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55화 (155/350)

제5편 늙은 사냥개들 (2)

“어허, 이러다 큰일을 치르겠소!”

전대 가주들이 품위도 없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잘 가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로다! 지금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인지…!”

그들은 모든 재산을 모아 놓은 창고에 불이 붙은 것을 본 수전노라도 된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 그들 중 하나가 외쳤다.

“악(岳) 장군!”

그 외침에 좌중의 시선이 악 장군이라 불린 전대 가주에게 향했다.

“그렇군! 악 장군이 있었지!”

“악 장군이 나서서 좀 말려야겠소!”

양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도를 수호하는 군사 가문 출신의 악씨 가문 전대 가주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감히 섣불리 다가서지는 못했다.

양씨 가문의 전대 가주, 양오단의 솥뚜껑 같은 손아귀가 당장에라도 뻗어 나가, 가느다랗고 연약하게만 보이는 대공자의 목을 분질러버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랬군, 그랬어.”

그런 소란을 떨고 있는 자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대공자 연소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황도의 '민씨 가문'이었군.”

“그 해괴한 짓거리를 그만두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소!”

한가운데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지만, 양가의 전대 가주는 노마답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소현은 그의 말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위협에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과연.”

벽을 넘은 고수의 기운을 산들바람처럼 여기듯이.

“그 민씨 가문인가. 새 황후 폐하를 배출하여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는 그들 정도라면, 이미 십육가문의 전대 가주에게 뒤로 손을 내밀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아.”

“...!"

그 말에 옆에서 난리를 치고 있던 전대 가주들의 행동이 멎었다.

“민씨라고…?”

“분명 민씨라고 들었지.”

어찌 그들이 그 가문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민씨 가문은 북부 전쟁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을 때, 그 황제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고, 결과적으로 큰 이득을 본 가문 중 하나였던 것을.

“흐으음.”

노마들의 시선이 양씨 전대 가주에게 화살처럼 꽂혔다.

“다들 저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는 것이오?!”

좌중의 시선에 양오단이 잠시 움찔한 틈을 타서 연소현이 자신의 추론을 늘어놓았다.

“그렇군, 이제 알겠어. 그대는 초거대 사업의 관리역이 된 김에, 이미 접촉하고 있었던 민씨 가문과 '우리' 사이에서 줄을 탈 생각이었군.”

그의 입가에 명백한 조소가 어렸다.

“황후 폐하의 친가인 민씨 가문과 황도를 수호하는 군문의 결합이라, 이거 상당히 위험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구려.”

그 말에 양오단이 펄쩍 뛰었다.

“무슨...?!”

그가 연소현에게 호통을 쳤다.

“도무지 아까부터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아,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리 자신있게 떠들려거든 증거나 하나 내어 놓고 떠드는 것이 어떠냐?!”

좌중은 한편으로는 연소현의 말에 설득되어 묘한 눈초리로 양오단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연소현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연소현의 말은 그저 주장일 뿐.

혹시 그가 그 넘치는 지략을 이용해, 모종의 이유로 그들 중 하나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증거?”

그때 연소현이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바로 증거다.”

그의 시선이 오만하게 양오단을 내려다보았다.

“천문의 속삭임을 듣고 천기의 흐름을 읽는 내가 어찌 한낱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못할 것 같은가?”

이 어찌도 허황된 말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이리도 설득력이 있는 말인지!

반사적으로 전대 가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것이 무슨...?!”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에, 연소현으로부터 터무니없는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양오단마저 말문이 턱 하고 막혀 버릴 정도였다.

“이, 이이익…!”

이쯤 되었을 때, 좌중의 누구라도 자신의 발밑을 보았다면, 기이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사이한 기운으로 가득한 검은 기운이 바닥에 안개처럼 내리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연소현의 발치에서 흘러나온 기운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그들은 평소의 날카로운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것은 벽을 넘은 고수인 양오단이나 악 장군이라 불린 악가의 전대 가주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그들이었다면, 연소현의 귓가에 날아들던 전음의 존재 정도는 눈치챘으리라.

“여러분!”

양오단이 전대 가주들에게 선언하듯이 말했다.

“본인은 이러한 터무니없는 모욕과 근거 없는 누명을 듣고만 있지 않겠소이다! 나는 이 계획에서 빠지겠소!”

다른 전대 가주들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어허, 어딜 가시려고.”

연소현이 슬쩍 한 발 내디뎌 그의 앞을 막았다.

'무공도 모르는 서생 주제에 내 앞을 막으려 들다니? 우습구나!’

양오단은 그런 그를 속으로 비웃으며, 어지럽게 보법을 밟아 순간적으로 대공자를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으음?!"

양오단은 당황했다.

자신이 보법을 밟아 나갔지만, 대공자가 느긋하게 움직이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위가 철저하게 차단되고 있었다.

“이, 이게…?!”

몇 번 더 보법을 밟아 보았지만, 이번엔 방위가 차단되는 것을 넘어서 역으로 몇 걸음 뒤로 몰리기까지 했다.

기묘하기를 넘어 신묘하기까지한 연소현의 보법이었다.

'도대체 무슨 재주지? 보법의 형태를 빌려 펼쳐 내는 기문진법의 일종인가?’

아직까지 무검자라 불리는 연소현이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그였다.

“대공자! 도대체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방만하게 굴다가는 크게 다치게 될 것이오!”

그가 강하게 내공을 담아 외쳤지만, 연소현은 코웃음을 거나하게 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전대 가주들은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어? 어?” 하고 있을 뿐.

내공이라는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의 한계였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그나마 옆에서 그 상황을 한눈에 보고 있는 악가의 전대 가주만이, 무검자라 알려진 대공자를 경악과 의혹으로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양오단이 전신에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자신의 상단전을 보호했다.

'...현혹되지 말자!'

그는 마기에 영향을 받아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정신을 보호했다.

수없는 경험과 드높은 경지에서부터 비롯된 옳은 대처였다.

'이대로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한다면, 이후에 길은 얼마든지 있다!’

상단전을 보호하는 심법의 공능으로 보호되는 그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굴러갔다.

'하지만 이 와중에 대공자를 상처 입히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겠지.'

그저 자리를 뜨는 정도는 근거없는 억측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애지중지하는 대공자를 상처 입혔다가는 뒤가 없었다.

그 진위에 관계없이 자신을 제외한 전대 가주 전원의 분노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으니.

'이 미치광이 같은 천재놈이…!’

그때서야 다시 한번 전대 가주 전원을 한데로 묶어 버린 연소현에 게서 공포를 느낀 그였다.

하지만 이미 잔은 엎어졌고, 물은 쏟아진 뒤였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그는 과감히 출수를 결정했다.

'헛짓을 못 하도록 단숨에 제압한다!’

한번 망설임을 버리자, 그 뒤는 그의 경지를 보여주듯 물이 흐르듯이 이어졌다.

“내 손속이 과하다 원망하지 마시오!”

그의 양 손아귀가 연소현의 전신을 한 번에 뒤덮듯이 덮쳐들었다.

먼저 기묘한 재주를 봉쇄하기 위해 상대의 무릎 관절을 빼 버리고, 동시에 다섯 곳의 경혈을 한꺼번에 두드려, 연소현을 단숨에 제압한다.

적어도 그런 의도였다.

“흥!”

강(剛)은 유(柔)로,

유는 강으로.

연소현의 무릎은 태풍 앞에 몸을 뉘는 갈대처럼, 양오단의 손아귀에 실린 경력을 홀려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경혈 다섯 군데를 한 번에 제압하려던 양오단의 고절한 수법은 오히려 연소현의 청강과 같은 손아귀에 팔을 붙들려 그 원천을 차단당했다.

"?!"

그 일수의 교환만으로, 정신이 번쩍 든 양오단이었다.

'심상치 않다! 이제부터 상대를 나와 같은 경지의 인물이라 여긴다!’

무슨 천만 근 오행산(五行山)에 깔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왼손은 포기하고, 자유로운 그의 오른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흠!”

양가비전(楊家祕傳), 금호나철수(禁虎拿鐵手) 였다.

환초와 변초를 찰나에 오고 가며, 그 백 가지 허상과 백 가지 변화 안에서 제압수가 펼쳐져 상대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대공자는 허실을 꿰뚫어 환초를 무시하고, 변화를 자아내는 손목을 슬쩍 두드린 것만으로 그 흐름을 억눌렀다.

그러자 남은 것은 그저 단순히 빠르고 강하기만 한 손짓이었다.

그 손짓에 깃든 막대한 경력이 허무하게 연소현의 옆을 가로질렀다.

'애초에 내가 노린 것은 이쪽이다!’

하지만 그것이 노림수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경지가 괜히 경지겠는가.

이미 그는 일수를 펼침과 동시에 연소현이 펼치는 보법의 중심으로 들어서 있었다.

그와 동시에 번개 같은 각법이 연소현의 왼쪽 오금을 세 번 타격하고, 그 발을 제 발로 엮어 상대를 뒤로 밀어 넘겼다.

연소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묶어 둔 그의 팔이, 오히려 완전하게 힘을 전달할 수 있는 축이 되어 준 격이었다.

지(指), 조(爪), 장(掌), 각(脚)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근육을 두드리고, 관절을 제압하며, 혈을 노리는 등, 일순간에 다양한 수법을 구사하여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처럼 어우러졌다.

경지에 이른 제압 박투술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양오단이었다.

그러나.

“크악!”

양오단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대의 발을 엮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발이 오히려 연소현의 말도 안 되는 각력(脚力)에 뒤틀렸다.

자신이 축으로 삼았던 팔마저 상대의 현묘한 수법에 반대로 뒤틀렸다.

연소현은 그 짧은 순간에 양오단의 힘을 화경(化勁)의 원리로 되돌려주었던 것.

양오단이 실었던 무게와 내력 그리고 연소현 자신의 완력을 합일(合一)하여, 두터운 내공이 보호하던 그의 팔을 꺾어 버린 것이었다.

“이, 무슨, 미친…!”

양오단은 자신의 몸을 억죄고 있는 연소현의 손과 발을 떼어 놓고 물러나고 싶었지만.

금강석 사슬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그의 얼굴에 상대의 차디찬 입김이 느껴졌다.

그 입김은 얼마나 차가운지, 내공으로 보호받는 강철같은 얼굴 피부가 얼어붙을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그의 귓가를 끓는 쇳물과 같은 목소리가 두드렸다.

“할 수 있는 재롱은 모두 떨었느냐?”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든 양오단의 눈에 비친 것은, 상대의 눈가에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는 귀화(鬼火)였다.

먹이로 길들이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고 달려드는 개를 두드려, 누가 그들의 목줄을 틀어잡고 있는지 보여줄 차례였다.

* * *

낙양검가, 원각정.

약 선녀, 약소유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이공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무 불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게 그 아이가 화를 다스리며 깎았던 불상이라고…?”

일령 또한 어딘가 조금 질린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사옵니다.”

“…이게.”

자타가 공인하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였지만, 그녀는 한동안 채 말을 이을 언어를 찾지 못했다.

“…주인님께서는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 것 같을 때마다, 불상들을 깎아 오셨사옵니다.”

“…그 아이가 이것들을 깎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더냐?”

일령이 고개를 조아렸다.

“대략 두 달 전쯤부터, 늘어나기 시작하였다고 들었사옵니다. ”

“그럼 채 얼마 되지도 않은 것이 아니더냐…?”

"...."

이공녀는 고개를 들어 좌우를 둘러보았다.

과연 태상가주의 대부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 사당은 내부의 넓이만으로도 웬만한 절의 대웅전 이상의 규모였다.

그리고 그 사당의 모든 공간에 나무 불상이 들어차 있었다.

어떤 것은 크기가 컸고, 어떤 것은 삐뚜름했으며, 어떤 것은 웃고 있었고, 어떤 것은 울고 있었다.

어딜 둘러봐도, 불상, 또 불상뿐이었다.

벽면을 따라 몇 단으로 둘러쳐져 있는 선반을 따라서 몇 겹으로 쌓인 불상.

그 불상들이 마치 견디다가 못해 터져서 새어 나와 버린 모양새로 넓디넓은 마룻바닥까지 넘쳐흐르고 있었다.

“…도대체.”

딱 절하고 향을 올린 공간만을 남겨 둔 채.

모든 공간에 들어찬 불상들이 일제히 방문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 광기밖에 느껴지지 않는 광경에 압도당한 이공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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