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145화 (145/350)

제20편 가장 무서운 무사 (5)

낙양검가, 최고 운영 회의.

대공자가 공손가에 들어간 이후, 정보가 끊어졌다.

"...."

"...."

그리고 그 이후 신입 남녀 최고 위원들 또한 말이 없어졌다.

“이제는 그대들도 좀 느끼겠소?”

의장이 말했다.

“과거로부터 대공자님의 능력과 그 능력으로 이루어 낸 업적은, 본가의 불완전한 기록과 개인의 가변적인 기억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소.”

신입 남녀 최고위원들은 무어라 대답할 말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침음을 낼 뿐이었다.

장막 뒤에서 의장이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대공자님을 상대하고 있는 그들도 깨달았을까?”

그들은 '낙양검가의 대공자' 연소현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상대는 낙양검가의 대공자이기도 한 '그 연소현'이었다.

* * *

이공자 진영, 장로 휴게실.

장로 하나가 피우고 있던 연초를 끄려고 했지만, 수정 재떨이는 이미 꽉 차 있었다.

"...."

그는 휴게실을 우아하게 장식하고 있던, 넓적한 백자 도자기를 가져와서 연초를 비벼 껐다.

한동안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 중에서 정보를 기다리는 이는 없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군.”

안 장로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상대하던 것은 '가장 무서운 무사'였어.”

낙양검가의 장로라면, 무공을 익혔든 아니든, 모를 수가 없는 말이었다.

“이젠 더 이상 추측해 볼 것도 없으니….”

다른 장로의 말에 외원 소속의 장로가 곰방대에서 입을 떼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대공자가 십육가문의 전대 가주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그 내용을 짐작할 방법도 확인할 방법도 없소.”

마치 달빛 하나 없는 밤에 깊은 호수에서 잠영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는 대공자가 앞으로 몇 가문이나 더 들를지도 추측할 수 없군.”

“...지금 같아서는 대공자가 십육개, 모든 가문을 순회한다고 해도 놀랄 것 같지 않구려.”

농담성 어조였지만, 웃는 이는 없었다.

“흠.”

품에 있던 여송연이 다 떨어지자, 자신의 집무실에서 상자째로 가져와서 피우고 있던 하후 장로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이번 대공자의 한 수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책사들이 아니었소.”

지난 내원 사태와 가주직인 사태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책사들이 었다.

그런 이들이 이번에 유독 모자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애초에 대공자가 깔았던 판이 그들, 책사들의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략으로 유명한 대공자가 전혀 의외의 패를 꺼내 들다니. 흠.”

결국, 장로 하나가 그들 안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있지만, 답을 찾을 수 없던 질문을 다시 내뱉고야 말았다.

“도대체 대공자는 무슨 재주로 십육가문의 구미가 당길 만한 거래까지 해서 그들과 관계를 구축했다는 말이오?”

“…그것도 칩거 중에 말이지.”

농담성 어조로 말을 꺼냈다가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했던 장로가 다시 농담성 발언을 했다.

“과거에 돌았던 소문에서처럼, 천문을 읽어 내서, 그들 가문에 닥쳐올 흉조라도 미리 알려 주었다든가?”

이번에는 다들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아니면 그 지략으로, 두세 살때, 당시 가주였던 이들에게 황제 폐하의 총애를 얻을 방법을 넌지시 알려 주었을지도 모르지.”

한술 더 뜨는 발언에 다들 실소를 흘리면서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삭막하기만 하던 분위기가 잠시 환기되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하후 장로의 농담 차례인가 싶어,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에 들었던 대공자에 대한 소문들이 사실이라고 가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소.”

처음에는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던 이들이, 한없이 진지한 하후 장로의 얼굴을 보고는 한둘씩 손을 내저어 보였다.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하후 장로는 어린 시절 대공자에 대해서 얼마나 허황되고 어처구니없는 소문이 많은지, 알고나 하시는 말씀이오?”

"두 살에 의서를 집필했느니, 세 살에 농법을 개발했느니, 뭐 어쩌고 하는 그런 소문들?”

그때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안 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오.”

좌중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애초에 대공자가 신산의 지략을 가졌다는 것도 원래는 그저 소문이 아니었소?”

다른 장로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요…?”

“그게 왜 소문….”

말을 하던 장로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 장로들도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렇군….”

하후 장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랬어. 대공자의 지략에 대한 이야기도 원래는 소문이었어….”

그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다들 대공자의 지략에 대해서는 알고 있던 것이….”

하후 장로가 말을 끊었다.

“아니오. 그게 아니오.”

“아니, 대공자가 염 장로를 중개인으로 활용하여 장로원을 들쑤셔놓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내원 사태 또한 있었지않소?”

하후 장로가 인상을 썼다.

“나는 그 이전을 말하고 있는 것이오 그 이전!”

그가 팔걸이를 내리쳤다.

“대체 근 십 년째 칩거 중이던 대공자가 신산이니 뭐니, 지략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모두가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잖소! 대공자가 내원 사태를 일으키기 전부터!”

그때서야 장로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도대체 우리는 왜, 무슨 근거로, 예전부터 대공자가 그리도 뛰어난 지략가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냐고!”

장로 하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본가에 오래 있었던 이들이라면, 다들 과거에 대공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둘쯤….”

“근거가 있는 이야기요?”

"...."

안 장로가 자신의 안경을 벗어 들었다.

“…이상하군. 이상해.”

그가 눈을 들어 창밖 먼 곳을 바라보았다.

“여기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군.”

이 낙양검가의 최상층부에서, 그저 소문을 믿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안경을 벗은 시야에 모든 것이 희뿌옇게 보였다.

* * *

낙양검가, 장로원.

폐쇄 중에 진행되는 장로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장로들을 기다린 것은 대공자 연소현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였다.

각자 장로들이 장로원 앞을 떠나지도 않고, 자신들의 측근에게 그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그것은 장로회의에 참석했던 삼공자 측의 장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어. 십육가문이라고…?”

“상상치도 못한 행보로군.”

잠시 정보를 듣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먼저 자리를 뜬 것은, 얼굴이 굳은 점창파의 전 장문인이었다.

“장로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 그를 부른 것은 정보를 가져왔던 무사 중 하나였다.

“…내게 무슨 볼일인가?”

“아미파의 총무사태가 장로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래? 다른 장로에게 나 대신 가보라 이르게.”

그가 팩하고 몸을 돌려 발길을 옮겼다.

그런 그를 붙잡은 것은, 함께 장로회의에 참석했던 동료 장로였다.

“총무사태에 대한 건은 장문인께서 맡은 것이 아니었소?”

그 말에 전 장문인이 한숨을 쉬었다.

"그저 과거 총무사태와 연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첫 자리에 나섰던 것뿐이오.”

그가 손을 내저었다.

“이젠 충분히 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단계이니, 뒤는 누가 맡아도 상관없소.”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 장문인은 무시하고 발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그는 대공자의 첫 행보에 대해 들은 후에 괜히 소름이 돋은 뒷덜미를 거칠게 문질렀다.

'내가 그 마귀 같은 놈이 활개치는 판에 더 이상 깊게 관여할 것 같은가?!’

그가 마차들을 피해 교차로를 지나칠 때였다.

“잠시, 기다려 주시오!”

자신을 부르는가 싶어, 돌아본 전 장문인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대는…?”

* * *

낙양검가 내의 창고 구역.

“여기라면 보는 눈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소이다. 그러니….”

전 장문인은 그렇게 말하며, 가늘게 뜬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부터 말해 보시구려.”

상대, 이공자 측의 '손 장로', 가 그에게 짧게 전음을 날렸다.

정보의 출처에 대한 전음이었다.

“...으음."

전 장문인이 짧게 침음을 냈다.

“이거, 오리발을 내밀 순 없겠군.”

그가 창고의 차가운 벽에 등을 붙이고 기대섰다.

“무엇이 궁금하시오?”

손 장로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전 장문인께서 그 '모임'에서 탈퇴한 이유를 들을 수 있겠소?”

잠시 생각을 마친 전 장문인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이공자 측에서 대공자를 상대했었던 것이 그대였군.”

손 장로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이제 대공자라는 자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나 보오?”

손 장로는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전 장문인은 대공자가 가주직인을 어쩔 수 없이 최고위원들에게 내주었다고 여기시오?”

이번에는 전 장문인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침묵 또한 손 장로에게는 충분히 답이 되었다.

“…'모임'이라는 것은.”

잠시 후 전 장문인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처럼 언제 돌아올지 몰랐던 대공자의 영향력을 낮추어두기 위한 공작을 진행하던 초당파적인 비밀 조직이오.”

"우리 이공자 계파, 삼공자 계파, 그리고 중립 계파의 장로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소.”

전 장문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하지만 그중에 대공자의 위험성을 그나마 제대로 알고 있던 이는 나밖에 없었지.”

“…전 장문인께서는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이오?”

전 장문인이 그런 질문을 던진 손 장로를 비웃었다.

“약점이 될지도 모를 가능성이 있는 옛이야기를, 적대 진영의 장로에게 할 거라고 기대했소?”

"...."

그가 벽에서 등을 떼고, 창고의 밖으로 향했다.

“한 가지는 마지막으로 말해 드리지.”

창고 문고리를 붙잡았던 그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대공자에 대한 소문은 전체가 전부 사실이라고 믿는 쪽이, 과장된 일부가 거짓이라고 믿는 것보다 안전할 것이오.”

그가 문을 열고 나서면서 낄낄거렸다.

“이런 말을 해 봐야 광인 취급이나 받겠지만.”

그가 떠나고 문이 닫혔다.

"...."

잠시 문을 바라보던 손 장로는 창고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소문을 전부 믿는 쪽이 안전하다…?”

* * *

과거, 낙양검가.

“서신은 어떻게 보냈느냐?”

아버지가 엄한 얼굴로 물었다.

“서신은 혹시나 해서, 배웠던 대로 보안 지침을 지켜 익명으로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초청장은 어떻게 받았느냐?”

“보안 지침상 외원과 내원의 기밀 보고 체계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잘했다.”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그 노마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이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려면, 내 이름이나 가명을 사용하도록 하여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린 연소현을 내려다 보았다.

어미를 꼭 빼닮은 그 맑디맑은 눈동자는 아직 세상의 이유없는 무자비함과 불합리함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일은 네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네 이름으로 직접 행해서는 안 될 것이야.”

"...."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어린 연소현을 위해서, 아버지는 추가적인 설명을 보태기 위해서 말을 골랐다.

“그러니까….”

어린 연소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구양 어머니와 남궁 어머니가 사내아이를 낳았기 때문이겠지요.”

"...."

이 아이는 어찌도 이리 영민하단 말인가.

겉으로 보이는 순수함과 달리 이미 세상의 어두운 면마저 깨달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렇다.”

어린 연소현이 말을 이었다.

“저와 어머니에게는 보호를 제공할 외척 세력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 또한 네 말이 옳다.”

첫째 사내아이가 가문을 잇는다는 법이 가법상에 존재하지 않는 낙양검가였기 때문이었다.

“이 아비는 강남의 문제 때문에 가문을 비우는 일이 잦다. 그러니….”

어린 연소현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과한 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치도 못한 일을 저지르게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라 해야 할까.

무엇이라고 해야 좋을까.

이를 악물었던 아버지가 아들의 앞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 가문의 다음 가주는 소현이, 바로 너다.”

아버지는 어린 연소현을 마주 보았다.

“그러니 네가 검을 들지 않고도, 자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익히기 전까지, 그때까지만 참아 다오.”

어린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지.”

아들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쥐고, 이마를 맞댄 아버지가 말했다.

“…이 죄 많은 아비를 용서해 다오.”

어린 연소현은 그저 미소를 지어 아비를 위로했다.

“내원총관!”

“하명하소서.”

그림자처럼 대기 중이던 내원총관이 무릎을 꿇었다.

“들었겠지?”

"예, 앞으로 대공자님의 이름이 필요 이상으로 언급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것은 연소현의 나이 네 살 때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낙양검가에 때때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업적을 세운 대공자에 대한 소문이 돌았지만, 이내 사그라들곤 했다.

그나마 혈사(血史) 이후, 그때 당시 일을 부분적으로나마 기억하는 최상위층들이 있었다.

이런 이들에 의해, 대공자의 지략이 하늘에 닿았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담고 은밀히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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