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늙은 사냥개들 (4)
검은 가시들에 꿰뚫려 허공으로 치솟은 양오단이 허우적거린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숨이 열 번은 끊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내공만 지녔어도 인간을 벗어난 존재와 마찬가지인데, 그의 경지에 그 끈질긴 생명력은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지금, 그 초인적인 생명력은 오히려 끔찍한 고통을 더 길고 오래 느끼게 하고 있었다.
“끄아아! 으아아아아악!”
허공에서 그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꿰뚫린 상처에서부터 피가 흩날렸다.
그가 격통에 못 이겨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입에서 피를 함께 쏟아 내고 있었다.
"...."
"...."
전대 가주들은 누군가는 주저앉아서,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누군가는 자빠져서 그 광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뒤틀린 숲이 하늘을 가렸다.
검은 안개가 사방을 뒤덮은 와중에 시퍼런 도깨비불이 사방에서 춤을 추고, 태양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양오단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깊고 깊은 공포가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이들의 뇌리에, 그 영혼에 직접 새겨졌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가면 아래서 암천존자의 입이 길게 찢어져 미소 같은 것을 만들어 냈다.
이제 저들에게 죽어서도 잊지 못할 광경을 새겨 줄 차례였다.
전대 가주들이 암천존자가 서서히 허공에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마치 처형 의식의 마지막을 예고 하기라도 하듯이, 양오단의 앞에 떠올라 양손을 펼쳐 보였다.
그 손에 흉포한 갈퀴 같은 검은 손톱들이 허공의 도깨비불을 반사하여 번뜩였다.
"...헉!"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암천존자의 신형이 눈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회전했다.
그리고 그 회전의 결과는 끔찍했다.
허공에서부터 피의 비가 내리고, 살점과 내장 조각이 흩날렸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전대 가주들의 얼굴이, 온몸이 그 피와 살점, 내장 조각들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자신도 모른 채 입을 열고 있던자의 입에 그 피가 들어가고, 그 이마에는 떨어진 살점과 내장 조각들이 들러붙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고, 누군가는 앉은자리에서 펄쩍 뛰었으며, 누군가는 미친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바닥에서 치솟아 오른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검은 손들이 그 비를 환영하기라도 하듯이 제각기 허공을 향해 기괴한 형상으로 꿈틀거렸다.
대지에 깔린 검은 안개가 혀를 날름거리며, 환호하듯이 몸을 뒤틀었다.
도깨비불들이 흥에 못 이긴 것처럼 사방을 휘저으며 춤을 추고, 사방을 가로막은 수목마저 즐거움에 못이겨 몸을 떨어 댔다.
"...."
그리고 허공에서 암천존자가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귀화와 함께 대죄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넘쳐흐르고 있었다.
'저들 모두가 북부 전쟁의 원흉들....'
십육가문 전원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자, 전쟁의 결의는 너무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황실에 의해서 '승리'라 부르긴 하지만, 실상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과로 끝났었다.
이해득실만 따져 보면 충분히 사실상의 '패전'이라 해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전쟁의 여파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습게도, 전쟁 수행 중에 중원국 전체의 부는 더욱 커졌다.
국제무역은 날이 갈수록 흑자에 흑자를 거듭하고 있었고, 당시 황실이 쏟아 내듯이 찍어낸 전쟁 채권에 거대 가문과 거대 상단들은 돈벼락을 맞았다.
하지만 전쟁 특수를 누린 것은 그들뿐.
매해 이어진 크고 작은 흉작 속에 자영농들은 토지를 넘기고 소작농이 되길 택했다.
돈이 넘쳐 나던 거대 가문과 거대 상단들은 더욱 마구잡이로 토지를 사들일 수 있었다.
'아미파가 중경의 땅을 빠르게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쯤에 집중되었었지.’
그 결과 안 그래도 늘어나던 대농장은 더욱 늘어났고, 효율적인 경영 속에서 무수한 소작농들이 쫓겨나기 시작했다.
전선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그리고 쫓겨난 소작농들은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또 도시로 모여들었다.
안 그래도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로 빈민가를 보유했던, 거대도시 낙양.
이제 낙양의 빈민가는 이 땅 위에 세워진 어느 왕조의 역사 속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또 보냈다.’
저들이 전쟁을 결의하기 전, 당시 연소현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간곡하게 그들의 전쟁을 말리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무시했다.
연소현의 '쓴소리'보다는, 승전시 주어질 정치적인 이익에 대한 환상이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함도 아니었다.
고향을 그리며 전선에서 비참하게 죽었던 징집병들.
어찌어찌 살아 돌아왔으나, 이후 끔찍한 노동속에서 죽어 갔던 이들
이미 가혹한 빈민의 삶 속에서 죽어 나간 뒤였던 그들의 가족들.
어떻게든 버텨 오던 삶이 새로 유입되는 빈민으로 무너져 버리며 죽어간 원래의 도시 빈민들.
수백, 수천, 수만, 어쩌면 수십만에 이르는 '원혼들'이 복수를 부르짖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하늘이 떨고, 대지가 울렁였다.
[제발, 복수를…! 저들에게 끔찍한 죽음을…!]
암천존자의 어깨 위에 올라탄 아이 하나가 귓가에 속삭였다.
[저한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면,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형이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울었다.
그 뜨거운 눈물이 암천존자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래도 형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온 고기 죽은 먹고 싶었어요….]
그래.
전부 죽여야 했다.
전부 이 자리에서 먹어 치워야 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저들은 제암진천경이 만든 지옥에서, 그 지옥에서도 가장 끔찍한 고통속에 머물러야 했다.
그 영혼이 모두 소모되어 버릴 때까지…!
[약 선녀님이 저희를 보호해 주실 줄 알았는데….]
무엇 하러 저들을 살려 두려 했는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 그런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낸 이들을 살려 두실 건가요?]
저들은 전부 당장 죽어야 했다.
그다음에는 저런 이들에게 빌붙었던 이들도 전부 죽여야 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암천존자, 연소현의 입에서 처절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그 절규와 함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광풍이 몰아쳤다.
그 폭풍이 바닥에 휘몰아치던 마기의 안개를 일제히 밀어냈다.
도깨비불들이 파괴되듯이 부서져내리고, 뒤엉켜 하늘을 가리던 수목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꺼져라! 제암진천경!’
가면 아래서 '연소현'의 두 눈이 부릅떠 졌다.
'극성'에 달한 양의심공의 진기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펄떡이고 있었다.
'내 삶을 살아가고, 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연소현이 양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뒤덮은 가면을 '뜯어냈다'.
마지막 순간까지 떨어지지 않으려, 그의 얼굴 가죽을 잡고 늘어지던 가면.
암천존자를 상징하는 그 가면이 기어코 연소현의 얼굴 가죽을 뜯어 버리고서야 떨어져 나갔다.
'나는 너 따위에게 지배당하려 계약을 맺은것이 아니다!’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셀수 없는 원혼들의 '환영'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가아아-!]
제암진천경이 보여 주던 원혼의 마지막 환영까지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연소현 하나만이 굳건히 자신의 두 다리로 대지를 디디고 서 있었다.
"...."
연소현은 피 칠갑이 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의 화창한 하늘에는 어느새 석양이 천천히 드리우고 있었다.
그의 실로 초인적인 의지의 힘은 그렇게 '또 한 번', 천고의 마물, 제암진천경을 억눌렀다.
그의 가죽 벗겨진 얼굴의 상처에서 피가 멎고,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들어가고 있었다.
"...."
그가 시선을 내려, 천하의 대죄인들을 내려다보았다.
가장 하찮고 더러운 벌레처럼 바닥에서 기고 있는 그들을 경멸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거대한 권력을 지녔던 이 전대 가주들이 저지른 너무도 거대한 죄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연소현의 인내와 고통의 시간속에서 가장 큰 화두였다.
그리고 그의 안에서 이미 결정은 내려져 있었다.
그들을 이대로 양오단처럼 죽여버린다면, 제암진천경은 그들을 끊임없는 고통으로 쥐어짜리라.
하지만 그래서는….
'이 세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자들이 고통받는다 하여, 이미 죽어 그 혼마저 흩어져 버린 지 오래인 이들이 만족할 수도 없다.
이자들이 없어진다 하여, 현재 살아 있는 매 순간이 지옥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삶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주인님.”
어느새 다가온 시녀장 정아가 연소현의 흑잠사 외투를 들어 그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주인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 자신을 접객하고 감시하던 집사의 수혈을 짚고, 용안으로 저택 무인들의 사각을 이용한 그녀였다.
"...!"
"...!"
그녀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전대 가주들이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보고, 또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이 보았던 모든 풍경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간 뒤였지만.
그들의 전신에 끼얹어졌던, 피는 전부 제암진천경이 흡수한 뒤였지만.
파괴된 정원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들 사이에서 사라진 한 사람의 빈자리가 소름 끼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양오단이 내지른 비명이, 귀에 들려오는것 같았으며, 그 피와 살점의 비린내가 코로 맡아지는것 같았고, 그 뜨뜻미지근함이 피부에 느껴지는것만 같았다.
그런 그들에게 연소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제가 조율하는 모습은 잘 보셨습니까?”
천천히 아물어 가는 연소현의 피부를 보며, 전대 가주들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보았습니다! 보았지요!”
그는 특유의 기질처럼 태연하고 뻔뻔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다음번에는 또 이렇게 조율을해야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요! 아무렴 없어야지요!”
연소현이 쿡쿡, 하고 웃었다.
전대 가주들이 그를 따라서 함께 웃었다.
“아, 하하하하.”
“하하하...."
그들은 그때야 자신들이 바닥에 구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소현이 천천히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암천존자가 읊었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 하하. 역시, 대공자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전쟁 같은것은 꿈에도 꾸지 말아야 했습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암요.”
"양오단 그놈이 자기가 잘난 척 황궁에서 지휘봉을 잡게두면 안되는 거였지요.”
“아무렴. 그놈은 '패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놈이었습니다 허허.”
“애초에 전쟁 초기에 지휘권을 북부대장군에게 넘겼어야….”
“그런 놈이 이 좋은 기회를 다시주신 대공자님의 은혜도 모르고 벌써 뒤로 일을 꾸미려 들다니. 쯧쯧."
'역시나.'
연소현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는지, 느끼는것 자체를 하지못한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이들에게는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연소현이 하지 말라고 했던 북부 전쟁에 대한 패전 책임과 오늘 뒤로 딴생각을 했던 죄를 물어, 양오단을 참살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은 죄를 뉘우치는 것 이전에, 애초에 죄책감을 느끼지를 못한다.’
연소현의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그쪽이 오히려 편했다.
“하하! 이것 참. 그놈이 늙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경지에 이른 놈이었는데, 대공자님의 신위가 놀랍습니다!”
양가와 마찬가지로 군문인 악가의 전대 가주가 억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게다가 천기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다니….”
“과연. 그 정도는 되어야, 그런 신산의 지략이 깃든 계략을 보여 주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연소현에게 뭔가 답을 요구한다는 듯이 흘금흘금 소심한 시선을 보냈다.
“흠. 제가 천기를 읽은 바에 따르면, 곧 양씨 가문과 민씨 가문이 기습적으로 혼약식을 알리고, 동맹을 선포할 겁니다.”
물론 이전 생의 기억에서 있었던 사실이었다.
“과연….”
“그랬군요.”
노마들이 흠흠, 하면서 고개를 주억 거렸다.
권세 가문 간의 그 중대한 결정이 '고작' 전대 가주가 실종되었다고 해서, 바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앞으로 지켜보면서 연소현이 정말 마음을 들여다보고, 천기를 읽었는지 확신하게 되리라.
노마들은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연소현이 보여 주었던 모습에 대해서는 일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 암천존자에 대한 정보를 못 들어 보았겠는가?
어차피 연소현에게 물어도 제대로 답변을 들을 수도 없을것이 분명했고, 이 정보를 가지고 그들이 활용할수 있는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공자님이라면 확실히 저희가 믿고 앞으로의 계획에 따를 수 있겠습니다.”
“역시 이 많은 노인네가 앞으로 자기만 생각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대공자님 정도는 되어야지요.”
“그 신위에 그 책략! 그야말로 완벽한 조율자가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그저 책략뿐인 연소현보다 암천 존자이기까지한 연소현 쪽이 동맹 상대로 더욱 든든하고, 이익이 된다는 계산을 마친 것이었다.
상대가 암천존자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악마라도, 이득만 보장이 되면 당장에 손을 잡을 이들이었으니.
그들의 머릿속에 암천존자에 대한 공포는 무의식 영역까지 깊게 박혔을지언정, 그들의 행동 원리와 성격은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동과휴 때와 같군.'
북방전쟁상인 동과휴 때 이미 시험적으로 확인했던 것과 같은 결과였다.
“자 자. 다들 조용! 대공자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대공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저희가 이루어 드릴 차례겠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며, 호의로 가득한 미소로 연소현을 바라봤다.
“그럼 일단.”
연소현의 입이 열렸다.
“제 요구를 말씀드리기 전에, '알수 없는 영문으로 실종'되어 버린, 양씨 가문의 전대 가주에 대한 앞으로의 대처부터 이야기를 나눠 보지요.”
연소현이 그들에게 첫 '지시'를 내렸다.
“그렇군요!”
그 말에 노마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 실종을 어떻게 처리할지부터,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서 의논하기 시작했다.
“관리역이 하나 줄었으니, 우리의 영향력도 더 커지겠구려.”
“훌륭하군.”
그들에게 있어서, 이미 양오단은 버려진 존재였고, 누구 하나 유감을 가진 이도 없었다.
“그럼 이건 이렇게 처리해서….”
“그렇게 하면, 이렇게 움직일 것이고…."
오히려, 그 민씨 가문과 손을 잡은 양씨 가문을 혼내 줄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할 뿐.
'늙은 사냥개들이 동료였던 것의 시체를 즐겁게 뜯어먹는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땅거미가 내려올 정도가 되자, 노마들이 연소현에게 자신들의 수립한 계책을 제시했다.
연소현은 흔쾌히 동의했다.
“훌륭한 계책입니다.”
원래는 연소현이 계책을 제시해주고, 그들은 연소현의 부탁을 들어주는 거래였지만.
이미 그들은 자신들이 나서서 굳이 연소현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대신 처리하고 있었다.
권력을 찾기 위해서 단지 연소현과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심과 성의가 넘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자, 그럼 다음은….”
연소현이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늙은 사냥개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인의 지시를 경청하고 있었다.
“이상이 대인들께서 이 낙양을 떠나시기 전까지 해 주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지시 사항들이 전달되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정도는 저희가 해내야지요.”
"그래야, 대공자께서도 이 거래에 더욱 만족하시어, 앞으로 더욱 좋은 계책을 주실 것이 아닙니까?”
모두가 허허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동의했다.
그 표정들만을 보아서는 좀전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 * *
아무도 없는 공손 가문의 마당.
연소현이 정아가 열어 준 강철우마차에 올라탔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소현이 자리에 앉은 채, 열린 문 너머로 말했다.
“아이고,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살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전대 가주들이 일제히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전에 없이 정중한 태도였다.
이 모습을 보고 누가 연소현을 윽박지르고 뜯어내려던 몇 시진 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는가.
“아, 그리고.”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제가 말씀드린 사항들은 당장 시작하셔야하겠지요?”
체력이고 정신력이고 소진된 탓에 기진맥진하여, 당장에는 좀 쉴 생각으로 가득하던, 노마들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물론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연소현이 탄 마차가 정문을 빠져 나가자, 그들은 잠시 시선을 교환 했다.
“당장 말씀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낙양을 빠져나가겠네.”
“그렇지. 하남성지사를 봐야 하니.”
“그럼, 나는 낙양지사를 만나 봐야겠군.”
“대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공씨 가문에서 낙양지사와 낙양의 고위 관료들을 전부 대기시켜 놓았을 것이라 하셨으니.”
“좋아. 그럼 당장 나와 함께 가세!”
그들은 지금 당장 자신의 권력을 관리들에게 과시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인 결과 더 큰 영향력이 생길것을 기대하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연소현의 늙은 사냥개 열네 마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 * *
연소현은 흑골파를 부숴 버린후, 현월각주 세아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그것이 무검자 연소현이든, 아니면 대공자 연소현이든, 암천존자이든.'
그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제암진천경과 거래를 했다.
'내가 나의 의무를 다하기로 한 이상, 책임이 있는 모두가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제암진천경이 인도하는 멸망의 길을 거부했다.
지금도 거부하고 있었다.
'책임.'
이 황도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또한 연소현에 의해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 그들은 연소현의 지시라면 의문을 품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연소현의 목적과 지시에 맞게 움직일 것이다.
'이들은 이제 남은 삶 전체를, 나에게 바치게 될 것이다.'
그들의 힘은 연소현이 세상을 바꾸는 데 쓰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만큼, 대공자 연소현의 영향력과 명성도 커져만 갈 것이다.
자비도 죄책감도 없는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세상에 속죄해나갈 것이다.
그들이 연소현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게 될 그 마지막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