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51화 (151/350)

제1편 황도십육가문(皇都十六家門) (6)

성도, 아미파 본산(本山).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아미파의 장문사태는 친왕이 직접 나서서 다선랑의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괜찮다. 괜찮아. 아직 일이 꼬인것은 아니다. 그저 우연일 것이야.'

하지만 그 일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판단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장문사태님!”

비구니 하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미파의 장문사태는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성도의 관리들이 완전무장한 관군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그들은 아미파가 황상께 올릴 세금을 포탈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미파의 모든 자산이 동결되었다는 소식이 거래하던 모든 전장에서 날아들었다.

“도대체 감히 누구의 지시로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관리 하나가 슬쩍 입술을 비틀며 조소했다.

“성도지사님의 명입니다.”

* * *

평소에 존재감이라고는 없는 그 성도지사가 이런 일을 벌였다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리단가와의 동맹으로 그 보호아래 있는 그들을 영향력이라고는 없는 그 성도지사가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대리단가의 짓이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도대체 어째서?!’

장문사태는 대리단가의 출신인 성도지사 부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성도지사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장문사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성도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문사태에게 자리를 권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그 부인이 집무실에 들어와 상석에 앉을 때까지.

“대리단가에 매우 신뢰도가 높은 정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성도지사 부인은 평소처럼 표정 하나 없는 냉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정보에 의하면, 아미파가 다선랑에 대한 암살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장문사태의 얼굴에서 핏기가 전부 사라졌다.

'어떻게 그 사실을“?!'

다선랑에 대한 암살 계획은 아미파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 계획이 아니던가?

“그, 그게 무슨 말씀…?”

장문사태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성도지사 부인이 자신의 할 말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나의 딸인 상관난화는 대리단가의 딸이기도 합니다. 암살 계획에 대한 정보가 사실이라면, 아미파는 동맹을 공격한것과 마찬가지.”

그녀의 무생물 같은 눈빛이 장문 사태에게 향했다.

“따라서 이 동맹은 진위가 밝혀질 때까지 유보입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슴팍을 쥐어 보였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장문사태는 아무런 감정이라고는없는 그 무색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지금에 와서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 것이야?!’

상관난화가 포함되어 있던 다선랑에 무슨 짓을 하든지, 이제까지 일언반구도 없던 여자가하는 말이 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다. 진정하자. 이 여자는 대리단가의 대리인일 뿐.'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장문사태는 빠르게 자신을 다스렸다.

'애초에 겨우 그딴 이유로, 대리 단가가 사천에서의 귀중한 동맹인 아미파를 포기할리가 없다.'

이건 그저 '명분'이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수면아래에서 진행되고 있었구나…!’

그것은 대리단가가 사천 내에서 사천당가를 견제할 수 있는 동맹을 버릴 만큼 거대한 무언가일 터.

아미파는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그저 정보가 들어온 것만으로, 동맹을 끊는다니요. 그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유보라고 한 것 입니다.”

성도지사 부인은 여전히 그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한 채 답했다.

“만일 암살시도가 없다면, 대리 단가는 이 모든 일을 철회할 것입니다. 물론. 사과와 함께, 그에 합당한 보상도 있을 테지요.”

그것은 아무런 여지도 없는 대답.

협상 의사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끝난 것인가.'

아미파 장문사태는 겨우 유지하던 표정을 무너뜨리고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암살 의뢰를 무를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겠지만, 지금 이 상황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서를 남기지 않고 하남성의 암살단과 접선하기 위해서 했었던 수많은 수고가, 이제는 거꾸로 나의 발목을 잡는구나…!’

게다가 이미 의뢰를 받은 암살단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모습을 감추고 있을 터였다.

장문사태는 품속에 있는 손수건을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렇다면 세금 포탈 혐의는 무엇입니까?”

그 답은 그때까지 아무런 말도하지 않고 있던, 성도지사에게서 나왔다.

“만약 그 암살 계획이 사실이라면… 감히 내 딸을 건드리고도 무사히 넘어갈 생각은 마시오!”

"...!"

장문사태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그것은 평소의 그 무게감이라고는 없던, 성도지사라고는 상상도하지 못할 기백이었다.

경지에 이른 장문사태의 몸이 그 기백을 위험신호로 받아들여 반사적으로 움직일 정도로.

'…사면초가로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칼은 이미 목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것도 가까이에 멈춰 있는 칼날이 아니라, 매 순간 가까워지고 있는 칼날이었다.

게다가 아미파에게는 이렇게 분기탱천한 성도지사보다도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대리단가와의 동맹이 끝나면, 이 사천의 패자인 사천당가를 홀로 상대해야만 한다.'

속으로 불경을 되뇌며 결사적으로 수를 찾던, 장문사태가 고개를 저었다.

'…완벽하게 당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할 시간이었다.

깊게 숨을 내쉰 장문사태가 감았던 눈을 떴다.

“…아미파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누구에게 접촉하면 되는 것입니까?”

성도지사와 성도지사 부인, 양쪽이 동시에 답했다.

“낙양검가, 대공자 연소현.”

* * *

성도, 사천당가, 접객실.

'아직이다. 아직 최후의 기회가 남아 있으니.'

접객실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길 홀로 기다리는 아미파의 장문사태였다.

'그들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시늉을 했기 때문에,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낙양검가, 대공자 연소현.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 그 대공자가 이 일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전보다 단서를 하나 더 얻었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호오? 이게 무슨 일인지. 아미 파의 장문인께서 '적대 진영'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오시다니?”

한참을 있다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접객실로 들어온 사천당가의 장로가 노골적인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이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아주 즐겁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천당가 장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문사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용건을 꺼내 들었다.

“이번 일은 벌써 들으셨겠지요.”

“물론입니다. 들었다마다요.”

상대의 조금의 온기도 없는 시선과 노골적으로 드러난 탐욕이 장문 사태를 향했다.

“혹시 거래라도 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중재 요청? 설마 구걸은 아니겠지요?”

“…무엇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장문사태가 얼굴에 가득한 주름

을 어그러트리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현재 아미파가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의 지분 오 할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흐음….”

엄청난 액수에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는 사천당가의 장로였다.

“그렇다면 아미학관의 운영권을 넘겨 드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으음 ”

장문사태는 포기하지 않았다.

적의 적은 아군이 될 수도 있는 법

가장 희박한 확률에라도 걸어 보아야 할 때였다.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사천당가와 손을 잡으면, 언제라도 재기를 노릴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 참….”

한참 동안 고개를 젓기만 하던, 사천당가의 장로가 한숨을 지었다.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니, 말씀 드리지요.”

“그게 무슨…?”

지금까지 장난이라도 치고 있었단 말인가?

장문사태의 시선이 사나워졌지만, 상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 일을 해결하고 싶으면, 장문 사태께서 접촉해야 할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문사태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설마…?”

“낙양검가, 대공자 연소현.”

“...!"

사천당가의 장로가 장문사태의 표정을 보며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광소(狂笑)를 터트렸다.

"...."

“…아, 그리고 장문사태.”

혼자 뒤로 허리를 꺾어 가며 한참을 웃던 그가 장문사태와 눈을 마주쳤다.

“허튼 생각일랑 하지도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의 입가가 길게 찢어지는 것처럼 호선을 그렸다.

“당가의 그림자들이 아미파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있으니.”

* * *

낙양, 북망산, 공손 가문 저택.

“대공자의 설명으로, 아미파가 처한 상황은 대강 이해했소.”

아미파를 덮친 '연소현의 그물'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전대 가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설명을 듣기 전보다 오히려 훨씬 더 의문만이 많아진 것을 느꼈다.

“대공자,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전에 앞서서, 우리의 질문에 먼저 대답부터 해 주시오!”

"대리단가가 고작 그런 일로 사천의 가장 중요한 동맹을 버릴 리가 없잖소! 다선랑에 대한 암살 계획 같은 것은 그저 명분에 지나지 않아! 대체 무슨 거래가 있었던 것 이오?!"

“그리고 대체 대공자는 어떻게 아미파에 의한 암살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오?!”

“아미파는 무슨 연유로 자신들이 차지하려던 다선랑을 암살하려 했던 것이고?!”

무슨 여름날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질문에 연소현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자 자, 다들 진정들 하시죠. 이야기를 전부 들어 보면 이해하시겠지만, 그래도 지금 한 번에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연소현의 말에 겨우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은 전대 가주들이었다.

'좋아. 아주 잘되어 가고 있군.'

당장에라도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홍분한 그들의 모습에 연소현이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일단 대리단가가 무슨 이유로 아미파라는 동맹을 내쳤는지는 추후에 설명하겠습니다. 지금보다 나중의 내용과 관련이 있으니.”

“좋소. 아무거라도 좋으니 답을 해 주시오!”

연소현이 자신의 매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선랑 암살 계획을 제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그 경로를 말씀드리기 곤란하겠습니다.”

“정보원을 밝히는 것은 당연히 힘든 일이지. 이해했소. 그러니 다음 질문으로, 어서!”

사실 아무리 연소현이라 해도, 아미파 내에서 최고기밀로 다뤄지던 계획을 알려 줄 수 있는 정보원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그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뿐'.

그가 제암진천경의 힘으로 돌아오기 이전의 역사에서, 다선랑의 일부가 살해되었던 사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칩거 중이던 연소현은 당시 원각정 하인들 사이의 소문을 통해 대략적인 시기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가 암살자의 입장이 되어, 최적의 암살 지점을 찾아낸 것일 뿐.

그 암살 지점은 전쟁 자문단의 염 장로와 노군사 또한 인정했을 정도로 완벽했으니.

그 예측에 이변이 있었을리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왜 아미파가 다선랑을 암살하려 했는지를 알려 주시오!”

시간을 끄는 연소현에게 더욱 안달이 난 전대 가주들이었다.

“그럼 아미파가 어째서 다선랑을 암살하려고 했는지부터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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