쪽에 있어야 했다.

“…대공자가 아무리 신산이라 불리는 계책을 지녔다 해도, 이번엔 욕심을 너무 부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네."

"...."

곽 노인이 주름 가득한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우리 사업지는 하류인데, 어째서 중류에다가 전진기지를 설치했는지….”

당예린 또한 석연치 않던 점을 꺼내 놓았다.

“이공자 측의 대선상회에 대한 공격또한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백만이 침묵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딱히 두 여인의 말에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노파심에 꺼내는 말이긴 하네만, 자네들은 이 연합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번에는 당백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상관없습니다. 주군께서는 그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대공자께서 소가주가 되는 날, 가장 가까이 서는 것은 우리가 될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였다.

“주군께서 그것을 바라시면, 이루어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요.”

당예린 또한 단호했다.

곽 노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야. 단지 나는 아깝단 말일세. 주군의 자질은 내가 이때까지 봐 왔던, 어떤 이들보다도 빛나는 자질이야.”

사사건건 부딪치곤하는 낙양검가 사공자 계파의 유 장로또한, 사공자의 자질에 대해서는 그녀와 생각이 같았다.

“내가 지금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것 때문일세.”

그녀가 사공자 측의 인원과 현월각 측의 정보요원에게 받은 쪽지들을 꺼내 들었다.

“북망산에서 볼일을 마친 대공자께서도, 여기 상황을 전해 들으신 주군께서도 이쪽으로 향하고 계신다고 하는군.”

그때서야 그녀의 우려를 눈치챈 당예린이 아미를 찌푸렸다.

“두 분 모두 지금 같은 난장판이 된 현장에 직접 나오시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요?”

“…그렇군.”

약간 늦게 눈치챈 당백 또한 인상을 썼다.

곽 노인이 우려가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만약 두 분 다 첫 현장에서 적당히 헤매신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대공자께서 헤매시는 동안, 주군께서는 훌륭한 통솔력을 보이신다면…?”

“그러면 이 동맹에 진정한 혼란이 찾아오게 될 것이야.”

당백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주군께서는 대공자님을 아끼시니, 대공자님과 진도를 맞추지 않으시 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몰라도, 주군의 마음속에 의문이 생기겠지요.”

"...."

그들 또한 북망산에서 연소현이 보인 활약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거래를 했는지 그들로서는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이름 높은 북망산의 전대 가주들과 거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업적이라 할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대화가 통하는 이들과의 교섭과 이 '대혼란 중의 현장'은 전혀 궤가 다른 문제였다.

그때 전령이 뛰쳐 들어왔다.

"대공자님의 마차 행렬이 계곡 초입에서 접근 중입니다!”

그 말을 들은 곽 노인이 혀를 차고 지팡이를 두드렸다.

“그분께서 그 신산같은 지략의 반만이라도 통솔력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구먼.”

아니면, 적어도 실무는 실무진에게 맡겨 두고, 헤매는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곽 노인이었다.

* * *

임시 지휘 천막 앞 교차로.

어두워야 할 밤하늘은 벌겋게 물들고, 크고 작은 불똥들이 열기에 몸을맡겨 하늘로 비산했다.

매캐한 연기에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교차로 앞에 장애물들을 설치하고 대기 중인 이들은 감히 기침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에 적신 천으로 코와 입을 막고, 누구랄 것 없이 몽둥이 등의 제압용 병기를든 이들은 초조한 눈길로 맞은편 거리를 바라봤다.

“저, 저기…!”

약탈자들이 저편에서 나타났다.

처음엔 하나둘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수십이 되었다.

수십이 된 이들은 이리저리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자신들끼리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몇 이들이 지휘부 방향을 보며 달리기 시작하자, 이들은 곧 육지의 파도가 되었다.

순식간에 그들의 수는 수백을 넘어섰다.

“마, 막아야 한다! 누구도 물러서지 마라!”

사공자 휘하 무사들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제길.”

당장에 전부 베어 넘겨 버렸으면 속이나 시원하겠건만, 그랬다가는 주군의 사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이윽고 눈알이 뒤집히다시피 한 빈민들이 교차로 직전까지 몰려왔던 그때.

지진이라도 난 듯이 지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

유래를 알 수 없는 진동에 미친 사람들처럼 몰려오던 빈민들의 발걸음도 멈췄다.

자신들끼리 뒤엉켜 뒹구는 이들도 있었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이들도, 불안감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진동이 점차 커지더니, 곧 교차로의 아래쪽에서 길게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육중하다는 말로 부족한 강철의 우마차가 언덕을 튀어 오르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동장치가 강철 바퀴에 걸리며, 불똥과 함께 귀를 긁는 소음이 울려 퍼지고, 뒤를 이어 시커먼 장갑 마차들이 소음과 진동을 일으키며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 강철의 우마차?”

누군가의 말소리에 그 모습을 알아본 자애원의 나이든 관계자의 얼굴에 희열이 비쳤다.

“저것은 과거 약 선녀님께서 타고 다니시던 철갑요새가 아닌가! 그렇다면 설마…?!”

그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구령 소리에 맞춰 마차 지붕에 설치된 연노들이 일제히 발사되기 시작했다.

거리에 가득한 소음을 뚫고 철시들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빈민들의 머리 위를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통과한 철시들이 건물들의 벽면을 무자비하게 난타했다.

석조 건물의 벽면에 철시들이 줄줄이 틀어박히며 돌가루가 튀고, 거미줄같은 금이 내달렸다.

어떤 건물은 아예 기둥이 부러져 내려앉아 버리고, 증축과 개축을 반복해서 불안하게 쌓아 올려졌던 목조 상층이 박살이 났다.

신호에 따라 사격이 멈추고, 거리에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으, 으아아아!”

“도망쳐!”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빈민 약탈자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덜컹.

철갑요새의 묵직한 강철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선이 가는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걸친 그의 검은 흑잠사 외투가 바람에 거칠게 펄럭였다.

“다들 멍청한 표정이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낙양검가의 대공자, 연소현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은 다들 처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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