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62화 (162/350)

제12편 수칙(守則)

연소현이 탄 우마차, 철갑요새를 끄는 누렁이와 검둥이가 온몸의 근육을 불끈거리며 길게 울었다.

강철 바퀴가 거침없이 구르며, 뒤로 불꽃을 튀겼다.

낙양 밤거리를 거침없이 달리는 연소현의 우마차 뒤에는 황호사협이 탄 공씨 가문의 마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 마차 안에는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

황호사협 모두가 각자의 무장을 점검하고, 다시 점검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권갑(拳鉀)의 끈을 단단히 동여매던 턱수염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오흉에서의 행동 수칙'이라는 것을 예전에 어느선배로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그 내용을 기억하는 분이있소?”

그 행동 수칙 영(0) 번째는, 오흉에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미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아. 제가 기억하고 있어요.”

단도의 날을 확인하고, 다시 단단히 고정하던 여인이 얼굴을 찌푸리고, 머릿속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도 첫 번째가….”

그때 교차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 장갑마차들이 연소현의 행렬에 합류했다.

낙양검가로 돌아가 보급을 마치고, 다시 합류한 원각정 하녀단을 태운 장갑마차들이었다.

그중에는 아미파의 인원들이 탄마차도 있었다.

그렇게 오늘 오전, 원각정을 출발했을 때의 행렬에서 딱 다선랑의 장갑마차만이 빠진 모든 장갑마차가 하나의 행렬로 합쳐졌다.

* * *

지급받은 갑주를 일단 어떻게든 하녀단의 도움으로 입기는 했지만, 여전히 갑주가 어색한 아미파의 인원들이 었다.

“주목하십시오.”

사감 비구니 맞은편에 앉은 완전 무장 상태의 하녀에게 좌중의 시선이 모였다.

“곧 도착할 죄악의 골짜기 혹은 죄악계곡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안전을 위해서 지켜야 할 행동 수칙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품에서 쪽지를 꺼내든 그녀는, 이미 자신은 단단히 숙지한 내용을 일러 주기 시작했다.

흔히 오흉에서의 행동 수칙이라 알려진 말들을 현지 전문가들이 개량한 목록이었다.

“첫 번째. 절대 현지 빈민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여러분의 경우엔 아예, 접촉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빈민의 구제는 현장의 전문가들의 몫입니다. 여러분이 도울 일도 없고, 도와서도 안 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잡이가 말을 거는 사이,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는 사천의 도심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하녀가 덧붙인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쪽 빈민들의 행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상, 애초에 그들에게 접촉하지 않는 것은 권장할 만한 사항이었다.

“두 번째. 인적이 있는 길목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

뭔가 말이 조금 이상했다.

인적이 없는 길목으로 들어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인적이 있는 길목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니.

하지만 그 수칙이라는 것은 숫자가 더해 갈수록 점점 갈수록 기이한 느낌이 진해졌다.

"세 번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아미파 비구니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이름을 부른다니, 누가?

“네 번째. 함께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웃는다고 해서 따라 웃지 않는다. 그리고 즉시 자리를 피한다.”

“그게 무슨-.”

하녀가 무시하고 덧붙였다.

“여러분의 경우엔 즉시 현장을 이탈하여 각자 지정된 안전 지역까지 후퇴하시면 됩니다.”

"...."

“다섯 번째. 이 다섯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녀의 시선이 마치 경고하듯이 마차 내의 모든 아미파의 무승들과 일일이 마주쳤다.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고함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말소리들이 들리면, 가장 가까운 석조 건물안으로 대피해야만 한다.”

그녀가 또박또박한 소리로 거듭 강조했다.

“주변의 소음에 항상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주변의 석조 건물을 항상 파악해 두도록 하십시오.”

그녀가 읽고 있던 쪽지를 접어서 품에 넣었다.

“이상입니다.”

그러고는 인원수에 맞춰 준비한 같은 내용의 쪽지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

그녀의 말이 끝났지만, 쪽지를 받아 든 아미파의 인물들은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쪽지를 보면서 외우려 해도, 뭔가 연결이 되고 논리가 있어야, 외워질 터인데.

이건 도통 밑도 끝도없는 의뭉스러운 말들의 묶음이 아닌가.

“질문이 많겠지요.”

그런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하듯이 하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이러한 지침이 존재하는 몇 가지 이유는 알고있으나,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지침대로 행동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현장의 전문가들이 한 말을 신용하고 있습니다.”

* * *

연소현의 철갑요새 내부.

아미파가 탄 행렬이 합류했던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달리는 연소현의 우마차에 올라탄 중년인이 연소현에게 인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대공자님. 서면으로만 보고를 올리다가, 이렇게 존안을 직접 뵙는것은 처음이군요. 저는 현월각의 죄악계곡 담당인 양통입니다. 양이든 통이든 편한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묘하게 능글맞은 말투였다.

긴박한 와중에서도 잃지 않아야하는 여유와 근거가 없어도 유지해야 하는 자신감.

정보 계통에서 오랜 시간 종사하고 실적을 만들어 온 이들이 가지는 특유의 분위기였다.

“연소현이다.”

그는 연소현의 맞은편에 슬그머니 앉으려다가, 정아의 날카로운 시선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흠흠. 일단 공씨 저택에서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우마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던 그에게 연소현이 말했다.

“보고서는?”

“아, 그것이….”

그가 주춤거리면서 다시 몸을 일으켜 품을 뒤적여 쪽지 한 뭉치를 꺼내 들었다.

“지금 아시다시피, 난리도 아닌 상황이라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할 여유가….”

성의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현월각은 현재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덩치를 가진 대선상회와 첩보전을 빙자한 일전(一戰)을 치르는 중이 었으니.

“제가 받겠습니다.”

“아, 예.”

정아가 그의 손에서 한 뭉치의 쪽지를 가져가, 자신의 주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

“짧고 간단하게, 핵심만.”

“아, 옙. 알겠습니다.”

시선을 쪽지에 두고 읽는 둥 마는 둥 휙휙 넘기는 연소현.

'제대로 읽고는 있는 건지….'

가공되지도 않은 정보를 저렇게 읽는 둥 마는 둥 해 봐야, 제대로 된 분석이 될 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높으신 분들에게는 자신 같은 중간 관리직이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그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머릿속으로 정리해 뒀던 가공된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기름칠한 혓바닥을 놀려, 화려한 언변을 뽐낼 시간이었다.

“현 상황부터 보고드리면, 대선 상회쪽에 상당한 피해를 강요하는 것에 성공하고….”

“지금은 다시 소강상태라고?”

“아? 예. 그렇습니다.”

“대선상회 쪽은 한발 빠르게 재정비를 하는 중이고."

"예. 맞습니다.”

“전력의 보충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고, 대응 태세에 계속해서 변화를 주고 있다?”

“예, 예. 말씀대로입니다….”

양통은 분석 결과를 보고하기도 전에 상황을 맞힌 연소현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연소현이 빠르게 넘기는 쪽지로 향했다.

'실제로 읽고 있던 것인가?! 게다가 심지어 실시간으로 가공 전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고?!’

분석 전문가들과 책임자급이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할 작업을 혼자서 처리하고 있는 연소현의 모습은, 그 계통에 일하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멍하게 연소현이 빠른 속도로 넘기는 쪽지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연소현의 손이 멈춘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뭐 하나?”

“예?”

“보고 안 하나?”

“죄, 죄송합니다…!”

연소현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작전 개시 시점부터. 짧고 간단하게, 핵심만.”

“예!”

양통이 정보 계통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자연스럽게 생긴 여유와 능글맞던 성격은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그는 식은땀을 주륵 흘리면서, 다시 보고를 시작했다.

“하명하신 대로, 오, 오늘 작전이 시작된 시점부터 보고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대공자의 시선이, 무엇보다도 부담스러운 순간이었다.

“오늘 오전 대공자님께서 북망산을 통해서 이공자 측을 흔드심과 동시에 진행되었던 최초의 기습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이전까지 대선상회에 대해 대응하지 않고, 수면 아래서 차분히 모으고 또 모았던 정보들을 통해 이루어졌던 현월각의 기습 작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이후 '사공자'께서 지휘부에 합류하신 후에 벌어진 이차전 또한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어 가는 중이라고, 현재까지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공자, 연비의 협력에 힘입어 사공자측의 정예들이 상황을 수습하던 대선상회를 몰아쳤다.

“물론 아직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고, 작전 또한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연소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지만, 이미 점조직으로 운영되던 대선상회의 하부 조직들을 수면 아래에 감추고, 보안 수준을 최대까지 끌어 올렸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추 가적인 작전이 진행되기는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겠지.”

"예…."

연소현이 다 읽은 쪽지 뭉치를 정아에게 넘겨주었다.

정아를 통해 쪽지 뭉치를 받아드는 양통에게 연소현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작전이 계속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공자 측을 또다시 흔들 필요가 있다.”

양통이 연소현의 시선에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확하십니다. 현월각주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알겠다, 현월각이 훌륭히 잘해 주었군.”

“예, 예! 감사합니다!”

양통이 마차 바닥에 닿을 듯이 마를 조아렸다.

연소현이 우마차 내에 쌓여 있던 다른 보고서를 꺼내 보면서, 양통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허나, 너는 쓸데없는 말이 많다. 보고를 좀 더 핵심만을 간략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대부분 말을 한 것은 연소현 쪽이고, 양통은 크게 말을 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대공자는, 첫 만남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던 양통의 심리를 이미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좋아.”

고개를 끄덕여 보인 연소현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다음은 죄악의 골짜기 쪽이군.”

“예, 그런데….”

양통이 입맛을 다셨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미 공씨 가문에서 저희 정보원을 통해 들으셨겠지만, 현재 죄악계곡 쪽은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때 정아의 눈빛이 짧게 금빛으로 빛났다.

'전방에 장애물 발견.’

그녀의 전음이 연소현에게 닿자마자, 마부 쪽 창문이 급히 열리며 하녀가 외쳤다.

“전방에 대로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속도를 줄이겠사옵니다!”

연소현의 우마차가 제동을 걸어 감속을 시작했다.

이어서 뒤따르던 행렬 전체가 속도를 늦추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 것이냐?”

정아의 말에 마부석의 하녀가 보고했다.

“대로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나와 있습니다!”

그 말에 정아가 창문을 덮고 있던 강철 덮개를 밀어젖혔다.

* * *

황호사협이 탄 공씨 가문 마차.

“저, 저것 좀 보시오!”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마차에 당황하던 이들이 창밖을 주시하던 이의 외침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웬 사람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사람들이 전부 대로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손짓을 하고, 외치기도 하면서, 웅성거리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통제를 위해서 대로변으로 사람들을 몰아붙이려는, 관병들의 노력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쪽이 아니오! 저쪽! 저 멀리를 보란 말이오!”

그의 손을 따라 시선들이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 산은, 낙양 중심가 북쪽에 위치한 은형산(閭深山)이었다.

그 자락이 좌우로 펼쳐진 가운데의 계곡까지도 낙양의 도심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곡의 도심 지역에서 지금 시뻘건 화염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저, 저기가 죄악계곡이 아니오?!"

우마차 내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양통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사이에 화재가 더 심각해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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